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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가능성을 실현하십시오 /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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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의 가능성을 실현하십시오 
본문  요1:35-42   


아~저가 미국에서 섬기든 와싱톤 지구촌교회에 한200m쯤 떨어진 곳 도보로5분거리 안에 그 묘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 묘지이름이 Gate of heaven 천국 문 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런 묘지입니다. 아~제가 이따금씩 그 묘지를 교회에서 가깝기 때문에 아주 아름답게 잘 단장된 묘지여서 산책하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묘지를 산책하다가 그기 쓰여진 묘비 문을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무덤 앞에 섰든 일이 있습니다. 그 어린아이 무덤 같아요. 지금 제 기억에 마이크라는 어린 아이인데 마이크 니콜슨 five years old, 다섯 살 먹은 아이. 그런데 그 아래에 무어라고 영어로 쓰여졌나 하면 Rest in peace, 평화 속에 잠들다. 라는 그런 비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제가 그 비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 마음속에서 의문하나가 생겼습니다. 5살에 죽었는데 이 소년이, 만약 50년을 더 살 수가 있었더라면 아니 60년 70년 80년을 살 수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자기의 재능과 달란트를 충분히 펼쳐가고 발휘하면서 인생을 살아 갈수 있었더라면 이 아이가 장차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과연 그 비문의 얘기가 정확하게 그 아이의 마음을 나타내 주고있는 것일까? 차라리 보다 정직과 진실에 가까운 어떤 비문이 있다면 자기의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꿈이 꺾인체5살에 세상을 떠나간 마이크라는 소년, 그 소년은 이루지 못한 꿈을 안고 여기에 잠들다. 이렇게 쓰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든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이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그 부모의 배경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또 자기가 가진 지능의 지수가 높든 낮든 차별없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공통으로 부여 받는 선물하나가 있습니다. 그 선물은 뭐냐하면 가능성이라는 선물입니다. 영어로 우리가 Potential이라고 그러죠. 가능성이라는 선물,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능성을 펼쳐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흔히 우리가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가 발전하고 문화가 펼쳐지고 과학이 발달해 가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이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의 꿈을, 자기의 재능을, 자기의 그 가능성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살다가 떠나가는 사람들로 적지않습니다. 자, 이 가능성 소위 Potential, 이 가능성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이 가능성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가 어느날 인생의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할 것 같으면 저와 여러분이 가진 이 가능성에도 어떤 변화가 좀 일어나야 하지않겠습니까? 가능성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났는데 이 가능성을 펼쳐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났는데 전혀의 가능성이 사장되었다, 좀 말이 안되잖아요?

저는 오늘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한 본문을 통해서 자기의 가능성을 펼쳐간 예수님의 한 제자의 얘기를 할려고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를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이 베드로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꼭 같이 주신 이 가능성을 어떻게 우리가 펼쳐가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느냐?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싶은 것 입니다. 가능성이란 무엇입니까? Potential이란, 가능성이란 도대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쉽게 가능성을 정리하자면 우리가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한 것, 될 수 있는데 되지 못한 것,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했고 될 수 있는데 되지 못한 나의 잠재적 가능성, 잠재적인 능력, 그 능력이 바로 가능성이죠 그것이. 어떻게 이 가능성을 펼쳐가는 인생을 저와 여러분이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우리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본문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 만나고 어떻게 자기의 가능성을 펼쳐가는 인생을 살아갔습니까? 이 베드로를 통해서 배워야 할 우리 인생의 모습을 어떻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그 가능성을 펼쳐가면서 후회 없이 한평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저는 그 첫째로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첫째는 우리의 현재 상(像), 나의 지금 현재의 상이 있어요. 내가 느끼고있는 나에 관한 현재의 상, 그 현재 상을 넘어서서 창조주가 설계한 나의 미래상을 먼저 바라볼 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제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십니까 내가 나를 어떻게 느껴요? 흔히 우리들의 자화상은 주변 사람들의 말과 평가에 의해서 결정되기가 쉽습니다. 저 사람은 별볼일 없구만, 저 사람은 인생을 헤매고 있구만, 그래 나는 별볼일 없어 나는 헤매는 인생이야. 그러다 보면 우리 인생의 꿈은, 가능성은 펼쳐지기가 힘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설계하신 나의 인생의 미래상, 그 미래상을 발견해야 돼요.

