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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야곱가정의 불상사 / 창 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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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4:1-7
야곱가정의 불상사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가정을 사랑하셔서 가족들을 주시고 그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면서 살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 때로는 예기치 않는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병이 든다든지, 사고를 당한다든지, 실직을 당한다든지, 결혼한 자녀의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녀들 가운데 잘못되어서 사고를 치기도하고 구치소에 가는 일도 있고 여자 아이들인 경우엔 부모들의 가슴이 내려앉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 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불상사까지도 아무런 뜻 없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모든 일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가정에도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그 땅 구경을 나갔다가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장본인 디나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온 집안에 큰 근심과  분노로 임했던 것을 7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급기야는 잔인한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보복의 수단으로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여 버린 살상극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30절)

(30)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 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의 가정에 엄청난 불상사가 생긴 것입니다. 자칫하면 주위의 민족에게 공격을 받고 야곱과 그 집이 망할 정도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불상사가 왜 일어났습니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먼저는 그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무책임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딸 단속을 잘 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들들을 제대로 말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삶에 바빴을 것입니다. 할 일이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세겜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으니 새로운 지역에서 정착하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겠습니까?
그러느라고 딸 교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딸 생활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니 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 둘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딸이 밖을 마음대로 다니다가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전에 이민목회를 하면서 만났던 이민 온 우리 한국 부모들이 생각납니다. 꼭 이와 같았습니다. 이민 생활이 얼마나 바쁩니까? 부부가 다 나가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자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이 학교에 가는지 안 가는지, 학교를 마치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돈 버는 일에만 쫓기다가 아이들을 다 망쳐버리는 일을 많이 봤습니다.

그들이 이민 온 목적을 물어보면 한결같이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자녀교육을 위해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고작해야 돈 버는 것 밖에 없습니다.

돈만 벌면 자녀교육 잘 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녀들 다 버리고 나서 나중에서야 후회하는 부모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어찌 이민 간 사람들에게만 있겠습니까?
이민 가서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 와서도 보니까 우리 한국 부모들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가정의 최대 위기는 아버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대부분 가정의 아버지들은 아침 일찍 나가서 열심히 일해서 돈벌어 오는 것으로 아버지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녀들을 볼 시간이 없고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거나 단속하지도 못합니다. 그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맡기는데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교육한다기보다 그냥 공부만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껏해야 아이들이 공부하는지 옆에서 감독하고 도시락 싸서 학원 보내고 독서실 보내는 것이 부모님들이 해주는 일입니다.

자녀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학교 가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방과 후에는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누구하고 사귀고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장래 포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물질적으로나 육신적으로만 잘해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부모의 책임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올 먹이고 기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적인 교육을 시켜줘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에 무슨 일이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야곱 가정의 불상사는 그 부모들이 교육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찌 부모만 탓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당사자인 디나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디나는 그 성을 너무 좋아하여 관심을 가지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1절에 보면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려고 나갔다고 했는데 결단코 이것은 한번만 나갔다가 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마 디나는 여러 번 성을 구경하려고 나갔을 것입니다. 또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남자들을 보러 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땅의 세겜 추장을 한번만 보았겠습니까? 추장이 디나를 보고 눈독을 들이는 것을 디나가 몰랐겠습니까? 디나가  피하거나 발길을 끊지 않았기에 결국은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자녀들 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세상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됩니다.

