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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 (마 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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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
본문 : 마태복음 9:1~13

신약성경에 보면 돌아온 탕자(蕩子) 이야기가 있습니다(누가복음 15:11-32).
이 탕자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일찌기 아버지로부터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챙겨 가지고
먼 나라로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게 살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아버지도 없고 형도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어느 누구 간섭하는 자도 없는데다가 돈은 많이 가지고 있으니...
그의 생활은 그야말로... 제 멋대로의 생활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방탕한 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방탕한 생활의 끝은 어디까지인가...를 그를 통해서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삶이.... 방탕과 방종의 극을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탕의 삶은 오래 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단 무절제하게 쓰기 시작하면...
그 많은 돈도... 순식간에 다 떨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돈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니...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니 몸도 정신도 점점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신이 좀 돌아왔는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렇게 객지(客地)에서 죽을 순 없지.
  그래... 돼지가 먹는 것이라도 일단 먹고... 살아보자....

그러나 그러한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오래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일단 마음 먹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의 꼴이 창피해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나 먹고 연명하는 것 보다는
집에 가서 종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고 최종 결정하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한편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을 먼 타국에 보내어 놓고는
매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아니!!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함께 불렀던 찬송가 가사처럼... 그렇게!!
날마다 문 열어놓고... 기다리다가 자고.. 자다가 깨서는...
아들이 오나 안오나 멀리 한번 쳐다보고... 이렇게 하는 일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얘야, 어서 돌아오너라...
  제발, 빨리 집으로 돌아오너라...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탕자 이야기에서의 주인공은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것인데...
이 아버지가 누군가 하면...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나간 탕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함께 불렀던 찬송 "어서 돌아오오"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잘 그려 놓고 있습니다.
 
  1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2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3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이 찬송이 우리에게 말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그렇게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분이 누구냐?
바로 우리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그러면서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기다리시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했는데
시간적으로는 "날마다" "밤마다" "밤새" 기다리시고...
공간적으로는 "넓은 가슴" "넓은 품"을 가지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며
또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까?

바로 이점이 중요한데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 진정한 자유, 진정한 축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아버지께서는 기다리다 못해.. 우리를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성탄절입니다.

성탄절 노래 가운데 한 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112장 1절).

  그맑고 환한 밤중에 뭇천사 내려와... 그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송하기를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평안 하여라... 그소란 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도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이 땅에 오셨는데...
오셔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니...
그 모습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초청하십니다(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은 근심 걱정에 찌들리고... 얼굴과 마음이 일그러진 사람들을 향해서...
아주 부드럽게!! 마음 중심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말로... 초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초청만 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은 어떤 동네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주님은 한 중풍병자를 만나게 되면서... 오늘 본문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요즘도 이러한 중풍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중풍이란 양방(洋方)에서는 뇌졸중이라 하고 한방(韓方)에서는 중풍이라고 하는데
이 병을 중풍(中風)이라고 말하는 것은..
평소 건강하게 잘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며 쓰러지는 것이 마치 바람맞은 것 같다하여.. 중풍이라 표현하는 것으로서
주로 여자보다는 남자에게서 많이 발병하며...
또 연령층으로는 45-65세에 많이 걸리며..
계절적으로는 주로 겨울과 봄에 많이 발병하는 병이... 중풍(中風)입니다.

요즘도 뇌질환으로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중풍이 되어... 치료가 쉽지 않은데...
본문에 등장하는 중풍병자가 침상에 누운 채로 사람들에게 들려 들어 온 것으로 보아...
그 병의 정도가 아주 심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두말하지 않아도...
이 사람을 왜 들고 왔는지...
그리고 그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지금 무엇을 간절히 원하며... 어떤 말 듣기를 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이 찾아온 그 기대와는 달리
아주 의외의!! 정말 아주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중풍병에 걸린 환자 자신이나 저를 침상에 눕혀 들고 온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가 그런 말 들으러 여기까지 왔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니!!

그런가 하면 그 자리에 있던 서기관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제 정신인가?
  뭐 좀 잘한다 해서 와 보니... 하나님 모독하는 발언이나 하고 있구나...

