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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금 다른 게 문제입니다 /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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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게 문제입니다
(사도행전 16:6-10 )

사람들은 아주 다른 것은 잘 구별합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것은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사이비종교도 아주 다르면 구별이 가므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다를 때 분별을 못하여 넘어가는 크리스천들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과 아주 다르다면 모두가 잘 구별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생각을 따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대로 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 다를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같겠거니 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슬픔이 있습니다. 실은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아주 다를 때보다 조금 다를 때 주님은 우리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훌륭한 신앙인 바울을 만납니다. 그는 조금 다르지만 하나님을 따릅니다. 아니 거의 같은 뜻이지만 그래도 주님의 생각을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신앙인의 승리는 바로 이 미세한 부분에서 주님을 따를 때 다가옵니다. 오늘은 바울의 순종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생각이 같습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주님이나 바울이나 같습니다.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복음전파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분이 안 계실 것입니다. 혹 계시다면 이단이거나 잘못된 신앙인입니다.

며칠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는데, 교회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메일이었습니다. 교회들이 목적을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교회의 부흥이 교회의 목적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가치 없는 글이라 더 이상 읽지 않았습니다. 교회부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복음전파가 지상교회의 최대 목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성도들도 이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혹 잘못 생각하여서 예수님에 대하여 병을 고쳐주려고 오셨다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 공생애 기간은 실로 이런 일을 많이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사역 역시 복음전파가 목적입니다. [눅7: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모두가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 최종목적지는 복음전파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이 땅에도 저 세계에도 건설하려는 주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천국이며, 그 천국을 전하는 게 바로 복음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롬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또,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복음전파라는 면에서 주님과 바울은 생각이 같습니다.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생각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간다는 생각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아시아로 못 가게 하십니다.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단편적으로 보면 어떻게 성령께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아시아로 가는 걸 막았습니다. 바울은 계속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무시아, 비두니아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역시 성령께서 막으십니다. (7절)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애썼다’는 표현을 볼 때 바울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을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시아 지역인 브루기아, 갈라디아, 무시아, 비두니아 등지를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유럽으로 보내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환상을 보이셨고 결국 바울은 유럽의 마게도냐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복음전파라는 원론은 같으나, 각론이랄 수 있는 장소에 대하여는 하나님과 바울의 생각이 다른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바울은 각론도 하나님의 생각을 따릅니다.

에덴동산으로 가 봅시다. 사탄의 말입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하와의 대답입니다.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3:3)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의도적으로 조금씩 변경되고 있습니다. 조금 다르게 변경된 하나님의 말씀은 엄청난 결과를 부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조금 변한 하나님의 말씀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사탄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에덴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조금 다른 게 문제입니다

주님 생각과 같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냥 따르면 되니까요. 많이 달라도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면 되니까요. 그러나 조금 다를 때 문제입니다. 그것은 순종하기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생각의 차이라도 주님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이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바울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생각을 따른 게 아닙니다. (6절)에서 이미 성령께서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는 생각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아시아 지역인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7절)에 보면,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씁니다. 조금 다른 하나님의 생각은 아주 신앙인 좋은 사람인 바울 같은 이도 금방 따르질 못합니다. 바울도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아 갑니다. 이어 비두니아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금방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만이라도 조금씩 변화되어 가십시오. 주님의 생각으로 조금씩 바꿔 가십시오. 바울은 그 조금씩의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대처합니다. 아시아로 가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유럽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깁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아시아의 길을 접고 성령과 기꺼이 동역하기로 결정합니다.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성령과 동역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과 동역하기로 작정한 바울의 사역은 순탄했을까요?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 첫 성읍이 빌립보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매 맞고 옥에 갇힙니다. 겉으로 보면 잘된 게 아니고 잘못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바울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기쁨은 그로 하여금 찬양하도록 만듭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했을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 일로 간수가 예수를 믿고 온 성에 복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순종했다고 당장 보이는 축복이 임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이 곧 축복이요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우리의 불순종의 문제는 원론보다는 각론입니다. 웬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원론은 잘 지킵니다. 주일성수나 기도생활, 헌금생활, 말씀을 듣는 일 등 원론을 전혀 안 지키는 신앙인은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주일성수를 하고, 헌금을 드리느냐가 문제입니다. 원론도 각론도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생각을 바꾼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아주 세밀한 부분에서도 주님의 방법을 따르기로 하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결론을 삼고자 합니다. [마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조금 다른 생각이라고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주님의 생각으로 갈아 끼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랬듯이 기쁘고 행복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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