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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2) / 출 28:3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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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2) 
출애굽기 28 : 3 - 14

성경에 '거룩'이란 말은 오늘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이 말의 효용도마저도 설자리를 잃은 상태입니다.
세상이 거룩이란 말을 필요없게 만든 것이 아니라 마땅히 거룩해야 될 그리스도인들이 거룩을 행동화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이란 말이 현대인들에게 어색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은 성도의 정체성인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요구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1절에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거룩'은 제사장을 특징짓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일반 백성들의 그 복장을 달리했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는 주지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옷의 재료가 모두 화려하고 값진 것들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옷이 이렇게 화려한데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습니다.

Ⅰ. 제사장은 에봇(Ephod)을 입어야만 합니다.

본문 28장 4절에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라고 했습니다.
『에봇』( )은 대제사장이 입는 앞치마와 같은 겉옷입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디자인하신 대제사장 예복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입었던 옷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봇을 대제사장이 성막이나 성전에서 일하는 동안 반드시 입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예복을 성막이나 성전 밖에서는 입을 수 없었습니다. 에봇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을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양쪽 어깨에는 두개의 견대를 달았습니다. 가슴에는 판결흉패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허리에는 에봇과 동일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띠로 디자인되었습니다.

Ⅱ. 에봇(Ephod)의 종류입니다.

성경에는 대제사장이 입었던 에봇 이외에도 다른 종류의 에봇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 세마포 에봇(The Limen Ephod)
사무엘이 어렸을 때 세마포 에봇을 입고 실로의 성소에서 여호와 앞에 섬겼습니다(삼상 2:18)
사울은 놉에 있는 세마포 에봇 입은 제사장 85명을 살해했습니다(삼상22:17-19).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겨올 때 다윗은 세마포 에봇을 입었습니다(삼하 6:14). 이러한 종류의 에봇 즉, 세마포로 만들어진 에봇은 특별한 행사 또는 특별한 직임을 맡은 사람이나 지방의 성소에서 사역하는 제사장이 입었던 옷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에봇은 제사장만이 입는 특별한 옷입니다.

2) 우상으로서의 에봇(The idolatros Ephod)
기드온은 미디안으로부터 탈취한 노획물을 이용하여 에봇 하나를 만들어 그의 고향 오브라에 두었으며 사람들은 이 에봇을 음란하게 위했습니다(삿 6:26-27).
에브라임에 사는 제사장 미가는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삿 17:5).
놉에 있는 성소에는 에봇이 세워져 있었으며 골리앗의 검을 보자기에 싸서 성소의 에봇 뒤에 두었습니다(삼상 21:9).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된 에봇은 하나의 우상처럼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입었던 에봇에는 판결흉패가 있었습니다. 판결흉패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하나의 기구였습니다. 이러한 에봇에 있는 판결흉패의 용도가 사람들에게 에봇을 하나의 우상으로 섬기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Ⅲ. 에봇(Ephod)의 재료와 에봇(Ehpod)의 상징적 의미입니다.

1) 재료가 주는 상징적 의미입니다.
본문 28장 6절에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을 위해서 디자인 된 에봇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흰색의 베실로 만들었습니다. 금실을 제외한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흰색 베실은 성막의 뜰 문, 성소의 문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을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와 동일합니다.
이렇게 에봇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실의 색깔들은 성막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습니다.

(1) 청색(blue)입니다.
청색은 신성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일반적으로 청색은 하늘과 생명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그래서 청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스런 하늘을 연상하게 하는 동시에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상징하며 생명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청색은 생명되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특별히 청색은 오늘날 장로교의 상징적 색깔이 되었습니다.

(2) 자색(purple)입니다.
예로부터 자색은 왕이나 귀족들이 입는 의복의 색깔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에 보면『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라고 했습니다.
자색은 왕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색이었습니다. 미디안 왕들이 자색 옷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삿 8:26). 모르드개가 바사 왕 아하수에로에 의해서 자색 겉옷을 입었습니다(에 8:15). 벨사살 왕은 손가락이 나타나서 쓴 글자의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에게는 자색 옷을 입힐 것이라고 약속합니다(단 17:29).

