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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보고, 말하는가? / 민 13: 3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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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고, 말하는가? / 민 13: 30~14:10
 
할렐루야!
저는 지난주간 괴산군 연합부흥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군수님까지 부흥회에 참석하시더군요.
그런데 군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저와 마주 앉아 식사하고 차 마시는 분들마다
"목사님 고추는 괴산입니다.
고추는 괴산 것이 최고입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하시더군요.
그 말을 계속 듣다 보니 <고추는 괴산이다>라고 각인되었습니다.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괴산 사람들이
"고추는 괴산이다"라고 고추를 알리느라 애를 쓰는데
과연 기둥교회 성도들은
"기둥교회를 어떤 교회라고 생각하고 말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에 <기둥교회는 평안한 교회>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일터가 평안하고…
평안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함께 찬양합니다.
♬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요14:27)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순절
 
지금은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 중에 하나인
사순절(四旬節, Lenten season)기간입니다.
금년은 지난 수요일(2월 25일)부터 4월 10일(부활주일, 4/11 하루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계산하여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지난 25일 수요일은
Ash Wednesday(재의 수요일) 이라고 합니다.
재는 슬픔과 죄의 회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회상하면서
회개하는 영적 준비기간이요,
부활과 영생의 믿음을 견고히 하는 영적 성숙의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는 헌신, 섬김, 희생을 뜻하는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강단의 꽃 장식도 보라색으로 장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주일 지키는 것과 예배드리는 일에 정성을 다하며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려는 진지함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말을 삼가고, 불필요한 자기 고집을 내세워 논쟁하거나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며 경건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금식(禁食)을 많이 합니다.
40일 동안 또는 고난주간에 금식하지만
그것도 어려운 사람은 고난주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달려 돌아가신 날인 금요일에 금식합니다.
그것도 어려운 사람은 고난주간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시던 시간에 금식합니다.
금식 뿐 아니라 절식(絶食)을 하기도 합니다. 평소에 먹었던 양보다 더 적게,
반찬도 적게 먹는… 등 모든 것에 절제하며 지내는 경건한 기간입니다.
 
 
비전(Vision)은 내다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이유로 사순절을 경건하게 지내며 부활의 기쁨을 되새겨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막16:16, 행16:31).
우리는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었습니다(요3:16).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을 보장받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빌3:20).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 것입니다(엡3:12).
우리는 비록 이 땅에 살지만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삽니다.
그냥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집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히11:13~16).
그러나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과는 보는 것이 다릅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말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가야할 곳도 모른 채"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구체적인 계획과 과정이 확인되어서 떠난 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가면 무슨 일이 있을 지,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알고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시는 방향을 따라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구체적인 계획과 과정
그리고 그에 따라 예측이 가능한 결과가 보이는 것, 볼 수 있는 것은 비전이 아닙니다.
비전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함께 계심을 믿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비전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갖는 야망(ambition)이 아닙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비전(vision)이란 말은 "내다보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비지오(visio)'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은 문자 그대로 "무엇을 본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 모두는 비전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확인되지 않은 천국에 간다는 사람이며
아무도 증명해 내지 못한 영생을 산다고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천국을 보고, 영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
보통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사람…
그 사람이 구원받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3장 30절~14장 10절에 보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사막)에 도달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지파의 지도자인 족장들을 보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은
생각이 다른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열 명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입니다. 그 땅은 우리가 갈 수 없는 땅입니다.
    거기는 성이 튼튼하고 사람들의 키는 크고 강한(powerful)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습니다."라는
절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민13:32~33).
 
그러나 똑같은 땅을 보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그 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민14:8).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있으니 가자고 했습니다.
 
열 명의 사람은 거기 사람들이 키가 크고 강하며
성이 견고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14:9)고 했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열 사람의 보고와 두 사람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열 명은 갈 수 없다 하고, 두 사람은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어느 쪽이 옳습니까?
 
눈은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릅니다.
비전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봅니다.
 
