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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하리라 (요 8: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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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자유하리라
성경본문 : 요한복음 8장 31~38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36절) 

<목회기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오늘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영광 받으시옵소서.
무례하고 잔인하며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복음을 듣게 하심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심 감사합니다.
세상은 큰 파도가 되어 우리를 덮치려 하고
우리는 무능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지만
붙드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곳곳에서 다르게 살던 이들이 모였습니다.
형편과 사정이 다른 이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함께 앉았습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모여 왔습니다.
신령한 만나를 먹이시고 영육간에 치료받아
새 힘 얻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걷게 하시고 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귀한 젊은 날을 조국 수호를 위해 희생하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공무를 수행중인 이들, 객지/외국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를 그리워하는 이들
집과 병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확인하며 투병중인 환자들
외로움과 서러움에, 섭섭함에… 마음 상한 이들
하나님 기둥교회에 속한 저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셔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주님 주장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3월이 주안에서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 오늘 예배의 자리에 노예처럼 끌려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결혼을 하기 위하여…, 
직장 상사와 약속한 것 때문에… 오셨습니까?
기쁨과 감사 없이 의무적으로 앉아 있더라도 어떤 이유로 왔든지…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중에, 말씀 듣는 중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유의 정의
 
동물과 사람의 차이는
  - 동물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 사람은 선택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선택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 할 수 있다고 해서, 선택했다고 해서 모두 [자유]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선택했느냐,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그 선택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해진 레일을 달리는 기차와 같은 존재로 인간을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정해진 길, 정해진 방법에 따라 살도록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해진 삶을 사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허락하시고
그 허락하신 자유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분이십니다.
자유를 누린 것, 자유로 한 일이 무엇인가에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자유라고 생각하는가?"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옳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자칫 방종과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사람 개인이 누리려는 자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어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참된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누리는 자유의 질에 따라 평가됩니다.
-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 밥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받은 예절 교육의 정도와
  상식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 화장한 것, 옷 입은 것… 등 외모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유입니다.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은 "계속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제쳐둘 수도 있고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사람으로 구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고
자신이 누린 자유만큼의 책임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방종"까지 자유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방종(放縱)이라는 말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막 놀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 자유
 
그렇다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참 자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요8:32~32)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33)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요8:33) 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8:34) - 개역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 표준새번역   
  "I tell you the truth, everyone who sins is a slave to sin." - NIV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두 종류의 자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유입니다.
  - 유대인들은 신분의 자유를 말합니다.
  - 유대인들은 자기 스스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기에 자신들이 자유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에 지배받는 민족이지만
    아브라함의 후예로, 유대인 선민으로서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정한 시간에 기도하고… 지내는
    신앙적인 자유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는 다릅니다.
  - 죄로부터의 자유, 내적인/영적인 자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 남의 압제로부터의 자유(신체적/정치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는 자라도
    <죄로부터의 자유> 즉 내적/영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는
    참된 자유자가 아님을 선언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말하는 자유
 
누가복음 15장(11~19절)에 나오는 한 가족 이야기를 보십시오.
아버지와 형, 그리고 가족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삶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추구한 둘째 아들은 자기만의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와 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은 잠시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참한 환경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돼지우리 속에서 자야 했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난 후 사기를 치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도적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자기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썼을 뿐이었습니다.
탕자는 자유를 즐겼을 뿐입니다.
그러나 탕자는 탄식하는 자로 변했고 가장 비참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주려 죽는구나"(눅15:17)하는 상태까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됐지, 무슨 상관이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인간은 자유스러워 졌을 때 편안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무엇엔가에 묶여 있기를 원하는
독특한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속박을 속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만약 무제한의 자유에 처해 있다면 공포를 맛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도 남편/아내에게 얽혀 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인해 힘들어 하고
"왜 하필?"하면서 안타까워하고 탄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교회에서 전도사님들이
예배를 잘 드리는 지 확인하는 것에 대해 귀찮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물건 사고 계산하고 나오듯이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겠다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얽혀 있지 않은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학교에, 직장에… 연결된 줄에 매여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얽힘에서 벗어나는 순간 기쁘고 즐거울 것 같지만
곧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으면서
동시에 무엇엔가에 묶여 있어야 안정이 되는 모순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하나님과 연결된 자유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했습니다.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 NIV
여기서 <안다>는 것은 "내적으로 진리와의 영적인 만남에서 '안다'"는 뜻입니다.
물론 지적인 이해를 전제한 것이지만(Lenski 주석 p.531)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만남이 있어야 자유케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진리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 길, 진리,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고 선언하셨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자유는 노력으로, 인위적인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갈5:1) 갈라디아 교회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고 권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가르침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 문제를 해결 받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죄의 값인 사망(롬6:23)을 치르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요3:16)
우리가 왜 사순절을 지내며 보라색으로 장식하고
헌신과 고난과 희생을 상징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고난 받으신 것이 감사해서입니다.
예수 믿고 영생을 보장받고(요3:16)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요1:12)
예수 믿음으로 천국의 시민권자가(빌3:20) 된 것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스스로 자유를 선언한다고 해서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묶여 있는 사람, 노예가 된 사람은 주인이 풀어 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노예의 값을 치루고 사주거나
노예 제도가 망해야 비로소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928년에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 '플리머스(The Plymouth)'라고 하는 교회에서
어떤 흑인 할머니가 예배 끝날 즈음에 손을 들고 말합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딱 한번 마지막으로 부탁하는데
    저 강단에 나가서 간증 좀 하게 해 주세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는 절대 안됩니다. 예배 시간에 그래서는 안됩니다.
제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럴 생각 절대 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은 할머니가 하도 간절히 부탁하기에 허락을 하였습니다.
흑인 할머니는 강단에 올라오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68년 전 일입니다. 
  68년 전 날짜까지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860년 9월 19일, 그 날은 주일날이었습니다.
  이 교회 마당에 노예시장이 열렸는데 저도 노예로 팔려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딴 곳에 노예로 팔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어떤 집으로 팔려가게 되나, 내 운명은 어떻게 되나…,
  초조히 벌벌 떨고 있을 때, 예배를 마치고
  이 교회에서 나오시던 목사님이 나를 붙들더니 800불을 치르고 나를 사서
  당장에 나를 자유 하게 해 주셨습니다.
  듣자하니 그 날 예배에서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노예 한 사람이라도 자유케 하여줍시다" 해서 헌금한 돈을 가지고
  저를 사서 풀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저는 그런 고로 이 교회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68년 동안 이 교회에 출석하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나이 많아져서 죽을 때가 가까웠기에
  이 감사의 간증을 꼭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며 울먹였습니다.>
 