외경에 대제사장과 왕자들은 자색 옷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10:20,62; 11:58; 마 4:38).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과 함께 가시 면류관과 자색 옷을 입히고 조롱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7-18절에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에봇에 사용된 자색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왕권을 소유한 자의 위엄을 가져야만 합니다. 성도는 모든 것이 신중해야 하고 교회에서 즉흥적인 말들을 삼가야 합니다. 즉흥적인 말이나 행동은 왕적 지위를 가진 성도로서의 가질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3) 홍색(scarlet)입니다.
홍색은 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입니다. 그러므로 에봇에 사용된 홍색 실은 고난받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고난을 피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주의 길을 따르지 못합니다. 영광은 고난의 열매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는 주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교회는 위기와 문제들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만일 교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 교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죽은 교회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면 주님은 고난받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생은 고난이었습니다. 고통의 짐을 지고 사셨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영광으로 삼는 자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8절에『…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3절에『…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도『…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영원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 받은 하나님의 후사입니다(롬 8:17). 그러므로 오늘의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4) 흰색(Linen)입니다.
에봇을 만들 때 사용하는 베실은 세마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실과 동일하게 흰색입니다. 흰색은 깨끗함, 성결함, 순결함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으신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러므로 에봇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흰색 베실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의로운 편에 서 있어야 바른 것입니다. 인간적인 애정에 지배를 받게 되면 의는 변질되고 맙니다. 그래서 목사는 진리의 가르침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사사로운 감정을 벗고 냉정한 자세를 견지해야만 합니다.

(5) 금실(Gold)입니다.
금은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막에서 사용되는 금은 변치 않는 신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믿음을 의미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고 했습니다. 『금』은 '믿음의 변함없음'과 정련된 상태인 '순전함'을 상징합니다. 순금일수록 오랜 정련의 기간이 필요하고 순도가 높을수록 가치가 높습니다.

2) 에봇(Ephod)의 현대적 의미입니다.

(1) 에봇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에『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곧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요한복음 12장 23절에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에봇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시편 27편 4절에『…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 4장 2절에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싹』은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2장 1절에『…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 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에봇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사건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찬송가 144장에도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 받네"라고 찬송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봇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에서 에봇이 상징하는 열매를 보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세 번째 묻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근심하여 예수님께 대답하기를『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고, 요한복음 21장 18-19절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예복 가운데 하나인 에봇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색깔의 실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1) 성도의 영광은 순교로서 복음의 향기가 되는 사 명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했습니다.
『향기』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향기의 내용 즉, 냄새의 종류입니다. 둘째, 향기의 특성입니다.
라일락꽃의 향기와 장미꽃의 향기가 서로 다르듯이 모든 향기에는 그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향기로 비유하여 그 향기는 그리스도의 냄새라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냄새를 소유한 향기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냄새는 어떤 종류의 냄새였습니까?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바울은『…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냄새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바울의 사역과 본문의 문맥에서 살펴볼 때 복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냄새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을,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향기의 일반적인 특성이 무엇입니까? 어느 곳에서든지 향기는 퍼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냄새를 발산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복음의 냄새를 발산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이 복음의 냄새를 생명의 향기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사망의 향기로 여기든지 바울은 향기의 일반적인 특징인 냄새를 발산했습니다.
순교적 자세로 이 복음의 향기를 발산하는 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2) 성도의 영광은 순교로서의 복음의 편지가 되는 사명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2절에『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선언합니다. 이 편지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 이 편지의 저자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선언합니다.
둘째, 이 편지는 사람이 먹물로 쓴 편지가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영으로 쓰신 편지입니다. 다만 바울은 하나님에 의해서 사용된 도구에 불과하다고 고백합니다. 먹물을 이용한 편지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 편지는 지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인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지우거나 고칠 수 없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편지입니다.
셋째, 이 편지는 종이나 돌 판에 쓰여진 편지가 아닙니다. 마음에 쓰인 편지입니다. 돌 판에 새겨진 율법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편지입니다.
넷째, 이 편지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편지(고후 3:2)이며 모든 사람이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편지입니다. 순교적 자세로 복음의 편지가 되는 사명이 성도의 영광입니다.

3) 성도의 영광은 순교적인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 다.
로마서 12장 1절에『…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영광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삶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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