자, 오늘 본문은 자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를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게 시작 됩니다. 자 본문의 시작 35절에 보시면 또 이튿날 요한이, 여기서 요한은 세례 요한, 침례 요한 입니다. John the Baptist, 그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있다가 그러니까 세례요한의 제자 중에 사도 요한이 있어요. 이 두 사람을 우리가 보통 헷갈리는데, 이 두 제자는 누구냐하면 사도 요한과 또 한 사람은 안드레였을 것입니다.
자, 36절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이, 침례요한이 유명한 설교를 했잖아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그 멧세지를 듣고 이 두 제자, 그러니까 사도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만나고 나서 보니까 정말 침례 요한이 설교한 그대로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 구세주 메시야 였어요. 메시야를 만났다 이 감격이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우리 민족이 소망하고 기다려왔든 그 놀라운 메시야를 우리가 드디어 만났다! 그러자 안드레는 그 메시야를 만난 감격을 가지고 자기의 형제에게로 뛰어갑니다. 우리가 좋은 일이 생기면 가까운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잖아요. 그래서 시몬 베드로를 찾아와서 야! 내가 말이야 메시야를 만났어 너도 만나봐! 그래서 시몬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님에게로 왔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 4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42절 다같이 시작,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이 시몬을 만나면서 딱 그 이름을 알았어요. 녜,만나지도 않고 그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 네가 시몬이로구나,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누구의 아들인 것 까지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아주 이상한 그러나 아주 의미 심장한 말을 덧붙였습니다. 네가 시몬인데 장차는 말이야 네가 게바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이름을 가지고 얘기를 하셨어요. 자, 시몬 본래 이름인데 시몬.
시몬 이름은 구약성경에 보면 시므온, 야곱의 아들이 있었죠? 열 두 지파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시므온, 시므온 말의 본래의 뜻은 듣는다는 뜻입니다. 듣는다, 듣는다. 그래서 시므온 이름에는 적극적인 의미도 있고 매우 부정적인 그런 이미지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시므온 그러면 그 이름의 뜻이 어떻게 뉘앙스를 갖고 있었는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 혹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음성을 들어주시는 사람, 아주 영적인 사람, 이런 이미지로 시므온이 통하기도 했는가 하면, 또 어떤 경우에는 이 듣는다는 단어에서 왔는데 너무 여러가지 소리를 듣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 결정을 못하는 사람, 또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 쉽게 바꾸어지는 사람, 아주 변덕이 심한 사람, 감정적인 콘트롤이 안되는 사람에게도 흔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므온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런데 예수님이 시몬을 만나는 그 순간 새 이름을 주셔요. 그러면서 네가 말이야 장차는 게바라고 하리라.
자, 게바의 뜻은 뭡니까? 게바는 본래 아람어입니다. 아람어인데 베드로하고 같은 이름 같은 말이에요. 게바는 희랍어 이고 그리스어 이고, 그것을 아람어 씨리아로 표시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게바입니다 똑같아요. 게바하고 베드로는, 그런데 그 뜻이 뭡니까 게바의 뜻이? 번역하면 뭐라고 그랬어요? 반석이다. 반석, 반석인데 조그만 돌이 아니에요. 쪼개진 작은 돌이 아니라 거대한 반석, 육중한 바위 견고한 바위. 그런데 예수님이 딱 만나서 너, 네가 말이야 장차 반석이 될꺼야 그래서 뭘 느꼈을까요? 이 견고하고 움직이지않는 안정된 바위, 그런데 현제의 시몬에게는 전혀 적합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아마 시몬은 자기자신을 알았을꺼에요. 자기 주제를 알았을꺼에요. 이 사람은 예수를 만나고도 한동안 전혀 베드로 다운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시몬이였습니다.
