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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메뚜기(?)…그들은 밥 / 민 13:30 ~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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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우리는 메뚜기(?)…그들은 밥
성경본문 : 민수기 13장 30절~14장 10절


그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
그들은 우리 밥이라 !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 그들을 두려워 말라 !'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민수기 13장 30절 ~14장 10절) 
  <목회기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름다운 계절에 살게 하시고
주일에 예배할 믿음과 예배에 참석할 조건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귀한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기둥교회 성도들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도우사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 귀한 시간에도 온전히 정성을 다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구석 구석에 앉은 이들, 유아실에 있는 이들
모든 곳에서 에배 드리는 이들마다
은혜를 충만히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석구석에서 이름없이 빛없이 봉사하는
모든 이들의 땀흘림이 헛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군대에, 외국에 나가있는 성도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
저들도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까지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시고
병든 이들에게 하루속회 회복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명함을 주고 받습니다.
    제 명함 뒷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드린 저는 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잊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잊으신다면 당신은 영원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예수님을 잊어 버리면 실패자가 된다"는 말이 공포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말을 들어서 명함을 새로 만들면서 다음의 글로 넣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후 당신이 나를 잊는다 해도 당신은 잃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을 잊는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여러분, 옆의 분들과 "우리가 만난 후 당신이 나를 잊는 다 해도 당신은 잃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명함을 만드실 때 이 글을 넣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안내석에 있으니 제 명함이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잊고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요즈음 출판되는 책이나 목사님들의 설교에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비전(vision)"이라는 말입니다. 저도 이 단어와 연관된 설교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다시한번 그 뜻을 확인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이 있습니까?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망에 빠져 인생을 포기한 사람에게도 소원이 있습니다. 어떤 소원이냐면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지금은 돌아가신 여자 권사님 한 분이 저를 찾아오셔서 "빨리 죽게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빨리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하나님, 건강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셔서 오래 오래 살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권사님은 큰소리로 "아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지나서 교회 앞에서 그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허리를 붙잡고 걸어 가시기에 "어디 가세요?"라고 여쭤봤더니 "허리가 아파서 약국에 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죽게 해 달라고 기도요청하던 분이 아프다고 약국에 가셨습니다.
  사람이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할 수 없어서 속상하다는 표현입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아유, 내가 빨리 죽어야 되는데"라고 하시는 것은 100%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어서 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vision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 '되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야망과 비전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망(ambition)과 비전(vision)은 다릅니다.
• 야망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비전(vision)'이란 말은 라틴어 '비지오(visio)'에서 온 말입니다.
      비지오 = "내다 보다"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 비전은 문자 그대로 "무엇을 본다"는 말입니다.
 
비전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는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꾸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비전을 가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지금 확인되지 않은 천국에 간다는 사람이고, 아무도 증명해 내지 못한 영생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면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비전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vision을 담은 고백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 속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꾸는 꿈이 있느냐?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여러 사람을 보아도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와 하나님을 등졌을 때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말과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 다윗이 비전을 가졌을 때는 골리앗을 눕힐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자 자신의 정욕조차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 사울이 비전을 가졌을 때 많은 왕들을 정복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었을 때 자신의 질투심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 노아가 비전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방주를 지어 인류의 존속에 기여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었을 때는 술에 취해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엘리야가 비전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릴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었을 때는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하였을 뿐 아니라 자살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힘들고 어렵다면 "지금 내가 하나님을 등지지 않았는가"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하나님을 향해 있느냐 아니냐> 입니다.
 
 
Vision은 보는 것입니다.
 
비전(vision)은 보는 것입니다. 남이 볼 수 없는 것,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봅니다. 그래서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제 눈에 안경"입니다.
여러분, 중매 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둘이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서로 아니라고 하면 중매한 사람이 답답해 합니다. 눈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3장 30절~14장 10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지파의 족장들을 보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족장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열 명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입니다. 그 땅은 우리가 갈 수 없는 땅입니다. 거기는 성이 견고하고 그 사람들은 키카 크고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절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민13: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땅을 보고 와서 "그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심히 아름다운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열 명의 사람은 거기는 사람들의 키가 크고 성이 견고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9)고 했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열 사람이 본 것과 두 사람이 본 것이 다릅니다. 눈은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눈으로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미래와 사람, 그리고 사건을 보는 것이 비전입니다.
 
