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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로 찾게 하시는 하나님 (삼상 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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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도로 찾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 사무엘상 30장 1~20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한 육백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우고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낮 사흘, 밤 사흘을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뉘게 속하였으며 어디로서냐 가로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을 침로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에게로 인도하겠느냐 그가 가로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붙이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으로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이 군대에게로 인도하리이다 그가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탈취하였음을 인하여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때까지 그들을 치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의 탈취하였던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또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하였더라    사무엘상 30장 1~20절 말씀

  오늘도 불편한 환경을 물리치고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크신 은헤베푸시기를 축원합니다. 힘겨운 인생살이 가운데에도 임마누엘의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 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처음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했어요. 때로 세상일이 바쁘고 피곤해서 비전을 잃어버리고, 주님을 향한 열정과 헌신이 내 속에서 사라져 버리기 쉽더라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는 멀더라는 거예요. 현실적인 믿음은 좀 잘 되면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이 믿음도 귀해요. 잘 되는 일에 하나님이 도와 주셨다는 믿음도 귀합니다. 그런데 안 될 때, 잃어버릴 때, 쉽게 낙심하고 원망하고 포기해 버리더라는 거예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낙심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는 믿음이 더욱 귀하더라! 요나를 보세요. 이미 끝났어요. 더 이상 바라볼 소망이 없었어요. 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붙들겠어요. 절망이지요. 끝난 거예요. 그런데 요나의 기도를 보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기도하고 있어요. 주님 주실 좋은 결말을 보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 이 믿음 가져야 되요. 이 믿음 가진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삶이 달라요. 아직 안 이루어졌어요. 그러나 믿음은 다음을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현실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그 가운데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거예요. 이 믿음이 참으로 귀합니다. 되찾아야 합니다. 영권도 되찾고, 기도의 능력도 되찾고, 믿음 생활의 기쁨과 재미도 되찾고, 건강도 되찾고, 물질도 되찾아야 되요. 되찾는 은혜가 우리 가정들 위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1.여호와 나의목자 내게 부족없네 푸르른 초장위에 나의 몸 누이시네 2.내영혼 소생하며 자기이름 위해 의의길 인도하니 골짜기 두렴없네 3.주님의 지팡이가 안위하네 나를 주께서 원수앞에 상으로 베푸시네 4.기름을 머리위에 바르시는 주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함 따르리니 후렴)선한 목자 오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인도 하시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아말렉에게 침공을 당하여 시글락 성읍을 불태우고 아내와 자녀들을 다 사로잡아 갑니다. 3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에 이르러 본즉 성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그 현장으로 돌아 온 다윗과 백성들이 더 이상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다고 했어요. 여러분 울 기력이 없도록 울고 싶을 때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앞이 안 보일 때라도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변할 때라도 변치 아니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이고, 때가 되매 응답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큰 위기를 당합니다. 아말렉에게 침공을 당한 것도 억울한 일인데, 함께 한 사람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만 거예요. 왜 다윗이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그동안 10년이 넘게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도망다니면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 잃지 않았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길을 열어 주신 거예요. 감당할만한 힘을 주신 거예요.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사울 왕을 피해 다니다가 어느 날 생각하기를, "이러다가 결국에는 사울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닌가?" "사울이 잡으러 올 수 없는 저 블레셋으로 도망하는 것이 좋겠구나!" 지금까지 자기 힘으로 살아 온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고, 때를 따라 도와 주셨기에 살아 온 거에요. 그런데 그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붙들고 의지하는 대신 블레셋을 의지하고, 블레셋 왕 아기스를 의지한 거예요. 믿음을 잃어버리면 생각이 달라져 버립니다. 블레셋으로 피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피해야 되었어요. 믿음 좋은 다윗이 어리석은 길을 가고 만 거예요. 사람은 별수 없어요. 하나님이 붙드시지 아니하면 별수 없이 후회하는 길을 가게됩니다. 주님께 붙들려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그 길을 열어주시는 복된 인생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을 따르는 600명의 부하들과 함께 시글락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될 때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도 함께 나가기를 청합니다. 