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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믿으시는 하나님 (2) (시 1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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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믿으시는 하나님
(시122:1-7)

지난주에는 하나님이 우리 개개인을 믿으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지 않고야 그렇게 전지전능하신 분이 그 엄청난 모든 것들을 다 투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들 중 몇 몇 개인은 하나님의 일을 크게 도우실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몇 몇의 개인이 되느냐 입니다. 선택된 모두를 다 믿지만 특별한 존재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2편을 하게 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 . .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믿으시는 대상은 우리들이란 것입니다. 여기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제”란 원리가 설명됩니다. 아무리 혼자 잘해도 교회와 떨어지면 불완전한 신앙이 되고 만다는 말이지요.

이현주의 시입니다. 한송이 들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여럿이 어울려야 비로소 핀다/들꽃은 아름답지만/혼자서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다/한 송이 들꽃은 그래서/바람이 불어도 외롭지 않다/들꽃이 피어서/들꽃이 피어서/산이 무너지지 않는다/강이 끊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산처럼 하나님이 믿고 세상 구원을 맡긴 교회의 일원입니다.

1. 신자는 개인이지만 개인이 아니다

신자는 누구나 능력을 원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겨나가고 귀한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기한 힘 얻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비한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이러저러한 지시를 받기 원합니다. 결혼 상대자를 찾거나 사업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무언가 확실한 경험 얻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가서 배웁니다. 원하는 대로 기도원에 가거나 부흥회에 갑니다. 그리고 설교 좋고 프로그램 좋은 곳을 따라서 이리저리로 가봅니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신자 76%가 교회를 몇 군데 옮겨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 어느 새로 시작한 교회에서 축복을 강조하는 설교 한다고 해서 많이 모여 벌써 상당히 큰 규모 교회가 되었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 같다 하지만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전 그리고 설교자들이 TV나 방송에 안 나올 때는 신자들이 몇 군데로 몰리지 않았습니다. 교회 이름도 지역을 따라 지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정해지면 옆에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 자기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든 그저 꾸준히 한 군데 출석했습니다.

교회는 영적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은 이리 저리 이합집산 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은 서로 고쳐가며 끝까지 돕고 의지합니다. 그러기에 혹시 다른 교회를 방문하면 남의 집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이나 설교 좋은 교회를 따라서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여기서 팽배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보다는 개인주의입니다.

크고 유명한 교회는 전도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에서들 그리로 모여듭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는 더욱 작아지고 큰 교회는 더욱 커집니다. 작은 교회들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결국 작은 교회가 다 없어지고 나면 큰 교회도 사라지고 맙니다. 무작정 큰 교회 나가면 신앙에 도움이 될까요? 주 예수의 짐을 지고 봉사하고 전도하며 핍박을 받나요?

이 모든 문제는 신앙을 너무도 개인적으로 알기에 일어납니다. 나 하나 편하고 잘되면 됩니다. 교회가 마음에 안 들거나 짐이 무거워지면 미련 없이 떠나버립니다. 그러면 주의 몸의 한 부분이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가 있어도 여전히 교회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주의 몸은 짐 지고 봉사하고 희생합니다. 그래야 자기도 삽니다.

분명한 진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자 개개인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 개개인은 주의 몸 안에 붙어있는 개개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주의 몸을 통해 거기 붙어있는 개개의 지체가 잘되게 하십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분은 참으로 복됩니다. 나 혼자 잘되려는 신앙은 초보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희생할 줄 알아야 성숙한 신앙입니다.

다윗 개인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다윗 때문에 이스라엘이 최강국이 됩니다. 국민 하나하나가 이스라엘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울왕의 추격이 극심할 때 아들의 반역으로 나라를 빼앗겼을 때 이민을 가버린다면 다윗이 번영했을까요? 이스라엘인이어야 다윗도 있는 겁니다.

2. 전체에서 오는 힘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거기 있는 다윗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내리는 복을 다윗이 특별히 받습니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구성원은 나라와 함께 복 받고 성장해야 합니다. 미국인이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국민의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늘나라 백성은 미국국민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확실하게 지적해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개개인이 받는 것보다 전체로 받는 게 더 중요하고 큽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능력과 복 받는 것 귀합니다. 그러나 혼자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작은 범위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보따리장수로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재벌은 될 수 없어요.

동시에 개개인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받을 것만 생각하고 툭하면 원망이나 하고 이민 가겠다고 해서는 나라가 복을 받을 수 없어요. 눈이 와서 밤새도록 고속도로에 갇힌 사람들이 8천명이었습니다. 고생 많이 했지요. 그러나 천재지변을 만나고서 정부를 원망하면 됩니까? 아무 대책이 없었다고요. 인터뷰에 그런 사람이 있어요.

