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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전하되 지혜로운 사람 (마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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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순전하되 지혜로운 사람 
본 문 : 마태복음 10 : 16절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일종에 처세술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처세술보다는 강도가 아주 더 깊은 것입니다. 어쩌면 전쟁에서의 병법이라고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면서 인생을 산다는 것은 하나의 투쟁이다. 하나의 전투다. 그래서 전투의 현장에 제자들을 파송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거의 불가능한 싸움을 하라고 제자들을 세상 속에 파송하십니다. 왜냐하면 적들은 오늘 말씀을 보면 이리입니다. 사나운 이리입니다. 그리고 아군은 아무 능력 없는 양입니다. 어떻게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 사납고 험한 이리 가운데서 양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 유일한 비결! 그것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생 자체가 치열한 삶의 현장임을 말씀합니다. 넉넉한 게 인생이 아니고 그냥 적당히 사는 그 자리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위험과 위기가 있습니다. 절제절명의 어려움도 우리의 삶 속에 다가오게 됩니다. 이 삶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면으로 보면 더 기가 찬 말씀을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오른 쪽을 뺨을 맞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너를 송사 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어라. 누구든지 억지로 5리를 가고자 하거든 그와 10리까지 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험난한 속에서 이렇게 문제가 많은 곳에서 자기의 이익을 향하여 가는 이 세계 속에서 이런 태도로 인생을 살면 인생을 승리하면서 살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우리가 우리 주님께 물어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너의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분명히 이것은 세상논리가 아닙니다. 세상에 가치관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 법칙도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세상을 승리하면서 살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산다는 것은 패배의 길이고 이렇게 산다는 것은 무능한 그런 삶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은 아닙니까? 하고 우리가 예수님에게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삶을 보면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 하면 그 속에 감격이 있고 그 속에 감사가 있고 그 말씀을 들으면 사람이 변화하고 있고 그리고 지금도 이 온 땅에 3분지 1이상이 예수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 속에 참답게 인생을 사는 비결, 인생을 승리하면서 사는 비결이 들어가 있다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서 ‘너희끼리 거기에서 잘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시작이 별 볼일 없고 연약하고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시작하는 거 같지만 너희들은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야 된다. 너희들은 삶의 이 치열한 곳에서 전투하면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몰랐기 때문일까요? 인생이 그냥 호락호락한 장소라고 여겼기 때문일까요? 치열한 경쟁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렇게 아셨기 때문일까요? 이 속에 악과 거짓과 부패가 만연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일까요? 인간의 마음을 뒤집어보면 그 안에 얼마만큼 미움이 있고 분노가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있는 가를 예수님께서 모르셨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리가 사는 곳입니다. 살벌한 곳입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입니다. 약육강식의 현장입니다. 이기적인 욕망과 자기 자랑하는 교만이 교차되는 것이 우리의 사람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상처받습니다. 사람에게 배반을 당합니다. 거절당합니다. 철저한 생존경쟁에 위협 속에 놓여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그 현장입니다. 거기에다가 이 세상은 이리처럼 사납기 만한 것이 아니라 뱀처럼 유혹적이기까지 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향해서 철저하게 훈련되어있는 것이 이세상의 성향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향해서 양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무능한 양, 연약한 양, 겁이 많은 양. 그리고 도망가는 이런 양을 세상을 향해서 보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게 하겠다고 이 양 같은 제자를 보내시고 계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한 것일까요?

  예수님은 첫 번째로 “뱀처럼 지혜로우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뱀은 성경에 사탄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렇게 등장합니다. 창세기 3장 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첫 인간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뱀처럼 지혜로우란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분명히 우리한테 사탄이 되라! 뱀처럼 되라!’ 그런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사탄의 전략을 좀 알아라. 사탄이 무엇을 향해서 이 인간 사회 속에서 싸움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우리 속에 불화하게 하고 갈등하게 한다. 이것을 알라고 우리들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손자병법은 전쟁에 철학과 기술에 언급한 그런 책입니다. 싸움 중에 최고로 잘 싸우는 싸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쟁에 최고의 경지는 싸움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런 전술을 얘기하는데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백전불태(白戰不殆)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뱀처럼 지혜로워라!”고하는 말씀은 상대방의 이 전략, 이 세상이 갖고 있는 사탄의 전략을 꽤 뚫고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성적인 면, 감성적인 면, 이해하는 면, 생각하는 면, 판단하는 능력, 분석하는 능력, 실천하는 능력에 있어서 사탄의 전략보다 더 탁월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런 지혜를 갖고 있으면서 사탄은 철저하게 유혹적입니다. 인간을 살리는데 인간을 진리 가운데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죽이는데 그리고 인간을 그곳으로 몰고 가는 그 유혹이 사탄적인 유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 보르디아르는 “유혹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현대사회를 잊는 키워드다!” 정치에 있어서 유혹은 키워드입니다. 선거 전략에 있어서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할 것인가? 문화사회에 있어서도 유혹이 중심적인 언어다. PR을 할 때, 광고 전략을 할 때, 마케팅이론에서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면 신문을 읽으면 , TV를 켜보면, 모든 것이 우리를 유혹하는 유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쁜 말로 말하면 미혹이고 좋은 말로 굳이 이것을 표현한다면 설득이라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이 갖고 있는 미혹 적인 것, 유혹적인 것, 우리들을 몰고 가는 이 세계를 그 세계 속에서 우리들을 몰고 가는 이 세계를 그 세계 속에서 우리가 살려고 하면 그 전략과 그 술수와 계략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계획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전심전력을 포기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백전백패인 것입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용기도 아니고 그것은 지혜도 결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가치관과 세상을 분석하는 능력과 판단력을 세상에 계략을 알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이 갖고 있는 지혜, 그것은 말씀을 왜곡합니다. 인간을 어떻게 하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존감을 다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뱀처럼 사탄이 갖고 있는 계략입니다. 