이 세상에는 몽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몽상이라는 말은 "꿈속의 생각,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생각"을 말합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복권 10억이 맞는다면 무엇을 할까'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런 것이 몽상입니다.
- 몽상가는 생각은 하지만 계획하지 않습니다.
- 몽상가는 말은 하지만 행함이 없습니다. 시작하지 않습니다.
- 몽상가는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아도 배우거나, 훈련받거나
          간섭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력하지 않습니다.
- 몽상가는 고난을 거절합니다.
          힘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만 잘 합니다(입으로만 잘 합니다).
 
 
vision을 가진 사람은
생각하며 계획하고, 행동하며, 훈련받기를 감당합니다.
 
믿음 안에서 vision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 vision을 가진 사람은
      - 생각하며 계획합니다.
      - 말하기 보다 행동합니다.
      - 기꺼이 배우고 훈련받고 고난에 동참하기를 즐겨합니다.
 
한 마디로 비전을 가진 사람은 비전을 위한 정당한 값을 치룰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이 세상을 보세요. 이 땅의 어떤 일도 대가를 치루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 가운데 "죄의 삯은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죄 지은 사람들을 구원해 내시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대가인 죽음을 치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십자가에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이미 치르셨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로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앉아서 무엇이 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몽상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값을 치루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통성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해도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밤새 철야기도 하고 중간고사 볼 때 "주여 믿습니다."하고 연필을 굴려 보아도 소용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비전을 품고 달라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변화하려면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합니다.
  안락한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집착하던 것을 놓아야 합니다.
  아끼며 붙들고 있던 것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vision)을 믿음으로 발견하였다면 비전을 방해하는 것을 기꺼이 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새겨 두고 잊지 않는 "집착"은 변화의 큰 장애물입니다.
집착을 버려야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기 존재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마4:20~22). 제자들이 가진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비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vision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과 문제들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 vision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어려움과 문제들을 각오해야 합니다.
 
폴 하비(Paul Harvey)는
  "성공의 도상에 있는 지 아닌지는 항상 알 수 있다.
  성공하는 길은 언제나 오르막이다"라고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말입니다.
비전(vision)을 가진 사람은 방해물과 곤고함, 반대와 낙담,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끝까지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단호한 결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장애물로 여기고 불가능한 것이라 말하는 것도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실패하게 하신 것, 눈물 흘리게 하신 것, 어려움을 겪게 하신 것에 모두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고 믿고 낙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이 이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믿고 낙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Vision을 가진 사람은
비전을 함께 할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 vision을 가진 사람은 비전을 함께 할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승리하는 사람은, vision을 가진 사람은…
- 모범이 되는(될만한)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가까우십니까?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십니까?  자기가 만나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인가 확인해 보세요.
- 나은 사람을 바라보고, 나은 사람을 닮으려 하고, 나은 사람을 가까이 하고 사귀려 해야 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 기도하는 사람을 ① 바라보며 ② 닮으려하고 ③ 가까이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 감사하는 사람을 ① 바라보며 ② 닮으려하고 ③ 가까이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사귀면 그 사람에게도 감사할 조건이 생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 사람을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무나 다 사귀면 안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4~15절에 보면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고 했습니다.
 
