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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화를 이루는 신앙생활 /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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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조화를 이루는 신앙생활
성경본문 :  마태복음 5장 13~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3~16절) 
  <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생명주셔서 오늘을 살게 하심 감사합니다.
기둥교회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던 우리들 부끄러움 많은 채,
소리 내어서 드러낼 수 없는 죄를 감춘 채,
용서하심을 믿고 이 구별된 자리에 왔습니다.
회개합니다.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여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세상의 짐, 삶의 짐을 지고 왔습니다.
질 만한 능력을 주시옵소서. 능히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벗어야 할 짐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 주시옵소서.
큰 시험을 치룬 학생들… 결과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길을 따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에 적을 두었으나 군대/객지/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병상의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저들도 이 시간 성령의 위로와 돌보심으로
가슴 뜨거움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총리가 나와서 고3 학생들의 수능시험에 대하여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전 시험을 치룬 고3 학생들의 심정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우리 집에도 한 명 있는데 도대체 물어봐도 대답을 안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반응이 없습니다. "시험"이 "시험"에 들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슴 따뜻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도록 여러분도 기도하시고, 학생들도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어제 미국에 사는 제 여동생으로부터 2002년, 2003년 2년동안 쓸 수 있는 수첩을 받았습니다. 수첩의 첫 장을 넘겼는데 첫 장에 [로이 레신(Roy Lessin)]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후에 성경을 읽고 나면 이 글을 함께 읽고 마음에 새겨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ach day is a day that God has given us,
and each moment of that day is in His hands. - Roy Lessin
"우리가 매일 맞는 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날이다.
우리가 맞은 날의 그 순간 순간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로이 레신)
 
  이 말은 우리의 하루 하루가 하나님의 돌보심의 손 안에 있으며,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그 뜻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의 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오늘은 좋은 날"인 것입니다. 옆의 분들과 서로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좋아보이십니다. 인상이 좋으십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엇을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출생하면 엄마의 젖을 찾고
• 좀 자라면 학문(배움을)을 찾고
• 적령기가 되면 배우자를 찾고
• 배고픈 사람은 빵을, 밥을, 먹을 것을 찾고
• 약한 사람은 건강을 찾고
• 좀 배운 사람은 진리를 찾고
• 재물의 여유가 있고 잘 사는 사람은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고
• 생명의 유한함을 아는 자는 영생을 찾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깨달음과 은혜의 삶을 발견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질서의 하나님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고전14:33). 하나님은 질서를 원하시고 조화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극단보다는 화해와 평화를 원하십니다.
 
'질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두신 질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질서를 말합니다. 그 질서를 두신 하나님은 그 질서가 지켜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게 하셨으면 태어난 조건 아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남자가 여자가 되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하고 화장을 하고 여자의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대중매체에서 스타로 만들고 청소년들이 그 사람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로, 여자로 태어났으면 여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 부모의 존재아래에서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가정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과학의 힘을 빌려 복제인간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메바처럼 서열이나 촌수 없이 번식되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서에 의해 세상을 만드시고 그 질서가 유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도전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조심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분별할 줄 아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소금과 빛의 사명 
 
본문 마태복음 5장 13~16절의 말씀은 우리의 책임과 의무와 사명을 선언해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썩는 것, 부패와 어울려서 승리하는 소금이 되고, 감춘 것, 어둠과 어울려 승리하는 빛이 되는 조화의 승리의 삶을 살라고 주님은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는 사람으로서 바르게 살아야 하는 "선(善),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소금되고 빛되는 삶,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니 사람들이 소금되고 빛되지 못하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고, 빛되고 소금이 되라고 명령해 주셨습니다.
 