동족을 쳐야 하는 싸움에 다윗은 내키지 않았지만 블레셋을 도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길을 막아 주십니다. 블레셋의 장군들이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막상 전쟁에 임하면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결국 다윗과 군사들은 시글락으로 되돌아오게 되는데, 되돌아 와 보니 눈앞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성은 불타고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소와 양들이 다 없어진 거예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자기 계산 자기 생각이 앞섰을 때, 결국 실패의 길을 가게 됩니다. 자기만 안되는 인생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 가지 어려워지더라는 거예요. 아이들이 잘못할 때, 교탁이나 칠판을 두드립니다. 이때 빨리 깨달아야 되요. 어리석은 자는 매를 맞을 때까지 깨닫지 못해요. 매를 맞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중학교 시절인가 싶어요. 한 아이가 수업 시간에 껌을 씹고 있었어요. 그것을 본 선생님이 들고있는 매로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머리를 때리는데, 이 아이가 왜 맞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당황해서 얼굴이 벌개지면서 긴장을 하니까 껌을 얼마나 짝짝 씹어대든지, 한참을 맞았어요. 옆에서 그것을 보면서 저도 처음에는 왜 맞는지 몰랐어요. 알았으면 알려 주었지요. 덜 맞도록, 잘 깨닫는 것이 은혜예요. 매 맞고서라도 깨닫는 것이 은혜요. 매 맞기 전에 말씀으로 깨닫는 것이 더 큰 은혜예요. 말씀을 들으실 때마다, 잘 깨닫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도 귀해요. 믿음이 우리 속에 생기는 것도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그런데 믿음이 생기는 것 못지 않게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는 거예요. 믿음 지키지 못하면 괜히 주변 사람이 원망스러워져요. 그러다가 하나님마저 원망스러워지게 됩니다. 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왜 들려주신 약속을 이루어주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변하는 환경 속에서 믿음만은 잘 지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만은 끝까지 변치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변치 않는 믿음, 변치 않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솔로몬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솔로몬의 마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깨끗하고, 순전하고 겸손한 마음 있었습니다. 그 가슴에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열정이 불타 오르고 있었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서 솔로몬의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고, 열정이 식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 결심들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맑고 순전했던 처음 마음이 어두워지고, 흐려진 거예요. 관심사가 달라지고,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니 하나님도 그를 떠나신 거예요. 결국 내리막길 인생을 살게 되는데, 솔로몬의 통치 말년은 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 변질되지 않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당장 먹고 살아야지요. 건강해야지요. 진로가 열려야지요. 그런데 근본 문제는 물질이 아니에요. 환경도 아니에요. 정치도 아니에요. 우리 마음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예요. 하나님의 소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기도하는 믿음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백한 약속들이 있습니다. 이 약속, 처음 약속이 변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되요. 초심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변심하지 말아야 되요. 이제는 정말 제대로 예수 한 번 믿어보겠다고, 올바른 신앙 생활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굳게 다짐하고 결심하고 약속한 처음 다짐이 변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되요. 처음 마음, 처음 다짐, 처음 사랑, 처음 열정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고 더 나아져 가는 믿음의 진보가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히10장35절-36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믿음만이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어요. 믿음만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백부장을 보면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감탄하신 거예요. 딸을 고침받기 위해 왔던 가나안여인의 믿음을 보고 감탄하시기를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믿음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 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너무 슬픈 일을 당하게 되니 백성들도 자기를 다스리지 못한 거예요. 눈이 뒤집힌 거예요. 그렇게 따르던 지도자 다윗을 원망하기 시작하고, 다윗 때문에 이렇게 되었노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다윗을 돌로 쳐죽이려고 했다는 거예요. 엎친데 덮친다고 하지요? 감당 못할 문제가 겹겹이 다가오더라는 거예요. 보통 사람 같으면 길이 안 보이는 현실 속에서 이꼴 저꼴 안 보고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낙심이 되고 포기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위기 속에서 다윗도 군급했다고 했습니다. 군급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위험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다는 거예요. 괴롭고 힘들 때 다윗은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도 낙심의 순간은 옵니다. 엘리야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세벨의 위협앞에 엘리야가 도망을 갑니다. 어렵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는데, 막상 가서는 죽고싶다는 거예요. 어느 것이 진심이에요? 살기 위하여 멀리 멀리 도망해 놓고, 이제 살만한 곳에 가서는 죽고 싶다는 거예요. 이것이 사람의 연약한 부분입니다. 