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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께서 높여주실 때까지 자신을 낮춰라! / 사 50:4-9, 빌 2:5-11,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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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높여주실 때까지 자신을 낮춰라! 
사 50:4-9, 빌 2:5-11, 마 27:11-54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독일의 철학자인 괴테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쓴맛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하고는 진리에 대해서 말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어본 사람이라야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난을 많이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볼 때, 그 신앙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과 시련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이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아픔이 있어야 성숙해지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아픔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고통이나 환난을 겪지 않고 인생을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게 되는 것이란 거의 없습니다. 공짜라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모아'가 쓴 '유토피아'라는 책을 모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이상향(理想鄕)의 세계를 그렸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다는 가상(假想)의 그 섬나라에서는 누구나 다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살면서 고통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 소유의 땅이나 재산이 없고,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토피아'라는 말은 '아무데도 없다'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결국 토마스 모어는 '이 세상 아무데도 그런 나라가 없다'는 것을 밝히려고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통 없이 편안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많은 고통을 겪으며 수고해야만 살 수 있게 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이전에는, 토마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인간은 온갖 좋은 복을 다 누렸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

이 베풀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인간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고유권한까지 차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그 결과, 그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땀 흘려 수고를 해야만 먹고살 수 있게 되었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어야 했습니다. 이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인간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 죽음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가장 큰 적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다 허무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이 죽는 그 순간에 다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평생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속절없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 죽음이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사는 중에 기쁨을 맛보는 순간은 잠깐이고, 대부분의 세월을 많은 고생과 수고만 하다가 아무 것도 가져가는 것 없이 빈손으로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빈손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더 갖지 못하고 누리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은 어느 한 순간도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돈이나 명예가 좀 있어서 하나님을 부인하며 큰소리치던 사람들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면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돈이나 권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에 힘깨나 자랑하던 사람들도 늙어죽게 될 때쯤이면 겸손해지기 마련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지금 병상에 누워계십니다. 아버지는 자존심도 강하시고 아주 위풍당당하게 사시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께서 그 당당하던 모습을 다 잃어버리시고,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토록 반대하시던 교회인데, 아버지께서는 몇 달 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부활절 아침에는 세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천하의 영웅호걸들도 죽음 앞에서는 두 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행한 그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인간은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 불순종의 자식들(엡2:3,5:6)'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 진노하심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시비비를 따져서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사랑과 긍휼하심이 더 많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불쌍하게 죽어가고 있는 인생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애쓰셨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모습 그대로 올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갖고 계시던 권위와 능력, 그리고 그 큰 영광을 다 버리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훨씬 더 자기를 낮추셔서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주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직접 실천하심으로써 삶의 모범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말씀을 완성하셨습니다. 즉, 옛 아담이 더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반면에, 새로운 아담 예수님은 죄인의 자리까지 자신을 낮추심으로써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즉, 주께서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순종의 도(道)를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옛 아담은 불순종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불행을 당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심으로써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던 것입니다.

요컨대, 오늘 우리가 두 분 중에 누구를 본받고 따르느냐에 따라 그 인생길이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옛 조상 아담이 물려준 그 죄를 그대로 지닌 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멸망에 빠지게 되거니와, 주님 예수를 본받아 하나님께 충성하면 생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신 자신은 십자가를 져야 할 아무런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면서 아무리 수고를 많이 해도, 그 모든 수고를 헛되게 하는 죽음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몸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예수께서 보여주신 모범적인 삶의 자세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살아야 할 예수님의 자세는 십자가를 지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겸손'입니다. 주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으리라(11:29)'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아담이 물려준 교만이 우리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사람들은 욕을 퍼부으며 비웃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침을 뱉거나 갈대로 때렸습니다. 그리고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자신을 구원해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고 하면서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겸손히 다 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를 본받아 삶으로써 구원을 이루어야 할 주의 제자로서 과연 얼마나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지요? 주님을 위하여 욕을 먹거나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잘 참아내고 있습니까? 사실 저 자신도 심히 부끄럽습니다. 끝까지 잘 참고 견뎌내야 하는데, 감정이 섞인 말과 행동을 한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다'고 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서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는다(29:23)'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름 받은 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죽어져야 합니다. 자아가 죽어지면 주님이 살겠거니와, 내가 죽지 않고 살면 주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2.우리 자신은 더욱 낮추고 오직 주님만을 높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은,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자마자 배우게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은 지 오래 되었어도 계속 높아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심지어, 세상 명예와 부귀를 다 버리고 복음전도에만 힘쓰겠다고 나선 목사님들까지도 명예를 탐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서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종려주일이면 '겸손'과 '고난'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죽음을 싫어하셨지만,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신 후에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뜻과 내 감정에 따라 살면, 그 길은 곧 망하는 길입니다. 허무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내 뜻을 버리고 주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 길이 곧 사는 길입니다. 하지만, 내 뜻을 버리고 주의 뜻을 따르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고난 중의 고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 그리고 비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낮춰 주의 뜻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올리시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 땅에서는 잠시 고난을 당하나,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과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잠시 자신의 감정과 사견을 억제하면, 하나님께로부터 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된다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낮춰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살아야 합니다. 물론 악한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온갖 시험과 계략을 써서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셔서 그 악한 세력을 물리쳐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자세를 본받아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주의 십자가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은 주께서 돌아가시자, "이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하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들이야말로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들을 수 있도록, 더욱 주님의 겸손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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