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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처방전 / 수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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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처방전
수 8:3-9

  오늘은 여호수아 8장 3절에서 9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승리의 처방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단어 하나를 바꾸면 '승리를 위한 처방'이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들은 몸이 좀 불편하고 어딘가 병들었다 싶으면 병원을 찾아갑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몸을 진찰 한 다음에 진단을 정확히 내립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병에 대한 진단을 정확히 내리지 않으면 고칠 재간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진단을 정확히 내려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 병은 원인이 무엇이며 지금 이 정도까지 진척이 되었으니 이런 주사를 맞아야 되고, 저런 약을 써야 되고 때로는 수술도 해야 된다는 처방이 나옵니다. 처방이 나온 다음에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 고통스럽기도 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그 때 나는 그 처방이 싫다고 하면 그 때는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의사가 내리는 처방에 철저하게 따를 때 잃었던 건강을 찾기도 하고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처방을 무시하면 큰 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나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이 잘 안될 경우 정리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투자를 더하여 살릴 것인가 하는 진단을 정확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살린다고 하면 어떤 방법으로 투자를 하고 어떻게 운영을 할 것인가 하는 처방이 나와야 하고 처방이 나왔을 때 그대로 하면 그 기업은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번은 아이성을 점령하려다가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정확히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처방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승리를 위한 처방 혹은 성공을 위한 처방이 무엇인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비하라 (3-4)

  '준비하라'는 말과 '예비하라'는 말은 조금 다른 말입니다. '예비'는 어떤 상황에 부딪히기 전에 미리 미리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리가 빠지면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간을 놓치면 예비가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준비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까닭에 반드시 예비하라, 미리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열 처녀에 관한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비유를 읽으면서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한다 하니까 열 처녀를 신부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열 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친구들입니다. 신부는 따로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결혼식을 할 때 낮이 아닌 밤에 합니다. 신랑이 신부에게로 밤중에 올 때 갑자기 신랑을 맞으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신부의 친구들은 캄캄한 밤이기에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등에 기름을 채워 넣고 신랑이 올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을 준비하고 기름을 채워 미리 예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준비했습니다. 즉 형식은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기름은 예비하지 못했습니다. 속이 텅 빈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이 이러면 큰 변이 나는 것입니다. 형식은 교인이라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속이 텅비어 있으면 안됩니다. 은혜도 말씀도 사랑도 없는 텅빈 상태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상황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해결할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즉 신랑이 올 때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이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갑자기 온다고 맞으라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에 불을 밝히고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리고는 신랑을 인도해서 신부에게 안내를 합니다. 문은 닫히고 잔치가 시작되고 슬기로운 자들은 그 잔치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기름을 예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처녀들은 그 때서야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사서 준비한다고 야단을 하다가 겨우 준비를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문이 닫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정적인 시기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밖에 쫓겨나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준비를 한 사람과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이것을 한자 용어로 유비무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절에서 4절을 보면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앞장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요단 강을 건너고 보니 입구에 철옹성같이 여리고성이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을 그대로 놓아 둔 채로는 가나안 땅을 점령할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작전 명령을 내렸습니다. 7일 동안 너희들이 여리고성을 한 바퀴씩 돌라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은 그렇게 하지만 칠 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성을 둘러서서 고함을 지르면 성이 무너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맹랑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지 순례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 소리를 지른다고 무너집니까? 그 성을 공격할 만한 무장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습니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소리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40년 광야 생활의 훈련을 통해서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대로 소리를 질렀더니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 여리고성을 점령하거든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숨쉬는 것은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금 은 동 철은 하나님 앞에 바친 바 되었으니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손을 댄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여리고성은 완전히 점령을 하고 승리한 줄로 생각되었었습니다.
  이어서 가나안을 점령해 들어갈 때 길목에 조그마한 아이성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 할 때는 저 정도라면 우리 군대가 다 올라 갈 필요가 없이 3천명만 가면 되겠다 생각하여 3천명이 쳐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맞아 죽고 쫓겨오고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를 비롯한 백성들의 생각에 10배나 크고 강한 여리고는 쉽게 이겼는데 아이한테 이스라엘이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손대지 말라고 한 나의 것에 왜 손을 대었느냐는 것 때문입니다. 그럼 그가 누구입니까? 제비를 뽑으니 아간이 뽑혔습니다. 왜 그랬냐고 묻자 어떤 집에 들어갔더니 커다란 금덩어리 은덩어리가 있는데 너무 탐이 나서 장막 속에 갖다 묻어 두었습니다. 아내가 뭘 잘 못했습니까? 자식들은 무엇을 잘 못했습니까? 그들은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장의 책임은 이렇게 큰 것입니다. 처자식의 잘 못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간을 정리한 후에 이제는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성을 너에게 붙여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처방전을 받았습니다. 방금 읽은 본문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준비 없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준비를 했습니까?
  첫째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즉시 일어나 준비를 했습니다. 순종은 즉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로 미루어서 잘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로 삼만명의 군사와 함께 더불어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여호수아가 백성을 나누어서 내가 한 대는 끌고 성문 앞쪽으로 갈테니 한 대는 성문 뒤로 가서 매복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매복을 하고 있다가 신호를 하거든 달려들어 치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가장 좋은 자리를 준비해 놓고 때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서두르다가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방금 읽은 말씀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즉시 예비하고 더불어 예비하라고 좋은 자리를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아이성을 쉽게 이기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예비하는 삶은 성공을 위한 처방의 첫째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사실을 평생 잊고 살아 본적이 없습니다. 6·25사변과 그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내가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한시도 등한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속에 고학을 하고 병은 들어 감당키 어려워도 또는 피를 토하면서도 내가 목사는 되리라고 하면서 신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 때 머릿속에 '내 몰골 내 치신을 갖고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된다고 한들 누가 나를 불러 주고 써 주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포기하자'하는 유혹이 들곤 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래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항상 마음으로 응답해 주시기를 '준비하는 것은 네가 할 일이요, 들어 쓰고 안 쓰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준비하는 것도 하나님께 해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준비가 끝난 다음에 어떻게 쓸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인데 그것까지 내가 하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 시험을 칠 때 면접하는 목사께서 이력서를 보시더니 "지금까지 도시에서만 전도사 생활을 했네?"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시골 농촌에서 오라고 하면 갈 것인가?" 그 때 대답을 잘 못하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농촌에 가라고 해도 가고, 산골에 가라고 해도 가고, 도시에서 쓰겠다 하여 도시에 가라고 하면 도시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문답하시는 목사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붙여 주셨습니다.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준비는 너희가 하라는 것입니다. 쓰고 안 쓰고 길을 열고 열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비하라' 이것이 성공을 위한 처방입니다.

