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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빚문서를 태워라 / 사 40:26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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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문서를 태워라


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40:26 ~ 31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군대처럼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골로새서 2:12 ~ 15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또 여러분은 범죄와 육신의 무할례로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가운데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셔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심으로써,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복음서의 말씀: 마가복음서 16:14 ~ 18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다. 그들이,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함을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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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라는 큰 행사를 끝내고 나면 좀 허전한 게 있습니다. 우리는 큰 연극 공연을 끝내거나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허전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데, 부활절의 경우 행사가 다 끝났으니 허전하다고 느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활주일이 지난 오늘부터 부활이 진실되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에까지 이르는 행로는 굉장히 험했습니다. 그만큼 기쁨도 컸습니다. 그 큰 기쁨을 간직하고서,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갈릴리를 향해서 길을 재촉하면서 떠났으면 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의 빚을 다 갚아 주셨으므로, 부활절 이후에는 용서를 선포하여라! 부활 이전의 찌든 죄값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당신들 대신 죽어서 빚문서를 다 없애버렸으니, 빚문서를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렸으니, 이제는 부활의 생명의 진리로 당신들이 다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여라."
오늘부터는 용서의 계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피 공로로 빚문서가 완전히 말소되고, 율법에 얽매였던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풀려났다고 선언하여야 합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진실한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그대로, 오늘부터는 진실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으로서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골로새서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빚은 탕감받았습니다. 빚지고 살아보신 경험 있으시지요? 누구나 어려울 때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남한테 돈을 빌리고 못 갚아서 애타하셨던 기억은 있지 않으십니까? 누군가한테서 도움을 받았는데, 누가 도움을 주었는지조차 몰라서, 은혜의 빚을 갚으려고 평생 동안, 도움 준 사람을 찾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방송에 가슴 아픈 기사가 있었습니다. 산비탈 언덕에 자동차 하나가 서 있는데, 그 안에서 카드빚에 쪼들린 젊은 부부가 농약을 먹고 자살하고, 자식들 둘한테도 약을 먹여 죽게 했는데, 한 아이만 겨우 살아났다는 보도였습니다. 빚을 지고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견딜 수 없는 것, 그것은 카드빚만은 아닐 겁니다. 마음의 빚을 지고 갚지 못하고 사는 사람, 그에게는 그 마음의 빚이 가장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일 겁니다. "빚은 탕감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갚아주었으니 죽지 마시오! 인생을 포기하지 마시오! 농약 마실 필요 없고, 자살도 필요 없으니 이제는 살길만 궁리하십시오!" 이 선언을 죽은 사람이 들었더라면, 아니 그냥 누군가가 카드 빚 천만 원을 갚아주었더라면, 세 사람 목숨은 구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빚에 찌들리고,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죄책감에 눌린 사람은 그냥 약을 먹고 죽습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의 항목과 세목들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가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 문서란 사실 여러분 각자가 다 마음속에 써놓은 문서들입니다. 이 문서를 하나님께 내놓고, 여러분의 빚문서도 탕감받았는지 한번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께 솔직하게 물어보십시오. "제 빚문서도 탕감된 겁니까?" 확신이 없으면, 오늘부터 다시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십시다. 확신이 있으면, 오늘 용서함 받은 기쁨을 가지고, 환한 웃음을 띠고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빚을 꾸어준 것도 있거든, 여러분이 탕감받았듯이 그들도 다 탕감해 주십시오.
