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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험한 영광 / 삿 8: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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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8:22-27 / 위험한 영광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성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것은 아마도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이름 석자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게 될 때 그것을 인생의 성공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성공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처럼 이름을 날리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게 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성공 개념에서는 이름 석자를 남기고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부러움을 살지 몰라도 우리 신앙의 세계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는 그 순간이 영적으로는 나락에 떨어지는 실패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기드온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의 대표적인 샘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원래 아주 소심하고 미약한 보통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서 그 당시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미디안 족속들을 물리치고 자기 민족을 구원해 냈습니다. 특별히 그는 수십만 명의 대적과 싸우는 데 있어서 단 삼백 명의 군사만을 이끌고 나가 싸워 이기는 놀라운 기적을 이룩했습니다. 이처럼 기드온이 대승리를 거두었을 때 기드온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기드온이 이처럼 미디안의 대군을 물리치고 개선을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드온을 찾아와 그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드온은 이제 이스라엘에서 당대에 가장 인기있는 실력자로 부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드온은 백성들의 요구대로 왕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위대한 공적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드온은 예상 밖의 대답을 합니다.23절에서 보면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너무나 멋있고 아름다운 신앙적 고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그만 교만하게 되어 넘어지고 마는데, 기드온은 그 절정의 순간에서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며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를 않고 그 모든 위대한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신이 우리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라고 찬사를 그에게 돌렸습니다만, 기드온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하고 그들의 말을 반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는 백성들의 부탁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요,우리 삶의 주권자요,주인이 되신다, 이것이 기드온의 고백이었습니다만, 이런 고백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항상 고백해야만 할 가장 근본적인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기드온은 위대한 믿음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큰 승리 때문에 그는 위대한 자가 아니라, 그 큰 승리 앞에서도 자기를 높이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믿음의 영웅이며,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절정의 순간에 조용히 물러서는 기드온의 모습은 우리 신앙의 귀감이 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이러한 기드온도 끝까지 완벽한 성공의 삶을 살지는 못한 것을 보게 됩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기를 사양한 뒤에 그러나 백성들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합니다.즉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나가서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탈취한 귀고리를 달라고 했습니다.그러자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이 빼앗은 수많은 금귀고리를 아낌없이 가져왔습니다.귀고리뿐 아니라 각종 패물을 갖다 바쳤습니다. 자기들을 구원해 준 은인이요 민족의 영웅에게 그 정도의 물질은 조금도 아까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기드온은 왜 백성들에게 금붙이들을 달라고 합니까? 이것은 비록 왕은 되지 않겠지만 물질적인 보상은 받아야 하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27절에 보면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많은 금붙이들을 가져오자 기드온은 이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이라고 하는 것은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서 겉옷 위에 받쳐입던 조끼처럼 생긴 옷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제사장들 에봇 옷을 입고 에봇에 들어 있는 우림과 둠밈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돌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곤 했습니다.아마 기드온도 이번 전쟁을 치르면서 여러번 제사장의 에봇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는지도 모릅니다.그래서 기드온이 금 에봇을 만든 것은 그처럼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싶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전리품인 금으로 에봇을 만든 큰 명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게 하고자 함이었다고 하나, 그처럼 에봇을 만든 동기 가운데에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욕망도 조금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기드온의 고향 마을인 오브라에 보관된 그 금 에봇은 기드온의 사후에 ‘기드온의 에봇’이라고 불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에봇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물건으로 사용이 되다가 나중에는 우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즉 27절 이하에 보면 이 에봇이 기드온과 그의 집안에 올무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기드온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이 만든 이 에봇 자체에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 양 그 앞에서 절을 하고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타락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이룬 위대한 승리와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하는 백성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물리친 신앙적 결단에 비한다면 금으로 에봇을 만들게 하고 그것을 자기 성읍에 두어서 기드온 자신의 이름을 기념하도록 하게 한 일은 아주 소박하고 사소한 일로 보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처럼 기드온의 소박한 동기에서 만들어진 에봇이 장차는 이스라엘 전체에게 올무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오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드온은 거대한 기념비를 만든다든지 해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이름을 남기려고 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금으로 에봇을 만드는 사소하고 소박한 인간적인 실수가 훗날에 그의 후손들에게는 크나큰 올무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오늘도 무언가 인간적인 흔적을 남기고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우리의 일체의 행위는 결국은 우상 숭배와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줄로 압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애국이라는 이름처럼 수많은 도둑놈들이 숨는 은신처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오늘 한국 교회에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실은 인간의 영광을 구하고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고자 할 때가 대단히 많습니다. 칼빈은 “모든 수고는 내가 하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만, 오늘 우리 신앙의 세계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고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이름 석자를 남기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수고를 하고서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진정한 성공이라고 하는 깨달음이 우리 한국 교회에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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