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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를 들라 (사 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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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62:10 기를 들라

요즘 극장가에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줄거리를 소개한 글을 봅니다.

  1950년 6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는 힘든 생활 속에도 약혼녀 영신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의 대학진학을 위해 언제나 활기차고 밝은 생활을 해나간다. 6월의 어느 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외가 배포되면서 평화롭기만 하던 서울은 순식간에 싸이렌 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해진다. 이에 남쪽으로 피난을 결정한 진태는 영신과 가족들을 데리고 수많은 피난행렬에 동참하지만, 피난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대구역사에서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만다.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진석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군용열차에 오르게고 진석을 되찾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또한 징집이 되어 군용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평온한 일상에서 피 튀기는 전쟁터로 내 몰린 진태와 진석은 훈련받을 시간조차 없이 국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실전 투입이 되고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동생의 징집해제를 위해 대대장을 만난다. 대대장과의 면담 후 동생의 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 진태는 그 무엇보다 동생의 생존을 위해 총을 들며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는데… 진태의 혁혁한 전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성공한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북진을 시작한다. 애국 이념도 민주 사상도 없이 오직, 동생의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 하나로 전쟁영웅이 되어가고 있는 진태와 전쟁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진석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 평양으로 향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군인은 태극기와 함께 합니다.

월드컵 때 전국을 뒤덮었던 태극기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월드컵 때는 태극 전사들과 함께 우리 민족의 위상을 세계에 당당히 알렸으며 또한 우리민족의 밝은 앞날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태극기 하면 우리는 삼일 운동을 기억하게 됩니다. 삼일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해 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일으킨 거족적 독립운동으로 그해가 기미년이므로 기미독립만세운동이라고도 합니다. 삼일운동에 대한 설명을 봅니다.

1910년 국권피탈 후, 일제는 경제적으로 한국인의 이권을 빼앗고 한민족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려 하였다.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전국토의 40%를 점유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일본이민에게 헐값으로 토지를 불하하여, 그 결과 한국의 영세농민은 토지를 잃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일제는 독립운동이나 애국운동을 탄압하고 식민지교육을 강요하는 등 사회적·문화적 활동을 봉쇄하는 무단정치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독립 운동가들은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거나 혹은 지하로 숨어서 비밀리에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8년 1월 8일 미국의 윌슨대통령에 의해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자 민족지도자들은 이에 의거하여 한민족의 독립을 호소해 보고자 하였다.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6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유학생학우회가 열렸다. 이 회합에서 한국독립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천명한 독립선언서를 백관수가 낭독하고 김도연이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대회가 끝날 무렵 도쿄 경시청에서 급파된 경찰대가 장내에 진입, 실행위원 10명이 검거되었다. 이에 유학생들은 전원 귀국할 것을 결의하고 국내에 돌아와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3월 1일에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에 합류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된 이래 독립운동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가고 있을 때 고종이 급서하였다. 민족지도자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 발표, 재일유학생의 2·8독립선언, 고종의 급서 등이 계기가 되어 민족적 항일의식이 고조되자 이때가 한민족의 독립을 꾀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거족적인 3·1운동을 본격적으로 계획하게 되었다. 거사일은 3월 1일로 결정하였다(처음에는 고종의 인산일인 3월 3일로 정했다가 불경스럽다는 의견이 나왔고, 또 2일은 그리스도교인의 안식일이라 하여 1일로 결정되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29명(지방에 있던 길선주·김병조·유여대 정춘수는 불참)은 서울 인사동 소재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의 간단한 식사를 들은 다음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하였다. 그리고 미리 건 전화 연락을 받고 태화관으로 달려와 포위해 있던 80여 명의 일본경찰에 의해 의연한 태도로 연행되었다. 그 무렵 파고다공원에는 서울의 중등학교 이상의 남녀학생 4000∼5000명이 독립선언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희생을 염려하여 장소를 태화관으로 옮긴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자, 한 청년이 자진하여 등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독립선언서의 낭독이 끝날 무렵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종로 쪽으로 뛰쳐나가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시위대열이 대한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온 서울 시내가 흥분된 군중과 만세소리로 들끓었다. 해질 무렵부터는 교외로 번져나갔으나 질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단 한 건의 폭력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던 군중은 일본군대와 기마경찰의 무력저지로 인하여 강제 해산되고 주모자 130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3월 1일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 서울 이북지방에서도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렇게 하여 3월 1일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전국 각지로 파급되어 2일에는 경기도 개성 충청남도 예산 등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밖에 전라북도는 4일 옥구 시위로, 경상북도는 8일 대구 시위로, 전라남도는 10일 광주 시위로, 강원도는 10일 철원 시위로, 함경북도는 10일 성진 시위로, 경상남도는 11일 부산진 시위로 각각 번져갔고, 19일에는 괴산 시위로 충청북도에 점화됨으로써 전국 13도가 일제히 3·1운동의 대열에 나서게 되었으며, 21일 제주와 조천리 시위로 바다 건너 제주도에까지 파급되어 한국 역사상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의 주체는 각계각층을 망라하였다. 이와 같은 민족적 궐기의 규모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집회횟수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 3098명,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수 1만 5961명, 피검자수 4만 6948명으로 추산된다.(한메파스칼사전)
삼일만세운동에 태극기를 사용했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기나 기호는 구약시대에서도 오늘날과 같이 국가나 군대나 교회의 목적을 위하여, 또는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실제적 사용은 이스라엘 각 지파나 군대의 기(민1:52,민 2:2, 3) 행진이나 정지를 위한 신호로 사용함(민 2:34)전쟁에서 사용함(렘 4:21)방어하는 성읍들로 가는 길을 지시하는데 사용함(렘 4:6)소식에 주의하기 위해 사용함(렘 50:2,렘 51:12) 소집을 위한 신호로 사용함(사 11:10, 12.사 13:2).
기를 들라는 한 군대가 행진을 재개할 때를 연상케 합니다. 행진 중 어느 곳에 쉬다가 충분한 휴식 후 행진을 재개할 경우 깃발은 높이 쳐들어서 행렬을 재정비하라는 신호를 내곤 합니다.
또 다시 삼일절을 맞으며 나라를 생각하며 기를 드는 모두가 되기를 원하며 기를 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 하고자 합니다.