<자유>는 묶여 있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자유할 수는 없습니다.
풀어주어야 하고, 해방시켜 주어야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자유를 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 속에 살고 있으면서 자유할 수 있는 방법은
진리를 아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도 자유인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 믿음으로 영생을 보장(요3:16) 받은 자유인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빌3:20)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요1:12)가 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요8:31)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자율적 사색'으로
온전히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참조,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
여러분, 세상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하는 것이 미련해 보여도 그 미련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계시 의존적 사색'을 통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참조, 마11:25~27)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11:25~27)
그러므로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이 진리에 이르는 조건입니다.
 
그러려면
(1) 말씀을 수용해야 합니다.
요한은 믿는다는 말을 '영접'(요1:11~12)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영접이라는 뜻은 '귀한 분을 극진히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도 <새신자영접위원들>이 있습니다.
새신자를 그냥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신자를 귀한 분으로 여겨 극진히 맞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귀한 분으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 당하신 분으로, 피흘리신 분으로 귀하게 맞아들이셨다면, 영접하셨다면
여러분은 용서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디매오는 보아서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강도는 착해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낙원이 약속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알고 떠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떠나 축복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쟁이를 잡아죽이는 무리였으나
그 속에 믿음이 들어갈 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믿음은 참다운 가치를 발견케 하고 새 출발시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뜻 안에서
(2)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안에,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살아야
거기가 사는 길이요, 복된 길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길이 자유인 것 같았으나
그 길은 망하는 길이었고,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살인을 하지 않았어도, 사기를 치지 않았어도, 도적질을 하지 않았어도
아버지를 떠난 것이 죄였습니다.
아버지를 떠났던 탕자는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눅5:18) 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 했고, 하나님을 등졌던 것입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향해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관계를 단절한 것, 그것이 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묶여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귀한 존재입니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서 하십니다.
"나는 귀한 사람이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만큼 우리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치 있기 때문에 오늘 나를 살려 주셨고,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 받은 백성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연결된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묶어 주신 가정, 부모, 남편, 아내, 자식, 친척 모두 귀한 존재입니다.
다른 집 남편, 아버지와 비교하지 마세요.
다른 집 아내, 어머니와 비교하지 말고 다른 집 자녀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 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잘 쓰실 줄로 믿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적을 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둥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시는 것 감사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방랑자가 되지 않고 기둥교회에 적을 두고
기둥교회를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로 만들어가는 사명자가 되신 것 감사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요즘 인터넷으로 제게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국에서 편지가 오기도 하고, e-mail로 편지가 옵니다.
길게 답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질문에 짧게 짧게 답을 합니다.
어떤 분과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가까운 교회를 정해드릴 테니 그 교회에 가셔서 목사님을 만나시고
신앙의 도움을 받으십시오."라고 교회까지 정해서 e-mail로 답을 보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이 지난 주에 우리 기둥교회에 등록하셨습니다.
여러 교회에 상담을 요청하고 문의했는데 모두 자기 교회에 등록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가까운 곳의 교회까지 정해 주면서
"가라고 하는 분은 '고신일목사님' 한 분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기가 진짜구나. 기둥교회가 진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 교회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감사해요. 이제부터는 더~ 가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여러분,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가 태어난 이땅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심하고 멍청한 정치인들이 많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 없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지만
그래도 이 땅에 눈물 뿌려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부림치며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민족의 장래가 눈물로 기도하고 희생하며 애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민족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얽매임을 주셨고,
가족과의 얽매임, 교회와의 얽매임, 사회와 국가와의 얽매임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얽매임 속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자유케 하리라, 자유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유를 가지고 섬기며, 베풀며, 낮아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고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받은 자유를 가지고 나로 인해 웃게 만들고,
나로 인해 화목하게 만들고, 나로 인해 소망이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사는 참된 자유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디에 살든지 빛되고 소금되고 섬기며 베풀고 낮아지는 참된 자유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허락받은
복된 사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얽매임 속에서도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 결심을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
"자유케 하리라, 자유하리라"라고 선언하신 그 자유를 가지고
섬기며, 베풀고, 낮아져 참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사는
저희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3월  7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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