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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교제 (행 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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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교제
본문 : 사도행전 2:37-42


이번 가이드포스트 3월호에는 1970년대 가수 방주연 씨가 불렀던 한 유행가 가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기다리게 해놓고 오지않는 사람아
  나는 기다림에 지쳐서 이제 그만 가노라. 이제 그만 가노라.

이 노래는 장욱조 씨가 작곡한 노래로서
그는 이 노래 하나로 유명 작곡가 대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후 그는 조경수의 "아니야" 등 1천여곡을 작곡하며 유명 작곡가의 길을 걷지만
다른 작곡가와 가수들의 선전으로 결국 많은 빚을 얻게 되어 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아내 종교는 원래 원불교였으나 친구의 전도로 예수님을 먼저 영접하게 되고
뒤늦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기 시작한 어머니의 기도로
이 장욱조 씨도 딱 한번만 교회 나가 주겠다고 했다가 그 길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후 그는 그리스도를 통한 자신의 삶의 변화에 감격해하면서 일반 대중음악 작곡가에서
복음성가 작곡가가 되어... "할 수 있다 하신 주" "생명나무" 등
약 150여곡을 작곡하고는 찬양 간증하는 삶을 살다가...
지금은 신학을 마치고 찬양사역을 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진정으로 만나기만 하면
이처럼 사람이 완전히 변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계속 교제하게 되면 그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고 은혜로와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제라는 것이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포지교(管鮑之交)나..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우정, 성도간의 깊은 교제에는 그러한 면도 있어야 하지만
이것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교제할 때 
이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42절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저는 이러한 일이 그들에게서 일어났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초대교회 하면..
기도 열심히 하는 교회... 서로 물건 통용하고 아름답게 교제한 이상적인 교회...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도행전 2장부터 시작되는 초대교회의 태동 과정을 살펴보면...
이것은 정말.. 기적이며! 분명히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될 수 없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도 달랐습니다. 문화도 달랐습니다. 믿는 스타일도 서로 달랐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 되어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경건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한 모임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사도행전 2:1-8).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이것은 순전히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오순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방문하였다가 이 기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나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마음 문이 열리게 된 것이나!!
또 기도회가 끝나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감동도 받고 찔림도 받은 것을 보면!!...
도저히 인간의 역사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42절 말씀처럼
서로 교제하며 떡도 떼고 기도에 힘을 쏟았다는 것이
인간의 역사로마는 볼 수 없다는 것인데...
이 사건은 결국 교회 공동체란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교회의 교제란 어떤 교제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데 대한
중요한 지침을 내려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서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교제가 대부분의 경우 아주 피상적인 교제라는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경우 이 정도로 인사하며 교제를 나눕니다.
물론 이러한 인사도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정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교제가 깊어진 사람들은 함께 차도 마시고 함께 식사도 하며
삶을 나누게 됩니다.

건강이 어떻고... 아이들은 어떻고... 무슨 일이 있었고 하면서...
이런 저런 삶을 나누는 것인데...
조금 전의 교제 보다 한 차원 높은 교제라고 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이러한 교제도 진정한 교제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교제가 교제답게 되려면 좋은 일 궂은 일 다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제가 피상적 교제에서 좀더 깊은 교제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번씩 홍역을 치루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나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누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인데
시기 질투 혹은 오해로 인한 말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고 하다가 생기는 신뢰관계에 금이 가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는 참으로 조심해야 할 중요한 부분으로서
말을 할 때는 품위를 가지고 감정을 잘 조절하며 절제하는 가운데 신앙적인 말을 해야 하며
돈을 주고 받을 때는 교회라고 해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이 없이 사회처럼 분명히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것이 당사자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해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나 근거없는 말을 퍼뜨리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며
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 꾸고는 차일피밀 미루거나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이 사람 한테 돈 빌려 저 사람한테 돈 갚는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앞으로 반드시 큰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사람이 어려우면 공동체는 그런 사람은 도와주어야 합니다.
도저히 살아갈 능력도 없고... 가지고 있는 집도 통장도 재산도 없을 뿐 아니라...
부양해줄 가족이나 친척도 전혀 없을 경우....
교회 공동체는 그런 어렵고 딱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런 측면에서 아주 모범적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서로 모여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에 힘을 쏟았을 뿐 아니라...
구제에도 힘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사도행전 4:34-35).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참으로 대단한 공동체였으며... 아름다운 공동체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만일 이 정도만 되면 성도의 교제가 아주 잘 되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이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잘 지탱해 나가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사도행전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교회 공동체가 교인들 중 어려운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구제하고 돌보는 것은 좋으나
사람은 다 죄인이고 욕심이 있으므로 부작용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돕는 것은 좋으나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자기가 잘 아는 사람만 도운다든지
아니면 자기편 사람이나 자기와 고향이 같은 사람만 돕듯...
히브리파 사람들이 헌금을 가지고 이 일을 하면서 헬라파 유대인들은 제쳐두고
히브리파 유대인들만 도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초대교회라고 완벽한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이것을 통해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하튼 일을 잘 하려고... 애를 쓰며 시도는 하였으나...
결과는 그리 썩 좋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깨닫게 된 것이 이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것... 특히 봉사나 교제... 이런 것은 항상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기도하는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시행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오늘의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제와 모든 봉사는
사도의 가르침이 필요하며
사도는 그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찾고 기도로 부지런히 준비해야 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게 된 것이 사도들의 광범위하고 분주한 사역을
가장 교회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사역에만 종사하도록 조정하게 한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사도행전 6:2-4).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이렇게 해서 초대 교회는 사역이나 조직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사역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말씀을 따라 시행하여
봉사나 교제가... 일반 봉사나 일반 교제가 아닌... 거룩한 봉사와 거룩한 교제가 되도록
업-그레이드(up grade)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이 당연한 것이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 종종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 공동체 내에서나... 교회의 이름으로 나가서 하는 봉사나 교제가
그저 단순한 봉사.. 단순한 교제 그 이상이 되지 못하고...
사회에서 봉사하는 것이나 사회에서 교제하는 그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중요한데... 오늘 저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 해답은 오늘 설교 제목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교제....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바로 이 부분을 깊이 연구한 학자입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보면 주제가... "성도의 교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형식적인 교제에서 진정한 교제, 거룩한 교제로 나가게 할 수 있을까?

