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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서 당신의 존재를 유지하라 / 창 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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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당신의 존재를 유지하라
창세기6:5-22

  유명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보면, 폰 트랩 대령 가정에 한 수녀가 가정교사로 들어왔다가 아내가 없는 그 대령과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 수녀(줄리  앤드류 분)는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 했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말도 없이 그 집을 뛰쳐나와 수녀원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수녀원 원장이 이를 알고 그 수녀를 불러 책망합니다. 수녀원은 세상에서 살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를 피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녀원에 기어 들어오는 것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많더라도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펴나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에게 적용합니다. 크리스찬이 세상에서 살 때 세상을 등지고 살수 없습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야합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살아야지 세상에서 떠나서 살면 이것은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수도원에 가서 살면 수도승이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크리스찬이 세상에서 크리스찬으로 살아가기가 쉽습니까?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핑크라고 하는 학자는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지만 죄는 '이 세상'을 만들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셨지만 죄가 들어와서 바로 '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크리스찬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지하며 믿음을 지키며 크리스찬으로 자신 있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노아를 보면서 그 길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노아는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았습니다. 노아는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백성으로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에 죄악의 인하여 홍수로 멸망당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아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유지하며 크리스찬으로 생명을 유지하며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그러나"를 통한 하나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내 존재, 기독교인이라는 내 존재,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크리스찬으로서 내 존재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남을 수가 없습니다.
  8절을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살았더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내가 다짐한다고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결단한다고 죄를 정복할 수 있습니까? 내 결단, 내 의지, 내 다짐으로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죄는 나의 결단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의 의지보다 더 강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능력과 의지와 결단으로 세상의 패괴한 삶을 이겨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없이는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유지하며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업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8절을 시작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 말이 참 중요합니다. 세상이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의해 넘어집니다. 세상의 죄가 파괴력이 있어서 우리를 무너트립니다. 세상의 유혹에 사람들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별수 없는 사람 아닙니까? '하고 같이 넘어가면 이것은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했어도, 패괴해도, 유혹이 강해도 "그러나" 넘어갈 수 없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찬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 길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가 아니고 "그러나"입니다.

  한 여학생이 연구실에 찾아와서 그럽니다. 친구들은 채팅을 통해서 만나고 순간 즐기고 해어지고 한답니다. 자기 친구는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있답니다. 그것이 맘에 들지가 않는답니다. 그렇지만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답니다. 친구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그러니" 나도 해도 되지 않느냐 이겁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러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가니까 "그리니" 나도 "그렇게" 해도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은 이미 세상에 나를 도매금으로 파는 격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한다할지라도 "그러나"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어』 이것이 우리는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로 내 생명을 보존할 수가 있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노아를 보세요. 5절에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항상 악하더라. 그러나 9절에 노아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하더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간다고 그리 살면 우리는 끝납니다. 그러면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그러나 노아는 당세에 즉 세상에서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완전하게 살기고 몸부림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우리를 지키는 길입니다. 이런 "그러나"의 은혜로 도움의 손길을 통해 자신을 유지하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분명한 인생의 밋션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명한 밋션을 발견하고 살아야합니다. 내가 왜 여기에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이 분명한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있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공동체에서 내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 뜻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유지하며 보존하며 지키며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러나" 철학을 가지고 살 때 분명한 목적이 없이 살면 그 사람은 얼마정도는 자신을 유지하며 살 수 있지만, 그런 다짐도 얼마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철학을 지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분명한 밋션을 발견하면 가능합니다. 밋션을 가지고 살면 세상의 유혹과 방법에 자신을 값싸게 넘겨주지 않습니다.

  노아는 그 밋션을 발견했습니다. "이 패괴한 죄로 인해 세상은 다 멸망할 것이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밋션을 붙잡고 홀로 외로이 방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밋션을 받았기 때문에 노아는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을 유지하며 살수가 있었습니다.

