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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맺는 그리스도인 / 요 15: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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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는 그리스도인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5 : 1 - 8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이 열매를 맺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를 맺는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경종 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는 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자신과 또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 한 포도나무를 비유로 하여 그 상호 관계를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 열매 맺는 가지와 맺지 못하는 가지

  포도나무는 그 가지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만약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런 가지를 누가 가꿀 것입니까? 당연히 가지를 쳐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입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나타난 경우를 보면 하나님은 우리들로부터 열매를 얻도록 많은 기간을 기다리시며 참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님은 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그 주인이 3년씩이나 와서 심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 했지만 얻지 못하게 되어 그 무화과나무를 키우는 과원지기에게 말하기를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는 말로 노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 주인은 이 과원지기의 간절한 사정을 듣고 그 후 한해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는 말씀이 눅13장에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취어 볼 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적어도 3년이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실과를 맺을 수 있어야 하고 아무리 늦어도 한 해가 더 간 4년에 이르면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주인이 노하여 그 무화과나무를 찍어 내 버리라는 명령이 내려질 것임을 경종해 주신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이 비유 중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들 포도 실과를 맺는 가지를 말합니다. 사5장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포도원으로 비유하시고 우리들을 포도나무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답게 다듬고 가꾼 좋은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포도나무에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정성껏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을 철에 포도원에 가보니 그가 바라셨던 좋은 포도 열매는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그 자리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들 포도 열매가 맺혔다고 하시면서 탄식하셨습니다. '심히 기름진 산에 포도원이 있음이여,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 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들 포도를 맺었다고 책망을 들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이 맺은 열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를 기쁘게 하는 육신의 열매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5장에서 이르시기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일과 분리하는 일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하는 일과 방탕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상인즉 그들이 맺는 과실은 이처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들 포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같은 과실을 맺으면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이 이 가지를 꺾어 버리신다고 경종 하셨습니다.
  (3) 이 가지는 또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마25장에는 한 달란트 받은 악한 종의 경우가 나옵니다. 이 종은 왜 악하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까? 그는 주인으로부터 한 달란트를 받은 후, 그 돈을 땅에 묻어 둔 것입니다. 주인이 그 종에게 한 달란트를 준 까닭은 그 돈을 받아 땅에 묻어 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부지런히 장사하여 주인을 위해 많은 이익을 남기라고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은 일하기가 싫어서 그대로 놔 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싫어하여 자기 생각대로 살아간 것입니다. 어찌하던지 주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다는 듯, 그저 그럭저럭 믿으면 되지 뭐 그리 미칠 듯이 믿으려 하느냐고 못마땅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일 하루 한 번 만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그것으로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알고 그만 정도면 다 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까지 가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는 변화의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맺는 열매라는 것이 없습니다. 가끔 정신차리라고 때로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맞기는 하지만 그 때만 지나면 그만입니다. 옛날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나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활이 새로워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책망하신 것처럼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 한 달란트를 빼앗길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나중에 자기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쳐와서 하나님의 도우심일 필요할 때도 결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잠1장에서 하나님은 이들에 대하여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제쳐놓은 자식들입니다. 쉽게 한 마디로 말하면 아예 버린 자식입니다. 이들을 하나님은 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열매 맺는 가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는 대단하십니다.

  8절 말씀을 보면 과실을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은 다른 엄청난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어떤 굉장한 사업이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열매를 많이 맺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활 가운데 열매를 맺을 때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그 열매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시고 또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큰 권능이나 능력을 행하는 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순종의 열매를 맺을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2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더 주시는 분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있는 사람에게 더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은 사실입니다. 감사도 모르고 십일조도 모르고 순종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조차 없는 사람들은 가난해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은 쳐다보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점점 더 가난해지고 점점 일이 꼬이게 되고, 오면 손해 볼 일만 자꾸 찾아 와서 가시처럼 그의 인생을 마구 찌르고 그 가정을 벌집처럼 쑤셔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나머지 적은 것까지도 빼앗아 가십니다. 하나님이 취하여 가시고자 하시면 하나님만큼 냉정하신 분이 없으십니다. 재앙을 만날 때 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움이 임할 때 비웃겠다고 하셨습니다. 불러도 대답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재물이 풍족하고 가정이 다복해도 그 사람들이 더욱 감사생활을 잘하며 더욱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며 더욱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 우리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더더욱 크게 복을 넘치도록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열매 맺는 비결

