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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레데에서 우리가 할 일 / 딛 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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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데에서 우리가 할 일
딛 1:10∼16

지중해에 가운데 그레데라는 섬이 있습니다. 길이가 256Km, 서울에서 김천까지 만큼이 되는 큰 섬입니다. 무역이 매우 활발한 해양국가였는데 기원전 66년경에 로마에 정복당했습니다. 지금은 그리스 영토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는 바울이 로마로 압송 당할 때 그레데 섬의 미항에서 잠시 머문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뵈닉스 항구도 그레데 섬에 있는 항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섬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레데 사람들은 매우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키케로(Cicero)를 비롯한 철학자들과 역사가들이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헬라 속담에 성실하지 못한 세 족속을 말하는 3C가 있었는데 Cretans(그레데인) Cappadocians(가바도기아인) Cilicians(길리가인)입니다.

기원전 600년경에 그레데 출신의 에피메니데스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이 시인은 그레데 사람들에 대해서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
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오늘 본문 가운데 12절 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헬라말로 '거짓말한다'를 '크레티조(Cretize)'라고 하는데 '크레티조'는 '그레데 사람처럼 말한다'는 뜻입니다. 그레데 사람들은 그만큼 거짓말을 잘 했습니다.
그레데 사람들의 거짓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우리는 제우스의 무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우스는 실존인물이 아니지요.

이 그레데 섬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교회가 세워졌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2장의 기사에 근거해서 그레데 섬의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세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 주장이 더 강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여러 나라에서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가 성령을 받은 제자들로부터 전도를 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9절에서 11절까지를 보면 이들은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다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르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었다고 기
록되어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예루살렘에서 그들이 사는 곳에 돌아가서 교회를 세운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그레데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에 의해서 그레데 교회가 세워졌을 것이라는 것이 유력한 추측입니다.

로마교회도 이 때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로부터 전도를 받은 유대인들이 로마에 돌아가서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을 관람하기 위해 한국에 온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통해서 같은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레데 교회는 대단히 건강하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경건한 척 하지만 사실은 형식주의자들이고 위선자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할례파라고 불렀는데 할례파 가운데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다고 1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지를 순례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 가니까 더운 여름인데 검은 양복을 입고 수염을 기르고 신명기 6장8절의 말씀 그대로 손목과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조그만 상자를 매고 또 미간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감탄하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니까 가이드 하는 목사님이 웃으면서 "저 사람들을 적극적 유대교인들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저들 가운데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고 비윤리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레데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는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답지 않게 행동했고 복종하지 않았고 선한 일을 버렸습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레데 교회 안에는 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이 섬에 디도를 남겨서 교회를 지도하게 합니다. 앞의 5절을 보면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려운 곳의 어려운 교회에 남아서 목회하고 있는 디도를 격려하고 지도하기 위한 편지가 곧 디도서입니다.

우리는 그레데 섬에 남아 있는 디도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그레데 만큼이나 어지럽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에 그레데인들은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물질 중심의 생활에 혈안이 되어 있고 영적인 생활에는 한없이 게으른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있는 교회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건강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단의 영향을 받고 있고,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점도 요즘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런 가운데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를 바로 세워야 하는 사명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그레데 섬에 남아 있는 디도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레데 섬에 남겨진 디도와 같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디도와 같이 신뢰 받는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레데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레데 교회의 실상을 환하게 꿰뚫
고 있는 바울은 그레데 교회의 지도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만일 바울을 대신해서 그레데 섬의 교회를 바르게 지도할 사람이 없었으면 바
울이 다른 곳에 전도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그레데 섬에 머물며 교회를 이끌어
야 합니다. 아니면 그데레 교회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거나 그레데 교회에 대
해서 끝없이 염려하는 무거운 마음을 늘 품고 있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을만한 일꾼 디도가 있었기에 바울은 그레데 섬의 문제를 디도에게
맡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힘차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전도로 개종한 헬라인입니다.
바울이 디도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는 4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믿
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된 디도에게"라고 했습니다.
그냥 아들이 아니고 '참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참'자가 붙어 있는 말씀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은 예수님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19장 1절에는 "이것은 하나님의 참 되신 말씀이라"라는 말이 기
록되어 있습니다.
참 자유라는 말도 나오고 참 연보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은 '참 제자'와 '참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31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
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제자인데 이왕이면 디도와 같이 참
아들들이 되고 참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름 가운데 정말 고소하고 영양가 있는 기름을 참기름이라고 하지요. 여러분,
콩기름, 들기름, 찌꺼기 기름이 되지 말고, 참기름 같은 존재들이 되시기 바랍니
다.