  둘째, 최선을 다하라 (5-7)

  한 번은 서기관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계명 중에 첫째 되고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것 한가지면 다 들어 있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뜻, 힘, 목숨은 다 다른 낱말입니다. 그러나 '다하여'라는 말은 똑 같습니다. "다하여"는 무슨 뜻입니까? 나머지 혹은 찌꺼기가 아닙니다.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 생활 할 때는 전부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 본문에 비춰서 이야기하면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가대로 봉사할 때 하면 하고 말면 만다는 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아이성을 점령할 때도 하면 하고 말면 만다 해서 성공할 수 있습니까?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5절에서 7절을 보면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따르며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하거든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삼만명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한 대를 이끌고 성의 정문으로 갔습니다. 너희는 뒤에 가서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가 그들 앞에 나타나면 아이성 사람들이 전번에도 우리가 이겼으니 이번에도 너희는 우리의 밥이다 하고 달려나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싸우는 척 하면서 도망을 갈테니 우리가 도망가게 되면 아이성 사람들이 우리의 유인을 받아 따라나와 성을 벗어나고 말 것이니 그 때 뒤에 매복한 매복조는 달려들어 성을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처방인 것입니다. 성을 점령하라는 것은 전쟁하라 혹은 싸워서 취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전쟁하는 것, 싸우는 것이 장난입니까? 져도 되고 이겨도 되는 장난입니까? 전쟁이라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를 마주 앉아서 게임하는 놀이입니까? 전쟁이라는 것은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전쟁에는 2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살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서 이 성을 반드시 점령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할 때 성공하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남의 회사에 가서 월급 받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월급 받고 남의 일 해 준다 생각하고 하면하고 말면 말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누구든지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할 때 거기에 승리가 있고 성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처방이 바로 그것입니다.

