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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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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도 가려느냐?


                시작하는 말씀

예수님에게는 그 사역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발 딛을 틈이 없고 식사하실 겨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불치의 병들을 고쳐주시는 것을 목격하고 큰 소망을 가졌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이나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시는 이적들을 놀라워하면서 능력의 주님 곁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예수님께 몰려들었던 무리 중에서 예수님 곁을 떠난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오늘 본문 66절은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으려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일도 멈췄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 곁을 영영 떠났습니다.

      왜 떠났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들은 왜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까? 그렇게도 예수님이 좋다며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이제는 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겠다며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까? 그 이유 중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렵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60절에서 그들은 말합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냐?" 저들은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어렵게만 생각하였습니다. 생명의 떡 되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그저 어렵다고만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말씀을 육신의 이성으로만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생명 말씀이 저들에게 걸림돌처럼 여겨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합리적으로 관찰하고 파악하며 따져서 평가하고 결론지을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들도 인간의 이성으로 연구하고 이해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은 인간의 이성보다 영적인 믿음으로 받아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는가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구원의 사건은 이성보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도 왜 예수님께서는 굳이 동정녀의 몸을 빌어서 탄생하셔야 했는지를 인간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정녀 탄생사건과 그 사건을 기록한 말씀은 이성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내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믿음으로만 나의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대부분이 이성보다 먼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성으로도 잘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베드로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 69절에서 베드로는 믿음과 이성의 조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69절에서 베드로는 무어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이 말씀은 주님을 알고 믿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을 알되 믿고 알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었더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주님이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믿음과 이성이 함께 베드로의 신앙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영적 원리를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려고는 하지 않고 이성으로 이해하려고만 하다가 어렵다며 떠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어렵다고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을 믿어도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잠만 오고 말씀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며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또한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대해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갖춘 사람들 중에서도 그 성경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지 못하여 믿음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성경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면 바보 취급을 당하고 복을 받기는커녕 나만 손해를 볼 것인데 어찌 말씀대로 살라 하는가?" 며 믿음을 포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말씀을 그들의 진로에 걸림돌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실생활에서 진정 어려움만 줍니까?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네 삶에 걸림돌입니까? 술 취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가정을 지키라 하시니 어렵습니까?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살라하시니 불행해질까 염려됩니까? 다투고 싸우며 나뉘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여 하나 되라 하시니 싫습니까? 거짓으로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사업을 하라 하시니 사업이 망할 것만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결단코 손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유익 되게 하는 복된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복이 쏟아지기를 원하고 편법을 써서라도 당장 성공하기를 원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실과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고 죽어지며 낮아지면 결국 높아지고 성공하는 원리를 그들은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장은 그 성과가 눈에 띄지 않고 당장은 성공 같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포기합니다. 굽은 길을 가는 사람들로서는 삶의 정도를 가게 하는 진리의 말씀이 걸림돌로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의 구주 되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영생의 주님 곁을 떠나 세상으로 갔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좋을 대로 구주 예수님을 버리고 죄와 저주의 사망길을 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사 우리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면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겨자씨만큼의 작은 믿음이라도 있었다면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예수님의 말씀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그들은 예수님을 소홀히 여기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불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런 불신을 미리 아셨습니다. 주님은 본문 6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정말 마음 아플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직접 기적을 행하셔서 이적을 보여 주셨는데도 그 주님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오만함이 얼마나 방자한지요. 인간의 의심과 불신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않으면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보다 세상것이 더 커보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보다 자기 생각으로 사는 것이 더 유익해 보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이 더 중해 보이고 믿음의 생활보다 자기 생활에 더 바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천국잔치자리를 떠나 집으로 가고, 소를 사서 바쁘고 논밭을 사서 바쁘다며 제각기 자기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보다 세상것을 더 중히 여기고, 진리보다 편법과 불법을 더 유용하게 여기며 살지는 않았습니까? 하늘에 보화를 쌓기보다 이 땅의 창고를 크게 키우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보다 잠간의 쾌락을 더 좋아하지는 않습니까? 