자, 한번은 그 파도를 밟고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자 너무 놀래 가지고 갑자기 베드로가 어떤 부탁을 했습니까? 예수님보고 선생님 나를 좀 명령해서 나도 물위를 걸어오게 하소서. 그래서 걸어가는 기적이 잠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파도를 보면서 빠져들어가자 이번에는 다시 뭐에요 선생님 살려 주세요. 조금 전 까지 그 용감무쌍했든 모습과 살려달라는 모습의 시몬의 모습,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실 때 이 시몬의 차례가 왔죠? 시몬 베드로의 발을 씻겨 줄려고 그랬더니 이 시몬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선생님 절대로 내 발을 씻기실 수 없습니다. 제가 씻겨드려야지요 선생님이 저를 씻기시다니요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또 변합니다. 또 순식간에 변했어요. 어떻게 변했어요? 그래요?그러면 선생님 아예 몽땅 목욕을 시켜주십시요. 이렇게 얼마나 잘 변해요? 뭐 언제 목욕시켜준다고 그랬어요 예수님이? 그런데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또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 속에 다가올 죽음을 암시하자 시몬이 나서서 튀는 시몬이 나오자마자 뭐라고 말합니까? 선생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저가 선생님을 보호해드리고 대신 죽을 겁니다 옥에도 가고 선생님 죽으신다면 죽음의 자리를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이렇게 큰소리 뻥뻥 치든 시몬이 그러나 자기의 생애가 불리하게 된다고 느끼자 일개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든 베드로, 그런데 베드로 보고 반석? 이 시몬에게 반석? 견고하고 육중한 바위? 전혀 어울리지않는 그런 별명이죠.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단어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그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뭐에요? 장차,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장차라는 단어에요. 장차, 장차 말이야 네가 게바가 될것이다! 지금은 요동치고, 지금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지금은 쉽게 연약하고 그리고 흔들리고 있지마는 말이야 네가 장차는 게바가 될 것이라고, 게바. 반석이 될 것이라고 반석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그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거에요. 선생님 제가 그렇게 되어요? 이것이 얼마나 그에게 희망을 불러일으켰을까요?
자기의 미래상을 보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미래상을 쫓아 자기의 능력을 Potential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 사람이 일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열정을 상실합니까? 자기의 미래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의 미래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저 유명한 위대한 조각가 장인 미켈란젤로가 어느날 성당의 뒤뜰에서 굴러다니고 있든 돌덩이 하나를 보았다고 그랬죠? 가만히 그 돌덩이를 쏘아보다가 버림받은 돌, 수풀사이에 팽개쳐진 돌덩이 하나. 갑자기 돌덩이를 쏘아보든 미켈란젤로의 입술에서 이런 외침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저거야, 다비드(David)야, 다비드가 나온다. 그는 그 거친 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돌이 장인의 손에 의해서 다듬어지는 그날 그 속에서 만들어질 위대한 다윗상, 다비드상을 보고있었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서 어떤 말을 합니까? 그 말을 자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사람 희망 없어 별볼일 없어 끝난 사람이야. 그러나 하나님의 미래상으로 자신을 본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읽어셨습니까? 성경이 여러분보고 어떻게 말씀합디까? 너는 내가 택한 백성이라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나의 보배라고 내 눈동자라고 너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너는 빛이라고, 현재의 자기모습이 아니라 내 현재상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눈을 통해서 나를 바라본 사람 이 미래상을 볼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한번 하나님이 주신 창조주가 주신 그 Potential를 나의 가능성을 발휘하고 그것을 개발하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인생을 살기를 소원하십니까? 내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을 통해서 자신의 미래상을 바라볼 줄 아는 여러분과 저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가능성이 한번 발휘되기를 원하십니까?

두번째로는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상에 근거한, 나의 미래상에 근거한 삶의 목적을 이제는 발견 하셔야 합니다. 미래상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것은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 그러나 그 미래상에 근거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내 생애의 목적을 혹은 미션을 발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자, 주님은 시몬 베드로를 만나주시든 그 첫날 그의 미래상을 보여주셨지요 너는 말이야 장차 반석 같은 존재가 될 것이야!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반석 같은, 이름처럼 반석 같은 존재가 되어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래서 무슨 일을 하자는 것입니까? 내가 무엇이
되느냐 그것도 중요한 질문이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느냐 이것도 중요한 것 이지요. 그것이 인생의 미션이에요.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에요.
