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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 원수를 쫓아내라 / 마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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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곱 원수를 쫓아내라
성구: 마11:22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일곱 원수를 쫓아내라"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현재 인간 삶의 비극과 절망은 모두 첫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연고로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 짐을 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며 어떤 짐도 가볍게 짊어지실 수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에덴을 만드시고 아담 부부를 그 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낙원이요 상함도 해함도 없고 하나님을 섬기고 믿고 순종하고 사는 이상 평안과 안식 쉼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자기도 하나님처럼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짐을 짊어지겠다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독립 선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덴에서 쫓겨났고 참으로 스스로 일하며 짐을 지고 살려고 노력했으나 놀랍게도 일을 해 보니 일을 행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짐을 질 힘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3가지 재앙이 인류에게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첫째로 아담이 맞이한 세 가지 재앙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죽고 죄악의 포로가 되었다는 재앙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서 우주의 미아가 대고 만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짐을 짊어지고 스스로의 운명을 자기 힘으로 개척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나온 이후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과의 고통을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이제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통이 끊어진 우주의 길 잃어버린 미아가 되고 말아 버린 것입니다.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길 잃어버린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 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는 "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버림을 당하고 방황하는 잃어버린 자들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가르침을 전적으로 잃어버렸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이 다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게 되는데 이 광활한 우주에서 잃어버린 자 되어서 하나님의 인도와 가르침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노력과 수단을 다해서 갈 길을 찾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머리와 감각을 따라서 사는 무신론적인 인본주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4장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 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신론자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대로 그 심령이 부패해지고 그 결과로 소행이 가증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이러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니 유물론자가 되고 진화론의 사고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니깐 모든 것이 물질 밖에 없고 인간도 물질로써 살다가 죽어버리면 영혼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진화되어서 오늘날 사람까지 되어 왔지 하나님의 창조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허무맹랑한 이론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는데 모든 사람들은 미련하게 되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간을 우상화하고 인간의 이상과 과학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 그 자체가 절망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무시고 멸시하고 인정도 하지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를 구세주로 생각하고 인간의 이상과 과학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인간은 개인 자신도 절망이요 인류의 문명 그 자체가 오늘날 절망의 길을 걸어 왔고 앞으로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난 다음에 내세의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시편 49장 12절에 "사람은 존귀(尊貴)하나 장구(長久)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요 존귀한 존재인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장구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80을 살다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니 인간의 자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숨이 끊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적으로 저주와 가난의 종이 된 재앙 속에 떨어졌습니다. 영적인 죄악과 죽음의 재앙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 저주와 가난의 종이 되는 재앙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스스로 일하며 삶을 개척하고 삶의 수고로는 짐을 지게 되었으니 그는 실력과 능력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짊어지는 실력과 능력이 있지만은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람은 창조자도 아니고 사람은 모든 짐을 짊어질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풍요로움과 안락한 삶을 만들 능력이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저주와 가난의 멍에를 걸머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처지인 것입니다. 더구나 타락하고 난 다음 땅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사람은 이마의 땀을 흘려야 먹고살다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살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2절에서 23절에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와같이 인간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며 저녁에 늦게 눕고 수고의 물과 떡을 먹어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늘 헐벗고 굶주림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살아왔습니다. 여러분 가인과 아벨의 싸움도 결국에는 물질적인 다툼이었습니다. 아벨의 목축업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가인의 농사는 하나님의 복을 못 받게 되자 시기와 분노로 가인이 아벨을 처 죽인 것입니다. 결국은 즉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이 누구에게 복을 주었는가 하는 그 때문에 시기와 분노로 형이 아우를 죽인 것입니다. 목축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잘 되는데 농사는 잘 안되니까 가인이 시기와 분노가 가득해서 잘 되는 아우를 처서 죽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인데 그 전쟁이 근본은 많은 땅과 부를 얻게 위한 것입니다. 더 많은 땅을 얻고 더 많이 부를 얻어서 잘먹고 잘입고 잘 살려고 남의 땅을 빼앗고 남의 부를 빼앗는 것이 근본적인 전쟁의 원인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서 2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 탐심과 욕심 때문에 물고 찢고 싸우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욕심과 탐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다음의 재앙은 육체적인 죽음의 재앙인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죽지 않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죄악이 들어오자 영혼이 죽고 육체가 부패하게 된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죄를 짓자 육신의 죽음의 통보를 받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 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가장 비참한 하나님의 심판의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너는 흙으로 지음 받았으니 너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비극적인 성품인 것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하나님이 잘 만들어 놓았었던지 범죄한 이후에도 인간은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아담이 930세를 살았습니다. 