어제 저녁에 식당에 식사하러 갔습니다. 제 뒤에 두 분이 식사를 하시는데 탁자위에 소주병이 두 개나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벌써 한참 취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 중에 아주 점잖게 생긴 한 분이 제가 목사인 줄 알고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한 가지 아까운 게 있어. 다시 생각해 봐도 아까워."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아까운 걸까' 궁금하여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마누라가 십일조 하는 건 아까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얘기하기를 "그래도 난 우리 마누라가 고마워. 결혼해서 이때까지 내게 최선을 다해 주었고, 살기 위해 애썼고,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고, 언제든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내가 우리 마누라 때문에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은 한번도 없어. 난 우리 마누라한테 참 감사해요. 그러니까 십일조 내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그런 여자를 얻는데, 또 그렇게 사는데 필요한 수업료로 그 정도는 내야 될 것 같아."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식사하는 분들과 그분의 말을 듣고 함께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얘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그분이 자기 아내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저 가정은 화목한 가정이고, 저 분은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또 그분의 아내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 하고 본이 되게 살았으면 그분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여러분도 감사하며 감사의 대상이 되도록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믿는 우리는
• 하나님 마음에 합하려 노력하는 사람, 주일 지키고, 예배 귀중히 여기는 사람, 빛되고 소금되려 애쓰는 사람을 ① 바라보며 ② 닮으려하고 ③ 가까이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① 바라보며 ② 닮으려하고 ③ 가까이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잘 믿으려는 사람은
<교회>도  좋은 교회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목사가 아니라면 이 기둥교회에 다니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목회 합니다. 제가 우리 교역자들이나 직원들에게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목사인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아니다'라는 점이 발견될 때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 예배자는 좋은 교회를 만나야 합니다.
<나쁜 교회>도 있습니까? 하며 의문을 가지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교회, 신실치 못한 교회…가 우리주변에 있습니다.
부끄러운 것이 많고 부족한 제가 이런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지만 좋지 않은 목사,성경에서 가르치는 거짓선지자 같은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좋은 교회」,「좋은 목사」를 만나기 위해 애쓰고 기도해야야 합니다.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또 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예수 믿는 사람은 가까운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고 열을 내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먼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뜻도 아닙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유치원이나 학원이 있으면 무조건 그리로 아이를 보내나요?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으면 거기만 갑니까?
실력이나 적성 그리고 장래희망에 상관없이 가까운 곳에 대학이 있으면 무조건 그리로 가나요?
그런데 왜, 교회는 가까운 곳에 가야 합니까? 그것은 '편의주의적인 생각' 일뿐 신앙적이지는 못한 말입니다.
 
