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님의 3가지 사랑의 당부 (아 2:10-15)

  • 잡초 잡초
  • 338
  • 0

첨부 1



주님의 3가지 사랑의 당부
아가서 2장 10-15절

< 주님 안에 있는 삶의 축복 >

신앙은 '자기라는 껍질을 깨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깬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예수 복음과 말씀으로 자기를 깰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말씀으로 깨지든지, 고난으로 깨지든지 자기가 깨지는 경험이 있어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저는 1979년부터 교회를 꾸준히 다니다가 1984년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새롭게 작정했습니다. 그때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문제로 앞이 캄캄한 상태에서 고민할 때였습니다. 앞이 캄캄하니까 나 자신이 철저히 깨졌습니다. 그때 주님이 저를 붙들어주시면서 '주님의 영광'이라는 삶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런 뚜렷한 목표가 생기니까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쁨이 찾아오고, 없어도 행복하고, 교회가 좋고, 예배하는 시간과 말씀 듣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좋으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찬송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가졌고, 생각도 항상 경건하고 아름다운 생각만 했고, 매일 새벽 예배 때에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끔 "내가 만약 그때 예수님을 몰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1977년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점쟁이가 "나는 30세 되기 전에 죽는다"는 말을 했는데, 만약 제가 예수 안에서 죽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돈 많고, 잘나고 똑똑한 것이 복이 아니고, 고통과 문제가 없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고통과 문제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진짜 복은 때때로 힘든 일이 있고 문제가 있어도 주님의 영광이라는 삶의 목표가 뚜렷하고,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물론 믿는 사람도 어려움을 당하면 힘들어할 수 있고, 불평할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고, 눈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가끔 믿음이 좋다고 하는 분들 중에 슬픈 일을 당한 사람에게 함부로 "왜 울어? 믿음도 없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교만한 사람이고, 교양도 없는 사람이고, 심하게 얘기하면 아주 잔인한 사람입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 앞에서는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벗어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슬픔 앞에서 겸허하지 못하고, 내 믿음을 자랑하는 것은 결코 믿음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에 울지 않는 것이 믿음 좋은 증거라는 말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울보였습니다. 예수님도 때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정화하는 도구로 눈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눈물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울어도 되고, 화를 내도 되고, 짜증을 내도 되고, 고민을 해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말합니다. "하루만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일이 안될 때 짜증을 내고, 불평도 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을 하루 이상 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부싸움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상 속상한 감정을 끌고 가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진실성은 "고통 중에 얼마나 빨리 평안을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금방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까? 저는 아주 힘든 일이 생기면 항상 3가지 사실을 생각합니다.

첫째, 내 삶의 출발지점은 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처럼 영(zero)에서 출발한 우리에게 삶 자체는 무조건 수지맞는 일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게 주신 것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없는 것에 집착해서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은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 사실을 생각하면 어느새 마음이 편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교회 안에 있고, 주님 말씀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 주님이 보내는 3가지 사랑의 당부 >

오늘 우리가 읽은 아가서는 구약 시대의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노래한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인간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보면 몇 가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당부를 듣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당부를 하십니까?

1. 일어나서 나와 함께 하자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3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음성입니까? 여기에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자신감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성도에게는 반드시 사는 길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조금 길을 찾아보다가 금방 "길이 없다!"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길이 없지만 주님에게는 길이 많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우리가 믿는 주님은 할 수 있습니다.

요새는 나이가 많으면 죽어야 되는 줄 압니다. 그래서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들립니다. 20대에는 백수(이태백)로 지내다가 간신히 직장을 얻습니다. 그래서 38세까지 직장을 다니면 선방(삼팔선)한 것이고, 45세가 되면 정년(사오정)이라서 대부분 쫓겨나고, 어쩌다 56세까지 직장을 다니면 도둑놈(오륙도)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많으면 무능한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사람의 정신적 능력은 35세쯤에 정점에 이르는데 잘만 관리하면 70세 이후까지 똑같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또한 70세(seventy)가 되어도 학습 능력은 17세(seventeen) 못지 않게 유지된다고 합니다. 제가 요새 다음 칼럼에 글을 올리고 다른 분들의 글을 보는데, 그 글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글 솜씨와 글 깊이가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나이 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으면서 어떤 경우에도 '탓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집안 탓이나 물질 탓을 하지 말고, 학력 탓이나 환경 탓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징키스칸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집안 탓을 하지 않았고, 물질이 없어 들쥐를 먹으며 연명했지만 물질 탓을 하지 않았고, 자기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학력 탓을 하지 않았고, 그가 가진 군사는 적들의 100분의 1에 불과했지만 환경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성공하는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대적은 자기 안에 있는 '탓하는 마음'입니다. 그 대적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하면 반드시 막힌 길을 뚫을 수 있을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도 처음에는 목회를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서 목회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가는 곳마다 "ABC Man이 되라!"고 말합니다. A는 영어의 Affirm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말하고, B는 영어의 Believe로 믿음을 말하고, C는 영어의 Choose로 결단력을 말합니다. 즉 적극적 사고와 믿음과 결단력만 있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주님을 의지하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비판과 비용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나로 내 얼굴을 보게 하고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이 말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14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이 말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그 기도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축복과 선물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넉넉합니다.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기도하고 헌신하면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진주에서 밤농사를 하는 한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해마다 밤농사를 지어 일본으로 수출을 하는데, 한 해는 일본에 밤 풍년이 들어 일본에서 밤을 사러 온 사람이 턱없이 헐값에 사려고 했습니다. 그 값에 팔면 장로님은 한 해 농사를 접게 됩니다. 장로님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날 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한 해 동안 지은 밤농사를 이렇게 접게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던 그날 밤에 일본에 큰 태풍이 불어 일본의 밤 농장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 일본 상인이 다시 와서 제발 밤을 팔아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전날 부른 값보다 3억 원을 더 받았다고 합니다.