그의 관심은 이처럼... 성도의 진정한 변화를 교제라고 하는 관점에서 연구하였는데
결국 그는 이렇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란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교제해야 그 교제가 참 교제가 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해야 그 교제가 참 교제가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해야 그 교제가 참 교제가 되는 것이기에 
  이 참다운 교제는 결국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제만이 그 교제를 거룩한 교제로 승화시킬 수 있지
  그 외 모든 교제는 일반적인 교제일 뿐 거룩한 교제라고는 말할 수 없다.

참으로 위대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후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깨닫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모든 사람과 진정한 교제가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시행되는 교제가
방법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목적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될 때
사람들은 '바로 이 곳이야 천국이로구나... 참 좋은...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로구나...
천국이 따로 있나 바로 여기가 천국이군...' 하는 이런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제의 방법이나 목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될 때
덩달아 변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눈이 새롭게 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보게 되는 것은 열방과 세계인데
우리는 이것을 사도 바울에게서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보면 그가 다메섹으로 갈 때
자기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는 그동안 봉사도 많이 했고... 교제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그 모든 것은... 다 헛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한번 딱 만난 후.... 정말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가하면...
그동안 그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목숨 걸고!!
삶의 방법, 삶의 목적, 삶의 자세.. 그의 꿈과 비젼...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게만 걸은 것을 보면...
그가 정말 새사람이 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변해도 정말 변했습니다!! 바보처럼 변한 것입니다!! 오직 한가지만 생각합니다!!

그전에는 사람 취급하지도 않았던 이방인을 새롭게 보기 시작합니다.!!
아니 새롭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자기 눈으로 이방인을 보았고... 율법의 눈으로 이방인을 보았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본 것은!!... 열방이었습니다!!.
복음에서 철저히 소외된 열방!! 약속의 언약들에게서 철저히 소외된 열방!!...
이 열방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깨닫는 것은 진정한 교제란 이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며
그럴 때 사람을 보는 법도... 사람과 교제하는 법도... 그 교제의 목적과 방법 자세도...
다 거룩한 교제가 될 수 있으며...
주님이 원하시는 교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제가 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그 교제가 거룩한 교제도 될 수 없고... 진정한 교제도 될 수 없으며
아무리 교제해 봐도 그저 인간적 교제의 수준은 결코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전에 보이지 않던 사람도 보이게 되어 교제하게 되고
교제의 방법이나 목적도 오직 그리스도로 재정립하고 교제하려고 해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고 그동안 살아온 삶의 습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교제가 잘 안될 때가 있는데...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빌립보서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교제의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 교제의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로 재정립되었다면!!...
교제하는 사람의 마음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잘은 안되겠지만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이렇게 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교제에 골인(goal in)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교제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는 일반적으로 fellowship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교회적이며 신학적인 의미로 보면 communion 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에서의 교제라는 개념은 일반적인 사귐이라고 하는 교제차원을 넘어
거룩한 교제, 거룩한 사귐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이 가능한 것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보혈이 그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 자신의 교제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다 봅시다.

도저히 교제 못할 사람이 있습니까?
말씀에 따라 교제는 하긴 해야겠는데... 교제하기에 참으로 힘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동안 교제하는데 제외시켜 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생각합시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그리고 오늘의 설교 제목도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교제...

그리고 이 말씀도 다시 한번 더 기억하십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나가 다 인정할 것입니다.
그리므로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교제의 모습이 나에게서 나타나게 되기를 원한다면!!
그와 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를 시도해 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제를 시도하면서 간절히!! 기도하여!!
내 힘으로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교제하게 될 때!!
그때 우리는!! 천국의 교제를 경험하게 될 것이요.. 천국의 기쁨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교제가...
여기 저기서 아름답게 이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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