사랑의 기를 들라.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 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아 2:4).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풍유에 빠지는 군주 없고, 국가가 태평하면 우국지사가 없다.(순자-荀子) 말합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젊었을 때 전혀 달라졌지만,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합니다.(디럭스바이블)

폴랜드의 유명한 천재 음악가  쇼팽은 피아노를 위시하여 작곡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가 20살에 예술의 나라 불란서로 유학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가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폴란드의 자랑이 되어다오." 아들의 마음속에 국가를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쇼팽의 선생님 역시 훌륭한 분이어서 떠나는 그에게 조그마한 은컵에다 폴랜드의 흙을 넣어 정성스럽게 싸서 주며, "어디를 가든지 조국을 잊지 말게. 이 한 줌의 흙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기 바라네"하며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공부하는 동안 힘들 때마다 "나는 폴랜드 사람이다. 폴랜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지" 하며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누구보다 폴랜드의 이름을 높이며 산 생애였습니다. 그의 유언은 "나는  폴랜드 흙이 담긴 이 컵을 나의 무덤 속에 넣어주시오"라고 조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죽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겠습니까?(예화 뱅크-쇼팽의 삶)
주님도 바울도 조국 이스라엘을 사랑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랑의기를 듭시다.

기도의 기를 들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 20:5).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딤전 2:1,2)고 합니다.
기도 생활에 관한 교훈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국가 생활에 관한 교훈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특히 권세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의 은총이 함께 합니다.

1917년 혁명의 결과,  모스크바 크레믈린에  서 있는 화려한  금색 지붕의 대성당(cathedral)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박물관과 연주회장(concert hall)으로 바뀌었습니다. 공산주의 정부는 그들의 혁명 이념에 따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 러시아 사람들의 삶에서 종교적인 측면을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지난 70년 동안 억압해 왔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박해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고르바쵸프의 개혁"이 시작되고 1990년 9월 크레믈린에 있는 15세기의 거대한 대성당이 성당으로서의 기능을 되찾았을 때 그때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수 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그 날을 축하했습니다. 이 사건은 "비록 소련의 정치  세력이 종교를 비합법으로 공식 선언하고 박해와 억압을 가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믿음이 뿌리 뽑힌 것은 아니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입증하는 웅변과도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로써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세계 정치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움직이시도록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치 구조의 변화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투표는 정치에 참여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정치 변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정치 참여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분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겸손함을 가진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오늘도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에 우리가 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예화뱅크)
대선을 위하여 평화 통일 위하여 정치 경제 사회 안정을 위하여 함께 합시다.


여호와 닛시의 기를 들라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 17:15)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깃발은 전쟁 시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며, 동시에 소속 의식을 고취시켜 주는 상징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의지하고 따르는 자의 승리의 깃발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에스겔 37장은 마른 뼈 골짜기의 환상을 통해 회복이 불가능한 한 집단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포로 되어 흩어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이라면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가능케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에 이어 보여 준 두 막대기 교훈은 분열된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일시킬 것을 나타내는 예언입니다. 남북의 통일이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예언입니다. 왕국이 분열하자 초기의 모든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분열 왕국의 재통일을 갈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남북의 분열도 온 겨레의 소원이요, 한국 교회가 지고 있는 멍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죄의 형벌과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분열된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해 온갖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양측의 극단적 체제 대결로 화합이 불가능합니다. 근래에 이르러 남북통일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아직도 통일은 요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때가 이르면 민족의 재통일은 간단하게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인간의 재주나 정책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둘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전 한남 대 총장 이원설박사는 이박사의 친구가 1990년 10월 서울을 방문했던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에게 헝가리  공산 독재자인 야노시 카다르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동독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길 기대합니다. 당신은 언제쯤 독일이 통일되리라 생각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구정책의 설계자]인 그는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한 10년을 더 기다린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브란트수상의 이 말이 있은 후 10일 만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인간의 앞날, 역사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하나님의 약속 믿고  헌신하며 봉사하여야 합니다.
한 커다란 저택에서 이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초청된 가운데 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멋있는 정장을 하고 진기한 음식들을 먹으며 세계와 나라의 장래를 애기하고 예술과 문화를 토론하며 이야기에 열중했습니다. 한편 그 저택의 한쪽에서는 초청된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여러 명의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나르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들이 무리 없이 진행되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계층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적대감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손님 중에 한 여인이 살며시 자리를 빠져나와 여자들이 일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였고 그들의 일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결국 그 파티는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환되었고 기분 좋게 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의 행동을 주시하진 않았으나 그녀의 공로를 인정했습니다. 그녀는 두 계층간의 화해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 받아 희생하며 봉사 합시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 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3:13, 14). 자신의 백성 아닌 자들로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신 것입니다(롬 9:25, 26).
화해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희생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삼일절에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 운동을 벌렸던 사실을 기억하며  사랑의 기, 기도의 기, 여호와 닛시의 기를 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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