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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남의 축복 / 요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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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남의 축복 / 요1:6~18

      요1:6-18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ex)한 마을에 앞을 못 보는 송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넛마을에 살던 오리가 야생동물을 피해 이 마을로 이사왔습니다. 송아지와 오리는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리는 앞을 못 보는 송아지의 친절한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오리는 소리를 꽥꽥 지르며 송아지를 인도했습니다. 송아지는 오리를 따라 풀이 있는 곳으로 따라갔습니다. 오리는 송아지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곁에 있다가 식사가 끝나면 다시 물이 있는 곳으로 송아지를 인도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눈먼 송아지를 괴롭히기라도 하면 오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를 지르므로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도우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의 "불가사의의 세계"라는 TV프로에서 방영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에게만 우정이 있고 사랑이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창조하신 동물에게서도 참된 우정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는 지키며 다스리며 함께 어울렸던 모양입니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베푸는 우정과 사랑을 송아지와 오리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만남이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우정과 사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25:40에 보면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만남과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인생의 출발이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더욱 많은 만남을 겪게 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를 만나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로는 정말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서 불행을 겪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 하나 잘 만나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사업을 시작하는 성도의 개업식에 가서는 돕는 사람을 잘 만나게 해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여자가 남자 한 번 잘못 만나 평생 고생을 합니다. 또한 남자가 여자 하나 잘못 만나 뼈를 깎는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느 여관집 주인의 딸이 목회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되었지만 자라오면서 매일 본 것이 부정한 남녀관계였기 때문에 목사인 남편조차도 믿지를 못했습니다.  더구나 목사는 교회의 많은 여자 성도들을 만나니 의심을 하고 매일 마다 의부증세를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도시에서 개척을 하고 부흥성장하는 목회를 하다 그만두고 시골에 할머니 할버지 몇분만 있는 교회로 부임해 가셨습니다.
제일 믿어주고 용기를 주어야 할 사모가 의심하고 불안케 하니 어찌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목사님의 고충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어떠한 만남을 가져야 하느냐?에 대해서 살펴보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나와 나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빌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

아마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이 없었더라면 그는 자기의 고백대로 의기양양하게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울아 사울아"하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자기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고백하며 증거한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못하고 교회를 나오면 그것은 교회 다니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통해 나를 만나지 못하면 자기 의만 내세우게 됩니다.
☞.롬10:1~2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만 내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헌금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불만이 생깁니다. 내 체면과 내 명예가 앞서고 하나님의 뜻은 둘째가 됩니다.
중생하지 않아도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 다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깨달아야 진정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만났습니다. 중생의 체험 후 그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합니다.
☞.고후11:23~27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지식으로나 가문으로나 환경으로나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바울이 자기를 만나고 나서 그 모든 고난을 감내합니다. 그는 영원히 멸망 받아야 할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와의 만남이 없으면 축복된 만남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승리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자기와의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롬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2.나와 이웃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잘 만나고 선생님을 잘 만나고 친구를 잘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백성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지도자 잘못 만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만남으로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만남의 복을 주시옵소서" 성도는 목사를 잘 만나야 하고 목사 또한 신실하고 주안에서 순종하는 성도를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만남은 태중에서부터 싸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 나와서도 장자권 때문에 그 싸움은 계속되었고 장자의 축복을 쟁취하느라 두 사람은 원수처럼 헤어져야 했습니다.
20년이 지나 이제는 잊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에서는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맞으러 왔습니다. 야곱이 두렵고 답답한 마음으로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원수처럼 되었던 야곱과 에서의 관계를 화목한 관계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사울 왕의 만남은 불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원수같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복이었습니다.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은 멸시천대하던 사마리아인 한 사람을 만나 목숨을 구합니다. 위험 가운데서 사마리아인과의 만남은 복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만남들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만남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 만남의 복을 주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만남으로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당신을 만나 감사합니다. 

3.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율법적 도덕적 습관적 종교생활에 불과합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는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디엘 무디 목사는 초등학교조차도 못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전 미국을 흔드는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도 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히11:38에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후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로 보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만나는 중생의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만나야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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