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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하는 대로 상 받는 교회 / 고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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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대로 상 받는 교회
고전3:4-9

저희 집에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참 다릅니다. 큰 녀석은 사내아이인데 욕심도 애착도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매사가 낙천적입니다. 이 녀석한테는 급한 게 없습니다. "엄마, 아빠 이거 나중에 해도 되죠?"하면 저녁때까지는 끝입니다. 이 녀석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서 한 가지 얻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아, 세상은 결코 어렵게 사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작은 녀석은 계집아이인데 다릅니다. 무엇을 시작하면 자기가 하던 것을 끝내지 못할 때나 잘 되지 않을 때 신경질을 부리며 웁니다. 끝날 때까지 그것을 붙들고 씨름을 해야합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평균적인 남자와 여자의 성격을 잘 대변해 주는 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디 아이들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의 보든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보면 제 각각입니다. 나름대로의 방식들이 있겠습니다마는 어쨌든 살아갑니다. 모든 피조물에게는 하나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장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씨가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야 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결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식물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자라되 이왕이면 정상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기형적인 성장은 또 다른 아픔을 낳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태어나면 자랍니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항상 아이에 머물러 있으면 이것은 큰 일입니다. 그것은 지진아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 수록 몸도 자라야 하고, 정신도 자라야 하고, 생각도, 분별력도 함께 자라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성장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건강한 성장을 이루어야 사회에 나가서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최근 전인건강, 전인치유라는 용어가 설득력 있게 파급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건강은 무슨 약을 먹어 부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 신체와 영혼의 건강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론을 밝힌 학자는 <하워드 클라인벨> 박사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건강조건을 제시했습니다.
1) 정신의 건강 2) 몸의 건강 3) 인간관계의 건강 4) 일과 직업상의 건강 5) 여가상의 건강 6) 자연의 건강 7) 영적 건강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균형 있게 잘 이루는 것을 <전인건강>혹은<전인치유>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합니까? 정신건강을 위해 각종 문화 생활을 즐깁니다, 몸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포츠센타는 미여터집니다. 인간관계의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물질과 시간은 또 만만치 않습니다. 일과 직업상의 건강을 위해서도 직장친목모임의 일원이 되어 자리를 지킵니다. 여가상의 건강을 위해서 각종 동호회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나쁘다고 폄하(貶下)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 해야죠.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노력들에 비해 너무나도 소홀한 영적 건강을 위한 노력은 언제나 뒤에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건강의 노력만큼 정말 영적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개개인의 영적 건강이 곧 교회의 건강이요, 교회의 성장입니다. 교회는 건강해야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장해 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의 영적 건강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그 성장의 모습과 성장 속도는 분명히 다릅니다. 특별히 건강하게 잘 자란 남의 집 아이들을 보면 부모들은 다 부러워하면서 꼭 묻는 것이 있습니다. 뭘 물어봅니까? "이 아이는 뭘 잘먹어요?"하는 것과 "얼마나 먹어요?"하는 것, 또 한 가지는"무슨 운동을 해요?"하는 궁금증입니다. 결국 이것이 성장에 필요한 요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뭘까요? "주는 대로 먹고요. 하루 세끼 끼니 거르지 않고 먹어요. 그리고 열심히 뛰어 놀아요"이게 대답입니다. 맞는 얘깁니다. 다른 게 없습니다. 이것이 규칙적으로 잘 이루어만 지면 건강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회성장의 비결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이란 마찬가지입니다. 주는 대로 잘 먹고 건강한 아이가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하루 세 끼 거르지 않고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듯이 예배를 거르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는 비결이 되듯이 적극적으로 교회 일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일수록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올 2002년 교회표어를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의지하여<일하는 대로 상 받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한해 동안 열심을 다하여 건강한 교회가 되고 아름다운 성장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상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자,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데 필요한 적극적으로 자세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어야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는 개인적인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는 한 가지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목적이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뜻을 가지고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 안에서 파벌이 형성되는 것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교회성장에 큰 방해 거리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교회를 병들게 하는 요소입니다. 오늘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고린도 교회에는 적어도 네 개의 당파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바울이 4절에서 거론하는 두 개의 바울파와 아볼로파는 가장 대표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던 당파였습니다. 이 파당을 짓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행위는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질책합니다. 