여러분 인생에서 일어날수 있는 최대의 비극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자기의 미션을 자기의 사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일 입니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내가 왜 태어 난지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아주 비극적인 인생이 없을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몬을 만나자 마자 처음에 이 미래상을 제시해 주시고 너는 말이야 단순히 시몬이 아니야 너는 장차 베드로가 될꺼야 반석이 될꺼야 내 손에 의해서 다듬어지고 만들어져 너는 반석 같은 존재가 될 것이야.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갑니다. 어느날 결정적인 시각에 이 제자 베드로에게 그가 해야 할 일을 계시하십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6장을 기억하십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혹은 너희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질문하든 그 장면 말입니다. 여러가지 대답이 나왔어요. 그래 그러면 너희들, 나와 더불어 삼년을 같이 살아오고 같이 호흡하든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대답 앞에 감격해 하시면서 주님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베드로가 할 미션을 제시합니다. 맞아! 너는 베드로야 너는 베드로야, 네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바로 이순간이 베드로의 미션을 시몬의 미션을 인생의 목적을 제시하는 순간이에요. 너는 말이야 나의 교회를 세우는 그 일을 위해서 쓰임을 받아야 해. 그것이 네가 할 일이야. 교회를 세우다니? 건축하라는 말입니까? 그 얘기가 아니에요.
교회의 본질은 뭡니까? 하나님의 백성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를 만드는 것 입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네가 세워가야 해. 세상을 복음화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배성들을 네가 세워야 해, 그것이 네 미션이야 네 사명이야 네 목적이야.
자,그날 이후로 그 목적을 붙들고 일관성 있게 베드로가 삶을 살았습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이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베드로는 당분간을 헤매었습니다. 넘어졌습니다. 흔들렸습니다.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배신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제자를 놓치지 않아요. 다시 찾아오십니다. 갈릴리 바다에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와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지요? 넘어졌든 제자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그러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유명한 질문을 하시죠. 녜, 제가 주님 사랑하는 것 주님 아시잖아요? 이 베드로의 대답을 받아내시면서 그때 주께서 다시 하신말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래 내 어린양을 먹여야 돼, 그것이 베드로의 미션이에요 하나님의 사람들을 먹이는 일, 키우는 일, 기르는 일, 그것이 네가 할 일이야. 다시 그 미션을 그 목적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해주시는 장면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인생을 살면서 최대의 비극, 왜 사는지 모르고 사는 것 입니다.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모르고 사는 것 입니다. 여러분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보세요 저 전구, 비추기 위해서. 그런데 조금 아까 꺼져있어요. 그건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것입니다. 자, 다시 비취니까 얼마나 아름다워요? 바로 존재하는 이유에요 빛을 발휘하기 위해서.
강대상, 설교자 앞에 서서 설교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제대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써포트(support) 하기 위해서 이 강대상은 존재합니다.
마이크, 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마이크는 존재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왜 살고 계십니까? 왜 존재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호흡이 붙어있어 숨쉬고있는 이유? 왜 그러시죠?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발견하셨습니까? 제가 많은 분들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특별히 젊은 솔직한 그리스도인 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어떻게 인생의 미션을 발견할 수가 있나요? 그 목적을 어떻게 발견할 수가 있나요? 두가지에요. 대답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자, 이 마이크를 어느 전혀 문명사회에서 단절된 정글의 인디어족이 마이크를 한번 어느날 보았다고 하십시다. 이것이 뭔 줄 모를꺼에요. 그런데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이 마이크를 만드신 분을 만나면 알 수가 있어요. 그전까지는 아마 이거 가지고 이게 뭐하는 건가? 이것 가지고 칼 싸움하는 것인가? 혹시 이것 가지고 장식품인가? 허리에 이렇게 차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요? 이 마이크를 만드신 분을 만난다면 야! 그건 그런데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목소리를 전달하기위해서 쓰여지는 것이야,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만드신 그분 앞에 나와서 진지하게 질문을 해 보셨습니까? 하나님 저 왜 만드셨어요? 무엇 때문에 태어나게 하셨어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합니까? 진지하게 창조주 앞에서 내 인생의 존재의 목적을 질문 해 본적이 계십니까? 기도하셔야 돼요. 그래야 그 인생의 목적을 발견합니다.