  예수님은 우리들이 열매를 맺는 비결에 대하여 5,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는 비결은 내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한다는 의미를 씨를 심는 원리에 입각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열매란 언제나 씨를 심을 때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것을 부지런히 심는 생활입니다.

  (1)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두어야 할 열매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영생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우리들 안에 계십니다.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서 영생을 창조하시는 영생의 씨앗입니다. 이 씨앗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심어집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의 신앙은 어린아이들처럼 어린 신앙입니다. 그 신앙이 점점 자라서 장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어린아이들의 신앙의 단계에서 더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이들은 교회에는 나오고 예수는 믿는다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생활 가운데 심는 생활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성장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믿습니다 하는 외침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라고 고함친다고 믿음이 전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는 끊임없는 애씀을 통해서 지식의 씨앗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누구이시며 나와 어떤 관계에 계신 분이신 가에 대하여 좀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그 분께 가까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분이 나에게 무슨 은혜를 주셨으며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며, 감사가 넘쳐 나게 되며, 하나님을 의뢰하게 되며, 어떤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우리는 성령으로 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심는 자만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그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란 성령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열매를 말합니다. 우리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언제나 육체대로 행하여 육체의 열매를 맺어 왔지만 예수를 믿은 이후로는 우리의 생애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당연히 맺어야 할 생활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이 같은 열매를 맺어야 할 우리의 생활이 이 같은 열매를 맺기는 고사하고 육체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살아가는 생활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게으른 종을 책망하실 때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줄로 알았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롬8:5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생애 중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씨앗으로 심겨지는가에 대한 교훈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풍성히 심겨져야 합니다. 우리들의 생활에 나타나는 모든 요소가 바로 이 말씀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거듭난 일에 대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우리들로 거듭나게 만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할 때 하나님의 모든 기적적인 축복의 역사가 그 말씀대로 우리의 생활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실의에 잠겨 있었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명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아 배에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마치 기관 고장으로 방향 감각을 잃고 그 넓은 망망 대해를 헤매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참된 안내자이거늘 그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니 그의 생애가 컴컴한 흑암 중에 헤매 일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마치 허공을 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기 생애의 의지가 되어야 할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인생이야말로 반석 같은 견고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자기 생애의 안내자가 되게 하려면 그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학식이 많은 사람이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드리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생활에 감사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여러분, 시편에 흐르는 전체적인 교훈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감사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감사 생활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입술의 감사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찬양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 감사는 물질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감사란 입으로 나오건 찬양으로 나오건 그 감사가 우리들의 진실한 마음에서 참으로 감사함으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감사에는 언제나 물질이 따른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아까워하는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지 못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세상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 셩경적인 교훈입니다.

  고후9장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감사 생활은 축복의 씨앗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는 미리 준비하는 연보라야 참 연보라고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연보를 기도하는 가운데 미리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많이 심는 자는 많은 것을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은 것을 거둔다는 말씀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즐겨 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말씀으로 생각할 때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야말로 은혜를 받는 씨앗이며 항상 모든 일에 넉넉한 축복을 받는 씨앗이며 의의 열매를 더 하게 하는 씨앗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은 아직까지 들은 말씀 중 어떤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께서 그의 포도나무에서 제하여 버리신다고 경종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부지런히 씨앗을 심는 생활입니다. 심는 자만이 결실을 맺게 되며,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심은 그곳에서 열매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찾아 오셔서 열매를 찾으실 때 여러분들은 많은 열매를 내어놓을 수 있어서 잘 했다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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