  노아가 가진 밋션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얻은 것입니다. 밋션이란 하나님이 이 땅을 보시는 시각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 땅과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준비했습니다. 이것이 밋션입니다. 심판을 대비해서 방주를 준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세상대로 살지 않고 자신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 있게 살 기 위해서는 이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엇을 행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밋션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무디어 있으면 무슨 하나님의 밋션을 발견합니까? 밋션을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그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알려주십니다. 주님에게 늘 친밀하게 교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분명한 밋션을 주님 품안에서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명을 붙들고 사명을 위해 인생을 드리면서 몸부림치십시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며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세상과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유지하고 내 생명을 보존하고 크리스찬의 이름을 나타내고 살기 위해서는 세상과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등지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과 거꾸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고전 토마스 아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살려는 자들에게 좋은 지침서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밑바닥에는 잘못된 사상이 하나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거룩하게 살고자 한다면 세상을 버리고 돌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13절에서 22절까지 노아는 미래를 보고, 밋션을 발견하고, 무엇을 만듭니까? 방주를 만듭니다. 이 방주를 만들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저 노인네 미쳤군" 나무를 산에서 해와야 하는데, 이 노인은 나무를 잘라서 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완전히 거꾸로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도 오지 않는 데, 무슨 방주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22절에 "노아가 그와 같이 방주를 짓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세상사람들과 거꾸로 삽니다.

  21절에 노아는 방주에 먹을 모든 식물을 저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먹고 즐기기에 급급합니다. 식물을 저축하는 노아를 미친 사람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세상사람들과 거꾸로 삽니다. 먹고 쓸데 식물을 저축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아야 나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과 거꾸로 살 때 나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세상과 별 다르지 않게 살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과 다르게 살면 세상에서 밀려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다르게 사는 자가 성공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게 사는 자가 성공합니다. 크리스찬은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그것이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세상과 거꾸로 살면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되 세상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간단합니다. 세상 사람과 반대로 살면 됩니다. 세상에서 살되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거꾸로 살면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방법은 죄와 관계되어 있고, 타락과 부패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를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1643년 영국의 레이스케스터샤란 곳에서 구두를 짓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다른 친구들과 술집을 갔는데 술을 마신 뒤 그 중 한사람이 술값은 마시지 않은 사람이 내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그가 일어나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왔습니다. 그 날밤 그는 하나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음성이 마음속으로 강하게 다가옵니다.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허무하게 방황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았느냐? 그러니 이제는 그들로부터 구별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지체하지 않고 그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후에 궤이커교를 창시한 죠우지팍스였습니다

  세상이 아파하면 웃고, 세상이 웃으면 울고, 세상에 죄를 지면 선을 행하고, 세상이 부패하면 깨끗하게 살고, 이렇게 사는 것이 실패냐? 아닙니다. 성공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자신을 유지하시기 원합니까? 세상과 거꾸로 만 살아가십시오. 세상을 등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살되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고 세상의 방법과 거꾸로 사십시오. 그것이 세상에서 사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세상은 여러분들을 파괴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파워로 여러분들을 엄습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담대하십시오. 세상의 방법과 거꾸로 만 가십시오. 그러면 사는 길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자신을 유지하며 살 것입니다. 내 뿐만 아니라 나의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나 때문에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노아 때문에 7명의 가족과 모든 생명체들이 살 수 있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세상과 다르게 살 때 감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비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멸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영적으로 어두워서 크리스찬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거꾸로 사는 우리를 무시할 것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핀잔을 줄 지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방법이 세상과 다르다고 무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과 거꾸로 사는 길이 결국 살길입니다. 세상에서 세상과 거꾸로 사는 것이 나의 존재를 유지하며 생명을 보존하는 길임을 믿음시기 바랍니다.<아멘>

맺는 말

  나 스스로 세상에서 나를 유지하며 살 수 없습니다. 내 스스로 세상에서 세상과 거꾸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러나"의 은혜 세상은 타락의 길로 나가지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지. 이 "그러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나 스스로 세상에서 내 생명을 보존하며 살 수 없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밋션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그 비밀을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짜피 우리는 세상을 등지고 살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세상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똑같이 살면 우리는 크리스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크리스찬으로서 나를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거꾸로만 살아보십시오.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나도 살고 우리의 공동체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세상에서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고 세상과 거꾸로 살 때 비난과 핀잔의 눈총이 있다하더라도 비굴해지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살길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살되 세상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며 생명을 보존하며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 찬양과 기도>

찬양 :

  하나님 아버지, 나 스스로는 자신이 없습니다. 내 자신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방법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를 붙드사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온전히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지헤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러나"의 방법대로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세상과 다르게 세상과 거꾸로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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