안됩니다. 결단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런 삶은 예수님을 믿는 참된 신앙모습이 아니요 그래서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 참믿음을 포기하고 거짓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도라 하면서도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처럼 부끄러움을 모르고 믿음의 정도를 이탈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뻔뻔스럽습니다. 약대를 삼키고도 당당합니다. 저들은 말씀의 지식은 가졌지만 말씀의 삶은 버렸습니다. 저들은 믿는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믿음의 내용은 버렸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교회의 직분이 문제가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광명한 천사 같은 모습으로 양들을 늑탈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영적 타락이 교회 안에서까지 알게 모르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입니까? 교회는 다니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을 삶의 근본으로 삼지 않고 부수적인 액세서리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생명같이 여겨야 할 믿음을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팽개치고 있습니다. 생명 바쳐 섬겨야 할 존귀하신 주님을 푼돈만도 못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도무지 주님께 헌신할 마음이 없습니다. 만약 저들에게도 형제 위해, 이웃 위해 십자가를 지라하고, 살을 주고 피를 주라 하였다면 벌써 주님을 버렸을 것입니다. 만약 저들에게 주님을 위해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라 하였다면 벌써 주님 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 주님을 굳게 믿고 주님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주님 곁에서 주님께 헌신하여 살아갑시다. 주님을 섬겨 주님 말씀 따라 사는 삶에는 평안과 소망이 있고 영생의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떠난 자들은 사람에 실망하여 떠났습니다. 그들은 인간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고 떠났습니다. 본래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야는 돌로도 능히 떡을 만들어 먹여 줄 수 있는 그런 영웅이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자하고 자신의 살을 주고 피를 주는 그런 메시야를 그들은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칼과 창을 휘두르며 열방을 정복하고 제국을 세워 군림할 제왕이 필요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메시야, 사랑으로 자신의 몸을 깨뜨려 자신을 죽임으로 남을 살리는 그런 메시야는 그들에게 실망스럽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더 이상 예수님 곁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경향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로 나아오지만 사람에게 실망을 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실망을 주실 분이 아니지만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사람을 봄으로 말미암아 실망을 하고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그들의 주요 관심이 예수님에게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교회를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평가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배우는데 마음을 쏟기보다는 교회가 내 마음에 맞는가를 따지며 교인들이 나와 어울려지는 사람들인가를 더 생각합니다.그래서 내 마음에 안 맞고 내 생각과 다르면 교회를 그만 두고 심지어 예수님도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 마음이 진정 예수님을 알고자 하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결코 사람을 믿고 사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배우며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인데도 그 신앙뿌리를 예수님께 두지 않고 사람에게 두며 특히 자기 자신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로는 온전한 믿음에 이를 수 없고 주님의 좋은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믿음의 초점을 나보다는 예수님께 두고 예수님만 바라고 나아갑시다. 사람에게 실망되더라도 구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굳게 붙들고 삽시다. 그리하면 우리 모두 건강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남은 이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나는 때에도 결코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 곁에,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기적을 보고 떡을 바라며 예수님 곁에 몰려 왔다 썰물처럼 제 갈 길을 가는 때에도 예수님 곁에 버티고 서서,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살기를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인간예수에 실망하며 돌아가는 때에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예수님 곁에 남아 있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비롯한 열한 제자였습니다. 다 주님을 떠나도 그들만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 예수님께 실망을 해도 그들만은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그들만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 곁에 남았습니까? 오늘 본문 68-69절에서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우리들의 신앙고백으로 고백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그들이 주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떠나면 그 삶이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임을 그들은 잘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 곁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 곁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 곁을 떠나서는 안 될 이유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 있는 '영생의 말씀' 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생명떡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피가 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승리할 뿐만 아니라 저 영원한 나라에서도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까닭에 우리는 예수님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마무리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오랜 역사 가운데는 모진 핍박 중에서도 그 믿음의 절개를 지키며 영생의 주님을 택한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 사람들, 목숨을 내 걸고 영생의 주님과 함께 하기를 결단하였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순교의 신앙으로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기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이들 중에 한 사람, 안디옥의 감독이요 위대한 교부였던 이그나티우스를 소개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발되고 체포되어 사형 당하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는 압송 중에 여러 편지들을 썼는데 그 중 자신의 석방운동을 벌이는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는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타협하지 말라. 내가 놓이기를 바라지 말라. 나는 야수들의 이빨에 씹힐 하나님의 밀알이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순전한 떡으로 바쳐지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형벌 당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 위에서 짐승의 이빨에 뼛가루가 되어 손과 발이 잘리더라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겠노라.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다"
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까! 이 얼마나 아름답고 당당한 신앙입니까! 그런데 이토록 주님 곁을 떠나지 않고 믿음의 자리를 지킨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주님의 이 물음 앞에서 우리 역시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삶을 결단합시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말씀이 되시는데 우리가 누굴 찾아가며 무엇을 찾아 어디로 가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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