사람은 때로 “나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며 사는 축복의 도구가 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자학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헤밍웨이의 유서 가운데 “나는 전기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심히 고독하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높은 명성을 얻었는데, 감당할 수 없는 허무를 견디지 못해 고독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예요.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은데 남모르게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열심히 뛸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돌아보니 “아! 인생 헛된 것이구나!” 이런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하더라는 거예요. 더더욱 괴로운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고독!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 잃어버려도 하나님을 잃지 않으면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품에서 멀어짐을 느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도 사랑하실까?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거예요. 엘리야는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인물입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지요. 어떻게 저런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에요. 그런 엘리야가 별 것 아닌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죽기를 기도하고 잇더라는 거예요. 영광스러운 순교가 아니에요. 문제 앞에서 낙심스럽고 절망스러워 더 이상 살기가 싫다는 거예요. 스스로 죽을 수는 없고 "하나님 이젠 나를 데려가 주세요" 엘리야가 정말 죽을 상황입니까? 아니에요. 갈멜산에서 이방 선지자들 850명을 꺾어버리던 엘리야입니다. 하나님 붙들어 주시면 이세벨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때 엘리야의 눈에는 마땅히 보여야 할 하나님이 안 보인 거예요. 능력의 하나님 대신 문제만 보인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이런 때가 있습니다. 잘 믿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를 만날 때 갑자기 하나님이 안 보이더라는 거예요. 믿음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믿음없는 사람처럼 낙심할 때가 있더라는 거예요. 생각이 달라지면, 보는 눈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어느 장군이 적군에 패하여 도망하다가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 때 개미 한 마리가 앞을 지나가는데, 조그만 먹이를 물고 가다가는 쓰러지고 가다가는 또 쓰러지는 거예요. 장군이 재미있어 따라가 봅니다. 69번을 떨어뜨리더니, 70번째 개미굴로 들어가더라는 거예요. 이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나는 이제 겨우 한번 실패하지 않았느냐?” 새힘 얻어 다시 일어난 거예요. 결국 큰 승리의 장군이 됩니다. 낙심스럽습니까?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위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실패해서 괴롭습니까? 이제 겨우 한번 실패했습니다. 지금까지 승리해 왔어요. 우리의 믿음만 변치 아니하면 우리의 앞날에 승리의 기쁨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안고있는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죽기를 구하다가, 엘리야가 지쳐 잠이 듭니다. 이때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와서 엘리야를 흔들어 깨웁니다. 지쳐있는 엘리야에게 음식과 시원한 물을 줍니다. 먼저 설교부터 하실 것 같은데, 아니면 네 이놈 왜 이리 정신을 못 차리느냐? 책망하실 것 같은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육신적으로 회복의 기회를 주시더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더라는 거예요. 응어리진 마음,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때가 없어 굳어지고, 답답하던 그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주시더라는 거예요. 좋으신 하나님!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으신 하나님! 믿고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좋은신 하나님이 능력의 손을 내밀어 우리의 어두운 부분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응어리진 부분을 풀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했어요. 그 곳에서 하나님은 다시 사명을 일깨워 주십니다. 눈을 크게 여십시오. 하나님이 내 곁에 나와 함께 하심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온전케 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고, 회복케 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고, 치료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더 이상 실패는 나의 것이 아니에요. 언제나 하나의 문이 닫혀질 때에 하나님은 또 다른 문을 우리를 향하여 열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서 보아야 되요. 보는 자는 다릅니다. 고통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 아멘! 인생을 좀 넓게 볼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예요. 승진할 때가 있으면 좌천될 때도 있어요. 입사를 할 때가 있으면 퇴직을 할 때도 있는 거예요. 꼭 이사는 더 넓은 집으로 가는 것 아니에요. 점점 더 나아지면 좋습니다. 그러나 인생 살다 보면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더 좁은 평수로 이사가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실제로 울산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내내 1등만 한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 1등을 놓쳤어요. 내가 1등을 놓치다니, 자살했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실패의 자리로, 더 못한 자리로 밀어 내셨다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무엇을 빼앗아 가셨다면 거기에도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칭찬만 듣던 사람은 항상 칭찬만 들어야 된다는 자기 중심적인 기준이 있어요. 누가 비판을 하거나 지적을 하면 견디지 못하고 고민하고 갈등을 합니다. 늘 일등만 하던 사람, 늘 부유하게 살던 사람, 늘 건강하게 살던 사람, 탄탄 대로를 걷던 사람은 어느 날 문제가 다가올 때,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기 쉽더라는 거예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사람을 쉽게 무너지게 합니다. 흔히 페러다임을 바꾸라고 말들 하는데,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이 단계로만 나아가면 우리 인생이 더욱 값진 인생! 