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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얼굴 / 창 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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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얼굴(창33:1--11)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각료들을 임명할 때 일입니다.
인선위원회에서 각 분야의 장관, 차관들의 적임자들의 명단을 대통령에게 올렸습니다.
대통령은 쭉 명단을 보고 난 뒤에 그 중에 한 사람을 지적하면서 이 사람의 얼굴은 험하고 흉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장관의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인선위원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장관직이 영화배우도 아닌데 얼굴이 못생겼다고 제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장관직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그들에게 링컨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는 예쁜 사람, 예쁘지 못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아름답지 못한 사람으로 확연하게 구분이 되어 태어납니다.
그러나 40세가 지나면 아름답고 날씬한 사람들도 퉁퉁해지고 그렇게 멋을 내고 깔끔하게 살아가던 사람도 대충 대충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생김새는 다 비슷해지는데 이후부터는
마음먹은 것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의 얼굴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얼굴로 변하고 근심 걱정 어두운 마음을 가지면 그 사람의 얼굴도 어둡고 흉한 얼굴로 변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마음의 창입니다.
우리 마음에 슬픈 마음을 가지고 얼굴에 슬픈 형상이 나타납니다. 기쁨마음을 가지면 그 얼굴에 기쁨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슬프다" "기쁘다"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얼굴만 보고 "기쁜 일이 있습니까? " "슬픈 일이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얼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먼저 일반적 의미가 담긴 얼굴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파님"이라는 말인데 "생물의 머리부분의 정면 앞쪽"을 얼굴이라고 합니다.
둘째로 대표적 의미의 얼굴이 있습니다. 즉 "당신은 우리 집안의 얼굴"이라는 말은 집안의 대표가 된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얼굴"이라는 말은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표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현일교회 성도들은 하나 하나가 현일교회의 얼굴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명성에 관계된 얼굴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이 말은 실제로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 아니고 명성을 떨어뜨렸다는 말입니다.
어떤이는 남자의 얼굴과 여자의 얼굴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남자의 얼굴은 자연의 작품이요 여자의 얼굴의 예술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자의 얼굴은 자연적일수록 멋있다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남자들도 귀에 구멍을 뚫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남자의 얼굴은 바르고 붙이고 뚫는 것보다 자연 그대로가 멋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은 예술 작품이 되려면 그리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고 수고와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여자들이 생긴 대로 살면 절대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탈랜트들이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그마만큼 정성도 드렸고 돈도 드려서 화장도 하고 성형수술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 정도로 얼굴에 정성을 드리면 탈랜트 이상으로 예쁜 얼굴들입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부모를 닮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이 성형수술을 했기 때문에 입니다.
또 홈스라고 하는 사람은 "남자의 얼굴은 이력서요 여자의 얼굴은 청구서"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그가 살아온 역사가 그 얼굴에 나타납니다.
고생을 했으면 고생을 한 얼굴로 어려움이 없이 살았으면 어려움이 없는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얼굴은 그 자신의 이력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은 청구서입니다.
여자들이 얼굴을 남자에게 보였다하면 "이것을 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항상 무엇을 청구합니다.
여자들이 얼굴을 예쁘게 만들었다는 말은 그마만큼 남자들에게 많이 청구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불쌍합니다.
이렇게 보면 남자의 얼굴의 의미와 여자의 얼굴의 의미는 다릅니다.
본문에 보면 야곱이 에서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에서를 20년 만에 만나는데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지 모릅니다.
이 두 형제들은 서로 부등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입을 맞추면서 울면서 상봉했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이 하는 말이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10절)"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형님을 보고 얼마나 반가우면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이는 야곱이 형 에서에게 아부하는 말이 아닙니다.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이 말씀 속에는 아주 귀한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출10:28) 사람의 얼굴을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항상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얼굴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악마의 얼굴도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하나님의 얼굴로 나타난 사람도 역시 복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첫째로 야곱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밤새도록 약복강 나루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성경은 천사와 씨름했다고 했습니다만 이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갑니다.
고향에서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왔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큰 부자가 되었고 결혼도 해서 많은 자녀들을 거느리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참으로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크게 대성하고 돈 많이 벌어서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하게 되었으니 기쁘고 그리운 부모와 형제를 만나게 되었으니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20년 전에 자기형의 장자권과 축복을 도둑질했습니다.
그리고 형이 무서워서 도망 나온 몸이기 때문에 그 형이 어떻게 자기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입니다.
형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미리 보내어 보았지만 형은 이렇다 저렇다는 말도 없이 군사 400인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야곱은 자기 삼촌 라반하고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뒤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 큰 문제를 앞에 놓고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보통기도가 아닙니다.
사생결단하는 기도입니다. 죽어도 좋다고 하는 기도입니다.
야곱은 그가 밤새도록 씨름한 사람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생명이 보존되었기 때문입니다.(창32:30)
야곱은 밤새도록 기도하고 그 다음 날 형 에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에서에게 하는 말이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때 에서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본래 털이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털이 많은지 눈이 어두운 이삭이 손으로만 만져 볼 때 염소인지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에서는 온 몸이 붉으면서 털로 쌓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털이 많은 사람이 군사 400인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달려 온 것이 아니라 비포장 길을 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400명이 말을 타고 달릴 때 얼마나 먼지가 났겠습니까?
비 포장된 시골 길 자동차 한 대만 지나가도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일어나는데 400명이 말을 타고 달려 왔다고 한다면 얼마나 먼지를 많이 일으키고 왔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털이 많은 에서는 모든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달려왔습니다.
이때 에서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짐승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에서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한 야곱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생각이 변하고 야곱의 보는 눈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본 사람은 분명 험악한 모습의 에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분명히 깨달으세요!
