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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마 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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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마 4:18~22)

사람을 쓸 때에 면접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라고 묻고 미국인들은 ‘이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느냐’ 라고 묻는데 일본인들은 ‘어느 대학 출신이냐’를 묻고 한국에서는 ‘고향이 어디냐 아버지는 무엇하시는 분이냐’를 묻는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이나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혈연, 지연, 집안을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한국에 와서 제자를 선택하셨다면 누구를 택하셨겠습니까? 틀림없이 지역 안배를 하셨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위하여 제자가 필요하셨습니다.  사역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직책보다도 사람이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래서 직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신 일은 없습니다.  제자를 삼기 위하여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에 오늘날 회사라면 사람을 뽑기 위해 컴퓨터에 입력해 넣고 인물 분석을 한다면 합격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고 도마는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다혈질이라서 급해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고 거기다가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안드레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매사에 추진력이 떨어집니다.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서 위험한 존재이고 세리 출신 마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제자들은 매우 둔하였습니다.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요 20:9)  둔한 사람도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J. 에드 후버’가 워싱톤의 FBI 국장이었을 때 청년 공산당원을 조사하면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IQ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려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배웁니다.  제자는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둔해도 지혜가 부족해도 제자 될 수 있습니다.  실천력이 있으면 됩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이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기 전에 할 것이 있습니다.

1.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삶의 방식을 바꾸고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그들이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든지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서 생계를 위하여 버리고 따른 게 아닙니다.  직업을 바꾸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제자 되기 위하여 제자 되기 전에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제자 되기 전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렸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배나 그물이 무엇입니까? 생계와 연결되어 생각해보아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생업의 도구입니다.  이제는 먹고 마시는 것에 전념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버릴 것이 있으면 있는 대로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버리고 떠날 수 있어야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벗이요, 친구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애굽을 떠나 숙곳에 이르니 비로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며 신앙고백도 잘합니다.  고백 이전에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1)  옛 구습을 버려야 합니다.(골 3:5-10)

우리는 예전의 습관에 물들어 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로운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는 나의 나쁜 습관을 통해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잘못된 오락이라는 습관입니다.  먹고 마시는 습관 중에 불신자들이 즐기는 것을 먹고 마십니다.  그것 하나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말입니까? 제자는 새로운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에 잘 참석하는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자주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기도의 습관을 가지셨습니다.  습관을 따라 새벽미명에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읽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는 무슨 일을 하던지 꼭 예배드리는 분이 계십니다.  이사하였는데 먼저 예배드리고 입주하려고 합니다.  자동차를 새로 구입했는데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운전하려고 합니다.

좋은 습관을 가져야 제자입니다.  좋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잘못된 것을 버리세요.  그래야 제자의 삶이 됩니다.
버린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삶에 절대 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배와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나의 삶의 우선이 예수입니다. 사는 것이 주님 먼저 입니다 라는 표현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이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희생을 각오한 것입니다.  제자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구원은 값없이(Free) 주어집니다.  그러나 싸구려(Cheap)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비싼 생명을 주셨음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원하시면 먼저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2)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게 이기심입니다.  왜 분쟁이 생깁니까? 나만 위해달라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이기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도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천사가 두 사람을 데리고 여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욕심이 많았고 힘이 굉장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힘은 없으나 질투심이 많았습니다.  얼마동안 여행하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말하기를 이제 헤어지게 되었는데 무엇이던지 원하는 대로 말하라.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겠다.  그런데 조건은 먼저 말하는 사람보다 나중에 말하는 사람에게는 배를 준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피를 말리는 인내심으로 상대방이 말하기를 기다립니다.  왜 배로 얻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기다려도 말하지 않자 해가 지게 되고 천사가 가겠다고 말했답니다.  그때 힘 세고 욕심 많은 사람이 질투심 강한 힘없는 사람을 쓰러뜨리고 말하라고 욱박지릅니다.  어서 말하라는 겁니다.  그때 밑에 깔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질투심 많은 사람이 내 눈 하나 없게 해주세요.  그러자 자기 눈이 보이지 않자 상대방은 두 눈이 없어졌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네가 잘되는 것은 볼 수 없다는 사고가 무너져야 합니다.  이기심은 자기 자신이 비참해지게 만듭니다.  먼저 이기심을 버려야 제자가 됩니다.

  3)  명예도 버려야 합니다.