무드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노아는 500세에 셈과 함과 아벳을 낳고 950세에 죽었습니다. 홍수전 평균 수명은 912세 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놀랍게 만들어 놓았는지 비록 범죄하여 영혼이 죽고 육체가 부패속에 들어갔지만 평균 912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홍수 이후도 아브라함은 175세에 주었고 모세는 120세 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국민일보 6월 27일자에 보면은 노아 홍수 이후 공중에 있는 물의 층이 살아짐으로 말미암아 광선이 그대로 비추어서 우주 광선에 노출되고 산소가 DNA를 공격해서 노아를 촉진해서 결국은 인간은 이와 같이 빨리 늙고 죽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기사에 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90편 10절에 보면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세상에 912년을 살던 사람들이 노아 홍수 이후로는 불과 175세에서 120세를 살다가 이제는 사람이 살면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말할 정도로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환경의 변화와 오염이 가져온 수많은 병들 때문에 인간은 도저히 이 세상에서 견뎌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로 수질공기가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심장과 폐에 중금속 중독이 되고 직업병에 걸리고 에이즈에 걸리고 모든 것에 죽을 것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8장 21절에서 22절에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 뿐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다 고통을 당하고 탄식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부패가 온 세계에 들어와서 만물이 부패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며 하루 속히 하나님의 구원이 오기를 간구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로 이와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가 2천년전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둘째아담 혹은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새 인류의 조상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첫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범죄함으로 이 세상에 3대 재앙을 가져 왔으며, 이제 둘째 아담 즉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은 새로운 조상으로 하늘에서부터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담은 땅에 태어나서 땅에서 살다가 죽었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셔서 사람이 몸을 쓰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번 TV에서 불교학자가 기독교를 평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가 하는 말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만히 비교해보니깐 서로 같은 점이 너무나 많더라 부처님이 예수님보다 일찍 태어났으므로 예수님이 부처님의 제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 강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가르침에는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다 윤리적이요 도덕적인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요 죄짓지 말고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나 유교나 기독교가 종교적인 내용에서 가르침이 근사하게 같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교 및 타 종교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다른점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기독교는 구속의 종교로써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값없이 용서와 의와 영광과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모두다 자기 수양과 도덕과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로 용서와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수양을 하고 도덕을 닦는다고 해도 자기가 온전히 용서받고 당당하게 대가로 구원을 받을 만큼 의롭게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탁월한 점은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을 한 몸에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다 청산해 주어서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믿음으로 그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노력으로 말미암아 대가를 얻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노력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물로 얻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통해서 그저 받았으니 우리는 그저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지식 있는 자나 무식한자 상관하지 않고 사회적 계층에서 높은 자나 낮은 자도 차별없이 온 인류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값없이 용서와 의와 영광과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 및 타종교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다른 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구원이 있다면 예수믿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절대로 없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 스스로 구원 할 수 있는 길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 죄 때문에 죽음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다 청산하고 용서받아 의롭게 되어 나온 것은 우리가 용서와 의를 얻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을 통해서 우리들은 3대 재앙에서 3대 축복을 받게된 것입니다.
요한 3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靈魂)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凡事)에 잘 되고 강건(强健)하기를 내가 간구(懇求)하노라" 첫째 아담이 3대 재앙을 가져 왔는데 둘째 아담 즉 마지막 아담 새로운 인류 조상인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셔서 우리에게 3대 축복, 3대 구속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 감사제물,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로 14절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영원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제사는 영원한 제사인 것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히 한 제사로 다 청산 시켜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그 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 상이 되게 하기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죄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였느니라 한 죄물로 여러분과 나를 영원히 온전케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짐승을 가지고 죄물 드릴 이유가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를 통해서 믿는 자가 영원히 용서와 의와 영광과 구원을 받게 되었으므로 다른 제사 드릴 이유가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한 영원한 제사이며 영원히 믿는 자를 온전케 만들어 버리셨으니 이 은혜와 이 사랑과 이 축복이 형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환경적인 저주에서 해방 시켜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詛呪)를 받은 바 되사 율법(律法)의 저주(詛 呪)에서 우리를 속량(贖良)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담이 타락하고 난 다음에 저주의 재앙을 받지 않았습니까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오셔서 그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를 쓰시고 십자가에 가시 대 못에 박히심으로 가시의 능력을 제하여 버리고 저주를 철폐해 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을 얻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받아 주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이 염려 없이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돌봐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서도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늘 기도하는 것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치료와 건강의 축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장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명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 25절에서 26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여러분의 날 수를 주님께서 채우시겠다고 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을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속에 치료가 들어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 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을 통해서 이미 나음을 받았습니다. 