그런가 하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일반 회중들은... 이 예수님의 발언이 신기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들 생각하느냐? 너희들 생각... 다 안다.
  그런 생각들은 다 악한 생각이다.
  생각해 보라.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 어느 말이 더 쉬운 말인가?
  인간이 인간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은 어렵지만 그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는 말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 아닌가?
  그렇기에 내가 지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말을 했다면...
  그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인지... 너희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내가 죄를 사하는 권세 있는 자임을 너희로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이어서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대답을 해 주십니다.

  일어나, 네 침대를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이 사건은 중요한 사건이기에 다른 복음서에도 소개하고 있는데...
한번 다같이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2:1-12입니다. 55쪽입니다.
제가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눈으로 따라 읽으시기 바랍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설교 중에 지붕을 뜯고 이 중풍 병자를 달아 내렸다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자 생각해봅시다.
이 중풍병자나 이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그 간절하고 다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사실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의 지붕을 그렇게 함부로 뚫을 수 있는가...
이것은 주택 침입죄, 건물 파괴죄, 집회 방해죄... 이런 죄목들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기에...
그들의 그 어려운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점에 대하여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은 지금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이 지금 예의를 갖추고 있는가 아닌가에 있지 않았습니다.
또 '이 중풍 병자를 보니 병이 심각하구나...
그래.. 내가 고쳐주어 건강하게 살게 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어야겠다...'
여기에만 관심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인간의 죄!! 그 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것이었으며!!
오셔서 죄를 사해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데에 관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아니 모든..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들추어 내시고... 그 죄를 사해 주시며...
그리고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있는 자이심을 알게 하고... 믿게 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구주로... 구세주로... 믿게 하여
그 믿는 모든 자를 온전히 구원하는데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에 이 사건에서
물론 남의 집 지붕을 함부로 뚫고 중풍 병자를 달아내린 것은 분명히!!
주택 침입죄, 건물 파괴죄, 집회 방해죄에 해당되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여기에 관심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구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강의나 설교 중에 조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대부분 어떻게 합니까?

책상을 탁탁 치거나... 아니면 종을 땡! 하며 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책상의 입장에서 보면... 책상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책상은 지금 두드려 맞고 있는 것입니다.... "탁탁!!"

마치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중풍 병자의 사건은
중풍병자 자신이나 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그 병만 고쳐주면 모든 것은 끝인데
예수님의 관심은 여기에만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관점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모든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옵니다.

  주님, 제가 몸이 좀 아픕니다. 낫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제 아이가 몸이 좀 아픕니다. 낫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제 직장생활이 참 힘듭니다. 좋은 직장을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제 아이가 입시생입니다. 공부를 잘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주님께 나와 간청합니다...마는...
물론 주님은 그 문제를 들어 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지만...
주님의 진정한 관심은!! 이러한 우리의 관심과는 다른!! 더 깊은 곳!!...
정신적인 부분이나 영적인 부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분문 12-13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참 희한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렇게 죄인들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오늘의 핵심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셔서...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불러도 부드럽게 부르고 계시며... 다정하게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찬송가 318장).

  1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로마서 3:23-24).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7-8).

예수님은 이렇게...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사랑하셨으며...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셨으며...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마지막에는 죄인을 위하여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놓고 볼 때 그의 죽음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의인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자신의 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여
그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문제는 이러한 주님의 초청 음성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찬송가 318장 가사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2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아니 받고 못들은 체하려나
  3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후렴) 오라 오라 방황치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또 339장 찬송에는 이런 귀한 찬양도 있습니다

  1 큰죄에 빠진 날위해 주보혈 흘려 주시고 또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2 내죄를 씻는 능력은 주보혈 밖에 없도다 정하게 되기 위하여 주께로 거저 갑니다
  3 큰죄악 씻기 원하나 내힘이 항상 약하니 보혈의 공로 믿고서 주께로 거저 갑니다
  4 내죄가 심히 무거워 구하여 줄이 없으니 내의심 떨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거저 가는 것입니다!! 이 모습 이대로 주받으옵소서(찬송 349장 후렴)하면서...
주님께로 거저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풍성하시고 자비가 무한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죄 용서함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새 힘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더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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