성읍이 견고한 것…, 사람들이 크고 강한 것…
그들과 비교하면 자신들이 메뚜기 같은 것…
그것은 상식이고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정확한 판단입니다.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경험적으로 분명한 머리의(이성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성읍이 견고하지만…, 사람들이 크고 강하지만…
그들과 비교하면 자신들은 보잘 것 없지만… 메뚜기 같지만…
그 상식과 경험,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결과 외에
한 가지 더 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비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을 보는 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들의 보고는 다른 10명의 사람들의 보고와 달랐습니다.
따라서 합니다.
    "능히 이기리라" (민13:30)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민14:9)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민14:9)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민14:9)
똑같은 상황을 보았고, 같은 성읍을 보았고, 힘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10명의 보고와 2명의 보고는 상황만 같을 뿐 전혀 달랐습니다.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보화를 보는 능력입니다.
 
자신이 금방 편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비전이 아닙니다.
비전은 현재의 능력과 가능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전이 있는 사람은 모험을 합니다. 고난도 견딥니다.
그러나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투덜댑니다. 원망합니다.
왜? 모르니까.  못 보았으니 답답해 하며 돌도 치려고까지 했습니다.(민14:10)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보화를 보는 능력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밭에 감추인 보화"(마13:44)를 본 사람처럼 본 사람은 투자를 하고 모험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험이 아닙니다. 확신에 찬 전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의 비전을 보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험이라기보다 확신에 찬 전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쉬웠겠습니까?
주변에서 아브라함 보고 잘 한다고 박수만 쳤겠습니까?
미쳤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떠났습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문제와 방해 앞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비전(Vision)을 가진 사람은 말하지 않습니다.
토의하지 않습니다.
 
말하기 보다 행동합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비전을 위한 정당한 값을 치를 마음을 정한 사람'입니다.
비전을 방해하는 것이 있어도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 땅의 어떤 일도, 심지어 하나님의 사역조차도
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앉아서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비전의 사람이 아니라 "몽상가"일 뿐입니다.
기도를 했으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비전(Vision)을 가진 사람은 포기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했던 사람들의 증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위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포기했습니다.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전의 좋았던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어느 누구도 포기의 경험 없이 위대한 일을 했거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지 못했습니다.
 
예수 믿기 위해…, 주일 지키기 위해…, 예배드리기 위해…, 봉사하기 위해…
전도하기 위해…, 교회를 짓기 위해서 포기하는 것 없이 가능합니까?
여러분도 오늘 예배 드리기 위해 이런 저런 만남,
좋은 일… 등을 포기하고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희생 없이, 마음 아픔 없이, 눈물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비전(Vision)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문제 발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닥치는 역경과 고난은 사실 문제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우리들 주변엔 자기의 지식과 경험에 의한 판단이
절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처럼 계산적으로,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판단한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정확함이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가로막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비전(Vision)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비전은 <드림(dream, 꿈)> 이 아닙니다.
        <아젠다(agenda, 일정표)> 가 아닙니다.
        <플랜(plan, 계획)> 이 아닙니다.
        <골(goal, 목표,결승점)> 이 아닙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갔던 길은 결승점이 보여서 간 것도 아니고,
계획표가 있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명하시니 갔습니다.
 
비전을 본 사람은 지금 움켜쥔 확실한 것도 내 버릴 줄 압니다.
지금 있는 곳도 뒤로하고, 갈 바도 모른 채 순종하며 떠납니다.
지금 확인된 불가능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비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불평과 원망의 소리에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도하심을 따라 고난의 길을 가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14:12)라며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방향을 향해 가십니까? 무엇이 되기 위해 가십니까?
 
