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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영리란? / 고전 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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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리란?
(고전2:12-14)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연법칙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계의 사물은 이 자연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학교다닐 때 배웠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든가 질량보존의 법칙에서 시작하여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엔트로피법칙과 아인슈타인의 E=mc2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은 수 많은 자연계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전엔 모르던 이러한 자연법칙의 발견과 동시에 또한 이를 잘 활용하여 생활의 편리한 이기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법칙이라는 것이 우리가 몰랐던 것이지 본래는 있었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지성이 어두워 보지 못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논리적으로 체계화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가 늘 곁에서 경험해 왔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너무도 평범한 우리 주위의 일상인데 여기서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과학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과학은 우리 주위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함이 아닙니다 내가 알건 모르건 우리는 자연의 법칙 속에 있고 그 지배 아래 살아간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 입니다 이것은 내가 인정하고 안 하고를 떠난 이야기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또한 초자연계에 속한 영적인 원리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있습니다 이 역시 나의 의지와 이성이 받아들이든지 안 받든지를 떠난 문제입니다 내가 뉴튼의 만유인력 수학법칙을 이해할 수 없다고해서 만유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에 관련된 이야기지 추측이나 관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실제함을 이미 저번 주에 밝힌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세계는 자연계와 단순히 대치하고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연계를 포함하면서 오히려 자연계를 넘어서는 전 우주적이면서 전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자연계를 감싸안으면서 이를 뛰어넘는 보다 크고 본질적인 개념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자연계의 세계에서만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다 높은 인격의 세계, 믿음의 세계, 은혜의 세계, 기적의 세계에까지 들어가서 세상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구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자연 법칙을 뛰어넘는 영적인 세계가 지닌 원리를 4가지로 말씀드릴려고 서론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영적인 4가지의 원리다'라고해서 '사영리'라고 이름한 내용입니다 불신자들을 결신 시키기위해 한국 대학생 선교회(CCC)에서 고안한 것으로 기독교의 기초를 잘 반영하고있습니다
 
  익히 잘 아는 쉬운 내용이지만 다시금 말씀으로 기초를 튼튼히 해야 겠다는 뜻에서 이 말씀을 증거하게되었습니다

  1원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죄로 인해 멸망 할 우리 인간에게 나타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것이고 그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케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생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하나님과 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하나님은 우리와 끔찍히도 같이 살고 싶어하십니다 아담은 만물의 영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지음을 받았고 에덴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특권을 누리는 그야말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는 놀라운 지배권을 주었지만 그 스스로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추방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과 같이 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독교인에게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생명이고 하나님과의 단절은 곧 죽음인 것을 기억하셔야 하실것입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는 것이라'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시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율법과 말씀으로 옭아메고 꼼짝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 더욱 풍성한 은혜를 더하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에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네가 먹어도 좋지만 동산 중앙의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을 것이라고했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었고 단 하나의 금령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그 많은 축복을 보지않고 단 하나의 금령이 주어졌음에 불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을 옥죄고 발목을 잡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너와 내가 같이 살기위해서는 이 명령만은 꼭 지켜야 겠기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부부간에도 부자간에도 친구사이에도 그들을 부부가 되게하고 부자간이 되게하고 친구간이 되게하는 끈이 틀림없이 존재함을 압니다 그것이 바로 룰(Rull)이고 법(Law)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서로간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남입니다 하나님은 그 룰을 최소화하셨습니다 이것만 지키면 넌 나랑같이 살수 있고 난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넌 내 백성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아담을 연결시키는 최소한의 끈으로 선악과를 주신 것입니다 선악과 자체가 어떤 능력을 지닌 산물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는 동시에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선악을 판단함에있어 하나님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선악의 개념도 자기멋대로 정하고 사는 제멋데로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선 하나님이 정한 선악의 법대로 살아야하는데 아담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법을 제치고 자기의 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담은 에덴에서 쫒겨난 것이 아니라 그는 선악에관한 자기의 법을 만들고 제발로 걸어서 나간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최소한으로 지킬 수 있는 끈으로 자신과의 관계를 묶어놓으시고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로 채우시고자 하시지만 우리는 이러한 풍성한 삶을 내어버리는 어리석은 아담과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2원리 :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죄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없고 그의 계획도 알수없습니다"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 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얼굴을가리워서..'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묶고있는 끈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은 그것을 우리가 순종할 때 지켜지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면 하나님과 우리를 잇고 있는 끈은 끊어지게됩니다
불순종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완전한 단절로 이끌었습니다 죄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하마르티아'라고합니다 이뜻은 표적을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과녁에서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서로 핀트가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향하고 살아야 살 수 있다 하시지만 우리는 자꾸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살겠다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보호아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벗어나면 별천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마치 철부지 아이가 부모님 말씀이 귀찮고 싫어서 부모만 떠나면 환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과 같이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없이 살다가 그렇케도 좋다고하며 쫒아다녔던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도 이젠 다 소용 없음을 깨달았을때는 이미 다시 하나님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인해 하나님과의 단절이 이루어진 후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고 도데체 어디로 향해야할지를 모르는 영적장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형상을 쌌던 껍데기는 남아있기에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자했던 것입니다 눈이 어두웠으니 참 하나님을 구별할수 없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 다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을 전한다고해도 소극적으로 우리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했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처음부터 끊어놓았을 뿐만아니라 지금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자는 잠언 14:9절의 말씀처럼 죄를 대수롭지않게 여깁니다 죄는 단순한 사회적 범죄행위인'crime'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은 종교적 범죄인 'Sin'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원리 :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가로놓인 죄악을 제거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다시 회복 시키시고 화해시키신 분은 오직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뿐 이십니다"
(엡2: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  라' 
(행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  신 일이 없음이니라'