자신이나 아볼로는 단순한 인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종에 지나지 않는 미물로서 각 당파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두머리 되는 것을 즐기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충분히 일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일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6절과 7절에서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행위는 외적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외적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물며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 말은 궁극적으로는 심는 일이나 물을 준 일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인정하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헬라어 원문에서 바울이 "심었고",아볼로가"물을 주었다"는 것은 모두 과거형으로 되어있고 하나님이"자라나게 하셨다"는 것은 미 완료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바울과 아볼로의 행위는 이전 것으로 끝났고 하나님의 사역은 그 동작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외적, 내적 경영을 다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외적행위로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왕 하려면 무엇인가 대단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일을 해야 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로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만 결국 우리의 일이란 우리가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거저 주어진 일에 하나님의 일이려니 여겨서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이렇게 만 생각한다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 새 시계를 조립하는데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시계추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시계추는 자기와 함께 일하게 될 큰 톱니바퀴들을 바라보면서 "저 톱니바퀴들이 모두 다 닳아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자나야 하는가"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밤낮을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되겠는데 1분 동안에 수 십 번을 똑같이 움직여야 하고 매시간마다 그것의 60배를, 또 매시간마다 움직이는 양의 24배를 매일 감당해야 하는데 그것도 1년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를 내야하니 정말로 끔찍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할 일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시계주인이 시계추에게 힘과 용기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한번씩만 움직인다 생각하고 그 때마다 한 번 씩만 똑 딱 소리를 내어 줄 수 있겠니? 네가 할 일은 그것이 전부야!" "그건 어렵지 않죠" 그 후 시계추는 시계 속에 매달리어 한번 움직일 때마다 한번씩만 똑딱거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일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아주 기쁘고 즐겁게 명랑한 소리를 내며 열심히 일하고 있답니다. 어리석게도 일년 치 일이나 고생을 한꺼번에 계산하지 말고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에만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거미와 같은 착취형의 인생이 있습니다. 남을 등쳐먹고 사는 사람들이죠. 참으로 좋지 않은 삶의 방식입니다. 둘째는 개미와 같은 근면형의 인생이 있습니다. 우리는 개미한테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잠언 6:6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했습니다. 개미는 부지런합니다. 나태와 방탕을 모릅니다. 개미는 남을 해하지 않습니다. 내 노력으로 내 생활을 건설하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의 운명과 진로를 개척해야 합니다. 이것이 존재의 근본 원리입니다. 자주, 자립, 자활은 우주만물의 근본법칙입니다. 우리는 남한테 의존하지 않는 독립의 철학부터 배워야 합니다. 독립과 고립은 다릅니다. 고립은 외톨이가 되어 외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독립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부지런함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에<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는 글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부지런히 일하면 천하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글을 <박정희 前대통령>이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휘호로 써 준 것이 2000년 3월에 정주영씨의 이삿짐에서 발견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정주영 명예회장은 광복 후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달랐으나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일근천하무난사 : 한결 같이 부지런히 일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다>였습니다. 이 글귀가 주는 무게는 결코 작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지런함은 만가지 선의 원천이요 게으름은 만가지 악의 근본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셋째는 꿀벌과 같은 봉사형의 인생입니다. 꿀벌은 협동과 봉사의 정신이 가장 강한 곤충입니다. 꿀벌은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이기와 이타의 놀라운 덕을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풀잎의 이슬을 먹으면서도 독사는 무서운 독을 만들고 꿀벌은 맛있는 꿀을 만듭니다. 꿀벌은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철학, 나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생활의 원리, 서로 번영하는 공존공영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손가락 한 개의 힘은 약합니다. 다섯 손가락을 꽉 쥐어야만 주먹의 힘이 생깁니다. 여럿이 하나 되는 힘은 엄청난 것입니다. 온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의 힘을 만들어 낸다면 그 힘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목사이며 찬송가 작곡자인 <보너(Bonar Horotius 1808-1889)>박사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그 동안 자기의 열심을 천사가 저울에다는 꿈이었습니다. 천사가 열심의 중량이 100근이나 된다고 말하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열심의 내역을 듣고는 부끄러워 졌습니다. 그 내역은 ①자기 이기심에서 행한 열심이 14근이요, ②파당을 이루고 자기 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낸 열심이 15근이요, ③ 자기의 명예를 얻어 보려고 낸 열심이 22근이요, ④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낸 열심이 23근이요, ⑤하나님을 사랑해서 진심으로 봉사한 열심은 100근 중에 겨우 26근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부끄러움에 더욱 더 겸손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2년 올 한해에 열심히 일하여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일하는 대로 하나님께 상 받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나타내려고도 하지 마시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도 마시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되는 일, 그리고 크고 작고를 구분하지 않고 단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성장과 건강한 교회를 소중한 상으로 받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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