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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인과 죄의식 [시 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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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죄인과 죄의식 <시편 51:1-13>
<2004년 3월 14일>


□ 죄인과 죄의식 시51:1-13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
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
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
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
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
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
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
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
오리이다) <시편 51편 1-13절> 

요즘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가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
라고 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은 영화배우
출신의 주연 배우이었던 <멜 깁슨>이 직접 감독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은 자기 스스로가 연기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 보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12시간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이 영화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와 비판을 가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당사자들이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많은 크리스찬들이 이 영화를 보고 너무나도 현장감 있게 사실적으로
그려진 주님의 고통 받으시는 모습에 눈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고 합니다. 저도 인터넷 상에서 잠깐동안 주요 장면만 보았습니다.
개봉 첫날 2백 30만명이 관람했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아마 곧 수입되어 상영될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에게 심금
을 울리며 신앙의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1. 오늘의 신앙인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죄의식(Sense of Guilty)의 결여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크리스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현대인 모두가 예전에 비하면 죄 의식이 없이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될 어떤 경계선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에 나는 범죄양상들을 보십시오.
자식을 내버리는 부모가 있지 않나, 부모를 돌보지 않고 버리고 간 자식들이
있지 않나, 아무런 상관도 없는 길 가는 사람을 찔러 죽게 하는 일이나, 남의 재
산과 땅을 거짓말로 속여 소유권을 빼앗아버리는 경우 등등...
이런 일들은 우리 5,000년 백의민족, 동방 예의지국이라는 옛 선조들은 감히 상
상도 할 수 없는 범죄의 행위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보면서도, 그런 경우들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큰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도리어 죄의 경고와 책망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가 하면, 자신의 죄의 정당
성을 강변하기 일수입니다.
아담처럼 범죄를 이웃과 사회와 환경에 전가시킵니다.
이것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널리 팽배된 상태입니다.
오늘 심지어 대통령에 대하여 탄핵까지 발의하는 일이 생겼다면, 누구 누구 할
것 없이 잘못을 범하고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는 것
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는 누가 옳고 그름이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신앙인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는데 문제
가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죄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모두 죄인들이기에 죄로부터 구원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입술로는 죄인이라고 하면서, 죄의식이 없어진 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죄인이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있습니다.
마치 암 환자가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감각한 경우와
같습니다. 
죄인이 자기의 죄과를 인정하고 있다면 신앙인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신앙인은 죄의식이 없는 <문화 종교인>일 뿐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아닌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죄에서 구원받은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교만하게 행동하지
는 못합니다.
그것을 어디에 볼 수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비신앙적인 일들을 보아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2.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뿐 아니라 죄과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과는 하나님만이 씻을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참된 용기는 성(城)을 빼앗는 것 보다 자신의 과오를 시인할 수 있는 것이 참
용기라고 잠언서에도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어떻게 그 위대함을 나타냈는가?
그들 자신들이 하나도 흠이 없거나 잘못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죄과를 인정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죄인을 찾아 구원시키려고 아들을 이 땅에 보냈습니
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현장에서 가표를 던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후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었던가를 깨닫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성자 칭호를 듣는 어거스틴도 참회록에서 ‘내가 행한 일 중에 죄 아닌 것이 무
엇이며, 내 말과 내 마음에 죄 아닌 것이 무엇인가?’라고 자신의 실존 전체가
죄와 연관되어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자신이 <용서함 받은 죄인>임을 인정하고, 인생관
이 변해져야 합니다. 죄인이 죄 의식을 가지고 헤어나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입
니다.
'용서함 받은 죄인'의 의식을 갖고 있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어느 인터넷 상에 올린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날마다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일생의 꿈은 그 과정에 기쁨을 주셔서
떠나야 할 곳에서는 빨리 떠나게 하시고
머물러야 할 자리에는 영원히 아름답게 머물게 하소서

누구 앞에서나 똑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춤으로써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눈물이 많게 하시고
생각을 빛나게 하여 웃음이 많게 하소서
인내하게 하소서
인내는 잘못을 참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고 기다림이 기쁨이 되는 인내이게 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음악을 듣게 하시고 햇빛을 좋아하게 하소서
꽃과 나뭇잎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하게 하소서.

누구의 말이나 귀 기울일 줄 알고
지켜야 할 비밀은 끝까지 지키게 하소서.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람의 참 가치와 모습을 빨리 알게 하소서

사람과의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그 사람의 좋은 점만 기억하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 쇠약해 질 때도
삶을 허무나 후회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을 좋아하게 하소서.

삶을 잔잔하게 하소서
그러나 폭풍이 몰려 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소서.

건강을 주소서
그러나 내 삶과 생각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질서를 지키고 원칙과 기준이 확실하며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시고
성공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

저는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이것이 바로 <용서함 받은 죄인>이 갖는 기도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말
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3. 다윗은 죄인이기에 자기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이 죄를 몰라서 다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 줄을 알면서도 자기의 힘으로 불가능하기에 반복하여 죄를 짓습니다.

마치 술 주정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가 잘못인 줄 알지만 술만 보면 이끌려
가듯, 죄의 세력에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도록 끌어가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악한 영의 죄의 힘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를 죄로 묶어 두려고 합니다.
죄의 종이 되도록 합니다.
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도록 만듭니다.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성령의 힘 뿐입니다.
성령의 권능으로만 죄의 세력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죄의 마지막 세력은 죽음입니다.
사망권세를 이길 자는 없습니다.
이 사망권세를 이긴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분의 품 안에서만 죄는 사라지고 의의 갑옷으로 입혀지게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죄를 이긴 승리의 표입니다.
우리 모두 구원받은 성도들로서 성령 안에서 새로워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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