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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에 바로 서라 / 행 1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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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에 바로 서라
사도행전 14 : 8-12절

8 -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쏘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부터 주신 손과 발이 있다.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 세상을 살면서 손으로는 일을 하고 발은 어디를 가서 어떻게 살았는지 자취를 남긴다.  사람이 세월을 따라 평생을 살다가 몸이 늙으면 죽는다.  그렇지만 이 땅에는 그가 가며 살은 곳곳에 흔적이 남는다.  그런데 발이 고장나면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없다.  발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정상적인 삶이 되지 못했음을 말한다.
.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앉은뱅이가 구원을 받아 두 발이 바르고 굳게 선 것처럼 하나님도 인간들이 바르고 굳게 선 삶을 원하신다.  특별히 예수 믿는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선 믿음을 보실 때 기뻐하신다.  뒤틀린 인생이 바로 잡히고 하나님과 어긋난 믿음이 바로 맞추어져서 복된 인생,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하겠다.

.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받고 전도 여행을 떠났다.  1차 전도는 배를 타고 당시 소아시아 지역 구브로 밤빌리아 비시디아 루가오니아 땅이었다.  그 지역은 헬라 문화 영향으로 철학사상과 그리스 신화가 사람들이 숭배하는 종교가 되어 있었다.  영적으로 어둡고 문화적으로 혼탁한 곳에 가서 구원의 복음이신 예수를 전도하는 일은 어려웠다.  거기에다 이방 땅에 사는 유대 사람들의 핍박과 방해가 거칠고 집요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유대사람들의 핍박을 피해 루스드라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했다. 
.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성령에 감동되어 크게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앉은뱅이다.  행 3:1-10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도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적이 있다.  이들 모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앉은뱅이로 만들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까지 앉아서 살아왔을 뿐 한번도 일어나 걸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성전 미문의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하다가 고침 받았고, 루스드라의 사람은 바울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다가 고침 받았다.  하나님께서 앉은뱅이로 만드셨기 때문에 인간 의술로는 고칠 수 없다.  성전 미문의 사람처럼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고쳐 주시든지 아니면 오늘 말씀의 사람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성전 미문의 사람 같은 기적은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다.
.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가 되어 산다.  사고와 질병으로 육신이 지체 장애가 되어 일어나지 못하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다.  육신의 지체 장애는 몸이 사는데 불편할 뿐 그것이 부끄럽든가 인생이 잘못되지 않는다.  문제는 마음이 앉은뱅이 되어 낙심으로 주저앉고 영이 앉은뱅이 되어 죄악 속에 망해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삶에서 일어나야 한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생활은 되지 않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야 한다.  성경말씀 배우고 신앙년수는 오래되어 머리로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영이 잠들어 믿음은 빈 껍데기이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이다.  삶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  그래서 매사에 실망이 오고 걱정이 생긴다.  믿음이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나를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살아있는 신앙이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 믿음은 생각하는 믿음이 아니고 말만 하는 믿음도 아니고 내가 많이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도 아니다.  절망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일어서는 믿음이요, 매사를 하나님으로 살려는 믿음이요, 내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두는 믿음이다.  하나님 하시고 싶은 것이 나에게서 날마다 이루어지는 삶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믿음이다.