기도하면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눈이 변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눈으로만 우리의 주변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2,둘째 에서는 용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에서는 20년 만에 동생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20년 전에는 자기 동생 야곱이 미웠습니다.
자기가 배고플 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이삭이 눈이 어둔 약점을 노려서 자기가 받을 축복을 몰래 받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은 남의 약점을 노려서 자기의 유익을 취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이지만 동생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모든 것을 다 용서했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을 만나겠다고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움과 원망이 가득차 있던 에서에게서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자 자신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도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사람이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됩니까 일곱 정도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물었습니다. (마18:21,22)
이 때에 예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용서는 용서를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곧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서해야 내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용서해야 진정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은 용서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나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행7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는 이스라엘 사형제도 중에서 가장 극열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돌을 던져서 스데반 집사를 죽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입니다. 피에 굶주린 사람들이요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주여 이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용서의 기도를 드리는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행6:15)고 했습니다.
용서할 때에 스데반의 얼굴은 이 세상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천사의 얼굴로 변한 것입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용서하면 그들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고 내 얼굴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합당한 희생" 원래 제목은 파인애플 이야기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뉴기니아에 있는 선교사가 7년 동안 선교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 곳에 있는 선교사가 파인애플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파인애플을 심기 위해서 그 부락 사람들을 고용해서 큰 과수원을 만들고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되자 나무에서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큰 기대를 걸고 이 열매가 익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루는 열매가 익었겠다고 생각이 되어 아내와 같이 과수원에 나가 보았는데 누가 따갔는지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열매를 따간 사람들은 그 나무를 심은 원주민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책망하며 "정 열매를 먹고 싶으면 와서 말하고 따 먹으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파인애플을 따 가는 것입니다.
이 원주님들의 주장은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은 과일나무를 심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내가 돈을 주고 너희들을 고용을 해서 나무를 심었으니 열매는 나의 것이 되는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그들은 그것에 상관이 없이 열매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교사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을 문을 받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원주민들은 파인애플을 따갔습니다.
더욱 화가 난 선교사는 생활 필수품 가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가계도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원주민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불편해 졌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파인애플을 따 갔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원주민들을 불러서 협상을 했습니다.
"절반은 원주민 것 절반은 자기 것"
이렇게 협상을 해서 일이 잘 해결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 열매가 열릴 때가 되니까 여전히 열매는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최후적으로 내린 결정이 본래 있던 파인애플을 저들에게 주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서 "이 나무가 당신들 것이라면 당신을 뽑아 가시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 나무를 옮기는데 품삯을 주어야 합니다."고 합니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선교사는 그래도 품삯을 줄 터이니 옮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아직 이 나무를 옮길 밭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 밭을 만들 품삯도 달라"고 합니다.
선교사는 화가 너무 너무 나서 모든 나무를 다 뽑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무를 심어 놓아서 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열리자 이 원주민들이 다 따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선교사는 이 파인애플 나무를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독일산 세퍼트 개도 사다가 지키게 해 보았고 소금을 팔았는데 소금을 팔지 않기도 하고 . . . 그런데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결국에 선교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생각하고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파인애플 나무를 훔쳐 가는 원주민들을 증오하고 미워했는데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원주민들은 파인애플 열매를 훔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 선교사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원주민들은 그런 선교사를 참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열매를 따 가면 선교사는 즉시로 얼굴에 노기를 띠면서 자기들을 책망하고 갖은 심술을 다 부렸는데 아주 조용합니다.
원주민들이 묻습니다.
"왜 선교사님께서는 저희들이 파인애플을 따 가는데도 가만히 있습니까?"
선교사는 "그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하는 일을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파인애플을 훔쳐가든지 뽑아가든지 가만히 두었습니다.
이런 선교사를 보고 원주민들이 아주 의미있는 말을 합니다.
"선교사님! 이제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미움을 가지면 내 얼굴에 미움이 나타납니다.
원한을 가지면 원한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의 얼굴에서 천사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셋째로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야곱은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 말하기를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내가 형님의 얼굴을 하나님의 얼굴로 보게 된 것은 형님에게 나를 만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다른 얼굴이 아닙니다. 기쁨이 있는 얼굴입니다.
기쁨이 충만한 얼굴이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어떤 얼굴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의 신학자 내촌감산은 예수님은 아직 30세 정도의 나이인데 유대인으로부터 "아직 50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8:57)"는 소리를 듣는 것을 보아서 예수님은 나이보다 많이 들게 보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얼굴은 곧 하나님의 얼굴인 것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근심 걱정이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항상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마음을 잔잔하게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베토벤은 세계적인 음악가이지만 그는 참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였고 그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에게 술값을 벌어오라고 매질을 했습니다.
그런 베토벤은 11살 때에 오페라 극장 심부름꾼으로 들어가서 돈을 벌어다 아버지에게 주었고 그러면 아버지는 그 돈으로 술 마시고 쓸어졌습니다.
베토벤 17살 때에 그 어머니가 결국에 폐결핵을 죽었습니다.
그때부터 베토벤은 어린 나이로 가장이 되어 어린 동생들까지 책임졌습니다.
이렇게 불우하게 살아가던 베토벤에게 귀가 잘못되어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음악가들에게 귀가 잘못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죽을 것을 결심하고 유서까지 썼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참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왔던 그가 하나님을 통해서 참 기쁨을 맛보고 그의 마지막 교향곡을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교향곡이 오늘날까지도 불후의 성담곡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기쁨, 세상에 속하지 않은 절대적인 기쁨을 누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현일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얼굴을 나타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인간이지만 하기에 따라서 하나님의 얼굴을 나타낼 수도 있고 악마의 얼굴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 현일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얼굴을 보고 또 하나님의 얼굴을 나타내면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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