때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지만 왜 그런 일을 만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몰라도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신비하게 사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한숨 지으며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시 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길이 막히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깨어서 기도하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길이 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기도는 오늘도 좋게 하지만 특히 미래를 좋게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미래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기도는 미래의 큰 성을 지금 쌓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는 하늘나라의 종합보험'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앞으로 일어날 만 가지 문제를 다 커버하는 종합보험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보험보다 기도의 보험을 잘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꾸준히 기도한 성도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모래 위에 남긴 발걸음처럼 다 지워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했던 시간은 그 숨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다 기억해주시고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는 사단 마귀를 말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잘되는 것은 싫어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허물려고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단의 공격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의 원래 의미는 '이간질하는 자, 참소자'입니다. 말로 속을 긁고 속상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제일 무기입니다. 사단은 가끔 속삭입니다. "교회 자주 나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너의 형식적인 발걸음을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 같으냐?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 지난 주 말씀도 기억하지 못하지 않느냐? 네가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 그런 식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과 말씀 듣는 것을 의미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지난 주 들은 말씀을 꼭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화시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먹은 반찬을 기억해야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 듣고 다 잊어버리는 것 같지만 그 말씀이 양식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신앙이 자라고 영혼이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사단은 교활한 선동자이고, 능란한 술수를 구사하는 병법의 천재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쾌락을 사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사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환경을 사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과학이나 철학적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경우에는 핍박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방심하면 사단은 어느새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 영혼을 망가뜨릴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사단으로부터 우리는 지킬 수 있습니까? 첫째, 사단의 힘이 스며들 만한 그러한 물건을 가까이 하지 말고 그러한 장소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무당, 마술사, 점치는 사람 등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영이 틈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도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갈등이 생길 때에는 말을 최대한 줄이고 기도하는 시간과 말씀 보는 시간은 늘려야 합니다. 사단은 '이간질하는 참소자'이기 때문에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속이 상하고, 더 오해가 깊어지고, 더 의견대립이 심해집니다. 지금 정치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처럼 말하면 할수록 사단이 개입해서 감정이 격해집니다. 말로는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믿음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고 살 때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넷째, 무엇보다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가장 귀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장하면 그 길로 사단은 순식간에 도망갑니다. 그래서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 말처럼 어려운 것은 없지만 그래도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사단의 밥이 되지 않게 됩니다.

< 원수를 대하는 5가지 단계 >

사람들이 원수를 대하는 5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원수에 대해 칼을 품고 언젠가 복수할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개 그 칼에 원수가 망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망가집니다.

둘째 단계는 직접 복수는 하지 않아도 원수가 망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개 원수는 더 잘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모습으로 기다리면 자신도 힘들어지고, 실망만 남고, 자신도 편안하지 않고, 자기 일도 안됩니다. 이 단계까지는 여우 사단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입니다. 노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복수하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시체가 강물 위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라!" 사필귀정입니다. 원수가 정말 나쁜 일을 했다면 원수는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단계는 원수를 거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리는 단계입니다. 내 할 일을 생각하고, 내 사명을 생각하고 땀을 흘리면서 원수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지 마십시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원수에 대해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나중에 우연히 그 사람 소식을 들으면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원수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길은 원수를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섯째 단계는 원수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길로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사단은 죽을 맛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은 정말 살맛 나는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처럼 마귀를 통쾌하게 물리치는 길은 없습니다.

미움이란 별 것 아닙니다. 지나간 일에 대한 감정 싸움입니다. 그 일로 우리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마귀에게 틈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원수를 만나면 내게 성숙함과 회개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를 축복하고, 사랑하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마귀를 핍박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우리는 미움으로 마귀에게 핍박당하지 말고 사랑으로 마귀를 핍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틀 전에 인터넷을 통해 어떤 분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날 갑자기 이웃에 사는 원수를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찾아가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은지 그 감격을 글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행복 그 자체랍니다. 한 순간에 낀 때가 벗겨진 것처럼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예요. 지금 원수를 찾아가 보세요. 좋은 친구 만나는 것과 맛이 다릅니다. 생활이 지루한 것 같고 권태가 생기면 이 나른한 봄날에 원수를 찾아가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보세요. 그러면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는 것처럼 화해도 할 수 있고 짜릿한 기쁨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한번 제가 하라는 대로 해보세요."

원수 사랑은 돈 드는 것이 아니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정치적 반대자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고, 일본도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김성수 선교사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우리가 일본 영혼의 구원을 위해 절실히 기도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떤 무서운 사단의 공격도 능히 물리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3가지 당부를 주셨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셨고, 네 얼굴을 보고 싶고 네 소리를 듣고 싶다고 하셨고,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 살며,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장하여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