마음의 빚을 먼저 탕감받으십시오. 이 말씀은 진실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부활이란 예수 그리스도께 하신 모든 일이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을 선포한 지가 이천 년이 지나면서, 그 어간에 수많은 진실의 왜곡이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갈릴레오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합니다.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로마 카톨릭도 변하고, 사회구조도 변하고, 르네상스라 이름하는 소위 문예의 부흥도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와 활기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갈릴레오라는 과학자가 종교재판에서 단죄를 받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태양이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돕니다. 지구가 움직입니다." 그것은 진실이었지만, 교회는 그 말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결국 갈릴레오는 인간적 나약함 때문에 과학적 진실을 스스로 부인합니다.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진실을 말한 갈릴레오에게 씌워진 족쇄였습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등장하여 나치즘이 나라를 광란으로 몰고 갈 당시에, 독일 국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희곡작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베르톨드 브레히트입니다. 이 사람이 나치의 박해를 피하여, 덴마크로, 핀란드로 그리고 미국으로 전전하면서 망명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1938년 어느 날 우라늄 원자핵 분열 기술이 발전되어서 이제 곧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브레히트는 한쪽에서는 히틀러의 나치주의가 사람을 죽이고, 반대쪽에서는 나치의 만행에 대한 응징으로 원자폭탄이 만들어져서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게 생겼으니 큰일났다고 생각하면서, 희곡 하나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를 테마로 삼았느냐 하면, 바로 갈릴레오를 테마로 삼아서 15장으로 된 희곡, "갈릴레오의 생애"를 썼습니다. 43년에 취리히 시에서 첫 공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희곡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 희곡에서 말하려는 요지는 하나입니다. "과학자 갈릴레오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러나 종교재판정 앞에 선 인간 갈릴레오는 너무나도 나약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순진한 바보는 차라리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부정하는 사람은 극악한 범죄자입니다. 오늘날 나치 치하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부정하는 자는 범죄자입니다. 갈릴레오여, 당신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종교재판에서 그것을 부정하였으니 당신은 극악한 자입니다." 진실을 알면서도 부정하는 이것이 우리 인간 사회가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로마 교황청은 이 과학자에게 채웠던 족쇄를 최근 몇 년 전에야 풀었습니다. 이전 종교재판의 결과를 번복하면서 갈릴레오를 해방시켰습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실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죽었는데,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어 내 죄값을 다 치르셨는데, 그 진실을 알면서 우리는 그 동안 우리는 그 진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우리 죄값을 치른 은혜를 어떻게 갚으셨습니까?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되었으니까, 성서를 많이 읽었으니까, 교회 직분이 있으니까, 대대로 예수 믿는 가정에 살았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산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면서, 끝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진실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진실대로 살지 못했다면, 우리는 범죄자입니다. 베르톨드 브레히트의 말을 빌린다면 "당신은 차라리 순박한 바보가 될 것이지, 어찌하여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됩니까?"
오늘 여기 계시는 여러분이나 저나 다시 한번 십자가 앞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십시다. 내 죄는 사해졌습니까? 주님이 진실로 내 죄값 대신에 희생을 치르셨습니까? 그렇다고 시인하는 제 말이 입에 발린 소리입니까? 아니면 제 가슴속에, 제 삶 속에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현실이 되어 있습니까? 어떤 겁니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빚문서를 십자가에 못박고 완전 탕감되었으니, 부활의 새 생명을 선물로 받으라." 여러분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어 죄를 탕감받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의 길로 간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 지키고 계십니까? 세례 받은 자로서 그렇게 사셨습니까? 차라리 세례를 안 받은 자는 브레히트의 말대로 아직 잘 모르는 신앙의 유아 상태지만, 주님과 함께 죽었다고 하면서 아직까지도 안 죽고 살아있는 사람, 빚 문서를 여전히 갖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은 범죄자입니다.
예수께서 오늘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왜 가십니까? 자신이 하셨던 모든 말과 행실이 사실임을 입증하시려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검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빨리 구원을 받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빨리 모든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가능하면 빨리! 빨리! 그래서 우리 나라는 디지털 산업도 빨리 활성화하는 것 같습니다. 문명도 빨리 빨리 바뀝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좋게 평가하는 외국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서는 빠른 것이 꼭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속도 얘기를 하면 이렇습니다. 오늘날 가치를 창출하는 것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디지털 문명시대의 답은 이렇다고 합니다. "스피드가 가치를 창출한다." 맞습니까? 속도가 가치를 창출한다. 속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속도에 관한 얘기를 하면 어릴 때부터 듣던 우화가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는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니까, 제가 다른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두꺼비와 개구리의 경주 얘기를 하겠습니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논두렁을 걷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는 몸이 빨라서 논두렁을 빨리 빨리 건너서 자기 목적지에 가고 싶은데, 두꺼비는 너무 느려서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둘이 따로 가기로 했습니다. 개구리가 먼저 가고, 두꺼비는 천천히 가기로 했습니다.
천천히 가는 두꺼비의 변입니다. 천천히 가자. 가다가 혀로 이슬방울도 맛보고, 풀꽃과 이야기도 나누고, 때로는 하늘도 쳐다보고, 배고프면 파리도 잡아먹고, 돌 틈에 기대어 졸기도 해보고, 삶을 여유 있게 천천히! 목적지만 도착하자!