2천년 전에 이미 구속함을 입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몸에 병든 것은 우리가 불순종하고 불신앙하는 틈에 마귀가 들어와서 '불법 주차'를 한 것입니다. 유럽 선교회에 봉사하고 계신 임춘자 권사님이 간증을 읽어보았는데 오래전부터 소화가 안되고 가끔 배가 아팠는데 배가 점점 아프고 체중이 감소되고 혈변을 보아서 8월 20일쯤 종합병원에서 뇌시경과 종합검사를 해 보니 장암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습니다. 암이 많이 진행되었으니 지금 수술해도 완치는 어렵다고 그러나 일단 수술을 해 보자고 병원에서 말했습니다. 권사님은 속으로 하나님 앞에서 암을 불법 주차라고 생각하며 수술은 안하겠다고 거절하고 집에 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통증이 오는데 너무 참기 어려워서 고통을 당하는데 하나님 말씀에는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입었다는 성경 말씀이 자꾸 기억나서 그 말씀을 부여 잡고 계속해서 "원수 암은 물러가라! 너희 원수 암을 불법 주차다!" 너는 내게 있을 권리가 없다고 말하고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계속해서 대결을 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9월 4일날 예배 후 수요예배, 신유안수 기도회에 저희 사무실에 와서 제가 안수를 받았는데 저가 안수를 받을 때에 제가 기도하면서 장암 덩어리는 묶임을 풀고 물러가라고 하는 순간에 눈에 환상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주먹만한 까맣게 썩은 고기가 같은 암덩어리가 장 속 깊이 박힌 것이 올라와 흐물흐물 해지더니 까만 연기가 되어서 날라가 버리는 환상을 보았었습니다. 그 순간 온 몸이 평안해 지고 그렇게 고통스럽던 고통이 밧줄이 풀리듯이 풀리고 난 다음 그 길로 암을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온전히 건강하게 되고 깨끗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에는 죄를 사하여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을 끝없이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3대 재앙을 물리쳐 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가져온 3대 재앙을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다 제하여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주신 것입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문지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믿을 이유가 있어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을 이유가 없으면 못 믿지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3대 재앙에서 해방된 그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믿을 이유가 있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은 일점 일획도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셋째로 이제 주님께로부터 하늘 나라를 받고 영적인 가나안을 받았은즉 가나안에 있는 일곱 원수를 완전히 쫓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점령해야만 될 것입니다. 구약의 가나안에는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신7:1-4) "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6장 17절에서 19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있는 일곱 대적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9절에 보면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基業)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년 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신약에 가나안 땅에도 일곱 원수가 있습니다. 영적, 환경적, 육체적 가나안의 이 아름다운 땅에 죄를 쫓아내야 합니다. 세속의 원수가 있고 병의 원수가 있고 저주의 원수가 있고 미움의 원수가 있고 공포의 원수가 있고 절망의 원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천국은 침노를 당하느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나 천국은 저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온 천국의 그 땅에 있는 아직 남아 있는 이 죄와 세속과 병과 저주와 미움과 공포와 절망의 원수를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우리가 참 자유를 얻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허락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의 땅을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29절에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강한 자 일곱 원수를 결박하여 쫓아 내버리고 주님이 주신 천국 가나안 땅을 점령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원수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이 내게 주신 대속의 은혜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서 나를 위해서 값 주고 사신 은혜를 마음 속에 확실하게 대낮같이 밝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은혜의 풍성함을 좇아 우리의 구속함을 받은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그 원리를 분명하게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나의 가나안의 원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천국이 임하였는데 여기 있는 원수들을 나는 결코 ,쫓아내고 해방과 자유를 얻겠다는 마음에 결심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원수들과 섞여서 살면 될 일이지 뭐 쫓아 낼 것 있느냐 하는 그 사람은 평생에 그리스도가 주신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마음에 각오하고 결심하고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세속을 물리치고 거룩하게 되고 병을 고리고 저주를 물리치고 미움에서 해방되며 공포와 절망에서 자유를 얻겠다고 깊이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각오를 해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根源)이 이에서 남이니라" 주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지키고 가꾸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너의 마음을 지키고 가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이 내것이라고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것이라고 상속을 주셨는데 예수님이 피로써 값주고 사셔서 상속으로 주신 이 내것을 내가 빼앗길 일이 있느냐 가나안 땅은 내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2절 14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아들의 나라가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있고 저기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셨으며 그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가 우리 안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것이 바로 내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의 축복,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내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기도하고 원수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로 13절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 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가 믿음으로 무장하고 우리 속에 있는 원수 귀신들을 다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속에 있는 원수 귀신들을 다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주위에 있는 모든 저주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도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 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마귀가 오는 것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조선일보 9월 기사에 보면은 50대 남자가 흉기를 휘둘러 어린이 11명을 중상을 입히지 않았습니까 어린이 40명이 점심을 먹고 있던 유아원이 지하 식당에 들어가 아이들을 흉기로 찌리다가 달려온 시민 3-4명의 충돌해 경찰에 잡혔습니다. 