 
소금과 빛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생활 속에 말과 행동으로 착한 행실로 드러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소금과 빛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소금은 깨끗함과 싱싱함을 지키며 썩는 것을 막는 보수적인 일을 합니다. 다시 말해 소금은 변화를 거부합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밝게 하는 진보적인 일을 합니다. 빛은 옛 것을 몰아내고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요즘 교회 밖의 세상도 마찬가지이지만 교회안에도 큰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양극화 현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 변화를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진보적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전통이나 유산을 무시합니다. 그 한 예로 진보적인 사람들을 보면 인본주의와 자유주의로 변해 성경이나 기독교 전통까지도 다 무시하고 배격합니다. 성경 말씀이 자신의 머리로 이해 되지 않으면 모두 무시하고 믿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대고 마침내는 사탄에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를 거부하는 지나친 보수나, 전통을 무시하는 지나친 진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말하자면, 예수님은 극히 진보적이셨고 극히 보수적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사나 지도층의 사람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예수님은 전통과 관습을 뒤흔드는 골치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예수님이 골치거리였기 때문에 죽이기로 결정하고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과거를 뒤집어 엎으려는 분이 아니십니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려는 진보적 입장에 서 계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보수적인 지배급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의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소금이 되라고 명하셨습니다. 자신의 순결함을 지키며 남의 부패를 막는 보수적인 일을 하는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어둠을 내몰고 환하게 하는 진보적인 일을 하는 빛이 되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를 생각해 봐도 우리 교회에 보수적인 사람만 있다면, 우리 교회는 폐쇄적이 되고 발전하지 못하고 점점 퇴보하고 나중에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내에 진보적인 사람만 있으면 교회는 세속화 되고 새로운 것, 신선한 것, 재미있는 것만 찾다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고 문을 닫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보수와 진보가 잘 조화되어야 합니다.
- 나이드신 어른들, 신앙생활 오래 한 사람, 장로, 권사가 되신 분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새로워지는 일이 귀찮고, 왠지 마음에 안들고 불편해도 새로워져야 할 것은 새로워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달라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이해해야 합니다.
- 나이 어린 사람들, 처음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고리타분한 것 같아도, 답답해도, 골치 아파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보고 골동품이라고 하고, 보수적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골동품은 세월이 흐를수록 값어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달라져야 할 것은 달라져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킬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과 생활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소금과 빛이 조화를 이루고, 보수와 진보의 조화를 이룬 삶도 되어야 하지만, 교회에 모인 사람들과 모였다가 흩어지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처음 복음을 전하셨을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불러서 가르치시고 제자가 되게 하신 후에는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모여서 배웠으니 가서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교회에 와서 신앙적인 일도 잘해야 하지만, 돌아가 생활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 답게 살아야 합니다. 즉, <신앙>과 <생활>의 조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좋아서 교회에 나와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 하고, 성경도 잘 읽고, 봉사도 잘하는데 생활이 엉망인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이 좋다면 그 신앙이 생활에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요한, 야고보 3명의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산위에 올라가시더니 갑자기 예수님이 변하셨습니다. 빨래를 하는 사람이 그보다 더 깨끗하게 할 수 없을 만큼 환한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그 옆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너무나 멋있는 모습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그 자리가 좋았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세 개를 지어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사용하고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신비의 체험, 은혜 받은 감격,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것이 있으면 그 깨달은 감격과 은혜를 가지고 생활 터전에 나가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신앙과 생활이 연결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 되고 맙니다. 교회에서는 찬양도 잘하고, 기도 잘하고, 교사로, 봉사도 잘하는데 선교회원, 속도원, 교인끼리 등지고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세상에 나가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사람의 예배는 어리석은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찬양도 잘하고, 예배 잘 드리고, 기도 잘 하고, 봉사 잘 하고, 그야말로 천사표인데 집에 가서는 가족을 돌보지 않고 때리고, 싸우고, 원수 맺는 그런 사람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신앙과 생활이 일치 되어야 합니다. 집사면 집사로서 신앙과 생활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권사면 권사 다워야 하고, 장로면 장로 다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름 답지 못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신도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폐를 끼치게 됩니다.
사람은 때를 아는 멋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어느 때입니까?  분명히 여름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한 여름에 입는 옷을 입고 있다면 그것을 보고 두 가지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는 "옷이 없구나, 이 추운데 입을 옷이 없나 보네."라는 것과 "맛이 갔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계절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예배의 자리에 어떤 사람이 수영복을 입고 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마 안내위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아마 들어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해 하겠습니까! 그 사람은 교회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수영장에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물속에 들어가려고 하면 안전요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영장과 어울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옷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는 아기옷을 입어야 합니다. 10대가 입을 옷이 있고, 20대, 30대가 입을 옷이 있습니다. 40대, 50대에 중후한 멋을 풍기는 옷을 입어야지 무릎이 찢어지고 젊은 사람이나 입는 옷을 입고 다닌다면 "왜 저러고 사나!"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에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라고 갖다 주면서 거기에 돈까지 얹어 줘도 저는 못입습니다. 아예 가져오지 마세요.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자신도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음 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질서가 유지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한때 우리나라의 부흥강사들 중에 자신이 "깡패"였었고, 못된 짓을 많이 했고, 술먹고 난동을 부렸던 사람인데 예수 믿고 목사가 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니고 창피한 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못된 짓을 하다가 구원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목회자가 될 수 있을 지 몰라도 과거의 나쁜 행동은 평생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부끄러운 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생의 짐이 되는 것입니다. 또 크게 쓰임 받지도 못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들어 쓰셨습니다. 간혹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그 예외가 아주 굉장히 위대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거스틴은 얼마나 회개를 했으면 참회록을 기록했겠습니까.
여러분, 잘못된 것을 보고 칭찬을 해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조화를 깬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술먹고 담배를 피는 것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범사에 조화를 이룬 삶이 되도록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성경 배우고, 봉사하는 <신앙>과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에 충실하고, 일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이 동료와, 상사가, 부하가 칭찬하는 <생활>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부모, 더 좋은 자식,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신앙생활 잘 한다고 하면서, 예배 잘 드리고 봉사하고 교회에서 열심인 사람이 집에 가서 식구들에게 소홀히 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을 항시 징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믿음, 믿음과 행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을 안타깝게 생각하셔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셨고, 우리가 져야 될 짊을 예수님이 지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다시 한번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조화의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려고 애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교인, 빛되고 소금된 성도,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부모, 좋은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 "저게 뭐야. 저게 뭐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한다면 예수를 믿겠습니까. 우리가 완전해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저 사람은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 영생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신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삶이라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신앙, 조화를 이룬 신앙,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에 "헌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 예배 드리고 바치려고 하다가도 형제와 화목치 못한 것이 있거든 놓고 가서 형제와 화목한 뒤에 다시 와서 그 예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예배 드리는 것,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예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결실의 계절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인지 점검해 보셔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되기를 결단하고 훗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는 자리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좋은 교인, 빛되고 소금된 성도,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부모, 좋은 자식,
좋은 형제,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저희들,
때로 우리의 결심이 무너질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고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믿는 우리, 영생을 소유한 것을 확신하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되었음을 감사하는 우리,
천국을 소망하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 답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 안에서의 아름다운 신앙, 조화를 이룬 신앙으로
승리자가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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