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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땅이 풀면 하늘이 풀린다. / 미 6:6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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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이 풀면 하늘이 풀린다.


구약의 말씀: 미가서 6:6 ~ 8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요한일서 2:7 ~ 11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옛 계명을 써 보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 말씀입니다.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그것은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니, 그 사람 앞에는 올무가 없습니다.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서 걷고 있으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 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15 ~ 20
"신도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신도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신도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자리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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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가서의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칠 제사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모여 귀한 것을 번제물로 바치고. 오늘 우리처럼 찬양을 드리고, 또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런 제사를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람들이 미가에게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포로로 지내는 이 상황에서, 좌절이 고착화된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제사를 지내면 좋겠습니까? 일 년 된 송아지 하나를 잡아서 번제물로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니라 하십니다. "수천 마리의 양과, 강줄기를 채울 만큼의 올리브 기름을 바치면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라고 하십니다.
일 년 된 송아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의 대표입니다. 동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바치면 되겠느냐고 묻는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물에서 난 상품 중에서도 최고가를 구가하는 올리브 기름을 바치면 되겠느냐고 물어도, 그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라면 뭐가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 그것도 제가 낳은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것도 "아니다." 하십니다.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신체 중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을 무엇이든지 떼어서 바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니라 하십니다. 천지만물도, 인간도,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그 어느 것을 바쳐도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이래로 신앙의 민족으로 살아온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서 항상 무언가를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새로운 말씀이 주어집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번제물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성전예배는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은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심각한 질문에, 미가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가 받고 싶은 번제물은 나의 공의를 실천하는 것, 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나와 함께 행하는 것이다." 공의를 실천하고, 사랑을 행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이 세 가지 제물만 받겠다고 미가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치는 이 예배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받으실 것 같습니까? 우리가 드리는 산 제사는 무엇 때문에 받으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면, 그것은 우리 예배에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받으신다면, 그것은 그 속에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선포와 우리가 행하는 예전을 열납하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일을 행할 때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다 여러분들의 행사요, 인간의 행사이지,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송아지나 올리브 기름이나 맏아들, 또는 몸을 드리는 것 자체를 거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공의와 사랑과 겸손이 빠져 있을 경우에는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산 짐승의 피를 내어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성전에는 제사 때 산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된 시설물도 있었습니다. 거기 성전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은 유대백성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자기 스스로를 제물로 삼아 십자가에서 찢기고 피를 흘리는 것으로 이 모든 제물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한테 전해주신 것이 성만찬이라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물 대신 자신을 바친 그 십자가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었으며, 죄인을 사랑하사 자신을 버려 죄인을 구원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잉태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성만찬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 예식 속에는 공의와 사랑과 겸손이 함께 잉태되어 있어야 합니다.
제사 중심의 유대교 시대가 지나고, 로마 카톨릭이 등장했는데 카톨릭에서는 예전을 엄숙하게 행하는 예전 중심의 교회가 되어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개신교가 나타났는데, 개신교는 예전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배의 형식이나 강조점이 아닙니다. 그 속에 공의와 사랑과 겸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이 합당한 예배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탈무드라는 책은 이스라엘 백성이 늘 읽는 교훈서입니다. 그 탈무드는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있는 천국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카톨릭 신부가 유대교 랍비에게 말합니다. "내가 어젯밤에 당신들 유대인이 가는 천국에 갔다 왔습니다. 가보았더니 유대인들로 꽉 차 있습디다. 유대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습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더니, 하도 많이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냄새가 심하고 더러웠습니다." 유대교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경직된 예배와 예전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유대교 랍비가 말했습니다. "나도 사실 어젯밤에 카톨릭 신자들이 가는 천국에 갔다가 왔습니다. 가보았더니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천국이 얼마나 훌륭하게 꾸며졌는지 고급스러운 장식품으로 가득 차있습디다. 날씨도 화창하고 꽃동산이 있는데, 꽃이 만발했습디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유대교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화입니다. 여기 빠진 대화가 뭐냐하면 종교개혁 이후에 탄생한 우리 개신교인들이 모인 천국은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아마 유대교처럼 짐승 피를 내서 제물로 바치지는 않으니까, 냄새는 안 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카톨릭처럼 예전은 완벽하고 깨끗한 동산에 꽃이 만발했으나 사람은 없는 곳, 그런 곳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제가 답변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여러분이 가고 싶은 천국에는 어떤 사람이 가는 곳입니까? 여러분의 천국은 어떻게 꾸며지길 원하십니까? 무슨 꽃으로 장식되길 원하십니까? 어떤 찬송과 어떤 기도가 울려 퍼지고 드려지기를 바라십니까? 무슨 말씀이 선포되길 바라십니까? 혹시 그 곳에 사람은 없고, 말 잘 하는 입만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돌아다니며 봉사하는 발은 없고, 혹시 남에게 지시하는 손만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빗대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천국, 가고 싶은 천국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미가서 말씀에 따르면, 그 나라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넘쳐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이 들풀처럼 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겸손이 하나님의 가슴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천국입니다.