바울은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여러 이름으로 불렀
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3절에서 디도를 '형제'라고 불렀고 고린도후서 8장 23절에서는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이렇게 디도를 동료,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 서신 여러 곳에서, 특히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위로를 얻
고, 디도가 있으면 든든한 느낌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목사에게.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여러분이 섬기는 직장의 상사
에게 디도와 같이 신뢰를 받고 위로가 되고 든든한 느낌을 주는 존재들이 되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
고 있는 인물이 바로 디도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이방인 전도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
살렘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제1차 공회의(公會議)입니다. 이
회의에 참석하러 갈 때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갑니다.

고린도교회에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바울을 도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힘
쓴 사람이 바로 디도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
해서 앞장 서서 힘쓴 사람이 바로 디도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디도는 그레데의 감독이 되었고 달마디아(오늘의 유고)에 전도
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디도와 같이 신실한 일꾼, 신뢰 받는 일꾼들
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레데 섬과 같은 이 세상에서 배만 위하는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게으
름뱅이들이 되지 않고 성도답게 살 수 잇습니다.
그래야 여러 가지 건강하지 못한 문제들을 안고 있고 이단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교회들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디도와 같은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교회는 조직을 잘 갖춰야합니다.

다시 5절을 봅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
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이어 장로
의 자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9절까지는 감독의 자격과 감독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지나치게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는 분들은 '어, 바울 당시에는 장로 제도
나 감독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렇게 감독과 장로 이야기가 자세하
게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 디도서는 바울이 쓴 것이 아니고 바울 이후에 누가
기록했나 보다.'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레데가 워낙 타락한 곳이고 그레데 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그레데 사회
에 맞서 빛을 발하기에는 너무 허약한 모습을 하고 휘청거리고 있으니까 교회
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조직을 서두르고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잘 조직화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과 기도와 전도입니다. 이 일을 잘 하려면 조직을
잘 갖추고 체계적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조직의 원리 가운데 '편제(編制)는 힘이다.'라는 것이 있지요. 조직이 잘 되면
저절로 힘을 갖게 됩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사도들은 집사
들을 세워 이 문제를 담당하게 합니다. 교회의 조직화에 대한 첫 번째 기록입
니다.

요즘 저희 교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참 많습니다. 초상과 결혼이 여럿 있었고
남선교회 찬양제, 부흥회를 비롯해서 준비해야 할 행사들이 많았습니다.
각 연회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해외에 나가 있던 선교사들이 많이 귀국해 있는
데 목양교회, 선교 열심히 하는 교회라고 그분들이 찾아와서 선교지의 형편을
말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교구별로, 부서별로 일을 나누어서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여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제도
를 만들지 않고 혼자서 재판 다 하고 혼자서 이 일 하고 혼자서 저 일 하려
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행진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것 그만 두고, 모세가 백이십 살까지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간에서 지
쳐 건강을 잃거나 아예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광야 행진은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근본원리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이었습니다.
언제나 회막을 중심으로 행진하고 진을 쳤습니다. 회막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
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회막의 중심에는 법궤가 있었습니다.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아니 변함이 없어야 되는 조
직의 원리입니다.
또한 일상생활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가 제일 중요한 곳
이 되어야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예배 드리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의 성문과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는 혼자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서 2장을 보면 사전에 정찰을 합니다.
그 다음에 유다 사람들, 제사장들, 방백들, 일하는 자들을 모읍니다. 느헤미야 2
장 17절을 보면 당장 모으지 않고 후에 모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느헤미야가 왜 왔지?' '왜 서두르지 않는 것이지?' 궁금하게 만들
어놓고 그 궁금증이 점점 커지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모읍니다. 그리고 예
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 일을 말하고 아닥사스다 왕이 이 일을 허락한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의식화(conscientization)라고 합
니다.