너는 더 이상 귀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동물처럼 쾌락만 즐기면 되는 존재라고 우리를 끈임 없이 이 세상은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 사탄의 문제는 뭘까요? 하나님을 알기는 알되 자기가 다 높다고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유혹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주고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면서도 기기에는 철저하게 인간을 파괴하는 측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께서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뱀 같은 지혜는 나 창조주의 모사품이다. 그것도 왜곡된 모사품이다. 너희들은 뱀의 지혜라고 하는 것 속에서 나의 마음을 읽어라! 나의 지혜를 배워라!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기에 진짜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배워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창조주의 지혜를 배운 사람들입니다. 놀랍게도 세계인구의 1%도 안 되는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30%이상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이적입니다. 존경, 정치, 사상, 경제, 금융, 과학, 문학, 예술, 영화, 언론, 이 모든 전 분야에 하나님이 창조적 지혜를 갖고 있는 이 삶의 자리에 아주 깊이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대인들은 예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지혜가 되려고 하면 뱀의 지혜, 그것만으로 끝나면 위험합니다. 어떤 위험이 있을까요? 뱀 같은 지혜는 사람들에게 경탄을 줍니다.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뱀 같은 지혜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 존경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하지는 못합니다. 똑똑한 것만으로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고 사람을 감격하게 할 수가 없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힘에 굴복 당할 수는 있으나 존경과 신뢰를 줄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뱀 같은 지혜 그것만가지면 인간이 교활하게 된다. 덧붙어야 되는 것이 있는데 비둘기 같은 순결한 성품이 함께 합해져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자녀들을 키울 때 어떻게 키우십니까? 이 세상에서 승리하라고 뱀 같은 지혜를 자꾸만 가르치십니다. 이것저것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못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이야기하지 못하면 그 지혜는 부모의 은혜를 져버립니다. 친구도 배반합니다. 그것은 인생을 잘 살게 하는 것 같은데 교만한 인생, 이기적인 인생, 자기만의 인생으로 바꾸어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뱀 같은 지혜 위에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그 삶이 무장되는 비둘기 같은 순전함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같이 만날 수가 있을까요? 철학자 헤겔은 그의 변증법적 신학에서 정(正)이라고 하는 명제가 있으면 그것과 대비되는 ‘반(反)’ 이라 고하는 명제가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가 부딪히면 거기에서 ‘합(合)’ 이라고 하는 또 다른 높은 단계의 사상이 나타난다고 하는 정반 아래 변증법적 구조를 얘기합니다. 저는 신앙이 이런 역동적 변증법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저 높은 하늘을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순간 속에서 꺼져갈 문제지만 영원히 우리는 붙잡고 사는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 가야 할 존재지만 생명을 우리의 삶 속에서 증거하고 붙잡고 사는 존재입니다. 한편으로는 지혜를 붙잡고 한편으로는 순전함을 동시에 우리의 마음속에 붙잡고 그것이 우리의 품성이 되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우리의 공동체를 변화시키며 하나님이 사용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비둘기처럼 순결하다.’ 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비둘기는 정결함과 순결함과 진실함을 표현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는 먼저 물이 다 줄어들었는가를 보기 위해서 까마귀를 보냅니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둘기를 보냅니다. 비둘기가 어린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들어옵니다. 새 시대를 개막하는 새입니다. 아가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서 비둘기 같다고 얘기합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아1:15) 비둘기는 또한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받쳐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계속하는 희생 재물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절정의 비둘기의 모습은 뭘까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뭍으로 나오실 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상징입니다. 성령에 능력을 말합니다. 성령이 갖고 있는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하는 성령의 열매를 표현할 때, 비둘기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사람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서는 순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는 자기를 존중할 줄 아는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람들을 넉넉히 포용할 줄 아는 감싸줄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힘이 센 사람들이 아닙니다. 순전한 사람들, 넉넉하게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몰라서 속는 것이 아니라, 속는 것이 무엇인 줄 알면서 용납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잡한 것을 이해하고 알면서도 단순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악과 거짓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줄 아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스럽고 도전적인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다. 그러나 마음에 준비해라. 뱀같이 지혜로워라. 그리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이 양으로 양 나가는 이 모습이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린 양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전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이 세상은 이리 때와 같이 살벌하고 무서운 곳이지만 너는 그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 그리고 거기를 변화시켜야 된다. 거짓말을 하는 세상에 정직한 자로 나아가라. 불의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의를 갖고 나아가라. 죄악이 만연한 곳에 하나님의 용서를 갖고 나아가라. 미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사람을 갖고 나아가라. 그러나 뱀 같은 지혜를 갖고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업을 하십니까? 경영의 기법과 경영의 비전을 세우지 않고 어떻게 기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부에 열심과 집중력을 갖지 않고 어떻게 공부의 성과를 낼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까? 어떻게 사람의 심리와 사람의 정신과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지혜는 자기 이름을 높입니다. 세상에 지혜는 자기 욕심을 채웁니다. 세상에 지혜는 자기 자랑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지혜가 이웃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 위해서 사용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이 치열하고 거기에 많은 험난한 과정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우리끼리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녀를 지혜롭게 그러나 순절하게 우리의 삶을 지혜롭게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인생을 맡기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앞에 우리 모습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예수 믿는 믿음을 주시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에서 뱀 같은 지혜를 갖고 나아가게 하시고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신뢰함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이 땅에서 살도록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고 이 세상에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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