시편 85편에서 시편기자가 이렇게 읊었습니다. "천국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천국은 사랑과 진실이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은 반드시 인간 속에서 진실한 생활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인간의 진실이 꽃피어 납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는 곳, 그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위에서 내려오면, 땅에는 평화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 곳, 그곳이 천국입니다." 시편기자가 계속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정의가 굽어보고, 그렇게 둘이 만나는 해후의 장소, 그것이 천국입니다."
저는 우리가 오늘 모여 예배드리는 경동교회, 이곳이 바로 그런 해후의 장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해후가 있는 곳, 그곳에 하늘나라가 펼쳐집니다. 진심으로 천국 가고 싶으시면, 사랑을 실천하시고 진실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정의의 은혜를 먹고, 이 땅에서 평화를 산물로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갈 길을 닦아주십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혼자서 그 해후의 장소를 만들 수 없다면, 두세 사람이 모여서라도 그 장소를 만들어라. 그러면 그곳에 내가 있겠다."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결단하고 감사하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는 항상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하시는 장소입니다. 거기에는 찬송과 기도와 결단과 신앙이 있습니다.
하늘의 은사와 땅의 결단이 만나야 합니다. 인간생활은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계신 분이 아니고, 항상 인간과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인간과 함께하지 않는 하나님은 개관적인 신(神)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는 신입니다. 항상 만나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항상 하나님을 만나서 무언가를 하나님과 함께 생각하고, 만들어 가는 인간!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둘은 항상 무언가를 교제하고 만들어 갑니다.
성서에 보면, 노아 홍수 때 세상 사람이 다 죄를 지어서 모두 홍수로 멸망을 당하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 각 한 쌍씩만 살아남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를 보면, 노아가 모든 쌍들을 들여놓고서 문을 잠그려고 하는데,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왔답니다. 노아가 이름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 이름은 선(善)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좀 들여보내 주십시오." 노아가 대답했습니다. "야웨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든지 짝을 맞추어 방주에 실으라고 하는 것이니, 짝을 찾아서 오시오." 선이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짝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 남은 것은 바로 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악을 데리고 왔습니다. 노아도 어쩔 수 없이 선과 함께 악을 방주에 실었습니다. 홍수가 그친 뒤에 선과 악은 한 짝이 되어 배에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이 세상은 때로는 선과 악이 투쟁하고, 때로는 대화하고 타협하고, 그래서 때로는 좋은 세상, 때로는 나쁜 세상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하신 것은 선과 악을 이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선으로 인간의 선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만나면서 산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공존하면서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하늘과 땅은 겹쳐서 하늘의 역사, 땅의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그 만남은 하늘의 사랑과 땅의 진실이 만나는 것입니다. 하늘의 공의와 땅의 평화가 만나는 것입니다. 이 만남이 경험되는 현실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 둘은 어떻게 만납니까? 자물쇠로 문을 잠그면 못 만납니다.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이미, 언제나 열고 풀어서 땅에 주었기 때문에, 이제 매듭을 풀 곳은 땅입니다. 땅에서 진실을 한번 풀어보십시오. 그 속에 사랑이 들어옵니다. 평화를 풀어보십시오. 그 속에 하나님의 공의가 들어옵니다. 괴로움을 진실하게 풀어보십시오. 그 괴로움 속에 하늘의 위로와 기쁨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하셨습니다.
천국을 딴 데에서 맛보려 하지 마시고, 두세 사람이 모인 교회에서 맛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좀 만나시지요! 하나님의 공의 좀 호흡하시죠! 하나님의 사랑을 들여 마셔 보시지요! 교회란 바로 그것이 가능한 곳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거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교회를 나서면 어떡합니까? 항상 교회 있을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아라. 그 나라는 바로 너희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서면 여러분 각자가 교회요,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자신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살아 있는 만남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로 선택받은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사실 하늘과 땅이 하나는 아닙니다. 만나서 하나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나 만나서 부부간의 사랑을 이루어 갑니다. 자식과 부모가 반드시 하나가 아닙니다. 별개의 개체들입니다. 그러나 둘이 만나서 따듯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만남에서 생기는 복, 이 복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진실입니다.
제가 시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칼릴 지브란이라는 철학자이자 화가이며, 소설가이면서 시인인 사람이 쓴 시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다.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십시오. 그대들의 혼과 혼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고 교류하십시다. 서로 잔을 채워 주십시오. 그러나 한쪽 잔만을 마시지는 마십시오. 서로 빵을 나누어주십시오. 그러나 한쪽의 빵만을 먹지는 마십시오. 함께 먹고 함께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며 즐거워하되, 서로 혼자 있게 하십시오.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한 가락에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마음을 주되 혼자 있으십시오."
서로 마음이 묶여서 화합을 이루는 아름다움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 그 바다에 넘실대는 사랑의 물과 공의의 물결이 하늘과 땅을 구분하는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합니다. 둘이 다르나, 만남 속에서는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오늘 그 신비를 성만찬을 통해서 맛보려고 합니다.
그 빵과 잔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가지십시오.


함께 기도드립시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선물로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괴로움 속에 오시옵소서. 절망 속에 오시옵소서. 아픔 속에 오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만나서 변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꿈꾼 그 나라를 현실로 주옵소서. 우리 가슴속에 주시고, 교회 안에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 위에 주시고, 이 땅, 이 나라에 주옵소서. 임마누엘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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