  아담의 타락이후 사람들은 사실상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혔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 사귀도록 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되어있읍니다 아버지 싫다고 집나온 탕자가 뒤늦게 후회하고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워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너무 먼길을 떠났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길을 잃은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쉬운 발상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 갈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발상입니다 그러나 선행으로만 하나님께 갈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공부를 많이 해서 인간 이성에서 나온 철학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진리의 길을 찾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근세철학 최고의 지성인 칸트는 그의 이성 비판시리즈를 통해 이성이 신(神)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희람철학의 거성인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철학은 우리에게 무지(無知)의 지(知)를 밝혀줄뿐입니다 즉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철학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겸손한 철학자의 자기고백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로 가는 또다른 단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종교를 만들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먼저 추앙할만한 높은 인격의 사람을 세우고 그를 신격화시켜 나갔습니다 그를 닮은 형상을 만들고 교리를 체계화해서 그가 하나님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배경 아래있는 사람들은 기독교도 이런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여타의 종교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신을 위로하기위해 만들어낸 땅에서 나온 것 이라면 기독교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과 구원에관한 진리를 직접 계시하신 하늘에서 내려온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오히려 인간이 받아드리기에는 구미에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에서 나온 종교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므로 인간이 받기에는 너무도 그럴싸하고 합리적인 듯이 보입니다 그 근본이 인간의 것이니까요? 그러나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절대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뱃사공 비유를 다 아시지 않습니까? 어느날 뱃사공이 한사람을 배에 태워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배에 탄 이 사람이 노를 젓고있는 사공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아시오?' 사공은 대답하길'그런거 몰라유' 이 사람은 또 뭏습니다 '그럼 당신은 철학을 아시오?' 사공은 또 대답합니다 '그딴거 지는 몰라유' 이 사람은 측은한 눈빛으로 사공에게 '당신은 인생의 반을 잃고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배가 강 중간 즈음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픙이 불어서 배가 뒤집히게되었습니다 배가 침몰하기직전 반대로 뱃사공은 이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헤엄을 칠줄 아시오?' 이 사람은 당황해하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공은 말했습니다 '손님은 인생의 전부를 잃은 것이네유'

  우리에게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생명의 길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상황에서는 그의 평생 쌓은 공로도 학업도 재물도 권세도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스스로 아무리 자기 머리를 잡아다녀도 물에서 건져지지않습니다 오직 밖에서 건져 주시는 이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분이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으시기바랍니다 우리가 살아나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손을 잡는 길입니다

  4원리 : "위의 사실을 아는 것 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합니다 나와 하나님사이를 막고있던 죄악을 물리치신 주님        을 영접하면서 우리는 비로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  니..'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  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먹으리라'
(요20:27-28)-'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믿음없는 자가되지말고 믿는자가되라 ..도마가 대답 하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
 
  예수가 단순히 4대 성인중의 한 분으로 알고있는 정도로는 믿지않는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는 인정으로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내속에 영접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교만과 아집과 독선 그리고 세속주의와 인본주의로 꼭꼭 잠궈둔 문을 열고 겸손히 주님을 맞이하실 때 우리주님은 여러분 심령에 들어가셔서 여러분 심령에 평안으로 함께하시고 또한 믿음을 주실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는데 마침 그 자리에 제자중하나인 도마라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제자들이 아무리 주님을 보았다고 이야기했지만 도마는 믿지않았습니다 내손으로 만지고 내눈으로 보기전에는 믿지않을 것이라고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 자리에 나타나셔서 도마의 손을 내밀라하시고 자신의 못자국 난 손을 넣어보게 하시고 자기의 옆구리에 난 구멍속으로 도마의 손가락을 집어넣게하셨습니다 그때 한 도마의 고백이 바로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보지 못하고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시는 여러분들은 주님 말씀데로 더욱 복된 분들 이신줄로 믿습니다 또한 주님을 영접하고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는 것은 이제는 '나'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전 까지는 모든 사고와 행동의 근거가 '나의 자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말씀'이된 것입니다 내 인격의 왕좌에 내가 앉아있다면 그 자체가 힘겨운 인생길이 되실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격의 왕좌에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모든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걱정과 근심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인생은 놀라운 평안과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이 좋은 예수를 왜 않 믿으시는지?

지금까지 영적인 세계의 원리를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시고 이 땅과 온 우주와 영원세계를 주관하고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사랑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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