그 다음에는 조직적으로 일을 분담합니다. 느헤미야서 3장을 보면 성벽의 어디
에서 어디까지는 누가 건축했고, 어느 문은 누가 중수했고 이런 기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려 일흔다섯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을 잘 조직화(organization)해서 동원(mobilization)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조직이 있습니다. 연령 중심의 선교회가 종적 조직이라면 거주
지역 중심의 속회는 횡적 조직입니다. 속회와 선교회는 교회의 기본 조직입니
다.
속회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선교회가 활발해야 교회가 활성화됩니다.

일에 따른 조직들이 있습니다. 교회학교, 찬양대, 각 부서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연합한 조직들도 있습니다. 지방회가 있고 연회가 있고 총회가 있습니
다. 감리교회는 이런 조직이 아주 잘 되어 있는 교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
다.
각 교파들이 연합한 큰 조직도 있습니다. 요즘 이와 같은 연합을 더욱 튼튼하
게 하기 위해서 하나가 된 연합체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 각 교파의 대표들 중
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레데 섬의 디도에게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울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자격을 갖춘 장로, 자격을 갖춘 감독들에 대해 말합니다. 교회의 조직을 강화
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조직들이 강화되고, 힘을 갖고, 살아 꿈틀거려야 교회는 그레데 섬과 같
이 험악한 세상에서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목양교회의 속회, 선교회, 교회학교, 찬양대, 각 부서, 여러 조직들이 힘을 갖고
제 할 일을 잘 해서 그레데 섬과 같은 세상에서 복음의 빛을 찬란하게 발하게
되기 바랍니다.


셋째, 세상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먼저 교회 안에서 단호한 태도를 가지라고 합니다. 11절을 앞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방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두면 마땅하지 않은 가르침이 퍼져나가고 가정들이 온통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세상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13절을 보시기 바
랍니다.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
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교회는 그저 예배만 드리면 그만이니까 그레데 사람들의 타락한 생활을 못 본
척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서도 같은 명령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
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힘쓰라" 디모데후서 4장1절
과 2절의 말씀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와 같이 하는 과정에서 밧세바의 아내 우리야
를 간접 살인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영웅은 호색이라더니 허허, 우리 임금
님 참…" 하면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선지자가 아니지요. 다
윗을 호되게 꾸짖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나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임금님 한 성읍에 부자와 가난한 사
람이 있었는데 부자는 양과 소가 많고 가난한 사람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
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그 암양을 아주 귀여워하는데 부잣집에 손님이 왔습니
다. 부자는 자기 양과 소를 잡지 않고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다가 잡았습
니다." 다윗이 멋도 모르고 노해서 그런 놈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합니다(삼하12:7). 이 말을 할 때 나단은 눈을
들어 다윗을 똑바로 보면서 손으로 다윗을 가리키면서 엄숙하고 단호하게 말했
을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

여로보암 2세 때 이스라엘이 번영을 누리면서 속으로는 굉장히 타락했습니다.
아모스는 이런 현실을 못 본 척 하지 않았습니다. 아모스는 드고아라는 고지대
에서 목축을 하고 뽕마무를 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못 볼 척 하려면 못 볼 척
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풍조를 이용해서 돈
을 벌 수도 있었습니다. 병든 양을 건강한 양으로 위장해서 팔아먹을 수도 있
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분연하게 일어나 단호하게 외칩니
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로다"(암
5:24)
교회는 그레데 섬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눈을 감아서도 안
됩니다.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그 가운데 휩쓸려서도 안 됩니다.
엄히 꾸짖어야합니다.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비난을 받습니다. '잘났어 정말!' 소리를 듣습니다.
'네가 뭔데…' 하는 소리도 듣습니다.
핍박도 받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교회가 생명을 갖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레데 섬에 남겨진 디도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바로 세워 건강한 교회, 힘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
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디도와 같이 신실한 일꾼이 되고 잘 조직화된 힘을 가지고 단호한 태도로서 이
책임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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