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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과 거룩한 영혼 / 벧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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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과 거룩한 영혼(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1:22)

들어가는 말
베드로서는 역경에 처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능력 있는 서신입니다.
본문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깨끗케 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데도, 늘 그러한 삶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은 거룩한 삶을 쟁취하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라서가 아니라 더러운 삶을 살기가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삶은 치열한 분투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속된 삶은 방심하는 틈을 타 자연스럽게 자신을 점령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렇게 더러워진 우리의 영혼을 깨끗게 하는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바로 진리를 순종하므로 우리의 영혼이 정결케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믿어 순종함으로서 우리는 정결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구속의 대치할 수 없는 목표가 바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 순종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을 얻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또 주님이 이렇게 늘 더럽혀 지는 우리를 어떻게 정결케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는 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자기의 몸을 저주의 형벌아래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거룩한 속죄의 보혈로 씻어 주셨지만 그렇게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혼도 다시 더러워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정결케 우리의 영혼이 얼마든지 더러워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죄를 받느냐 구원을 받지 못하느냐 하는 구원의 취소와 승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영혼들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이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지옥에 불길을 지나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향해 도무지 그 태도를 돌이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가장 많이 기도해야할 위기의 상황 가운데 있으면서도 도무지 무릎을 꿇지 않고 입 벌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죄가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모두 잃어버리게 만들어도 도무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성령께서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죄악을 드러내고 우리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어도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며 방종한 삶을 고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두 그 영혼이 순결을 잃어버리고 때가 묻었기 때문입니다. 때 묻은 영혼은 진흙으로 칠한 거울이 사물을 비춰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정직하게 이해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는 정결한 마음에 깃듭니다. 기도하는 모습은 정결한 영혼을 갖지 않은 사람도 취할 수 있지만 그러나 거룩한 기도의 향불을 피워 올리는 것은 정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모든 허위 허식을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허장성세는 모두 영혼의 더러움으로부터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높이 여김을 받고 인정받을 때마다 언제나 두려워하고 떨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분에 넘치는 많은 칭찬을 들으면서 마치 우리가 정결한 영혼을 갖고 살아가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며 거짓과 허세, 위선들을 배워 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러워진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혼을 파헤치고 지나가서 그의 영혼의 더러움들을 모두 말갛게 씻어버리고 그에게 거룩한 회개와 참된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새겨 넣으시면 그렇게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정결한 마음, 거기에서 모든 거룩한 영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더러워진 영혼들을 정결케 하고 불결하게 된 마음이 깨끗케 되는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물론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런 회개와 참회를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으로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케 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영혼을 깨끗케 하는 비결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정결케 하신 우리의 영혼에 순결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신앙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것과 함께 또 중요한 예배의 이유가 그렇게 집중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룩한 삶이 없이는 그의 감격과 신앙의 기쁨, 생명의 거룩한 은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주께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에 감화를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며 살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적당히 순종하거나 어느 정도 비교적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그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그 일에 매진하고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순종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경계하며 순종의 그 외길로 줄달음치는 삶을 살아 보십시오. 감격은 더 큰 감격을 불러오고 은혜는 더 큰 은혜를 불러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를 들으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감동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이것은 우리가 가르침을 받는 성경의 진리가 이미 내용 자체를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의 내용에 대한 순종의 삶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감동을 걷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면 분명해 집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방법은 끊임없이 새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옛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구약을 읽어보십시오.

신명기라는 말 자체가 두번째로 하나님이 명하신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그 모세의 유언적인 설교는 처음 한 설교가 아니라 이미 광야에서 한 모든 설교를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말씀이 옛 말씀이기 때문에 진부하였던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미 이전에 알았던 옛 말씀이지만, 다시 들으면서 그들의 삶은 옛 삶에서 새 삶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불순종과 거역의 날들을 하나님 앞에 합리화하는 대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올 적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고 놀라운 구속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순종하며 살지 못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있음을 참회해야 합니다.

그 진실한 참회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진리를 따라 살고 그 진리를 위해서 살아갈 많은 담대한 결심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새롭게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일들을 위해서 흠 없는 어린양의 정결한 피로 우리를 구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으니 이제 우리는 그 피로 사신바 되었고 우리는 이제 불순종의 아들이 아니요 순종해야할 아들이요 이제 우리는 거짓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리를 쫓아 살아야할 사람들이라고 깊이 다짐하면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굳건히 묶어야 하는 것입니다.

“....피차 사랑하라”
마지막으로 사도는 우리에게 “피차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에게도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신성을 인성에 감추시고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스스로 취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도 죽음은 두려운 것이었고 더욱이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커다란 진노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안에서의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제게서 옮겨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만 보더라도 우리는 그 죽음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려운 일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진한 고통을 몸소 맛보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예수님은 무슨 소망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저주를 받으시고 그 끔직한 고난을 한 몸에 홀로 짊어지셨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당신이 그렇게 죽고 나면 이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이 영광의 부활로 바뀔 것을 아셨습니다.

잠시 후에 맛보게 될 영광이 지금 맛보고 있는 구차한 죽음과 비교될 수 없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나면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만물로 그분의 발 앞에 무릎을 꿇어 주라 시인하게 하시는 영광을 주실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그 모든 것을 믿으신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치욕스러운 고난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보다 큰 이유는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님은 당신 한 분이 진노를 당하시고 당신 한 알이 밀알로 썩어져서 우리와 같이 형벌 받을 죄인들을 그 십자가로 구속해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우리가 회복하며 사는 그것이 주님이 십자가 지신 이유였고 그것은 곧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출발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깝다 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방종하고 거만하며, 제멋대로 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아깝다거나 당신이 너무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남녀노소 죄인이나 의인이나 많이 아는 자나 아는 것이 없는 자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뒤에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향한 가슴 저미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이 역사하고 있는 곳에는 언제나 거룩한 성도들의 불붙는 사랑이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 한 사람이 아니라 내 지체와 내 형제 내 삶의 모두를 위해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고난당한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한 형제, 한 연약한 지체가 모두 하나님 앞에 나처럼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각성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고 피차 뜨겁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지키는 비결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분쟁과 사랑 없는 포악함들이 얼마나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더럽게 만드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정결한 사랑을 잃어버리면 정결한 마음과 심령도 함께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고 그분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을 입었고 그래서 그 사랑 때문에 이제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그리고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주께서 부르시는 부름을 따라 만나는 지체들을 함께 성도의 기업을 받을 자들로 알고 존귀히 여기고 사랑하며 아직도 이 사랑에 울타리에 들어오지 못한 우리 밖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의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주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품고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을 안 우리들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맺음 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수련회는 끝나고 이제 우리는 다시 평상적인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감사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던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할 거룩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고 그 뜻대로 살아서, 우리의 이 인생을 주님이 바라보실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저 인생을 건지고 구원해 주었더니 정말 나를 이렇게 영화롭게 하는구나 하고 기뻐하실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그 사랑을 진정 아는 자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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