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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처소에서 영적 파수군의 일을 감당하라 / 겔 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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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처소에서 영적 파수군의 일을 감당하라

청년대학부설교홈http://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에스겔 33:1-9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비무장 지대는 연일 건헐적인 총소리가 끊기질 않았습니다. 적군도 아군도 자기들의 땅을 보호하기 위해 총소리가 자주 드리곤 했습니다. 우리 아군도 비무장 지대에서 적군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방호막을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적군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우리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보초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군들은 밤이 되어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보초병이 졸았습니다. 적군이 내려와 보초병의 목을 잘라가고 우리 군인 12명을 급습하여 모조리 죽이고 도망갔습니다. 보초병의 나태와 실수로 인하여 모든 병사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전방에서는 간혹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초병의 역할은 매우 귀중합니다. 전우의 생명을 살리기도 죽게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보초병과 똑같은 단어가 있습니다. 파수군이라는 단어입니다. 파수군이란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아군을 보호하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군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정해주고, 불신의 세상이 도전해 올 때 경종을 울리며 영적으로 준비시키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조금 먼저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영적으로 조금 앞서간다고 한다면, 우리는 내 삶의 영역에서 영적인 파수군입니다. 내가 있는 공동체에서 내가 있는 처소에서 영적인 파수군입니다. 집안에서 먼저 믿었으면 영적인 기둥이요, 영적인 파수군입니다. 직장에서 내가 먼저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영적인 파수군입니다. 공동체에서 먼저 믿고 신앙생활을 조금 더 앞서 한다면 내가 영적인 파수군입니다.

  본문 7절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에스겔을 파수군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내가 거하는 처소에서 내가 영적인 파수군으로서 어떻게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직장에서 내가 조금 먼저 믿는 성도로서 영적으로 파수군의 역할을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내가 먼저 믿는 성도로서 영적인 파수군의 역할을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내가 소속된 공동체에서 조금 더 먼저 믿는 영적인 파수군으로서 그 역할을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첫째, 당신의 처소에서 영적인 파수군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파수군은 적군의 동태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적이 공격해 오는지, 어떤 작전중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경고의 나팔을 불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영적인 파수군으로 하나님이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시면, 에스겔은 백성에게 경고합니다. 에스겔이 깨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을 불 수 없습니다. 파수군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러의 신앙 각성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미국 선교여행에서 실패하고 허탈한 마음을 안고 자기 고향인 영국 행 배를 탔습니다. 배가 심한 풍랑으로 인하여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승객들은 죽는다고 아우성들입니다. 웨슬러도 배 한 귀퉁이에서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배 어느 모퉁이에서 우렁찬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웨슬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같은 기독교인인, 모라비안교도들의 찬송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찬송은 생기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두려움 대신 기쁨과 평화로 빛났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그들은 기도에는 힘이 넘쳤습니다. 순간 웨슬러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모라비안들의 도전을 받고 웨슬러는 제2의 신앙부흥운동을 일으키고 감리교의 창시자가 됩니다. 모라비안들은 성난 파도가 배를 삼킬 듯이 흉흉한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영적으로 깨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배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들을 위로합니다. 평화를 선포합니다. 이들이 바로 영적인 파수꾼이 아닐까요?

  파수군은 영적으로 경고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도전을 하고, 영적으로 깨우침을 주어야 하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파수군은 자신이 처해 있는 처소에서 파수군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공동체에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처해 있는 공동체가 어떤 상황인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깨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1923년 영국에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초호화 유럼선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들이받아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그 곳에서 불과 50㎞ 떨어진 곳에서 캘리포니아호가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사고현장으로부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가리였습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타이타닉호 무선사들은 필사적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호에도 무선사 한 사람이 있었으나, 그는 무전기를 꺼 놓은 채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만약 무선사가 무전기를 켜놓고 깨어 있었더라면, '타이타닉 참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무선사 한 사람의 무책임이 생명을 구출할 기회를 놓치게 된 것입니다.

  무선사가 잠에서 깨어 있어야 하듯이, 영적인 파수꾼도 영적인 잠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파수꾼이 침체되거나 잠을 자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나태는 영적인 잠입니다. 영적인 파수꾼이 깨어 있다는 것은 기도의 삶에서 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처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영적으로 깨어있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선포하면서, 영적인 파수꾼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당신의 처소에서 영적인 파수군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해야 합니다.