서로 격려하면서 역경을 극복해야 훌륭한 나라가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얻어갈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공헌할 것을 먼저 생각하면 복됩니다. 분당이 멉니까? 먼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까웠으니까 그것을 감사해야지요.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경치도 좋고 주차하기도 좋은 것을 또한 감사해야지요.

복받은 이스라엘은 누구나 성전에 가자고 할 때 기뻐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복된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사랑했어요.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조밀한 성읍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돌 하나 뺄 수 없습니다. 모든 지파가 예배하러 올라갑니다. 거기 판단의 보좌가 있습니다. 왕과 왕국은 성전을 의지하고 일어나고 번성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선언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화를 구하라.” 예루살렘이 잘되도록 힘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오늘 말로 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의 몸인 교회가 우선 잘 되도록 하라. 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이 예수를 가장 사랑하시고 교회가 그 몸이기 때문입니다.

신자 개인은 예수의 몸에 붙어서 복을 누립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라.” 교회에 붙어있으면 예수가 받는 모든 힘을 받습니다. 누구나 자기 몸은 귀하게 여기고 보호하려고 합니다.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힙니다. 예수도 마찬가지에요. 자기 몸을 보호합니다. 불시험에서 건져 냅니다. 또한 자기 몸이 유익하도록 모든 좋은 것을 취합니다.

예수와 내가 한 몸임을 믿습니까? 이 확신이 모든 힘을 줍니다. 하나님이 약합니까? 하나님이 거짓을 행하고 속입니까? 하나님이 우울하고 비관적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예수와 한 몸임을 믿을 때 모든 능력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예수와 한 몸임을 믿는 우리를 믿습니다. 그래서 그 몸을 돌보게 하십니다.

3. 전체가 잘되도록 힘을 다하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6) 각 부분의 세포들이 출생했으면 성장해야 합니다. 바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봉사와 재생산입니다. 건강한 몸 그리고 건강한 교회는 반드시 두 가지를 합니다. 봉사와 재생산입니다. 스스로 확인해 보세요. 봉사하나요? 다른 사람을 구원했나요? 성장은 힘들어요.

주의 명령입니다. “성장하려면 예루살렘이 성장하게 하라. 힘을 다해 희생을 바쳐라. 그러면 주의 몸과 함께 너도 성장한다.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모든 복을 부으신다. 너는 네 희생의 열매를 누릴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작은교회는 전체 주의 몸의 작게 나뉜 것입니다. 모여도 좋고 안 모여도 좋은 게 아닙니다. 몸의 각 부분이 서로 봉사하고 힘을 주고받으며 건강해지고 성장하듯 반드시 모여야 합니다. 이번 3월 한 달은 특별히 작은교회가 모이는 달입니다. 복 받을 일은 쉽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마음만 확실하게 정하면 쉽습니다.

작은교회로 모여 주의 몸을 이룹니다. 서로 섬기고 격려하며 서로 힘을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전체 교회가 강해지고 다시 한국의 교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체에 복을 주십니다. 작은교회가 잘 되면 그 위에 또한 작은교회들이 잘되어 우리 교회가 잘되면 우리 교회 전체 위에 그리고 지교회들이 잘되면 한국교회 위에 복을 부으십니다.

힘들어 보입니까? 운동을 하느라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 사람이 저를 보면서 감탄을 해요.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힘이 좋으십니까?”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은 제가 드는 무게의 1/3 정도를 가지고 운동을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수준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나 꾸준히 연습하면 어느새 큰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요.

LA영락교회에 이희선 집사라고 계십니다. 교회 전도부 차장입니다. 세 가지 사업을 할 정도로 재력이 있습니다. 천명이 전도목표인데 작년에 107명을 교회로 인도했답니다. 전도를 위해 매주 나흘만 일하고 이틀을 전도에 사용합니다. 매일 저녁 8시부터 50분간 전도대상자에게 이슬비 전도편지를 씁니다. 이틀은 사람을 만나 식사하고 교제도 합니다.

처음에는 전도를 위해 매월 20만원을 썼는데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80만 원가량을 씁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600명을 전도했답니다. 모두 놀라는 그 능력이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그 교회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가 그 일을 통해 받은 복은 말로 다 할 수 없답니다. 이왕 바쁘고 힘들다면 무얼 위해 그러십니까?

다시 한 번 이현주의 시를 음미해 봅시다. “한송이 들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여럿이 어울려야 비로소 핀다/들꽃은 아름답지만/혼자서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다/한 송이 들꽃은 그래서/바람이 불어도 외롭지 않다/들꽃이 피어서/들꽃이 피어서/산이 무너지지 않는다/강이 끊어지지 않는다. ”들꽃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교회의 중요성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 전체위에 쏟아진 복을 다윗이 크게 받고 다시 이스라엘을 복되게 했습니다. 그는 피와 땀과 눈물을 드렸어요. 앞서서 목숨을 내놓고 싸웠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믿으십니다.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교회를 선물로 드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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