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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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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예수를 바라보자
성경말씀 : 히브리서 12:1-2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주에 비유합니다. 오늘 봉독한 히브리서 12장 말씀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고 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을 하직하고 천국에 간 분들로서, 마치 관중석에 앉아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면서 응원하는 것처럼, 천국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손에 땀을 쥐고 우리의 경주를 흥미진진하게 내려다보면서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힘차게 하는 것을 보면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낼 것이나, 만일 우리가 지쳐서 허덕이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좀 더 힘을 내라고 외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신앙의 경주는 외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임재 해 계시면서 때마다 일마다 우리의 행할 바를 지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의 귀를 열어 성령님의 지시를 듣고 순종한다면 얼마든지 신앙의 경주를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예수를 바라보자”는 제목으로 신앙의 경주를 성공적으로 해 나가는 비결을 말씀해 드림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무슨 종목에 출전하든지 선수들은 항상 몸을 가볍게 하려고 애씁니다. 길고 무거운 옷을 입고 경주에 임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가볍고, 간편한 복장을 해야 합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우승의 월계관을 차지한 사람은 에디오피아의 아베베라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마라톤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함으로써 유명해 졌습니다. 그에게는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유명 신발회사들은 선수들의 경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볍고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의 경주에 임한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잘 하기 위해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달음질을 방해하는 ‘모든 무거운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 마음의 염려, 근심이 바로 무거운 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치고 염려, 근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과도한 염려와 근심은 우리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신 잠언 17장 22절 말씀과 같이 근심은 우리의 기력을 쇠잔하게 하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소를 갖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했을 때, 신자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예배생활에 힘쓰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돈벌이를 위해 예배 생활을 등한히 하는 경우입니다. 둘 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전자는 신앙의 경주에 더욱 열심 내는 촉진제로 선용하지만, 후자는 신앙의 경주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가는 빌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근심과 걱정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김으로 활기찬 신앙생활을 영위하지만, 후자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하려다가 결국 신앙생활에 큰 손실을 초래하고 마는 것을 봅니다.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어려움뿐이 아닙니다.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역시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장래에 대한 염려도 우리를 억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무거운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기억해야 합니다.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여러분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천부께서 성도님들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의 이 권면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그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진리를 들려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리 시련을 많이 겪어본 사람이라도 다윗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라’(삼상 20:3)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맡김으로 위기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편 68편 19절에서 고백하기를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날마다 하나님께 자기의 짐을 맡긴다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우리를 얽매는 죄입니다. 죄악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날아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도록 우리를 얽어매는 것입니다. 한 때 다윗은 우리아의 처 밧세바의 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다윗의 심령은 무서운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영혼의 괴로움을 시편 38편 4절에서 토로하기를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당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연약한 육신을 지니고 있으며, 유혹에 약한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되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제 지옥 갈 죄는 짓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죄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5장 16절로 18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8)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고,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을 훼방한 죄를 말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죄인들을 감화하셔서 회개케 하시는 분이신데,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은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하므로 회개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 받고 구원 얻은 사람들이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을 얽매는 죄는 어떤 죄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말합니다. 진실로 구원 받은 성도라면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로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치 아니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에 기인하는 죄입니다.

그리스도인도 화를 내고 남을 미워하는 죄를 짓습니다. 재물을 탐하기도 하고, 이웃과 다투기도 합니다. 다윗과 같은 성군도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 여자의 남편을 전쟁터의 최일선에 내보내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선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같은 악을 행하다니, 이 범죄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음을 방불케 하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용서하셨고, 다시금 하나님의 긍휼을 회복했습니다.

시편 32편은 다윗이 지은 것인데, 죄로 인한 고통과 회개로 말미암은 은총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1)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5)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온 몸을 정결하게 씻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발을 씻듯이 회개생활에 힘씀으로 죄가 우리를 얽매어서 신앙경주를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과 죄를 내어맡김으로 언제나 상쾌한 마음으로 신앙의 경주를 힘차게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에 임한 성도들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 것만으로 온전하지 못합니다. 우선, 육상 선수가 달려 나갈 방향을 올바로 알고 달려야 하듯이 성도들도 신앙생활의 방향과 목표를 올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선수는 경기 규칙을 지켜야지 이를 어기면 아무리 빨리 목표점에 도달할지라도 실격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선수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선수는 경주를 하는 동안 많은 고비를 만납니다. 어찌나 힘이 들던지 그만 도중에 경기를 포기하고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우승의 월계관은 이와 같은 난관을 인내로써 극복한 선수가 받아쓰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련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욥은 너무 큰 시련을 만나서 절망한 나머지 하나님을 향하여 “17)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욥 7:)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인내하는 믿음의 소유자였기에 끝까지 시련을 이겨냄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고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고백입니까! 사도의 이 고백이 저와 성도님들의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모든 시련을 이기고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잘 감당하기 위한 방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믿음의 근원이시자 믿음의 목표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길이 되시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달음질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아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4절에 종말의 때에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신앙의 푯대가 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 가운데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는 자들이 빈번하게 생겨나는 까닭은 그들이 믿음의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고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시험의 바람이 불어와도 넘어지고 뒤로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후로는 예수 믿는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해변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수많은 사람이 기적의 떡을 얻어먹고 배불렸습니다. 떡을 얻어먹은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그 이튿날도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6-27)고 하셨습니다.

그 날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무리에게 자신이 생명의 떡과 음료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 6:68-69)고 했습니다.

기적의 떡을 얻어먹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주님을 따르는데 열심을 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믿음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한 채 단지 떡을 얻어먹기 위해서 또는 무슨 신기한 기적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목적을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되자 미련 없이 주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알고 영생의 주님으로 알고 따랐으므로 떡 문제와 상관없이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떡은 고사하고 주님을 믿는 일로 핍박을 당할지라도 변함없이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더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려운 시련을 만나면 그만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앞두신 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돌보심이 있기에 오늘까지 우리가 믿음을 지켜오게 된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으나 믿음이 약했습니다. 한번은 밤중에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중에 바다 한 복판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저녁나절에 해변을 출발해서 밤 두세 시가 되도록 파도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를 아시고 물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무슨 허연 물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유령이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니, 베드로가 말하기를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을 밟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자 그만 물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연약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베드로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의 믿음을 도와주셔서 드디어는 온전케 만들어 초대교회의 기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적에 도마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하자, 도마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말하기를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도마를 위해 여드레 후에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문들이 닫혔는데도 주님께서 저희 가운데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자상하신 주님이신지요. 그 순간 도마의 마음속에서 의심이 다 사라지고 주님의 부활을 확신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마의 믿음을 온전케 만들어 주시기 위해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해서 큰 믿음, 강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을 구할 때 주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자에게 강한 믿음을 주시고, 믿음이 부족한 자에게 온전한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바라는 우리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으신 것처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그 뜻에 순종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죽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했더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우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또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 2:).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든 무거운 짐 곧 염려와 근심과 죄의 짐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여러분의 눈을 세상으로 향하지 마시고 오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절망을 소망으로, 열등감을 긍지로, 약함을 강함으로, 미련함을 지혜로움으로 바꾸어 주셔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날까지 신앙의 경주를 힘차게 해 나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장차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강림하실 그 날, 성도님들께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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