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을 세웁시다 / 시 127편

  • 잡초 잡초
  • 750
  • 0

첨부 1


본문  시127편 
제목  가정을 세웁시다 

국내최초의 재혼전문 정보회사 '행복출발'의 대표인 최원일씨는 '이혼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긴 "아름다운 삶을 시작하라"는 책을 펴낸바가 있습니다. 그는 98년 당시 이혼이 급증하는 것을 보고 재혼시장이 커지겠다는 예상을 하고 회사를 설립했지만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그의 생각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최씨는 "막을수 있으면 최대한 이혼을 막아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느꼈으며 우리나라 이혼자의 절대다수는 대부분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보다 나은 행복을 찾아 이혼을 결행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더 불행한 삶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1년 작년한해 혼인건수는 32만 천건임에 비하여 이혼은 13만5천건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1일평균 877쌍이 결혼하고 370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쌍 결혼에 한쌍을 훨씬 넘어서는 이혼 통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지난 1970년대의 통계에서 무려 10배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지금 이 아름다운 명절의 시즌 제가 설교하고 있는 오늘 하루 동안에도 이 땅에서는 370가정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 두려운 사실은 이런 세속의 흐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 조차 별 차이없이 합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비극적인 조류를 막아서서 가정을 다시 세울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가정세우기가 이루어진것은 아닙니다. 가정은 가정의 청지기가 된 부부의 공동의 노력에 의해 계속 세워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추석절을 지내고 있습니다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우리의 추석절과 유사한 초막절과 같은 때가 되면 가족들이 함께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가며 온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기쁨을 노래한 시편이 본문입니다. 이 시편에서 시편기자는 건강한 믿음의 가정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정 붕괴의 시대에서 우리의 가정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워가려면 우리가 할일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가정 건축가로 모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하였습니다. 여기서 '세운다'는 말은 영어로 말하면 'build'(건축한다)입니다. 하나님을 '가정의 건축자'(home-builder)로 할 때에만 행복한 가정을 세우려는 우리의 노력이 결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가정의 설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건축에서는 설계자와 건축가가 구별되어 있습니다만 가장 위대한 건축문화를 자랑하던 로마시대에는 설계자가 건축 감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설계자보다 더 정확하게 설계도면을 실행하도록 잘 지도하고 감독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신 이후 그들이 부부되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설계자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그가 설계한 의도대로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문제는 이제 가정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의 가정의 건축가가 되도록 허용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가정의 건축가가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날마다의 삶이 가정의 건축장이라면 하루하루의 삶의 장에서 무엇보다 먼저 부부가 가정의 설계자요 감독자이신 그분의 뜻을 날마다 묻기위해 함께 손을 잡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부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에 "기도하는 부부가 함께 머문다"(Those who pray together stay together.)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기를 구하는 부부만이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바로 그 가정을 지어가게 될 것입니다.

가정붕괴의 시대에서 우리의 가정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워가려면 우리가 할일 무엇일까요?

2.하나님의 사랑 받는자가 되셔야 합니다.

누군가가 행복은 일과 안식의 리듬이 균형있게 자리잡은 모양이라고 말한바가 있습니다. 직장은 일을 제공하고 가정은 안식을 제공합니다. 일의 보람과 안식의 여유는 행복의 필수조건이 아니겠습니까? 직장생활이 행복하고 가정생활이 행복한 사람은 결코 인생의 장에서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장이 일의 보람을 창조하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하며, 가정이 참된 안식의 처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인류의 정신사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의 영감이 된 그림이 있었다면 장 프랑소아 밀레의 그림 '만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멀리 들판에서 들려오는 교회당의 종소리를 듣고 가난한 농부 내외가 일을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가기 전 저녁노을의 실루엣속에서 경건히 손을 모으고 머리숙여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보다 세상에 더 아름다운 그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속의 부부는 이후 손을 잡고 참 안식이 있는 그들만의 작은 천국으로 걸어갔을 것입니다.가정은 마땅히 그런 안식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시편에서 기자는 노동을 마친후 안식의 절정의 그림으로 편안히 잠자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2절 하반부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기록합니다.(그래서 지금 이시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모두는 잠못 이룰 수 없었던 아픈 밤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달콤한 밤의 안식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을수 있겠지요. 그러나 언제나 우리에게 이 달콤한 잠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위협하는 현실이 차가울지라도 만일 우리의 창조의 주, 섭리의 주께서 우리곁에 다가와 "괜찮아, 내가 널 사랑하는걸 알지"이 한마디만 듣는다면 우리는 다시 잠들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분의 사랑받는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친히 요한복음15장 10절에서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 부부에게 주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와 순종함이 있다면(교회에만 나오는것, 구원만 받은것가지고는 안됩니다.) 우리부부는 정녕 주의 사랑하는자로 주안에 머물러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주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요한14:21에서 주님은 다시한번"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3절에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인간이기에 지닌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의 가정은 작은 천국 곧 참 안식의 보금자리가 될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또한 주님의 사랑받는자 되어 우리 가정이 사랑의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작은 천국이 되시기를 기도하십시다.