또 하나는 여러가지를 해 보셔야 돼요. 여러가지 해 보시면서 내가 목적에, 나를 태어난 목적에 부합한 일을 발견한다, 이 두가지가 가능합니다. 두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으면 그것은 내 목적과 사명에 맞는 일립니다. 두가지가 뭐냐 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그 다음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이 일을 하면 나는 너무 좋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은 잘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느정도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둘 중에 하나만 있어도 안돼요. 좋아하는데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니에요 그것은.
예를 들어서 저는 아주 음악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합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해요. 그것 아십니까 여러분? 상당히 좋아합니다 제가, 우리집에 CD 많아요. 녜, 그래서 저를 닮은 우리 아들들도 그냥 돈만 주면 CD 삽니다. 음악을 제가 무지무지하게 좋아해요. 그래서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 하나님이 나를 음악가로 부르신 모양이다 그래서 제가 음악대학을 입학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제 인생이 어떻게 될까요 그 다음에? 비참한 인생이 될꺼에요 여러분 아시잖아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데 음악을 못해요. 음악을 좋아하는 것만 가지고 안돼요 잘 할 수 있어야 해요. 잘 할수 있어야 돼요. 그래야 그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에요.

요즘 빈센트 반 고흐의 그 미술세계가 새롭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있다고 그럽니다. 자서전도 많이 팔리고 또 그의 그림 앞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 위대한 화가의 생애 속에서 그가 가장 잘한 결정하나가 있다면 목사가 안되기로 결정한거에요. 그 목사가 되고 싶었어요. 아세요? 빈센트 반 고흐가 목사가 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 아버지가 목사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러니까 아버지가 목사니까 아들 보고 목사 되라고 아마 그랬었겠지요. 그래서 자기도 목사 되고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자기도 목사가 되기를 원했는데 신학공부를 해보니까 잘 안돼요. 바로 그 순간 그 빈센트 반고호가 위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내가 목사 되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는 잘 할 수없구나. 그것을 발견하고, 아 이것은 내가 갈 길이 아니다. 어느날 그 결단을 내렸어요. 그 결단을 내리든 밤에 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요즘 민기로라는 사람이 쓴 책,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에 31페이지에 보면은 빈센트 반고호가 자기 일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결정하는 날에 그의 심경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의 새로운 운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새로 태어난 나 빈센트. 이제 나는 성직자의 길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내 나이 27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방황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것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 속에서 시작되는 영원한 길입니다.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며 그 속에서 나와 하나님 사이의 만남을 이루어 내고야말 것입니다.
만약 반고호가 계속해서 성직자의 길을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사람이 자기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래서 적지않는 이성간의 관계에 있어서 실 수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통제 불가능한 것 때문에 일종의 정신병 비슷한 아픔을 앓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이 목사가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절대로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화가이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다소간 통용되지 못한 감정 속에서 오히려 그는 자기의 가능성을 발휘하면서 위대한 불멸의 작품을 남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그 은사와 그 달란트의 부합된 내 인생의 미션, 그 목적을 발견한다는 것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서 나를 태어나게 하셨다. 그것 한번 발견한 사람, 달려갑니다. 그 가능성이 발휘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자녀들에게도 돈을 따라 인생을 길을 선택하라고 말하시면 안돼요. 그게 요즘 취직하기 좋더라 너 그 과에 가라. 세상에 제일 무식한 부모에요. 너가 무얼 좋아하니? 너 그거 잘 할수 있니? 이 두가지 질문을 가지고 자녀의 장래를 지도해 주셔야돼요. 내 목적에 부합한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 미션을 발견한 사람, 이 사람은 날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주신 가능성을 펼쳐가며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하여 저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미래상에 근거한 목적을 그리고 미션을 발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단 한번 살아가는 인생 정말 가능성 발휘하고 살고싶어요?
세번째로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라 가셔야 합니다. 나의 과거의 주인, 현재의 주인 그리고 우리 인생의 미래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라갈 수가 있어야 합니다.
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를 한번 만난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어요.
자, 오늘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이 시몬을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자 먼저 자기의 형제 안드레가 만났다고 그랬죠? 그리고 너무 좋았어요.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왔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시몬을 한번 만난 것으로 그와의 거래를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조금 후에 다시 만나주셔요.
