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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대신에 [그가] / 사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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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3. 14 주일 낮설교
<우리가> 대신에 <그가>
사 53;1-6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장 많이 생각하여야 하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의 부활 40일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말합니다. 금년 성탄절은 4월 11일입니다. 그러므로 금년 사순절은 3월 2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속에 계셨던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아침까지 약 40시간을 단식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 오직 십자가만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 후 40시간동안만 십자가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짧다고 하여 40일동안을 사순절로 정하고 십자가만을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모세는 40일 금식기도를 3번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으로 지내셨습니다. 엘리야도 40일간 금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40일간 이 땅에 계셨습니다. 40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 기독교의 전통입니다.
먼저 십자가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다방에 손님을 만나려고 가서 앉아 기다리는 데 다방 여자가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목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시나요?>
<아니요>
<그런데 왜 십자가를 목에 걸었나요?>
<예뻐서요>
<십자가는 목에 거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는 것이예요>
<가끔 십자가가 등쪽으로 갈 때도 있어요>
가끔 십자가를 지는 것은 성도의 생활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쫓아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히브리서를 신약속에 구약이라고 한다면 이사야서는 구약 속에 신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중에서도 특별히 53장은 신약중에 신약이요 예수님에 대한 예언중에 예언입니다.
신학자 켐벨 몰간은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다>라고 말했습니다. 신학자 델리취는 <이사야 53장은 골고다 십자가의 현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빈은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력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평안을 좋아하는 데 예수님은 고난을 자초하셨고, 사람들은 밝게 살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어둠속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받으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주셨고, 사람들은 더 살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그만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위에 있기를 바라는 데 예수님을 친히 낮아 지셨고, 사람들은 앞서 가기를 원하는 데 예수님은 친히 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쌓아 놓으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모두 없애셨습니다. 이런 일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본질은 <대신>입니다. 우리가 당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본질 <대신>에 대하여 은혜를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1. 대신 상하셨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가수 윤 복회는 이 말씀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윤 복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윤 복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윤 복회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윤 복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값으로 죽어야 할 것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바로 내 죄,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본질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시골 농부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부인은 늘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에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 닭장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는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글쎄 이게 웬일인가? 그 암탉이 죽어 있었습니다. 농부가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저 머리에 난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이 암탉이 몸에서 피를 다 빨아먹었는데도 이 닭은 족제비가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죽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느라고 십자가 고통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는 데 대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2. 대신 찔리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5)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대신 찔리셨습니다. 허물이 무엇입니까?
모르고 지은 죄를 허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까지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찔리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모르고 지은 죄가 허물입니다. 이런 허물을 위하여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시카코에 있는 무디 박물관에 갔을 때 무디가 성령 운동을 할 때 사용하였던 마이크가 유리관속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만지지 마시요>라고 써 있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만지고 싶은 지 만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디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경비원에게 발견되어 혼났습니다. 나는 만지지 말라는 글을 보지 않았으면 안 만졌을 지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주님은 이런 허물도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아마도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셔서 호기심이 더 났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모르고 지은 허물까지 대신 담당하시려고 대신 찔리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원한 그늘 밑에서 한 성인이 도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런 깊이 묵상하고 있는 문제가 두 가지였습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가?>
그 때 배고픔의 귀신 아귀에게 쫓기던 불쌍한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품안으로 쏙 들어 왔습니다. 성인은 그 비둘기를 빨리 품속에 품어 주었습니다. 이 때 아귀 귀신이 헐레 벌떡 뛰어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어서 비둘기를 내놓으시오. 배가 고파 죽겠습니다>
아귀 귀신은 그 동안 굶어서 몰골이 뼈만 남았습니다. 당장 무엇인가 당장 먹지 않으면 쓰러질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말했습니다.
<내 품으로 들어 온 비둘기를 죽게 내어 줄 수는 없소>
성인은 단호하게 말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
<내가 배가 고파 죽겠으니 어서 내놓으시오>
아귀는 텅빈 배를 두드르며 애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비둘기를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아귀가 포기하지 않고 비둘기를 내어 달라고 요청하자 성인이 말했습니다.
<나를 믿고 내게 들어 온 비둘기를 내가 죽게 내어 줄 수는 없소. 그러나 대신 내 살점을 비둘기만큼 베어 주겠소>
성인은 이 말을 듣고 저울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 쪽에 비둘기를 올려 놓았습니다. 성인은 아픔을 참으며 넓적 다리 살을 베어 저울 한 쪽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비둘기쪽으로 저울이 기울었습니다. 성인은 넓적다리 살을 조금 더 베어 저울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비둘기쪽으로 저울이 기울었습니다. 몇 번을 피투성이가 된 채 살을 베어 올려 놓았지만 역시 저울이 비둘기쪽으로 기우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몸을 저울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 때서야 저울이 평형을 이루었습니다. 그 때 홀연히 아귀는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꽃잎이 흩날리며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성인은 드디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내 몸을 다 주면서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모두를 담당하셨습니다.

3. 대신 맞으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질고 즉 병을 짊어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만 짊어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서 예수님은 병을 짊어 지셨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예수님은 우리의 병도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채찍에 우리 대신 맞으셨습니다.