요한 일서 2장 12절이하에 보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나는 것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너무 좋아하게 되면 디나처럼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에 세상의 재미나 일들에 대해서 헛된 것을 느낀 후  교회 생활이 좋아졌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싶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교회에 다니던 제 또래의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이 믿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자기들은 부모를 잘못 만나서 교회 밖에는 모른다고 불평을 하며 오히려 저를 부러워하였습니다. 자녀들 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교회생활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주일날 바닷가나 산에 가서 마음껏 즐기고 사는 것을 동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디나처럼 불상사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상사의 가장 큰 책임은 세겜에게 있을 것입니다.  세겜은 그 성의 추장다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겜뿐 아니라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세겜이 디나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디나에게 상처를 준 후에 그를 위로해 주고 달래주려고 노력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하는 방법이 잘 못되었고 그 사랑마저도 자기 방법대로 자기중심적으로 행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말은 그럴듯해도 자기중심적인 것과 자기 욕심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욕심의 재물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세겜은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물질적으로 보상하려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세겜이 야곱과 오빠들을 찾아와 이 성에 살게 해주겠고 짐승과 땅을 주겠으니 디나를 자신의 아내로 달라면서 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준이 자기 자신이어서 자기 욕심을 따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없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임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우리 마음과 가진 것을  다 주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결혼하지 않은 젊은 청년들은 세상 원리에 따라서 결혼 전에 몸과 마음을 다 주는 생활을 하다가는 오히려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 가정의 불상사는 야곱 가정의 부모와 디나 자신의 책임도 있습니다만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결코 선하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게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 가정의 불상사를 더 크게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디나의 오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동생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심히  근심하고 노했다고 했습니다. 그 심정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지나쳤습니다. 세겜이 찾아와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하면서 통혼하자고 하니까 이 오빠들이 우리들은 할례 받은 사람들인데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과 통혼할 수 없으며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의 누이를 시집보낼 수 없으니 너희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으면 통혼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것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거짓으로 그들을 속이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세겜이 그 말을 듣고 돌아가서 그 성의 사람들을 이해를 시켜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게 되어 힘을 못 쓰고 고통을 느끼고 있을 그 때에 디나이 오빠들이 칼을 들고 그 성에 찾아가 그 성의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린 것이었습니다. 세겜과 그 아비 하몰을 포함해서 그 성의 남자들은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양과 소, 나귀와 재물들까지 노략해 왔고 자녀들과 아내들까지 사로잡아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의 누이가 욕을 본 것은 이해가 가고 동정이 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분노해서 이렇게 끔찍한 살상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들은 야곱이 너희들이 내게 화를 끼치는 구나 이제 이 말을 주위의 동족들이 들었겠으니 너희가 그들에게 냄새를 나게 했다 이제 그들이 쫓아와서 우리를 죽일 텐데 나와 내 집이 망하게 되었다라고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로 일이 그렇게 까지 번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때는 나의 책임으로 어떤 때는 자녀들의 책임으로, 어떤 때는 이 세상이 악하여서 불상사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자신을 잘 억제해야 합니다.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라며 마귀가 틈탈까봐 분을 품더라도 저녁까지 품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맡기고 너희들은 원수 갚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디나의 오빠들은 몇 갑절로 원수를 갚은 것입니다. 우리도 성도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괘씸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하고 자칫하면 디나의 오빠들처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이 더 커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야곱의 집에 있었던 불상사에 대한 일반적인 이유들입니다.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제대로 못했고 디나 자신도 부모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그렇게 됐고 무엇보다도 그 성이 악한 성이었고 그 형제들이 자기들의 감정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해서 큰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표면적인 이유보다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야곱의 가정과 디나를 아끼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도록 놔두셨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있을 곳에 있고 해야 될 일을 하면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지만 이런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처음에 부모를 떠나서 밧단 아람으로 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이 바로 그가 하나님을 만난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그가 너무나도 감격해서 베고 잤던 돌을 세워 놓고 기름을 부으면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때 야곱은 평안히 아비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여호와가 자신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자기가 베개했던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소득 가운데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그 후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가 가는 길에 늘 함께 하셔서 돌보아주시고 그로 하여금 무사히 집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반이 그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일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밤중에 꿈으로 그를 현몽해서 야곱이 다치지 않도록 막아주셨습니다. 또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가장 큰 묵은 숙제는 에서를 어떻게 만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셔서 화해하도록 만들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약속대로 벧엘로 올라가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가 세겜으로 간 것은 세 가지 이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첫째는 그곳이 자기 형 에서가 사는 곳과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곱은 혹시 형의 마음이 변해서 또 다시 자기를 미워하고 해칠까봐 걱정이 되어서 세겜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세겜은 목축하기에 유리한 땅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상당한 양과 소와 염소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20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재산입니다. 이 재산을 불리기에 그곳이 참 좋은 곳이었을 겁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야곱은 그동안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았기에 문화가 발달한 세겜에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벧엘로 돌아오기를 바랬습니다. 벧엘에 돌아와야만 그가 이제까지 가졌던 순수한 신앙을 지킬 수가 있고 하나님께 단을 쌓으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그를 하나님의 백성의 조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의 안전과 부의 축적과 세상적인 재미를 따라서 결국은 세겜에 주저앉고만 것입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아니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있는 야곱을 움직이는 데에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지만 야곱의 가정에 이러한 불상사를 일으켜서 야곱으로 하여금 벧엘로 돌아가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35장에 보면 야곱이 마침내 그것을 깨닫고 그곳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벧엘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을 보면서 야곱을 향한 높은 사랑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왜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아니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그로 하여금 벧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요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나 혼자만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집이 구원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복이 우리 이웃에게도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들이 본분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세상 재미만 추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안하고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일을 하면서 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불상사와 같은 일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혹시 여러분들 가정의 자녀와 자신에 ,직장에 원하지 않는 일이 있으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왜 이러한 일이 있는지 의문이 생기십니까?

그렇다면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러한 일을 허락하셨는지 생각해보면 분명히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시려고 하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살고 교회를 떠나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불상사를 주셔서라도 우리를 거기서 끄집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러한 불상사가 생기기 전에 하나님 중심 ,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혹시 그렇지 못해서 이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고 서야 할 곳에 서고 하나님 중심 ,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해 나감으로써 우리에게 닥친 이 불상사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루시는 기회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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