자, 오늘 본문의 배경은 요한이, 세례요한이 침례요한이 설교하면서 활동하고 있었든 배경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요 조금,
우리가 다른 복음서,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4장을 읽어보시면 요한이 잡힙니다. 요한이 잡혔어요. 이제 시간이 흘러갔어요. 자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시다가 다시 안드레와 베드로를 봅니다. 그들은 여전히 여업으로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태복음 4장에 보시면 19절에 안드레와 베드로를 만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를 따라오너라!" 한번 만난 것 가지고는 안돼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나를 따라오면 하나님이 너희들을 위해서 계획한 사람을 낚는 어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이 어부의 미션, 그 어부의 삶, 영적인 어부의 삶, 이 목양의 삶을 너희들은 살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자, 이 말씀 한번 듣고 시몬 베드로가 아주 일관성 있게 주님을 계속 잘 따라갔습니까? 아니에요 따라가다가 흔들리고, 따라가다가 자빠지고, 따라가다가 넘어졌어요. 그러나 주님은 계속해서 이 명령을 주시고 있습니다. 자,실패했든 제자 주저앉았든 제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쳤든 제자, 그 제자를 찾아 다시 디베랴의 바다에, 갈릴리의 바다에 다시 다가오신 주님,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보시면 그 유명한 사랑의 확인, 세 차례에 걸친 대화.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그리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지 않느냐고, 그래? 그러면 내 어린양을 먹여달라고, 그 대화가 어떻게 연결 됩니까? 그 다음에 주님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보시면 베드로야 네가 젊어서는 마음대로 살았어 그러나 늙어서는 내가 좀 간섭 할꺼야, 네 인생의 마지막이 승리이기 위하여 말이야, 너는 영광스럽게 죽을꺼야, 그러면서 그 다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 나를 다시 따라오게나 "나를 따르라" 그 말씀이 거기서 다시 등장해요.
여러분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 주님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설계하신 분이라면 우리인생에 목적을 주시는 분이라면 그리고 그 설계를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불러주시는 그분이라면 그리고 그분이야말로 우리인생의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그분이라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분을 따라가지않고, 그분을 따라가지않고 어떻게 인생의 꿈과 진정한 비젼이 실현될 수가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잠시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그분을 따라가는 것을 후회하지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 저분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저분이 나를 최선의 곳으로 인도하고 있구나. 맞습니다. 주님은 이 제자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려주셨어요. 동일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아세요?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하고 새로운 삶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을 책임 지시고 간섭해오기 위해서 다시 사신 그 주님이 이제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오너라!

여러분 이 가능성이라는 말을 영어로 제가Potential 이라고 말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Potential.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고백할 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가장 중요한 속성이 뭐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전능하다는 말을 영어로 Omnipotent 이렇게 말합니다. Omnipotent. 이 포텐트라는 말이 Potential하고 같은 말이에요. 그런데 처음에 Omni 옴니라는 말은 all 모든, 모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능력이 있는 분, 전능하신 분, 하나님은 가능성의 주인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성경의 첫머리 부분 창세기 1장1절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이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이 계셨어요.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 안에 만물의 가능성이 이미 존재했어요. 만물은 지어지기 전에 하나님 안에 가능성으로 하나님 안에 계획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순간 그 가능성은 만물의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가능성의 주인이라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해요? 그러지않고 우리인생의 진정한 자아실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삶의 보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내 가능성을 펼쳐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심리학자들은 자기실현 자아실현이라고 말합니다. 자아실현 하는 것,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영적인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예수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지 어떻게 자기 뜻을 실현하는거야? 이 말 속에는 매우 중요한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고있는 보편적인 오해하나가 있어요 그 중요한 전제는 뭐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은 항상 다를꺼야! 그럴까요?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항상 다를까요? 내 뜻이 내 욕심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분명히 다를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네 뜻과 내 뜻이 다르다고 말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진리가 아니에요.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말씀가운데 빌립보서 2장에 보시면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여러분 믿으세요? 내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다 믿으십니까? 