• 좋은교회는 멀어도 다닐 가치가 있습니다.
집 가까운 교회에 나가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출석할 교회를 정해 놓고 그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살집을 준비해야 옳은 것'입니다. 집을 먼저 정해놓고 가까운 교회를 찾는 것은 신앙적인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예배자는 가까운 교회가 아니라 좋은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교회를 신중히 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잘못된 교회와 목회자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①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교회로서, 설교자는 성경을 설교하며 성경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교회와 목사 그리고 성도들은 주일을 주일답게 거룩하게 지키고,
                            예배를 예배답게… 정성을 다해 드리며,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를 귀중히 여기며,
                            바르게 선포되는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는(딤후4:3∼4)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② 생명력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는 살아있는 것 같으나 <거룩한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죽은 교회(계3:1)가 있습니다. 그리고 병든 교회, 졸고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 생명력 있는 교회는 말씀이 살아있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살아있습니다. 
- 살아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꿈틀거리는 교회입니다. 
- 한마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존재하는
                      교회 같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주일>을, <예배>를… 그리고 <설교>를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런 교회는 아침예배 한번으로 주일을 때웁니다.
- 지금 우리 주변에는 주일 오후에 교회 문을 잠그고 여느 공휴일처럼 보내는 교회와 목회자들 그리고 성도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자신들이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변형시켜 놓고 더 신나고 재미있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듣는 예배와 설교를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그런 교회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③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가르치며, 하나님 한 분의 눈치만 살피며,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는 말 많은 사람, 오래된 교인, 주도권을 쥔 장로나 권사 또는 집사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의 눈치를 봐서도 안된다. 그러면 차라리 목회를 그만두라. 밥은 먹고 살 수 있다. 밥을 먹고 살기 위해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한 분의 눈치만 보며 목회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 한 분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보며 목회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교회 밖의 일보다는 교회 안의 양떼들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며, 크게 이름나는 일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을 싸매고 어루만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한 분의 눈치만 보며 목회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④ 평안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목사와 목사, 목사와 장로, 목사와 일반교인들이 평안하여 서로 귀중히 여기며 다툼이 없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싸우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기둥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제 생각에 '기둥교회는 좋은 교회'이지만, 기둥교회에도 입을 쭉 내민 <오리입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리입보다는 예쁜 입을 가진 교인들이 더 많습니다. 교회를 찾으면 마음이 편하고, 예배를 드리면 감사가 넘치고, 말씀을 들으면 깨달아지며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고, 힘이 들어도 봉사하는 기쁨이 있고, 헌금을 드려도 부족함에 죄송한 마음이 들고, 자신이 좋은 교회에 출석하는 자부심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까'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한가지만 더 설명하면,
⑤ 좋은 교회는 '중심'이, '촛점'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입니다(히12:2).
좋은 교회는 목사가 중심이 아닙니다. 화려한 건물이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모이고 멋진 프로그램…등이 있더라도 그런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좋은 교회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는" 교회입니다(히12:2). 예수님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움직여 가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상적인 교회, 완전한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기둥교회도 흠이 많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습니다. 방주 속에 각종 짐승들이 들어갔던 것처럼 각종 짐승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냄새도 나고 시끄럽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까?"노력하며 애쓰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충동적인 야망과 vision의 분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사귈까, 기도하고 감사하는 사는 사람을 사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까> 애쓰고 노력해야 하지만 충동적인 야망과 vision을 혼동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판단해야 할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변화를 일으키기 원하는 사람 중에 야망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야망이 자신과 맞지 않게 크거나 충동적인 경우는 오히려 자신과 이웃에게 피해를 줍니다.
 
지금, 다시 확인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vision이라는 것이 단순한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 반에서 일등은 한 명밖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꿈꾸기를 원하시는 것은 단지 1등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돈을 벌어서 사업에 성공해야 하는 비전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려고 하는 성공시대가 얼마나 하나님의 생각과는 멀어져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부 잘하고,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 돈을 잘 버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성공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꿈은 <전교 1등, 반에서 1등하고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꿈은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이 하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일까?]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 갖기 원하는 것이 [이웃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vision을 가진 사람은
견고히 서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 vision을 가진 사람은 견고히 서고(stand firm)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는 천국의 소망으로 영생을 소유한 사람답게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은 비전의 사람은 힘이 들고 어려워도, 실패와 어려움을 겪고… 시련과 풍랑, 폭풍을 만나도 …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고전15:58).
 
여러분, 이 세상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이 배웠어도 경험이 많아도 이 세상이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입니다"라고 한 것처럼 이 세상은 살기가 어렵고 살벌합니다.
우리보다 똑똑하고 잘 난 사람, 큰 사람이 많습니다. 성읍이 견고해서 감히 우리 같은 사람은 얼씬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자기 자신을 메뚜기로 여기며 살면 안됩니다.' 그것은 열 명의 정탐꾼 같은 생각입니다. 세상이 높고 잘난 사람이 많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 저들은 내 밥이다>라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힘이들고 어렵지만, 가족의 문제, 자녀, 사업…등에 문제가 있고, 삶이 힘들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롬8:28). 비록 이 땅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시55:22)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요14:18).]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메뚜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향해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십니까?
메뚜기입니까? 밥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비전을 가졌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메뚜기로 보고 사십니까? 아니면 저들을 밥으로 보십니까?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 살이지만, 두려워 하지 않는 삶이 되기 원합니다.
비전 없이 어두운 그림자만 보고 왔던
열 명의 정탐꾼과 같은 사람이 이곳에 왔다 할지라도
저들 이 시간, 세상을 향해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선언하며
당당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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