덴마크의 윌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안과 의사였습니다. 눈 병을 고치는 데에는 그를 따라 올 사람이 세계적으로 없을 정도로 안과계의 최고 전문의사였습니다. 윌리 의사는 캐서린 부드(구세군 창시자인 W.부드의 아내. 사회사업가. 전도자)의 전기를 읽고 감격하여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도 포기하고, 명예도 버렸습니다. 선교사로 십자가를 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였습니다. 졸업 후 선교부로 가서 선교사로 파송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마침내 그의 소원대로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 곳은 눈병환자가 매우 많은 곳이었습니다. 인구의 5분의 1이 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큰 안과 병원을 설립하고 전도를 목적으로 토인들의 눈병을 치료하여 주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30년 간을 봉사하고 노령으로 은퇴하였습니다. 네델란드의 여왕은 그에게 그 나라 최고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예수님 대신에 예수님처럼 살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간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윌리도 대신 병을 짊어 지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닮은 삶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채찍 때문에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음읋 믿고 나가면 수많은 고침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4. 대신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4)
인생을 고뇌요 슬픔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면서 우리의 슬픔을 다 당하셨습니다.
나는 백 낙준 박사님의 간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냐셨습니다. 그리고 교육부장관까지 역임하셨습니다. 그 분이 이런 간증을 한 것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아버지는 백 사경이었는 데  점 잘 보기로 유명한 장님이었습니다. 얼마나 점을 잘 쳤는 데 소문난 점쟁이가 되어 엄청난 돈을 벌어 드렸습니다. 얼마나 돈이 많은 지 장님인 데도 첩까지 두고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러 온 이가 전도지 한 장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후손을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점쟁이는 좋은 직업이 아닙니다>
백 씨는 호통을 치면서 그 전도자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래도 전도자는 주머니 속에 전도지 한 장을 넣어주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 한 마디가 영영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거짓말로 점을 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아도 양심을 항상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첩을 두고 사는 것이 항상 마움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그 전도자가 한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후손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서 눕게 되었습니다. 신음 중에 전도자가 준 전도지 생각이 났습니다. 부인에게 꺼내주며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죽으셨으니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롭게 되었다>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모든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예수님을 믿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섬광과 같이 빛났습니다. 그는 교회로 찾아 갔습니다. 목사님과 온 교우들은 점쟁이 백 사경씨가 교회를 왜 찾아 나왔는지 의아해하였습니다. 도무지 올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회개하고 예수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후 백씨는 점치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 동안 거짓말로 점을 쳐서 번 돈을 모두 정리하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모두 헌금하였기에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미국인 선교사가 들었습니다. 재산을 다 털어 교회당을 짓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미국인 선교사가 백씨 식구들을 교회에서 사찰로 봉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식구들을 유달리 사랑하였습니다. 그 때 백 낙준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어 연대 총장, 교육부 장관이 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진 사람은 그 가정의 모든 슬픔을 예수님이 대신 지어 주십니다. 더 많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여자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7 귀신들린 여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이 여자의 슬픔과 아픔을 예수님이 대신 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십자가 밑에 가장 끝까지 남아 있었던 여자, 예수님의 무덤에 제자들보다 먼저 달려 갔던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여자였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고 버림받았고, 천대 받았던 여자가 가장 고귀한 여자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비결이 있을 가요?
나는 어느 교회 부흥회에 가거 어떤 이가 성경을 읽을 때 그 비결을 알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라고 읽어야 하는 데 그 사람이 실수하였는 지 <막달란 마리아가...>라고 읽었습니다. 여기에 비결이 있습니다. <막 달라고 하여야 은혜가 임한다>는 비결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간구하기만 하면 막 달라고 하기만 하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나는 신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전북 익산에 한 할머니가 돈 653만원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알뜰 살뜰 모은 돈인 데 은행에 저금할 줄 몰라서 늘 머리에 이고 다니고, 허리에 차고 다니며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0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혼자서 식모살이, 막 노동을 하면서 모든 653만원입니다. 늘 이 돈을 처리하지 못 하여 오랫동안 고민한다는 말을 듣고 익산 경찰서 신흥 파출소 박중렬 경장이 할머니를 데리고 은행에 와서 은행에 저금을 시키는 데 은행이 떼어 먹는 것이 아니냐? 경찰이 사기치는 것 아니냐 얼마나 의심이 많고 벌벌 떠는 지 설득시키는 데 혼났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 우리의 병, 우리의 슬픔을 다 짊어지고 죽으신 것을 믿고 그 분의 십자가에게 감격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이것입니다.
1. 대신 상하셨습니다.
2. 대신 찔리셨습니다.
3. 대신 맞으셨습니다.
4. 대신 당하셨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수술할 때 마취제가 없다면 생살을 찢어야 하는 아픔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였을 가요? 생각만 하여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마취약은 지금부터 약 150년 전에 제임스 심프슨(James Simpson.1811-1870)이 발견하였습니다. 심프손은 영국 스코트란드에서 빵굽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14살에 에딘버러 의과대학에 들어가 산부인과 의사 과정을 밟아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주며 치료하여 줄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21절에서 23절을 읽을 때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2;21-23)

그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셨다면 엄청난 수술이다. 대 수술이다. 그런데 아담이 아파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프지 않게 갈비뼈를 빼내실 수 있었을 가?>
심프손은 감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심프손은 하나님께 그 비결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취제 개발 연구에 몰입하였습니다. 드디어 1847년 11월 사람을 마취시켰다가 깨어나게 하는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약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약은 1853년 빅토리아 왕후가 분만할 때 사용하여 온 세계에 떠들석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국 의사로서는 최고의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심프손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모여 들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어떤 제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지금까지 선생님이 발견하신 발견중에 가장 큰 발견은 무엇입니까?>
이 때 심프손이 대답하였습니다.
<나의 가장 큰 발견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를 구해 주신 큰 구세주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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