사명이라는 미명아래 명예심이 주도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 곁에서 ‘이런 일은 너를 명예롭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올라가라 하고 뛰어내리라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다 그럽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명예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려고 하면 이것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일시적인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한 것을 포기한 일이 있으셨습니까? 주님은 우리들이 직분을 맡음으로 만족하시는 게 아닙니다.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약점 중에 하나가 예수를 위해 삽니다 라고 했는데 포기할 줄 모르고 모든 것을 다 얻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주님의 제자로서의 영광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제자 되기 전에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남자분들이 군대에 들어가면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을 마치면 다시 제2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다시 받습니다.  그때야 2등병 계급장을 달아줍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고된 훈련을 마쳐야 고작 2등병입니다.  훈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훈련이 자격자 되는 과정입니다.  병사가 훈련받지 않고 전장에 나가면 틀림없이 전사합니다.  훈련은 군대의 생명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어느 집에 귀한 외동딸이 결혼하였습니다.  귀한 딸이기에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니 자기 방 청소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시부모를 모시는 집으로 시집간 것입니다.  시어머니 되시는 분이 그럽니다.  아가야 이제부터 이 집주인은 너다.  집안살림을 알아서 해라 살림을 맡았지만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하지요.  한 번도 본 일도 없는데 눈앞이 캄캄합니다.  그녀는 즉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겁니다.  친정엄마도 난감합니다.  시켜보았어야 알고 알아야 시키는 것 아닙니까? 우선 밥하는 법을 전화로 말합니다.  물을 어떻게 붓고 불은 어떻게 하고 그런데 안 되는 겁니다.  새댁은 방에 들어가 엉엉 울었습니다.  왜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친정엄마를 원망하면서 말입니다.  사랑스러워 아까워서 연습시키지 않는 것은 대단히 잘못한 겁니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됩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의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니라”(딤전 4:8)  육체도 자꾸 연습하면 건강해집니다.    미국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에 자전거 타기와 농구하는 거라고 합니다.  16만 4천명이 한해에 농구 하다가 다치고 20만 명 이상이 자전거 타다가 부상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서 훈련하는 것입니다. 

자꾸 연습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사무엘상 17:~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전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평소에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물맷돌 던지는 연습을 했었습니다.  자꾸 반복하다 보니까 능숙하고 정확하게 던질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것 같았으면 용기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운동하는 프로선수는 연습을 보통 하는 게 아닙니다.  100미터를 달리는 선수는 단 0.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 엄청난 연습을 합니다.  그것이 승리와 연관이 있기에 피나는 연습,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신앙도 훈련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로 하고 영적인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한 번은 선다씽이 영국에 갔습니다.  옥스퍼드의 학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예술에 천재가 있듯이 종교에도 영적으로 감수성이 남다른 이들이 있습니까?” 그때, “종교적인 소질이란 선천적인 게 아닙니다.  웨슬레 같은 분은 대학시절부터 3시간씩 기도하였고, 루터나 어거스틴 같은 이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바울은 아라비아에 가서 3년 동안 기도했으며 야고보는 항상 기도하였기에 무릎이 약대 무릎과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훈련으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1)주님과 함께 하는 훈련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항상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를 알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와 함께 있으면 그분을 배우게 됩니다.  제자는 스승을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사랑 받는 아내가 되려고 하면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남편이 들어올 때 집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같이 대화하여야 합니다.  사랑 받는 며느리가 되려면 시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시어머니 말을 들어줍니다.  맞장구 쳐줍니다.  그렇지요.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으로 대접해드립니다.  누가 효자이며 효부입니까? 같이 있어주는 자식입니다. 이런 경우가 참으로 귀합니다만 예전에 자식이 많고 자녀 중에서 부모를 모시는 자식이 있습니다.  명절 때에 둘째 아들이나 셋째가 찾아옵니다.  한 꾸러미 사 가지고 오면 그것을 자랑하면서 그 아들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이건 말 잘못하는 겁니다.  나와 같이 있어준 아들이 최고입니다.  잘못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효자는 부모와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제자는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2)  말씀훈련입니다.

처음 제자로 부름을 입은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훈련을 받고 세계 복음화를 이루어낸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훈련으로 된 것입니다.  말씀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듣는 훈련입니다.  운동경기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데 중요한 게 체력입니다.  이같이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말씀의 영양을 섭취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국에 영어 연수를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갔다고 다 영어 잘 하는 게 아닙니다.  가지 않아도 잘하는 사람 많습니다.  어디에 있던지 중요한 건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나왔다고 성경을 잘 알고 충성하는 게 아닙니다.  배워야 합니다.  말씀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듣기만 잘해도 도움이 됩니다.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말씀 훈련을 받읍시다.

3)  고난을 훈련해야 합니다.

  제자가 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묻기를 어떻게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난을 견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손해 볼 줄 아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난을 잘 감수하였습니다.  왜 고난을 당합니까? 제자로 삼으시려 연단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인도의 대장장이에게 “당신은 금을 연단할 때 이것이 순금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라고 물었답니다.  대장장이는 대답하기를 “예, 금속에서 내 얼굴을 볼 수 있을 때입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직도 불순물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것으로 연단 하여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야 진짜 제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병도 주시고 실패도 주십니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옵니다.  그것이 제자 되는 과정의 훈련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가정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자녀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이것이 제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모든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기에 고난을 당합니다.  사람들을 봅니다.  자기에게 덕이 되지 않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이익과 관계없는 일에 끼어 들지 않습니다.  대신에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되는 것 같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듭니다.  제자 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손해 보는 훈련을 하십시오.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손해 보려고 하면 싸움이 있을 리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부름을 입었습니다.  주께서 부르지 아니하셨다면 주께 올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적으로 성장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회원이 아닙니다.  즉, Member가 아닙니다.  회원은 필요할 때 모이고 즐거움을 찾는 이들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제 제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처음 믿는 분들도 제자 될 수 있습니다.  먼저, 버리려고 하여야 합니다.  못된 관습도 버리고, 체면도, 자존심도 버려야 합니다.  위선도, 허세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훈련받아야 합니다.  기도훈련, 말씀훈련, 고난을 견디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닮아 가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제자 되고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삼을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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