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산 아래의 세상` / 마 17:14-20

  • 잡초 잡초
  • 266
  • 0

첨부 1



본문 : 마태복음17:14-20
제목 : "산 아래의 세상"

1. 두 그림

로마의 바티칸 궁에는 오늘 본문의 말씀인 마태복음 17장을 배경으로 하여서 라파엘이 그린 변모도(變貌圖)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은 같은 화면에 두 장소의 모습을 그려서 서로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림의 윗 부분에는 산 위에서 일어난 변화의 세계를 그렸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스러운 빛 가운데 싸여있는 모습입니다. 산 아래는 귀신들려서 간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둘러 서 있는 아홉 제자들의 어두운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을 대조시키는 그림이요 또 교회와 세상을 대조시킨 그림입니다.
일전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산 위에는 예수님께서 변화되셨는데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옷에서는 광채가 났습니다. 수 백년 전에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찬 산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광경과 환경을 베드로는 이 땅에서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천막 셋을 짓겠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우리는 집이 없어도 좋습니다. 여기 영원토록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에는 전혀 대꾸하지 아니하고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산 아래는 귀신들려 간질병을 앓고 있는 외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들의 질병을 고치기 위하여서 여기저기 다 다녀보다가 예수님에게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시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홉 제자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말합니다. “듣자니까 당신들의 선생과 또 당신들은 이런 병자를 잘 고친다는데 내 아들의 병을 좀 고쳐주세요.”
아홉 제자도 전에는 예수님의 파송을 받고 귀신을 쫓아내어 보았습니다. 병자를 고쳐보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은 물러가라’고 소리쳐 보았지마는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여기도 별수 없구나 실망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려서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집니다. 제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지마는 제자들이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시고 그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베드로의 관심은 초막 셋을 짓고 그 영광스러운 황홀경에 빠져서 거기서 사는 것이 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심은 병든 자를 고치고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관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관심 때문에 하나님과 동등되신 예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시공간을 초월하신 주님께서 감옥과 같은 인간의 육체 속으로 들어오시게 된 것입니다. 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문제투성이인 이 세상 속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죄와 죽음과 질병과 사탄의 권세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해서, 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이 땅에까지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의 영광가운데 계시지 아니하시고 산 아래로 내려오셔서 귀신을 쫓아주시고 병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은 하늘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예수님의 첫 번째 관심-고통 당하는 자를 치료하심

예수님의 관심이 뭡니까? 첫째 관심은 귀신들려서 병든 자를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귀신이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질병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또한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질병이 귀신이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단체에서는 모든 질병이 귀신으로부터 왔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가 병들면 병들었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귀신들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질병에 걸리는 이유를 보면 위생적으로 살지 못한다든지, 몸을 과로한다든지,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든지, 여러가지 원인으로 질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귀신을 통해서 오는 질병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질병을 치료하기 전에 귀신을 내어쫓으면 자연히 질병이 낫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귀신은 넘어지게 합니다.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예수님에게 사단은 베드로를 통하여서 십자가 지면 안 된다고, 십자가 지지 말라고 만류를 하자 주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베드로를 통하여서 예수님까지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를 넘어지게 했습니다. 사단은 가룟유다를 넘어지게 했습니다. 사단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넘어지게 했습니다. 오늘도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할 때 ‘나는 왕년에 집사였습니다. 나는 왕년에 찬양대 대원이었습니다. 교사였습니다.’하고 자기가 왕년에는 신앙생활 잘 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단의 꾀임에 넘어져서 실족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질병을 가져다주고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 사단의 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단이 우리마음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 보혈로 우리의 온 몸을 다 덮어서 어둠의 그림자가 넘어가는, 사단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늘 자신을 지켜나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귀신들은 우리의 자녀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넘어지게 하는 매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문화가 발달되면 발달될수록 더욱 더 이런 매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카드를 겁없이 막 긁어 가지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범죄들이 생겨납니까? 카드 빚을 갚기 위하여서 자기의 몸을 팝니다, 사람을 죽입니다, 온갖 범죄를 다 저지릅니다. 그것 가지고 향락합니다, 음란합니다, 술 마십니다, 마약 합니다. 사람을 편리하게 한다는 문명을 가지고 얼마나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자기 자식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주님께 와서 “내 자식이 물에도, 불에도 넘어집니다. 이 병을 좀 고쳐 주실 수 없습니까?” 하고 애원합니다. 이 아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넘어지고 있는 자녀를 바라보며 애타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귀신은 성도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믿음에서 넘어지게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져있는 자들을 바로 세우고 질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자녀를 치료하기 위하여 산 위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오시는 예수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오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한번 와 보세요. 내 자식의 문제, 내 자녀의 문제, 질병의 문제, 가정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부부의 문제, 그 어떤 문제라도 예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변화산에서 내려오셨고, 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운데 임재해 계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의 어떤 문제라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 앞에 나와 보세요.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가 그 안에서 해결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더라, 신앙생활 해 보았지만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도 있더라는 말을 하는데 그 이유가 뭔 줄 아십니까? 내가 기도한 꼭 그대로 이루어져야만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소원했던 그대로 되어져야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대로 다 되어보세요. 망할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준다면 자식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원하는 기도대로 원하는 소원대로 다 되게 해주면 우리 삶이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고 더 완전한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온 모든 문제는 더 좋은 것으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신실한 주님의 인격을 가지고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내 아들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데려오면 됩니다. 내 삶의 문제를 주님께 가져오면 됩니다. <네 자녀를 데리고 오라, 네 건강의 문제를 가지고 오라, 네 경제적인 문제도 가지고 오라, 네 가정의 문제도 가지고 오라, 네 아내와 남편의 문제가 있으면 그것도 가지고 오라, 무슨 문제든지 가지고 오라,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지고 오면, 데리고 오면 다 해결되어집니다. 주님 앞에 가지고 와서 문제를 내려놓아서, 주님께 상의하여서,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돌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 위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하늘에서 이 땅에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지고 오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모든 문제를 가지고 와서 이 시간도 해결 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설교시간에 여러분들 질병의 문제, 가정적인 문제, 모든 문제가 다 풀려나가는 복된 시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예수님의 두 번째 관심-믿음을 심어주심