가정붕괴의 시대에서 우리의 가정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워가려면 우리가 할일 무엇일까요?

3.하나님의 기업 관리자가 되셔야 합니다.

본문 3절에서 시편기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기업경영을 많이 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업은 자녀입니다. 자녀야말로 우리가정의 미래이며 우리사회의 미래입니다. 부모는 바로 이 자녀라는 기업의 관리자인 것입니다. 주께서 상급으로 기업으로 맡겨주신 선물이 바로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단순한 의무가 아닌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인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녀를 잘 키워간다면 바로 그 자녀의 기업이 우리를 명예롭게 할 것입니다. 5절 마지막의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사회에서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어도 만일 그의 자녀가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그의 성중(바로 그가 일하고 활동하는 사회)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아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부모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기업인 자녀들의 성실한 관리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직장이나 사업의 성공보다도 더 중요한 우리의 인생의 우선순위적 과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세움으로 우리의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실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녀를 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들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로 교훈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혼은 자녀에게 제일 불행한 모범, 불행한 유산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혼은 용서받을수 없는 죄는 아니지만 이혼은 심각한 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고 말합니다. 이혼으로 무너뜨리기엔 가정은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기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위대한 창조역사를 가정의 창조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땅에서의 공생애의 시작을 결혼식에 참여하시어 결혼하는 가정의 기쁨을 더하기 위한 포도주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그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고 그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천국가정을 흠모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가정은 작은 천국이어야 합니다. 이땅의 모든 가치가운데 가정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유명한 한 노래의 가사는 "가정을 대신할 곳은 없다"(There is no place like home)고 노래하였습니다.

가정의 눈물겹고 아름다운 행복을 알기에 평생 가정을 가져보지 못하고 가정을 떠나 표류하면서 가정을 그리워 하다가 가정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작사하고 세상을 떠난 독신 남자가 있었습니다. 배우요 극작가였던 그는 고향인 미국 뉴욕을 떠나 영국을 주무대로 유럽에서 20년이상을 활동한후 아프리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미국정부는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의 유해가 뉴욕에 도착할때 뉴욕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려들어 뉴욕시민들은 그의 귀국을 환영했고, 다시 수도 워싱톤으로 옮겨진 그의 유해는 워싱톤 중심부를 인파로 메운 퍼레이드후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더(Chester A. Arthur)와 국무위원의 정중한 영접으로 워싱톤 오크 힐(Oak Hill Cemetry)묘지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공헌은 오직 하나, 그가 미국인들에게 가정의 가치를 깨우친 노래의 가사를 남겼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곳은 작은 집 내집 뿐이리. 꽃피고 새우는 내집 뿐이리" 이 가사를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이세상 쾌락들과 궁전들을 배회할지라도/나를 겸허하게 하는 건/내집같은 곳은 없다는 것이라네(There is no place like home)/하늘로부터 오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거룩하게하는 그곳/온 세상 다 배회하여 찾아도 정말/홈 스위트 홈/집같은 곳은 없다네/집을 떠난곳의 어떤 찬란함도 나를 현혹시킬순 없다네/오 그 사랑스런 초가 오두막집을 내게 주시게나/내 부름따라 새들은 다시 유쾌히 노래하는/그것들을 내게 주오/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의 평화를 함께/홈, 스위트 홈/집같은 곳은 없네.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설계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을 소중히 여기실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키실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세우실 것입니다. 이 추석절 여러분과 저의 가정이 더욱 진리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세워지기를 가정의 설계자요 건축자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