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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회의 회복 /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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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마 5:13-16
사회의 회복 

(마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금년을 '회복의 해'로 선포하면서 1월 달은 회복에 대한 말씀을 증거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첫 주일에는 개인 신앙의 회복에 대해서, 두 번째 주일에는 가정의 회복에 대해서, 세 번째 주일에는 교회의 회복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네 번째 주일에는 사회의 회복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에는 16년 동안 우리 교회를 섬기셨던 최흥식 목사님께서 마지막 보내시는 주일이었기 때문에 최목사님께 말씀 증거할 기회를 드렸고, 오늘 2월 첫째 주일에 그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회복은 나 자신이나 우리 가정, 우리 교회에만 머무르는 것 아닙니다.
물론 그런 회복이 우리에겐 보다 더 직접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 회복이 이 사회에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의 신앙의 회복이야 사회와 상관없이 내가 할 일이지만, 내 건강의 회복이라든지 내 직장생활의 회복, 경제생활의 회복과 같은 것들은 나 혼자서만 잘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 가정의 회복에 있어서도 우리 자녀들이 이 사회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은데 그들이 이 사회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교회의 회복에 있어서도 이 사회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우리는 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 2:2에 보면, 우리보고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하면서,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 사회가 잘 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회도 회복되어야 하겠는데, 어떤 면으로 회복되어야 하겠습니까?

저는 먼저 우리 사회에 법과 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우리 한국을 가리켜 '부패공화국'이라고 합니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부패지수가 가장 높다는 말을 듣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말이지만, 요즈음 일고 있는 각종 게이트 사건들을 보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까, 우리 국민 10명중 9명은 우리 사회가 부패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동아일보 2002년 1월9일자 A6쪽)
또 청소년들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41.3%가 '아무도 보지 않으면 법질서를 지킬 필요가 없다' 고 응답했고 '뇌물을 써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뇌물을 쓰겠다'는 청소년이 28.4%나 되었으며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한 청소년들이 전체의 16%나 되었다고 합니다.(경향신문 2002년 1월3일자 26쪽)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사회 속에서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법과 질서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또 우리는 이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회복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인권이 보호받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인권이 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 인권이 유린되어 있는 실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군산의 한 윤락가에 일어난 화재사건을 통해서도 우리 사회에 아직도 어두운 부분들이 많고 인신매매와 같은 반인륜적인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외국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착취라든지 구타라든지 반인륜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필립핀 공항에서 우리 나라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몰매를 맞고 사건을 해결하러 온 경찰마저 그 필립핀 사람들이 한국에서 당한 수모를 이야기 듣고 합세해서 한국 사람을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나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격이 존중받고 인간의 기본 권리가 보호받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정직과 진실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거짓된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살지 못하고 함께 거짓을 행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사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성실과 수고가 보상받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검소와 절제가 미덕이 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얼마 전, 우리 청소년들의 어른 존경심이 아태지역 17개 국 중에 꼴찌라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올해 초에,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가 이 지역 17개 국가의 청소년 1만73명을 면접 조사했는데, '어른을 존경하는가'의 물음에 대해 '매우 존경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17개 국 평균 72%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13%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가장 높게 나온 베트남의 92%는 제쳐 두고라도 우리나라 다음으로 어른 존경심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된 홍콩조차도 39%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속히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 사회가 애국 애족하는 사회로 회복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해 초에, 미국의 정보통신기업 쓰리콤(3Com)이 전 세계 251개국 126만 명을 대상으로 각 국민들의 국가 자긍심을 조사했습니다.
'조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미국과 카나다는 각각 90%, 92%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48%밖에 되지 않아 전체 251 개국 가운데 149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종을 바꾸고 싶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 48%가 '있다'고 응답했다고 했는데, 같은 질문에 북한은 39%가, 일본은 23%가, 영국은 10%가, 미국은 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또 금년 초에 고대신문이 자기 대학생 259명과 중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의 대학생 등 7개국 16개교 대학생 3백58명을 상대로 '다시 태어나면 모국을 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고려대생 중 '모국을 택하겠다'고 대답한 학생은 30%에 그쳤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80%, 러시아는 79%, 캐나다는 76%, 중국은 73%의 대학생들이, 그리고  일본 대학생들은 이들 국가보다 조금 적은 49%가 '모국을 택하겠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고려대생들, 고려대학이라고 하면, 저도 고려대학을 나왔지만 우리 나라의 민족대학으로 자부하는 대학이 아닙니까?, 그런 대학에서 30%의 학생들만이 '다시 태어나도 우리 나라를 모국으로 택하겠다'고 했으니, 우리 젊은이들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전쟁이 나면 나라를 위해 싸우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중국이 79%, 프랑스가 62%의 학생들이 '싸우겠다'고 한 반면에, 우리 고려대생은 45%가 '싸우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가수 유승준씨가 병역의 의무를 피하려고 국적을 버리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가 입국이 거부된 사건을 보면,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낮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일도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거기에 대한 주님의 대안이 오늘 말씀입니다.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대해서 너무나도 책임감없이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사회야 어떻게 되었든지 나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회야 어떻게 되었든지 내 가정, 내 식구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회야 어떻게 되었든지 우리 교회만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던가요?
우리는 결코 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우리가 세상과 동화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보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의 역할이란 무엇입니까?
소금이란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세상에 생명을 지키는 사명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금년에도 우리는 이 일을 부지런히 해야겠습니다.
금년에도 가을에 새생명축제를 하겠는데, 지금부터 우리 이웃들에게 전도할 준비를 하면서 이 사회에 생명 주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이 성중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이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또 소금은 부패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세상의 부패를 막는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만이라도 부패하지 않고 정직하게 바로 삶으로 이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부패와 연류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부패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 거론된 그런 일이 더 이상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무어라고 했습니까?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맛을 잃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맛이 무엇입니까?
저는 그것을 빌 4:8,9에서 찾았습니다다. (한번 같이 찾아 봅시다. p.322)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우리는 무엇에든지 참되어야 합니다. 참된 맛을 지녀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경건한 맛을 지녀야 합니다.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덕이 있고, 기림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다음 빌 4:9에 보면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했습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맛이 있게 됩니다.
그런 맛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다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빛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빛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말씀에 보면, 비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숨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빛을 숨길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럴 바에야 떳떳하게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비추어야 할 빛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기 16절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를 회복시키는 데에 우리가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이 사회를 회복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금이 있으면 음식이 결코 부패해지지 않습니다.
소금도 조금이면 안 되겠지요. 그렇다고 많이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적정량만 있으면 음식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어느 정도의 그리스도인만 있으면 그 사회는 부패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인구의 1/4, 25%가 된다고 합니다.
그만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이 사회는 결코 부패해 질 수 없습니다.