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 다음에 자기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고 우선이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그 다음에 소원을 두고,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내가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남다른 패션과 열정이 있어요. 나는 음악 안 하면 못살아요, 그 팻션을 그 열정을 누가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거에요 하나님이, 내가 음악 잘하고싶다 그게 하나님의 소원이에요. 내 소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소원이에요. 자기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여러분 앞에서 일어나고있는 거룩한 열정, 생애대한 아름다운 열정, 생에 대한 뜨거운 소원, 여러분 그 소원을 펼쳐가는 인생을 두려워 마십시요. 세월이 어둡습니다. 환경이 어둡습니다. 우리 시대가 점점 캄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꿈을 잃어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꿈을 펼쳐줄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버려주시고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 하시사 다시 살아계신 주님이 되어 내 삶 속에 간섭하시고 들어오기를 원하시는 주님, 그리고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오너라! 그 분을 신뢰할 때 그 분을 신실하게 따라갈 때 비로소 우리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을 믿습니다. 그 삶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인생의 보람입니다. 그것이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저는 그래서 내 가능성을 펼쳐가는 것, 내가 성공하는 것, 그것 못지않게 또 하나 그러나 인생에서 또 하난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가 다른 사람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두번째로 중요한 것 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제자훈련이 뭡니까 요즘 많이 말하는 멘토링이 뭡니까?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에요.
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창조주를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멘토링이 아니에요? 그것이 제자 훈련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런 일을 개인적으로도 할 수 있고 공동체적으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기도제목을 하나 나누고 싶어요. 우리가 내일부터 사흘간은 저 안성 수양관에서 '침례교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이라는 모임이 열립니다. 45세 이하의 침례교회 목사님들이 젊은 목사님들이 한 600명이 모이게 될 것 입니다. 이것은 작년부터 우리교회가 스폰서(Sponsor)하여 시작한 것 입니다. 우리가 한국교회를 어떻게 섬길 수가 있나? 저는 리드가 바뀌어야 한국교회가 갱신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젊은 목회자들에게 꿈을 주고 그들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들이 하나님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을 섬기고 돕기 위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자 그 모임을 위해서 한번 기도해 주세요. 우리가 우리교회가 최선을 다해서 한번 젊은 이 시대의 지도자들을 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바뀌면 교회가 바뀔 줄로 믿습니다. 한국교회가 새로워질 것을 믿습니다. 역사가 새로워질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분 남을 성공시키는 자가 되십시요. 그리고 자신도 성공하는 자가 되십시요. 아직은 꿈을 버리기에는 이른 시각이 아닙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놀라운 설계를 하신 바로 그분,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나보다 더 소망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내 곁에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다시 나를 따라오라고, 일어나서 쓰러지지 말고 절망하지말고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서 나를 따르라고,
그렇습니다. 창조주, 구세주이신 바로 그분을 따라 일어서서 신실하게 그를 따라갈 때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인생 성공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가능성이 펼쳐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발 이루지 못한 꿈의 한을 안고 무덤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요.

기도 하시겠습니다.
우리 다 일어나서 기도하시겠습니다.
내 꿈이 꺾여지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내 꿈이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십니까 주변의 환경 때문에 이 시대의 여건 때문에 비틀거리고 게십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을 위해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신 그분, 지금은 헤매고 지금은 비틀거리고 있지만 내게 오셔서 말씀하신 그분, 장차는 말아야 네가 게바가 될것이야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 바로 그분, 그래요 주님, 저 실망하지 안을 거에요 저 좌절하지 안을 거에요 저 낙심하지 안을 거에요 일어나서 주님 따를 거에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한번 도와주십시요. 저는 실수하지만 저를 포기하지않고 내게 다가오시는 그분을 의존하고 일어서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꿈 우리의 가능성 축복하시고 이루어주시옵소서.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신말씀을 붙들고 우리에게 주어진 한평생의 삶의 기회를 걸어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단 한번의 삶의 기회, 주여 우리의 주변의 환경과 시련과 역경 때문에 쉽게 인생을 포기하는 자들이 되지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그 행하신 모든 것 완전하시니
나의 생명 되시는 하나님 내게 행 하신일 찬양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실 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찬양하십시다 가사의 뜻을 기억하며 찬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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