하나님이 더욱 아름답게 쓰시는 인생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믿음없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은 그냥 어려움입니다. 고통은 그냥 고통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다르더라! 그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들기만 하면 감당할만한 힘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더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7절-8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압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년 도로 찾으리라” 다윗이 하나님을 힘입게 되자 믿음을 되찾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믿음을 잃어버렸을 때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어요. 자기의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자 먼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 묻더라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고 떠났어요. 광야를 가로질러 가는 길에 병든 노예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물과 포도주를 먹고 정신을 차린 소년이 아말렉 군대가 간 길을 안내하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곡아래서 술에 만취되어 잔치를 벌이고 있는 아말렉 군대를 만나게 되더라는 거예요. 믿음으로 살려고 하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 병든 소년을 통해서라도 아말렉을 쉽게 찾아가게 하시더라는 거예요. 그 주인이 병들어 쓸모없다고 버린 이 노예는 다윗의 길을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예비된 도구였더라는 거에요. 미리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 광야 넓은 땅에서 병든 소년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같지만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사랑하는 다윗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으셨더라! 아멘! 한때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 버렸지만 깨닫고 돌이키니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병든 소년 하나를 예비해 놓으셨더라는 거예요. 9-10절을 보면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육 백 명의 군대 가운데 이 백 명은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더라는 거예요. 그 정도면 나머지 사람들도 많이 지쳐있을 거예요. 그런데 가서 꼬박 이틀동안 적을 친 거에요. 그 힘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요? 18-20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의 탈취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의 대소를 물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과 순종의 결과는 항상 아름답습니다. 큰 승리를 이룰 뿐 아니라 나중에는 여기 저기 전리품을 선물로 나눠줄 정도가 되었더라!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위기의 때일수록 하나님께 순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도로 찾게 하시는 하나님! 인생의 위기 때 도로 찾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등 돌리고 배신할 때라도 하나님께 힘을 얻을 수 있는 믿음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앞이 캄캄할 때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믿음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 아니에요. 평소 듣고 훈련한 믿음이 위기 때 능력을 나타내는 거예요. 고난의 때에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되요. 믿음으로 사는 내가 왜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이 고난의 이유는 무엇이며, 고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느냐?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기를 바라시느냐? 비행기를 타보면 이륙할 때 기분이 참 묘합니다. 땅에서 뜨는 기분, 땅이 멀어져 가는 느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땅에서 멀어질수록 하늘은 가까워지더라! 눈에 보이는 것들, 땅에 것들이 다 나를 떠나도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때로 정답을 몰라 안타까와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 모든 문제의 정답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모스 5:4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정답은 여기에 있어요.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다니엘도 믿음의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정답을 찾은 거예요.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 푹 잠겨 살므로 사탄이 넘보지 못하고 틈타지 못하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안 될 것 같습니까? 예감이 좋지 않습니까? 그것은 내 느낌입니다. 내 생각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습니다. 시편 30:4-5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내 생각대로 잘 안 열리고, 잘 안 풀려도, 내가 하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되게 하시면 됩니다. 승리도 영원하지 않듯이 고통도 영원하지 않는 거예요.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이 하나님 손안에 달려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낙심의 순간은 주님 바라볼 때입니다. 일어나십시오. 다시 시작하십시오. 주님이 감당할만한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내가 너를 아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네게 더 큰복을 주리라! 기도한 것 이상의 좋은 것으로 갚아주리라! 채워 줄 것이라!”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힘겨울 때마다 주의 손길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큰 것, 한꺼번에 큰 것 이루려고 하지 마세요. 작은 승리가 큰 승리를 가져옵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큰 승리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내가 네게 복을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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