다음 예수님의 관심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그 시대를 어떻게 진단했습니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셨는데 그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가 되어졌습니다. 며칠 전에 카터 전(前) 미국대통령이 노벨상을 받게 된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 중에는 도덕정치의 표방으로 참 인기없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재선되지를 못했습니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뒤에 그는 지구촌에 큰 불씨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분쟁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집없는 사람의 그 집을 지어주기 위한 헤비타트(Habitat)운동에 뛰어들어서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이 모자를 쓰고 망치를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집 지어주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도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기를 20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사람이 노벨 평화상을 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카터 대통령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대통령으로서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까?” 그때 카터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고의적으로 알면서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인권이나 국가적인 이익을 위하여서 잠시 거짓말을 했다가는 나중에 그 거짓말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손해를 보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진실한 대통령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공신력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 때문에 혼란해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불신입니다. 공산주의자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부모도 믿지 않습니다. 서로가 믿지 못하니까 결국 사회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도 바로 이 불신의 문제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회로 점점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의 말을 들어 보세요. 병역비리, 김대업씨의 증언, 대북 지원설, 노벨 평화상 로비, 어느 것이 참인지 어느 것이 거짓인지 모를만큼 거짓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장래가 걱정됩니다.
거짓말이 밝혀져도 거짓말로 넘어가 버리지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거짓말을 해서 이 사회가 온통 거짓말투성이가 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신이 어디에서 오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어디 있는가 하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서야 비로소 아내를 믿고 남편을 믿고 자식을 믿고 남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회,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된 나라들을 보면 다 예수 잘 믿는 나라, 믿음을 소유한 나라들이 아닙니까?
믿음 없는 세대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세대입니다. 옛날 임금들은 음식에 독이 들었는가를 알기 위해서 은수저를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독이 들어있는 음식에 은수저를 넣으면 은수저의 색이 변합니다. 그래서 은수저를 먼저 넣어보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면서 음식을 먼저 강아지에게 먹여보고 이상이 없으면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을 먹어도 누가 독약을 넣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가지고 먹어야 한다고 하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이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믿음으로 살고있고 앞으로도 믿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그렇겠지만 특히 신앙생활에서는 믿음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점점 믿음이 없는 세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간사이의 신뢰도 무너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하고 탄식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는 이 세대에 예수님은 믿음을 심어주기 위하여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 9장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자의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제자에게 왔지만 고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무엇을 할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사 고쳐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아주 기분 나쁜 말입니다. 여러 번 실망했기 때문에 예수님도 믿을 수 없다는 말 아닙니까? 할 만 하거든, 할 수 있을 만 하거든 한번 해 보세요 그런 말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책망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아이의 아버지가 당황하면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믿음 없는 세대에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병자를 고쳐주시면서 그 아버지의 마음 속에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아! 이 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이 분은 정말 메시아구나, 이분이야말로 정말 전능하신 분이구나, 나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분이구나.” 하는 믿음을 질병을 고쳐주면서 심어주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사회는 복된 사회가 되어지고 믿음만 있으면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어지고 믿음만 있으면 부부가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 아픔도 그 모든 것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도 반드시 선하게 해피엔딩 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면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불평하지 않게 됩니다.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이 믿음을 주어서 복된 가정, 복된 사회,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변화산에서 세상으로 내려오신 주님의 모습은 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믿음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도 주님은 이 자리에 임재해 계십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문제가 뭡니까? 가지고 오세요, 데리고 오세요, 주님 앞에 내어 놓으세요. 그리고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시옵소서 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큰 믿음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문제를 믿음 따라서 해결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병든 사람, 귀신들린 사람, 불신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보시고 치료하기 위해서, 믿음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관심은 어떤 관심이어야 되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변화산의 체험을 하도록 했습니까? 변화되지 못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4.우리의 관심과 비젼

