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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교회 (고전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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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고전1:10-17
제목: 아름다운 교회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많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세계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뒤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아름다웠다’는 뜻입니다. 세계를 여행 하다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합니다. 스위스가 아마도 나라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일 것입니다. 산과 나무와 바다가 함께 조화를 이룬 스위스의 경관은 한번 가면 오래 머물고 싶은 곳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가장 큰 표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인이 가장 살고 싶은 곳 1위가 바로 스위스입니다. 참 평온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드시는 뒤에는 보기에 ‘심히’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탐복할 만큼 아담과 하와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처음의 모습으로 회복해 가는 것을 의미입니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우리가 다시 외모나 내면이나 마음이나 인격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폭넓은 의미에서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름다우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모두 아름답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의 삶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특히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더욱 아름다워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가고싶은 교회, 건강한 교회, 소문이 좋은 교회, 그리고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벅찬 흥분과 감격으로 이제 정말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가 이 교회를 아름다운 교회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그것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은 고린도 교회를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교회는 참 좋은 교회의 상을 보였습니다만 이 교회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답지 못하고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추한 모습을 보면서 진정 교회의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교회의 추한 모습이었을까요?

  우선, 분파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당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바울을 거슬리게 하고, 하나님을 아프게 했던 것이 바로 파벌이었습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특히 그것이 12절 이하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당시 교회는 네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입니다.

  ‘바울파’는 바울의 전도를 통해 예수를 믿은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어떻게 보면, 당시 교회의 개척 멤버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교회의 주도권을 갖고 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볼로파’는 철학적 소양이 깊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은 아볼로를 중심으로 한 교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는 당시 교회의 지성적인 교인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기에 교회에 지식층이라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여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며 자기들의 입지를 견고히 했던 것입니다.
‘게바파’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였으며, 사도를 대표하는 점을 들어 그를 지도자로 섬기려는 교인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입니다. 주로 유대인들로서 자기와 다른 사람, 다른 형태, 다른 모습에 대해 수용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파’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한 자들의 증언을 중시하는 자들로서 소위 은사와 체험을 강조하는 영성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교회 안에 이런 네 갈래의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지금 이 교회가 한나라, 민주당,열린우리당, 자민련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이 분파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추해 보였고,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치와 연합을 강조하는 주님을 몹시 실망시킨 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직전에 유언처럼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바울은 주님의 이 간절한 기도를 마음에 깊이 간직하며 전도를 했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무엇보다도 연합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교회의 추한 모습은 바로 분파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파벌로 갈라진 것을 보면서 이골이 나기에, 교회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그것을 보니 교회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름답기를 원하십니까?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같은 마음, 같은 뜻을 품고 온전히 합해야 합니다. 교회가 추악해 지지 않도록, 교회가 아름답도록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시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분쟁입니다. 이것은 분파보다 더 추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분파보다 분쟁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분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절과 11절에 이 말이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분파도 문제였지만, 그 분파간에 주도권을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이 더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추한 모습입니다. 보기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종종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친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하여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이것은 정말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분쟁에 휘말리면 갈데 까지 갑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까지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나라 정치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제 곧 총선을 앞두고 있고,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운데 위정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요즘 정치를 보면서 도대체 이 상황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치가 확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바램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지낸 세월동안 도약적인 발전을 했는데, 정치만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통계에 정치인을 가장 못 믿을 사람, 가장 추악한 사람, 가장 더러운 곳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그곳이 가장 깨끗해야 하고, 가장 아름다워야 나라가 발전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정말 서글픈 일입니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하는 일은 서로 물고 뜯는 것입니다. 서로의 약점과 비리를 까발리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는 죽기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같이 죽자는 것입니다. 문제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다 저 사람 때문입니다. 의견이 같지 않으면 같은 소속이라도 적입니다. 정말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이것이 갈 것인지...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살고 있는 뱀은 서로 잡아먹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 뱀은 서로가 꼬리를 물고서 팽팽하게 대립합니다. 그러다가 서로 조금씩 잡아먹고, 결국 잡혀먹게 되어서 두 마리가 다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5장 1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싸우는 것이 더럽고 추한 것입니다. 싸우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싸우면 서로 진흙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깨끗 하려고 해도 묻게 되어 있습니다.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종종 볼 수 있는 모든 다툼이 뜨거운 용광로 속의 불순물처럼 녹아 없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는 미해결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아름답지 못했던 것은 분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 분파간의 분쟁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 이런 일이 지금까지 많았고, 앞으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회공동체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갈등이 있습니다. 다투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갈등을 접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이것이 반복되기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정말 추한 것은 분파나 분쟁보다, 풀지 못한 것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안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추합니다. 갈등 뒤에 화해하고, 용서하고, 해결된 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이야기의 결론은 문제를 풀고 화해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은 형인 에서와 갈등관계에 놓였던 사람입니다. 그들의 갈등에는 부모의 영향이 있었던 것을 봅니다. 결국 부모는 두 사람을 갈라놓게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20년 동안 고향을 떠나 살았습니다. 그러나 떨어져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금의환향하며 고향 땅을 밟으려 할 때, 형은 복수를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들 사이가 극적으로 화해했습니다. 둘이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앉고 울었습니다. 성경은 그 감동의 사건을 처음부터 놓치지 않고 귀한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한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요셉도 형들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누가 먼저 잘못했느냐를 떠나 한 집안에 있었던 이들의 갈등으로 요셉은 야곱처럼 고향을 떠나 20년 이상 방황해야 했습니다. 형들도 요셉을 판 뒤에 편치 않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이 형들을 다시 만납니다. 요셉은 자기를 모함한 형들에게 보란 듯이 복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요셉과 형들이 만나던 날 요셉도 울고, 형들도 통곡하고, 아버지도 울었고, 그리고 하늘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화해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요셉이야기의 중심내용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정말 참된 화해는 하나님과 인간, 우리의 화해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지옥형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서 막혔던 담을 허셨고, 깊은 골을 메워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장 핵심이 아닙니까?

  고린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문제와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결론은 그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고 교인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통회하고 뉘우칩니다. 그리고 갈등을 풀었습니다. 우리교회가 회개하던 날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성경의 초점은 ‘갈등’이 아니라 ‘화해’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성경에 이다지도 인간냄새가 나는 더럽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갈등을 단순히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바로 갈등을 화해로 만들었던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사람이 모인 곳에 갈등이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에 끊임없이 요구하신 것이 바로 화해와 용서와 해결입니다.

  더럽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혹 더러우면 씻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입니다. 세상에는 용서가 없고, 화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평생 원수처럼 살다가 깨달음 없이 부들부들 떨며 세상을 마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그 거룩한 백성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서 함께 지내다가 천국에도 같이 갑니다.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고, 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갈등과 다툼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곳, 그 현장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추악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분파가 우리를 더럽게 합니다. 분쟁이 우리를 추악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의 고집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를 이루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그리고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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