조사 받을 때에 말하기를 어젯밤 김일성이 나타나 사람들이 죽여야 네가 살수 있다고 속삭여 살려고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눈에 보이는 건물에 이끌려서 들어가 보니 바로 그 어린아이들이 있는 유아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으로써 할 짓입니까? 이 분명이 마귀 아닙니까? 귀신이 사람을 사로잡아서 사람을 죽이라고 하며 그가 다니면서 어린이의 생명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내어쫓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환경을 청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와 귀신을 내어 쫓아버리는 힘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制馭)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권세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와 귀신을 쫓아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해서 우리의 가나안의 있는 원수들을 다 물리치고 쫓아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입술로 강하고 담대하게 긍정적으로 시인하십시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서는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마귀의 종으로써 마귀의 지배를 당하지만은 믿는 자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나와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서 천국 시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이상 더 마귀의 노예가 아니요 마귀의 지배하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대리권 행사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그 보혈의 능력으로 마귀와 귀신을 쫓아 낼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끝없이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14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찬미합니다. 우리에게 3대 재앙에서 3대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의 생활 속에 가나안의 일곱 원수를 내어쫓고 우리가 해방과 자유와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 주님을 늘 찬미해야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 "말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아담과 하와 때문에 우리는 마귀와 저주와 죽음의 종이 되었지만은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 새 인류의 조상인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십자가를 통해서 그 종의 멍에는 꺽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해방되었습니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어둡고 괴롭던 긴 세월은 지나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광명은 떠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를 알았으면 자유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이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여러분 마귀의 세계에 끌려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속의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합니다. 병의 종의 멍에도 저주와 가난의 종의 멍에도, 죽음의 종의 멍에도, 미움의 종의 멍에도, 좌절과 종의 멍에도 벗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특권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상속인 것입니다, 내 특권과 상속을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탄식하겠습니까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려 그 대가로 주신 것인데 이것을 우리가 등하니 여기면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게 만들겠습니까
여호수아 18장 2절에서 3절에 " "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섯 지파는 땅을 차지했는데 일곱 지파는 주신 땅을 차지하지 않고 다섯 지파의 땅을 얻은 사람에게 더부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만 게을러져서 전쟁하기를 싫어하고 쳐들어가기를 싫어합니다. 여호수아가 말한 것입니다. 너는 어느때까지 너희 열조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지체하겠느냐? 어느때 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값주고 사신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을 가서 취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까? 기도하기가 싫어서 부르짖기가 싫어서, 부르짖기 싫어서, 믿음의 싸움을 하기 싫어서 그냥 적당히 이만하면 되었으니 "이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얼마나 탄식하겠습니까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일어나서 하나하나 원수를 내어쫓고 우리의 삶에 젖과 꿀이 흘리게 해야되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흘러야 합니다. 여러분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살게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 속에 젖과 꿀이 흘러야 다른 사람에게 젖과 꿀을 나눠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지나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병사가 천막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목사님이 성경책을 들고 들어가서 괴로워하는 병사를 보고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해 줄까요 나에게 물 한 모금 주십시오 목말라 못 견디겠습니다. 목사님이 목을 그릇에 떠서 마시게 했습니다. 이제 내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 해도 될까요 피가 너무 많이 흘려서 춥습니다. 담요를 덮어 주세요 목사님이 담요가 없으니깐 옷을 벗어서 덮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가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그 거룩한 성경 말씀이지요? 그렇다. 그 말씀을 읽어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 병사는 이 목사님이 물을 주고 옷을 벗어서 따뜻하게 해 주니깐 그 사랑에 감동해서 마음을 연 것입니다. 그 다음 성경 말씀을 들려주시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세상에 나가서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 당하는 사람에게 회개하라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자고 아무리 외쳐도 마음 문을 닫아 놓고 열지 않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마시게 하고 헐벗은 자에게 입히고 배고픈 자에게 먹이고 그 다음 성경을 가지고 나가면 그 말씀을 듣고 기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수해를 당하여 고통 받은 형제 자매에게 나가서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고 한다고 그 들이 그 말씀을 듣겠습니까? 그들에게 식량을 가지고 가서 약품을 가지고 가고 몸 드려서 함께 수고하여 집안을 정리 정돈해주고 그러고 나서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증거하고 기도하면 눈물을 흘리고 이 말씀을 받아 드리게 될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젖과 꿀이 흘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흘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가나안 땅이 되어야 하고 나의 삶이 천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께서 대속으로 은혜로 주신 것을 믿음과 기도로 다 점령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조상 아담이 우리 3대 재앙을 가지고 왔습니다. 범사와 저주와 가난에 처하게 되고 육신은 병들고 흙으로 돌아가는 재앙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즉 마지막 아담 새 인류의 조상인 우리 주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3대 재앙을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죄를 멸하시고 저주를 청산하시고 질병을 치료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광채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는 믿음에 굳세게 서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이 새로운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젖과 꿀을 마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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