우리가 교회와서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믿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늘의 영광을 체험하고, 찬송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왜 주시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여기서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가라고 준 것이 아니라 이 기쁨과 능력을 오늘 예배를 마친 다음에 세상 속으로 나가서 은혜를 나누어주고 사람을 도와주고 믿음 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전하여 주라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초막을 짓고 거기서 황홀경에 빠져서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서 사십시다’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변화산의 은혜를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장소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는 곳입니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가서 세상의 병들고 넘어지고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붙들어 주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예수님의 관심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같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세상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우리교회도 세상을 섬기는, 세상에 더 관심을 가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비전입니다. 오늘 본문 17장 한 장에 우리교회 비전이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교회의 주보를 보세요. 주보 1면 오른쪽 상단을 보면 우리교회의 비전과 사명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위대한 계명을 실천하고 위대한 명령에 순종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교회> 이것이 우리교회의 비전입니다. 우리는 변화산같은 교회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위대한 계명을 실천하고 위대한 명령에 순종하여서 산 아래와 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져야만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집니다.
우리는 먼저 변화 산에서 들려오는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해야합니다. 변화산이 되는 교회에서 이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내 고백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부산영락교회를 드나드는 모든 심령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부산영락의 온 성도들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고백이 진심으로 되어지지 않는다면 교역자를 찾든지 누구를 만나서 이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다음은 위대한 계명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져야 합니다. 위대한 계명이 뭡니까? 그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치료하며 붙들어주는 사명이 위대한 계명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간질병 들린 병자를 돌아보는 것처럼 치료해야되고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그들을 세워주는 바로 이 일을 우리 교회가 해야 합니다. 일전에 수재민돕기헌금과 북한에 옷 보내기 운동에 보여준 우리 성도들의 <이웃에 대한 관심>은 참으로 컸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동참한 성도는 출석교인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출석교인 전부가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돌아본다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위대한 계명에 순종한다면 우리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아서 아직도 세상이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으로 바뀌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이웃의 영혼구원과 그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믿는 자 곧 그 이름을 영접하는 자에게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 속에 와 계시면 이웃에 대한 관심이 우리마음 속에 그대로 전달되어져서 나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생깁니다.
내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내가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정말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웃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서 위대한 계명에 순종하는, 그래서 산 아래에 있는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와주고 붙들어주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봉사미와 봉사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만 전 성도가 동참하고 항존직들이 먼저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우리교회는 더 달라질 것입니다. 산 아래에 있는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갔던 예수님처럼 이웃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준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세 번째 목표는 위대한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명령이 뭡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있는 것처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복음을 전하여서 그를 가르치고 세례주어서 그들을 제자 삼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도록 만들고 그 고백에 따르는 삶을 살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될 일들이고 내가 해야 될 일들입니다.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위대한 계명을 실천하고 위대한 명령에 순종하는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나는 얼마나 위대한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고, 믿음없는 아버지에게 믿음을 심어주었던 예수님처럼 믿음을 심어주고 있습니까? 나를 통하여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음을 고백하도록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관심은 항상 나, 나, 돈, 돈, 그리고 보이는 것이지만 주님의 관심은 언제나 남, 남입니다. 영혼구원입니다. 돈이 아니라 생명이고,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 가지셨던 관심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이 제자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뭡니까? 병든 자를 치료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 이것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여기가 좋습니다’ 하는 베드로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산 아래로 내려오셨고, 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이 땅에까지 내려오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해 나가는 일들 중 첫 번째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다같이 외워보겠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위대한 계명을 실천하고 위대한 명령에 순종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교회> 바로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고 그 비전이 오늘 이 마태복음 17장에 다 나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 질병의 문제, 귀신의 문제, 물질의 문제, 가정의 문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서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영광의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이곳까지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문제들을 주님 앞에 가지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가기만 하면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다 가지고 와서 해결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믿음없는 패역한 세대에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믿음없는 아버지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는 이 일들을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주님을 내 가슴 속에 모셔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얻는 믿음이 아니라 이제는 은사적인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와 나의 관심은 예수님의 관심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치료하고 붙들어주고 믿음을 심어주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관심인 것처럼 우리교회와 나의 관심도 이와같은 관심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앞장서는 우리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