  내가 있는 처소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내가 있는 처소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곳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백성에게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백성을 적의 공격에 대비시키기 위해서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본문 에스겔 33장 3절에 파수군은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라고 했습니다. 7절에도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6절에 보면 파수군이 경고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파수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며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파수군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파수군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내가 영적인 책임자라는 말입니다. 책임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책임이 소재를 묻겠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전도 잘 하기로 잊지 못할 최봉석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목사님은 공부는 많이 못한 분이지만, 전도에 매우 열심이신 분입니다. 이 최봉석 목사님이 어느 날 버스속에서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도를 하는 데, 마침 신학교 교수님이신 유명한 채필근 목사님이 그 버스에 타고 있었습니다. 물론 최봉석 목사님도 교수님인 채필근 목사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짐짓 채필근 목사님 앞에 다가가서 "예수 믿으세요" 했습니다. 채필근 목사님이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여보 최봉석 목사, 나 채필근 목사요, 채필근" 하고 눈을 크게 뜨는데, 최봉석 목사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 벙어리 교인이구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말이 없느냐' 그겁니다. 무릇 말이 없으면 벙어리 신자입니다.

  파수군이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때 불지 않으면 벙어리입니다. 선포하지 않는 파수군은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파수군의 책임의 소재를 물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가령 악인이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는데 그 음성을 백성에게 경고하지 않아서 악인이 죽었다면 그 책임은 파수군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고했는데도 악인이 돌아서지 않아서 악인이 죽었다면 그 책임은 파수군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영적인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선포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영적인 파수군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타락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돌아서라고 경고해야 합니다. 영적인 영향력을 행세해야 합니다.

  파수군의 사명은 백성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돌봅니다. 이것이 파수군의 사명입니다. 파수군이 선포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을 수 있습니다. 파수군이 침묵하고 있으면 공동체의 영혼들은 죽습니다. 사단들은 영적 약탈을 강행할 것입니다. 파수군은 경고할 뿐만 아니라 돌볼 책임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공동체의 파수군입니까? 나를 그 공동체에서 먼저 믿음으로 세워주신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파수군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젠 파수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닫힌 입을 열기를 바랍니다. 파수군의 입을 열어 공동체의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기 바랍니다.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영혼들을 깨우기를 바랍니다. 권고의 나팔을 불어 신앙을 깨우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당신의 처소에서 영적인 파수꾼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파수군은 성벽 위에 세웁니다(이사야62:6).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성벽 위에 서있습니다. 파수군은 백성들에게 살 길을 제시하여 줍니다. 상황이 위험에 처해 있으면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킵니다. 영적인 파수군은 자신이 있는 처소에서 경고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들을 보호합니다. 위험의 상황에서 살길을 제시하여 준비시킵니다.

  파수군들은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제일 먼저 알고 백성들에게(이사야52:7-8) 알리고 공포합니다. 잘못으로 가면 백성들을 회개시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적군에게 가장 먼저 노출되어 있습니다. 파수군은 적군에 의해서 가정 먼저 희생당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1939년 뉴욕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이 승선하였습니다. 본 훼퍼라는 목사입니다. 그가 아직 젊은 나이에 독일로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 정권에 의해 세계 대전에 광분해 있었으며, 유태인 대학살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독일의 교회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바라보면서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히틀러 만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일 교회의 잠을 깨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자 그는 유유히 조국 독일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 날 그의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 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해하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로 간 그는 나치의 학정에 침묵만 지키고 있던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죄상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투옥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탁월한 학문적 재질을 알고 있던 미국의 교회는 그를 구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띄웠습니다. "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행복한 인간이었고, 성공한 목사였습니다. 독일교회의 파수군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해 있는 처소에서 파수군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홀로 고뇌를 겪기도 합니다. 심지어 희생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가 있는 공동체에서 영적인 각성과 영적인 권면과 영적인 지도를 하면서 파수군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다가 우리는 희생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우리는 내 처소에서 영적 파수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세우주신 것은 영적인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파수군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공동체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내가 처해 있는 처소에서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위로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각성시키는 것입니다.

  이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얻어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영적 파수군의 역할이 쉽던가요? 세상은 영적 파수군에게 위협할 것입니다. 세상은 영적인 파수군을 넘어트리기 위해서 겁을 줄 것입니다. 희생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영적인 파수군을 홀로 두시지 않습니다. 친히 도우시고 친히 힘을 주사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백그라운드로 삼고 영적인 파수군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 청>

  찬송 347장을 보면 영적인 파수군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자의 기도가 나와있습니다. 1절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2절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 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 이 찬송을 함께 브릅니다.

  머리 숙여 조용히 저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우리가 먼저 믿고 조금 더 신앙이 있는 것 같다면, 내가 있는 처소의 사람들을 영적으로 인도해야 하고, 영적으로 준비시켜야 할 영적인 파수군입니다.

  나의 처소의 사람들의 영적인 책임은 먼저 믿는 우리의 어깨에 달려있습니다. 위험과 심판이 닥쳐도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는 파수군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젠 우리는 가정과 직장과 작은 공동체에서 영적인 파수군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그 곳에 선포하고 영적으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충실한 영적 파수군이 되어, 나도 살고 내가 처해 있는 사람들도 살리는 영적 파수군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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