…………
주보에 실린 기둥교회의 Vision 10가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기둥교회의 Vision 10가지
 
1. 기둥교회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복음적인 교회로 본이 된다.
  (행13:22, 갈1:6-10)
 
2. 기둥교회는 신령과 진정, 뜨거움과 감사
  그리고 기쁨이 있는 예배로 본이 된다.(요4:24, 빌4:4)
 
3. 기둥교회는 열심히 기도하고, 겸손히 배우는 모임으로 본이 된다.
  (살전5:17, 딤후3:14)
 
4. 기둥교회는 기둥 같은 인물을 길러내며, 온 가족이 한 맘으로
    자자손손 뿌리를 내리는 교회로 본이 된다.(갈2:9, 행10:1-2)
 
5. 기둥교회는 불타는 구령열로 전도하고
    부흥하여 선교하는 교회로 본이 된다.(마28:19-20)
 
6. 기둥교회는 빛 되고 소금 된 섬김, 말없이 일하는
    착한 행실의 희생으로 본이 된다.(마5:13-16)
 
7. 기둥교회는 순결하고, 단결하고, 즐거운 교회로 본이 된다.
    (벧전2:2, 엡4:3, 엡5:19)
 
8. 기둥교회는 분쟁과 분열이 없는
  평안한 교회로 본이 된다.(고전12:24-25)
 
9. 기둥교회는 좋은 교회를 찾는 방랑자가 머물러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가는 사명자로 변화되는 교회로 본이 된다.(엡2:21-22)
 
10. 기둥교회는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 되어 일하는데 본이 된다.(갈6:6, 행16:15) 

 
이것들은 기둥교회 담임목사인 제가 기도하며 정리한 기둥교회의 비전입니다.
기둥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행13:22)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라는 표어를 가지고 목회하며 신앙생활합니다.
<언제까지>라는 기간이 없습니다. <얼만큼>이라는 분량도 없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믿고 순종하며 이루어야 할 것들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만날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그것은 모릅니다.
우리가 때로는 여리고 성 같은 것도 무너뜨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요단강 같은 것도 건너야 할 것이며,
가나안 땅의 강한 사람들 같은 사람들과 싸우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때를 따라 필요한 은혜를 주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간다는 것은
인생의 최대 결단이며 감수할 고통이 큰 발걸음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담대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이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고전13:4~7).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보고, 가족을 보고, 자녀를 보십니까?
10명의 정탐꾼처럼 부정적인 예측을 하고
<우리는 틀렸어, 안돼, 못가>라는 말을 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 쉽지가 않습니다.
이 골치 아픈 세상살이이지만…, 이 더러움이 상식이 된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음 지키고, 빛 되고 소금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부모노릇, 자식노릇, 남편 노릇, 아내 노릇
집어치고 싶은 생각,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열 두 번도 더 나고…
자신이 제일 한심하다고 느껴져도… 별볼 일 없다고 생각된 적도 있으시지요.
교회학교 교사를 하고, 찬양대를 하고, 선교회 회장을 하고, 임원을 하고,
집사, 권사, 장로가 된 것 조차도 낙심되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을 했던 때는 없습니까?
목사인 저도 순간 순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모두 행복한 가정 같지만,
골치 아프고 속상하고 눈물 나는 일 얼마나 많습니까?
이혼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가정을 지키려는 참음이, 견딤이 적어서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알콩 달콩 깨가 쏟아집니까?
여러분의 남편은 연애할 때처럼 여전히 멋있습니까?
여러분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가슴 울렁거림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결혼>은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으로 보면 결혼 안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혼>은 인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하며
<재혼>은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 한다고 합니다.
 
판단력이 부족하여 결혼을 했고,
기억력이 부족하여 또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인내력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야 합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참고 견딤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참고 견디는 것 없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이 세상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머물 삶이 아닙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길이 험하고 높은 길이라도… 싸우며 가야 합니다.
비록 괴롬과 죄가 있는 곳에 산다 해도 말씀으로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빛나고 높은 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바라보아야 합니다.
 
♬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
 
♬ 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4절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내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우리의 발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땅에 우리가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며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눈을 가지고 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연약하지만 붙들어 주시옵소서.
연약하지만 힘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하게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2월  29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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