  카터 대통령은 해군 사관학교 출신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 최초로 핵 잠수함이 나왔습니다. 다른 연료는 한번 넣으면 다시 부상하여 연료를 공급받아야 하기에 부침을 자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핵연료는 한번 넣으면 한달이고 석달이고 여섯달이고 수중에서 작전을 해도 됩니다. 그러니 핵 잠수함 함장을 한번 해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핵 잠수함의 함장을 선발하는데 다른 장교들과 함께 카터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 때 하이만 리카피라고 하는 함대 사령관이 카터와 더불어 면접을 했습니다. "자네 해군 사관학교 졸업했구만?" "예, 그렇습니다"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 할 때 몇 등을 했는가?" "예, 820명중에서 59등을 했습니다"한국 사람은 59등을 별로 인정해 주지를 않지만 미국 사람들은 10% 안에만 들면 1등이나 2등만큼은 여기지 않더라도 굉장히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 안에 들면 본인은 자부심을 가지고 타인이 인정을 해 주는 것입니다. 820명의 10%면 82등만 해도 되는데 59등이기에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사령관이 "최선을 다 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은 할 줄 몰랐기에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생각해 보고는 "예,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기까지의 대화로 그냥 넘어가면 좋을 텐데 이 사령관이 좀 까다로운 사령관이었는지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카터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그는 결국 실격이었습니다. 그 잠수함이 지금은 퇴역해서 보스턴 앞 바다에 있습니다. 그 물음이 카터에게는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렇다 누가 언제 물어 보아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해야 되겠다 하면서 그 때부터 최선을 다 해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함과 최선을 다함의 차이가 이런 것입니다. 대통령 직무가 끝나고 재임 당시의 일들을 회고록으로 써서 책으로 낼 때 책의 제목이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why not the best?)"였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기회도 절대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공과 승리는 최선을 다하는 자의 것입니다.

  셋째, 마무리를 잘하라 (8-9)

  나의 기도 제목 중에는 1, 2년 전부터 하나 추가된 것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기도입니다. 이제는 태양을 정면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고 살아가는 나이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앞에 드리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태양이 여러분들 위에 있습니다. 그림자가 별로 없다 하여 남은 세월이 많은 줄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태양이 조금만 넘어가서 뒤로 가면 그림자가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이 어른거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태양이 앞으로 향해 있으니 천년 만년 살 것 같은 생각이 들것입니다.
  나의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 나의 종말이 단풍처럼 떨어져 가게 하옵소서"입니다. 단풍이 무엇입니까? 가을이 되면 푸르디 푸르른 산에 찬란하게 물이 들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단풍이 있고, 그렇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가 결국 어느 날엔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단풍은 마지막이 얼마나 좋습니까?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러다 어느날 보면 떨어지고 없는 것입니다. 죽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마지막이 참으로 아름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도 어느 날엔가 죽었네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1년, 3년, 5년 누워서 처와 자식들에게 폐가 되고 교회에 폐가 되면 어떻게 합니까? 아무날 "김창인 목사가 죽었대 글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생도 마무리가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사업도 그 외의 모든 것도 마무리가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9절을 보면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 하고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곳에서 매복을 했다가 점령을 하고 아이성은 반드시 불을 놓아서 초토화시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짐승이나 전리품은 너희가 가져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무리 처방입니다. 그대로 했더니 그 다음에는 아이성을 깨끗이 이겼고 가나안 7족속들이 연합하여 달려들어도 전부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여리고성을 정리할 때는 끝마무리가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패배를 당했고 대가를 치렀습니다. 아이성에서는 끝마무리가 그렇게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니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생도, 여러분들의 가정도, 여러분들의 사업도 이렇게 끝마무리가 아름답고 계속 승리를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예비해야 합니다. 성공과 승리는 예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예비하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요, 결과는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둘째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에게 승리와 성공은 약속되지 않습니다. 셋째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여리고성 점령에 마무리를 잘 못 지었다가 아이성 싸움에서 낭패를 당했습니다. 항상 인생이나 사업이나 전쟁에서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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