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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아름다운 기도 / 빌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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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아름다운 기도 빌립보서 1:9~11


애비슨(O.R.Avison,1860-1956) 선교사는 우리 나라에 온지 6년만에 건강이 나빠져서
휴양차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좋은 병원을 짓는 것이라고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추진하는 가운데 에비슨 선교사는 고오든이라는 건축가로부터 설계도를 기증받게 되었고,
모금활동도 시작했습니다.

한편 조선에 병원이 세워져야 하는 그의 뜻이 카네기 홀에서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참석했던 세브란스라는 젊은 청년이 이 계획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자신이 병원 건축비용을 대겠다고 했습니다.

에비슨 부부는 세브란스를 만나 그의 성원에 깊은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1년 반 동안 이 일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후원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브란스도 말합니다.
"저도 약 1년 동안 어느 곳엔가 병원을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늘 가져왔는데 선생님의 연설을 듣고
서울이 가장 적당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과 제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고 분명하게 믿습니다."

1900년 가을 에비슨 선교사 부부는 기도의 응답에 감격해 하면서 조선에 돌아왔었고,
1902년 9월 그렇게도 소망하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개원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큰 힘이 있습니다.
또 실제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 땅에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만큼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패는 없습니다.
기도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잘 나타내는 무기도 없습니다
기도만큼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강력한 도구도 없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들이 바르게 살아가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하루 일과 중에서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됩니까?
혹 우리 가운데 오래 동안 기도를 쉬고 계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면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우리가 믿고 산다면 어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 사탄의 방해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안일하고 나태함 때문입니다.
열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능력, 은혜, 사랑, 역사를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운 일 당하지 않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또 우리가 어려운 일 당했을 때 만일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간청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믿는다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질과 넓이와 높이와 깊이 만큼 우리가 기도생활을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이 교제하는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바울 사도의 아름다운 기도요, 빌립보 교회를 향한 그의 따뜻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깊은 통찰력으로 점점 풍성하여 여러분이 최선의 것을 분별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까지 순결하고 흠 없이 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9절 말씀에 <내가 기도하노라>
자신이 기도한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기도 내용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바울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사랑의 선물은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상대방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곧 기도를 이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자녀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남편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내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교회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풍성하신 복이 내리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정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기도의 깊이도 비례해서 깊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기도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기도 없는 사랑은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 없는 기도는 진실이 없습니다.
사랑과 기도가 함께 있어야 진정한 복의 역사인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진실해집니까?
기도할 때 아닙니까?

기도하는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나타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불평과 탄식보다는 축복하고픈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기도하는 시간 우리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귀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참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기도의 능력과 위대함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절 이하의 말씀에서
베드로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請求)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爲)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祈禱)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後)에 네 형제(兄弟)를 굳게 하라>

그렇습니다.
기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기도는 죄악 가운데 서있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사랑의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기도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은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도 위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출근할 때 빨리 들어오라고 잔소리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이 학교갈 때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기보다는 현관문에서 아이 손잡고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은혜스럽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한번 실천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점은 바울의 기도 내용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깊이 음미해보면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말고도 에베소서에도 바울의 간절한 기도가 담겨져 있는데, 바울은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과 안락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너무나 나, 자신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 내 가정, 내 직장, 내 사업 등등 나의 영역에만 너무 머무르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세상적입니다. 물질적인 문제에 연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어려움에 너무
몰두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기도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 제목이 자기 주변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세상적이어서도 안됩니다.
오늘의 문제에만 괸심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먼저 하나님께 영광돌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우리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의 기도는 신앙이 자라남에 따라서 기도의 내용과 범위가 점점 확장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의 기도는 간단명료하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 여러 가지 잡다한 내용을 가지고 복잡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들어서 중점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이러한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제목은 한가지입니다.
사랑입니다.
참사랑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사랑으로 선한 것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진실하고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으로 말미암아 의의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의 결론을 맺습니다.
참 사랑만이 지식을 더할 수 있습니다.
참 사랑만이 선한 일을 분별할 수 있고, 선한 삶을 살게 합니다.
참 사랑만이 허물없이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사랑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부부간의 갈등도, 사실은 사랑의 문제입니다.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도 사실 깊이 따지고 보면 사랑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 못하는 것도, 사실은 사랑 때문입니다.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학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 속에는 반드시 지식과 총명이 동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합니다.
남들이야 유치하게 생각하든 말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무엇이든지 알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또한 사랑하는 삶은 한편으로는 유치하고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대화 어떻습니까?
뭐 거창합니까?

코소보 사태가 어떻고, 우리가 오늘의 경제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런 말을 합니까? 아니지요.
밥 먹었어. 별일 없어. 애들은 공부 잘하고.... 그럼 자...
그런데 이런 사랑의 언어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장군과 타냐와의 대화입니다.
장군은 타냐에게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타냐는 혁명중에 불길이 치솟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아버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대답합니다.

장군은 타냐에게 다시 묻습니다.
아버지와 헤어진 정말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타냐는 매우 당황해하며, 주저하다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내 손을 놓아 버렸어요.

이 때 장군은 잠깐 여유를 가진 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아버지라고 알고 있었던 코마노프는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다.
너의 아버지는 닥터 지바고란다.
만약 코마노프가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불이 나고, 혁명의 와중에 있었다 할지라도
결코 네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 드려야 할 기도는 사랑의 기도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에 지도자가 부정을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공직자가 부정을 합니다.

작금의 옷 뇌물 사건은 진위 여부를 떠나서 오늘의 고위 공직자들과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에 사업장마다 시끄럽습니다.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에 모든 일을 투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에 가정을 섬기는 일이 짜증나고, 우리의 가정이 평탄치 못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효도를 못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에 봉사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리는 예배를 등한히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여러 가지 제목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있지만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기도는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진정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기도해야 할 제목은 사랑입니다.
그 것도 참사랑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내가 하고있는 일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이웃, 우리 교회, 우리 나라, 우리의 지도자, 우리의 지구촌 모든 민족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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