. 루스드라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그 중에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들어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고 잘못 들어서 구원의 기회를 잃은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사람은 그 생활에서도 복이 된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제대로 듣고 은혜를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 말씀이 은혜가 되도록 성령의 감동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분들도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은 한번 듣고 지나가면 안된다.  마음에 확실하게 심겨지도록 계속 들어야 한다.
. 오늘 말씀에 나온 앉은뱅이는 하나님 말씀을 바울에게서 들었다.  오늘 말씀 9절에 듣는다(헬,    헤코우엔)는 뜻은 '계속 반복하여 듣는 것' 을 말한다.  하나님 말씀을 계속 들으면 영이 깨인다.  그리고 귀가 열린다.  영이 깨어있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영이 깨어 귀가 열려지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한다(계2:29, 사6:9).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 오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요1:14,18).  바울사도는 롬 10:17 말씀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다. 
. 앉은뱅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이 생겼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믿음이 되면 그 말씀에 대한 소원이 생긴다.  나도 일어나 걷고 싶다는 소원이 강하게 나타났다.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나도 걸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된다. 말씀을 계속 더 들으면서 구원의 예수님께서 나를 걷게 하셨다는 확신이 불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믿음은 발전되고 성숙하며 풍성해진다.  믿음이 회복되면 성령이 역사하신다.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면서 병든 것이 낫고 잘못된 것도 바로 되고 생활도 달라진다.  오늘 말씀의 앉은뱅이는 앉은자리에서 믿음으로 일어나 걸었다.  오늘 말씀 10절에 뛰어 걷는다(헬,      페리에파테이)는 말은 '계속해서 걷고 있는 모습' 을 의미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 말씀도 계속해서 들었다.  말씀을 듣되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 죽을 사람이 사는 약을 먹는 것처럼 들었다.  그러니 말씀이 맛이 있다.  말씀에 힘이 난다.  말씀으로 기쁨이 넘친다.  아무도 모르는 보배를 이 사람만 보고 찾은 것 같다.  그래서 들은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일어섰다.  이제 걷는다.  난생 처음 걸어본다.  처음은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금방 태어난 송아지처럼 비실거릴지 모른다.  다리도 서로 엉켜서 어떤 것이 먼저인지 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계속 걷고 뛰고 하면서 다리도 강해지고 발목도 굳세지며 걷는 것도 잘된다.  내가 일어나 걷는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걷고 또 뛰어본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은 계속 들어야 은혜가 된다. 마음에 사모가 되고 나도 하고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일어나서 말씀들은 대로 해보아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해야 한다.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하면 할수록 신앙은 뜨거워진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하나님 말씀이 내 생활로 되어져 나타날수록 마음은 기쁘고 삶은 풍성해진다.  이것이 믿음이 회복되고 영으로 사는 성도의 복이다. 

. 앉은뱅이가 말씀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앉은뱅이로 만드신 목적이 있다.  바울을 보내어 그를 걷게 하신 데도 이루려는 뜻이 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은 걷고 뛰는 정상인을 보며 자신을 슬퍼하고 부모를 원망했을 것이다.  앉은뱅이의 삶이 잠시 이 땅에 사는 동안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그로 예수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로 영원히 사는 복을 얻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거기모인 사람들이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하나님이 역사를 보고 예수믿어 구원받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앉은뱅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잘 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들은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엎드려 바나바와 바울에게 절을 하고 자기들의 신이 사람되어 오셨다며 제사하려 한다.  그 땅에는 우리 나라의 전설과 같은 그리스의 신화가 있다.
  『 옛날 그리스 땅에 모든 신들을 관리하는 제우스 신이 말을 대변하고 소식 알리는 일을 맡은 헤르메스 신과 함께 사람이 되어 왔다.  그 곳 사람들은 사람이 되어 온 제우스 신과 헤르메스 신을 맞아들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빌레몬과 그 아내 바우시스가 그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여 모시고 섬겼다.  제우스 신은 자신을 믿지 않고 거절한 사람들에게 홍수를 내려 다 죽였고 빌레몬과 바우시스를 제사장으로 삼아 평생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빌레몬 부부는 제우스 신전을 지키다가 죽어 두 그루의 큰 나무가 되었다. 』
. 그 곳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을 깨닫지 못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보아도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일하시는 전능한 하나님 손길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 식대로 이해한다.  인물이 좋은 바나바는 제우스 신으로, 바울은 말을 대변하는 헤르메스 신으로 믿고 숭배하려 한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이렇게 자기 식대로 하나님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단이 나오고 사이비가 생긴다.  하나님 앞에 믿음이 바르지 못하면 자기하고 싶은 대로 산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도 내 맘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역사를 자신에게 편리하도록 가져다 맞춘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서되 바로서야 한다.  복을 받지만 그 전에 믿음이 바로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어긋나 있으면 안 된다.  하나님과 맞지 않는데  성공하는 것은 오히려 그 인생을 망친다.  내 식대로 하나님을 믿고 이해하는 것은 사는 길도 하나님 함께 하심도 없다.
. 오늘 말씀에 나온 무리들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해 구원의 기회를 잃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무지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선동되어 신으로 숭배하려 했던 바나바와 바울을 돌로 쳐죽이려 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대적자 원수가 되었다. 믿음에 바로 서지 못하고 구원의 기회를 잃으면 그는 사탄에게 속는다.  그래서 악한 일에 동원되어 죄를 짓는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달아야 한다.  믿음에 바로서야 한다.  그래서 앉은뱅이를 벗어나 하나님 뜻하시는 새로운 세계로 가야한다.  영적인 삶이 되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을 받는 교회의 일꾼이 된다.  그러나 육으로 살게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는 멸망으로 간다.  '믿음에 바로 서느냐 서지 못하느냐' 하는 여부가 삶과 죽음, 구원과 멸망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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