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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적인 자녀 교육 / 히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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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자녀 교육 
히 11:23-26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오늘은 어린이날이면서 어린이주일입니다.
이 어린이주일에 성공적인 자녀교육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녀교육은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입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과 열성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녀교육이라고 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투자를 합니다.
고액과외도 마다하지 않고 조기유학도 가리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자녀의 교육만큼은 잘 시키려는 것이 우리 한국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성공적인 자녀교육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바로 키우는 것입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한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운 한 부모를 보게 됩니다.
모세의 부모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본문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6장 20절에 보면 그들의 이름이 아므람과 요게벳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그렇게 오랫동안 키우지 못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아이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훌륭한 영적 지도자로      길러 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도 모세의 부모처럼 자녀들을 잘 길러내야겠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들의 자녀교육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말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24절로 26절을 읽어보십시오.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장성해서,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녀를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하겠습니까?
돈 잘 버는 사람이나 명예와 인기가 높은 사람, 권세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 믿는 부모들이라면 우리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야 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길러야 합니다. 자녀들은 결국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부 잘 하는 사람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면 우리는 실패한 부모들입니다.
히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수고는 헛것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비록 가진 것 없었고 신분도 높지 못했고 아는 것도 많지 못했지만 모세를 믿음으로 키웠기에 장성해서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고 모세가 믿음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먼저, 그는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을 알았습니다.

믿음이란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아는 것입니다.
영어로 No!할 때 No!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세상 풍속이 잘못되어지거나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갈 때 들어가기를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황제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믿음의 논리를 따를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모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 것은 그 당시 큰 특권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온갖 애굽의 부귀와 영화, 그리고 인생의 낙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이 죄악의 낙인 것을 알고 과감히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이 있는 자라면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압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풍속을 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따를 줄 알게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믿음의 자녀들이라면 그들도 거절할 것을 거절하면서 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우리가 거절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사회에 만연된 부정과 부패도 신자라면 마땅히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이 사회가 부도덕하고 무질서합니까?
이런 것도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신자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와 내 자녀들이 그렇게 거절할 것을 거절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그것을 보아 우리의 자녀교육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그는 좋아할 것을 좋아할 줄 알았습니다.

믿음이란 거절하는 것으로만 일관하는 것이 아니고 좋아할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을 좋아합니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에 나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함께 하여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낙을 누리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낙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것이 좀 고난스러워도 그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믿음이 있는 증거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다윗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했습니다.(시 84:10)
우리의 자녀들도 이러한 고백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우리 자녀들도 믿음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귀공명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아 우리들의 자녀 교육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그는 자기가 무엇을 바라야 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애굽에서 누리는 낙과 애굽이 주는 보화나 재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난을 받고 능욕을 받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의 공주라 일컬음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더불어 고난 받은 길을 택했는데,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장치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상을 바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이 있으면 멀리 바라볼 줄 알게 되고 하늘의 상을 바라 볼 줄 압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 세상의 것만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이며 무엇이 영원히 남을 일인지를 바로 알면서 살아간다면 우리 자녀교육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아이들이 세상의 돈이나 명예, 출세나 성공 등만을 바라보고 그것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라면 우리들은 그들을 잘 못 기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눈을 높이 듭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잠시 잠간이면 사라지는 헛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인생은 이 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하늘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자녀들에게 보여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이 땅의 것들에는 초연하면서 하늘의 것을 바라보는 거시안적인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 바른 자녀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모세는 장성해서 거절할 것을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좋아할 것을 좋아할 줄 알았습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 볼 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자녀교육이 성공적이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성공적인 자녀교육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 아이들도 이런 아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장성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모세의 부모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우리도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자녀교육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여기 23절의 말씀을 읽어보면 몇 가지 비결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부모들도 모세를 키울 때 믿음으로 키웠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가 믿음의 자녀를 키우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는 믿음의 부모에게서 만들어집니다.
그러한 믿음의 부모는 어떻게 자녀를 교육합니까?

첫째로, 여기 보니까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났을 때부터 그를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키우려면 낳을 때부터 힘써야 합니다.
잠 22:6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자녀교육은 어릴수록 좋습니다.
오늘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우리가 왜 이렇게 어릴 때 세례를 줍니까?
이 아이들을 이렇게 어릴 때부터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가 났을 때부터 믿음으로 교육했습니다.
많은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어린 아이의 인격형성이 이미 어릴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부모는 어릴 때에 잘 교육을 시킵니다.
자녀 교육은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리다고 생각되는 그 때가 바로 교육할 때입니다.
학교에 가서는 지식을 배웁니다. 학교에서 믿음을 가르쳐주지 않고 이 세상이 믿음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에 가정과 교회에서 믿음 교육을 해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그랬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그 아이를 아름답게 보았습니다.
행 7:20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아이를 인간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부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이들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아이들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교육하려면 그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할 일은 아이들의 아름다운 면을 잘 보고 살려주고 키워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교육해 갈 때 교육의 실패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어떤 어린아이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 한 아이 한 아이가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삼가 이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반대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그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어린 아이 하나가 그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어린아이들, 우리들의 자녀들을 본다면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주신 재능과 그 특기를 보면서 어떤 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쓰임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거기에 충실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자녀 교육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보니까, "석 달 동안 임금의 명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를 숨겼다"고 했습니다.

당시 임금의 명령은 지키지 않으면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바로의 명령과 같이 이 세상의 명령이 자녀들을 이러하게 키우라고 명령합니다.
우리에게도 자녀들을 바로 키우려면 죽음을 각오하는 그러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요즘 우리들이 자녀들을 키우기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입시제도가 우리 자녀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일류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녀들 장래를 망친다고 하는 두려움이 부모들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마다 경쟁적으로 자기 자녀들을 교육시키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주일날에도 교회 안 내보내는 부모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 학원에 가서 더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도 신앙교육 시킬 겨를이 없습니다.
그 시간에 한자라도 더 공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늘 내 자녀는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합니다.
저금이라도 내 자녀가 좋은 성적 받는 길이 있다고 하면 신앙도 양심도 저버립니다.
그게 다 세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해서 다 세상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 자녀들이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지만 그러한 아이들이 장차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다니엘처럼 뜻을 정해서 믿음의 원리로 살아가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 오히려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의 명령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대로 따르지 않고 믿음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를 기르면서 잘못했던 것들을 자녀들에게 고백하셔서 그들이 잘못을 되풀이하여 교육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자라나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이러한 복을 주시고 모든 부모님들에게      믿음의 부모가 되게 하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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