옛날 초대교회 당시 로마가 기독교에 굴복을 할 당시 로마에 기독교인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10%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가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그리스도인이 25%나 된다고 하는데 이 사회가 이렇게 부패해 있는 것은 무언가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음식물 양의 25%의 소금을 넣어 보십시오

어떤 음식물이건 절여져서 결코 부패하지 않습니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부패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소금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소금이 짠맛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까 빌립보서의 말씀처럼, 참되지 못한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결하지 못하고 사랑할 만 하지 못하고 칭찬 받을 만 하지 못하며 덕도 기림도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되지 못하다는 말을 듣고 거룩하지 못하고 정결하지 못하고 사랑할 만 하지 못하고 칭찬 받을 만 하지 못하고 덕도 기름도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고 했는데 정말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맛 잃은 소금처럼 이 사회에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또 우리가 정말 빛의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행실을 보고 무엇을 배웁니까?
정말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이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우리들 때문에 이 세상이 밝아지고 있는가 아니면 어두워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이웃이 밝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도시가 밝아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칭찬을 하고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형편은 어떤가요?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고 있는 것을 배우려고 합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을 보면서 나도 저 사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나는 절대 저 사람들처럼 되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지난 주간에도 이 세상에서 사업을 하느라고 잔뼈가 굵었고 이제는 큰 그룹을 이룬 회장님 한 분하고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80이 넘으셔서 은퇴를 하고 몸에도 이상이 생겨 그 딸과 사위가 저를 초청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아버님을 좀 예수 믿게 하려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그 분은 미국에 오기만 하면 제가 시무하던 교회에 와서 저를 만나시고 저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신앙을 키워오셨던 분이신데, 한국에만 오면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잘 안 만나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그 사위 되시는 분이 대답하시기를, 오랫동안 세상살이를 하시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어서 한국에서는 교회 나가고 싶은 생각이 잘 안 드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 그런 사람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나가고 싶은데 교회 나가는 사람들은 보기 싫고, 그래서 망설이는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이게 무엇인가요? 세상에서의 빛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회복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회복시키겠습니까? 빛을 비춤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잘 비추면 이 세상은 회복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빛을 잘 못 비추면 세상은 더 어려워 집니다.
세상이 어려워지면 우리도 어려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회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정적으로 회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적으로 회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 사회의 애국 애족의 정신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의 회복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소금의 역할을 다 해야 합니다. 소금의 맛을 잃으면 안 됩니다.
또 빛의 역할을 다 해야 하며 선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사회를 회복케 하는데 귀하게 쓰이는 소금과 빛이 되어서, 우리들 때문에 이 사회가 건전해 지고 밝아짐으로, 우리 자신들이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고 또 우리 후손들도 그렇게 살게 되는 축복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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