개구리는 이것저것 볼 것 없이 아주 분주하고 빠르게 뛰어갔습니다. 두꺼비가 한참 논두렁을 가는데, 이상한 시체 하나가 눈앞에 보였습니다. 급하게 뛰던 개구리가 경운기에 치여서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개구리처럼 분주하게 사는 삶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명상할 시간도 없고, 주변도 돌아볼 수 없고 그냥 앞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솔직히 말해서 구원의 복음, 빚 탕감, 빨리 받기 원하십니까? 천천히 받기 원하십니까? 빨리 받기 원하시죠? 저도 빨리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빨리 빨리 되다가 보니, 우리 입맛은 인스턴트 식품에 완전히 길들어져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입니다. 신앙도 인스턴트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부흥회 때 가서 열광적으로 회개하고, 부흥회를 지나고 나면 다시 열광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도대체 이런 인스턴트 인생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하루가 너무 깁니다. 금방 회개하고, 금방 죄짓고. 인생을 돌아보고 살펴볼 여유가 없습니다.
인스턴트 신앙, 인스턴트 가치관, 인스턴트 인생, 혹시 그게 우리 아닙니까? 가끔은 여유 좀 가지십시다.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는데, 피곤해도 좀 여유를 가지십시다. 조금 불만스러워도 금방 불평을 발설하지 마시고 조금 더 가슴에 품어 두십시다. 성서 말씀대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솟아오를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다.
본회퍼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쉽게 고백하고, 쉽게 죄를 지으면서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데, 그런 은혜는 값싼 은혜올시다. 그런 값싼 은혜는 받으면 받을수록 인간을 멍들게 합니다. 은혜는 진지해야 합니다. 회개도 진실로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의 깊이가 깊고 깊어서, 바닷물이 흉흉해도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냄비 같은 인스턴트 신앙은 이제 버리십시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시면서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골고다 언덕에 오면 안 된다. 아무리 급해도,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골고다 언덕 아래 무덤에 오면 안 된다. 나를 만나서 새 생명을 얻고 싶은 사람은, 내가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고 죄인들과 함께 어울렸던 그 갈릴리로 다시 오너라. 걷는 것이 며칠이 걸리고 몇 달이 걸릴지라도 거기로 오너라. 거기서 만나자."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만날 예수는 죽은 곳에 있는 예수가 아닙니다. 허깨비 같은 예수가 아닙니다. 그분에게는 진지한 삶이 있었습니다. 고뇌도 있었습니다. 기적 속에 살아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린 삶이 있었습니다. 그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시간 좀 걸리더라도 갈릴리에 가십시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행하신 모든 말씀과 기적이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 말씀을 다시 들으십시오. 지위, 출신 성분, 빈부격차, 성별 모든 것을 초월해서,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모두 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얘기를 다시 확인하러 갈릴리로 가십시다.
갈릴리는 유대 땅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땅에서는 지금도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야훼와 알라의 싸움 때문에 사람이 죽고 또 죽어갑니다. 오늘날 그 땅에 예수는 다시 가셔서 평화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십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그러나 갈릴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갈릴리는 유대 땅 북쪽 지역에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갈릴리는 오늘 이곳 경동교회 안에 있습니다. 갈릴리는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의 가슴이 갈릴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싶어하는 그곳, 그곳을 여러분이 갈릴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누우셨으나 이제는 아니 계시는 빈 무덤이 되실 겁니까? 아니면 예수께서 살아 활동하시는 갈릴리가 되실 겁니까? 여러분 갈릴리가 되십시오. 여러분 속에 울음이 있습니까? 갈릴리에 오신 예수께서 웃음을 선사하신다고 합니다. 눈 먼 사람이 있습니까? 눈 뜨임을 선물로 주신다고 합니다. 배고프십니까? 먹을 것을 주신답니다. 목마르십니까? 물을 주신답니다.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화사한 기쁨을 주신답니다. 곡하십니까? 곡함이 없는 생명을 주신답니다.
갈릴리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곳은 값싼 지역이 아닙니다. 힘든 지역이고, 회개가 있고 세례가 있는 지역이고, 그래서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고 비전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곳에 오늘 예수께서 부활한 자로 오신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여, 갈릴리에서 만난 부활의 예수, 얼마나 고귀합니까? 오늘 갈릴리 사람이 된 여러분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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