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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아들 (눅 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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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아들 (눅 15:25~32)

누가 인생을 잘 사는 사람입니까? 자기 자신의 삶에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하던지 기쁩니다.  친구 만나는 게 기쁘고 일하는데 기쁨이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복된 사람입니다.  여행이 얼마나 좋은 겁니까? 그래도 기쁨이 없다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입니다.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세요.  교회에 나오면 성도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역자들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기쁨이 되겠습니까? 사장님은 사원들을 기쁘게 해주고 사원들은 사장님을 기쁘게 해주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기쁘게 해주고 자녀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어야 합니다. 

부모를 모시고 계시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부모님을 위하는 귀한 마음은 누구라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어머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효도가 무엇입니까? 순종 그것도 맞습니다.  한 가지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무엇을 기뻐하는지 몰라서 이후에 생각해보면 잘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든 부모님은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생각을 합니다.  손자 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가면 힘드실 것이다.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건 반대입니다.  부모는 어린 손자들 보는 재미로 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보고싶은 손자를 보내지 않습니다.  부모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잘 몰라서 그럽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5:11절부터 32절까지는 탕자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너무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비유에서 맏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1.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집안에서 집을 지키고 열심히 일만하면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맏아들 노릇을 하려고 하면 집안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집 나간 동생을 찾으러 나갔어야 했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일을 합니다.  당연히 예배 드려야 합니다.  그것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교회는 교육을 합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가르치신 일입니다.  교육을 잘하고 받아야 합니다.  교육하는데 피교육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1960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교회에 가면 무엇을 얻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교회 가면 떡을 주고 노트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9월에 등록하고 다음 1월부터 안 나가다가 다시 9월에 등록하고 그랬다는 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주어서 되지 않습니다.  역시 즐거움을 주라는 겁니다.  동적이어야 합니다.  윙윙 세미나를 하는데 그 교회 교회학교 아이들이 와서 율동과 찬양과 연극을 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그것을 좋아한답니다.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랍니다.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율동이 있습니다.  연극도 있습니다.  교회 학교가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영성이 있습니다.  뜨겁게 기도합니다.  어린아이들이 금요일에는 철야기도회 그것도 산상기도회에 가서 두 손을 들고 주여를 외치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구제하는 일입니다.  지역사회 봉사를 합니다.  웬만한 교회가 구제비가 적으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구제비가 적다고 더 많이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왜 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왜 예배 합니까? 왜 교육합니까? 왜 구제합니까? 전도하려고 하는 겁니다.  전도를 위하여 예배합니다.  예배 중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왜 교육합니까? 전도하려고 합니다.  배워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왜 구제합니까? 전도하기 위하여 구제하는 겁니다.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닙니다.  지역봉사를 왜 합니까? 전도하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들이 교회의 모임마다 전도회 혹은 선교회라고 하였습니까? 여전도회입니다.  여전도회가 전도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말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려면 여신도회라고 하여야 합니다.  남자들이 모인 단체를 남전도회입니다.  남자들이 모임을 가지고 전도하겠다는 겁니다.  전도하지 않으려면 남신도회가 맞습니다.  탁구 하는 이들이 모입니다.  탁구선교회입니다.  축구하는 이들이 모입니다.  축구를 통하여 선교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모여서 공 차고 탁구 하려고 하면 선교회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 교회 안에 교역자가 있어야 합니까? 전도하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목적을 망각하였습니다.  맏아들이 장남답게 집을 지켰다.  그러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게 착각입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은 아우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우를 찾으러 나가야 합니다.

1)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는 듣기 좋은 말을 잘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지요.  그럽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38
  ~39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런데 동생은 어디 갔습니까?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전도가 아버지의 뜻입니다.  잃은 영혼을 찾는 게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죽을 영혼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게 하는 게 아버지의 뜻입니다.  전도하는 이들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은 무조건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이는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전도를 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전도하라는 말만 들으면 움츠러드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라고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 생각할 것은 전도는 내가 하고 책임은 하나님께서 져주신다 라고 믿어야 합니다.  말은 내가 하지만 살아 계신 아버지가 하신다.  왜 그분의 원하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원리는 보고 또 보라는 겁니다.  한 번 보고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가서 말해보니까 상대가 거절합니다.  단번에 질리도록 욕설까지 하면서 박대합니다.  당연히 거절합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얼굴을 익히고 친해져야 합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게 합니다. 

  진돗개 전도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고구마 전도법은 찔러보는 건데 익었나 익지 아니 하였나 자꾸 접촉하고 찔러봅니다.  진돗개 전도법은 한 번 물으면 놓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끈질기게 만나고 전하고 주고 또 주는 것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칭찬만 하라는 것입니다.  식당에 가서는 이 집 음식이 꿀맛 같습니다.  너무 맛있습니다.  얼굴이 젊어 보입니다.  아들이 뚱뚱합니다.  아들이에요.  잘생겼습니다.  튼튼해 보입니다.  칭찬 들으면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거절하여도 웃으면서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비난 들어도 예수 이름으로 당하는데 내가 복이 있구나.  하늘의 상이 크다고 하였다.  이렇게 여유 있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한 번에 아무리 좋은 복음을 들었다고 단번에 결심하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다시 만나고 도와주고 기도해주고 기다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왜 아버지의 소원이고 그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  동생을 찾으러 가는 게 사랑입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오는 것이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전도가 사랑입니다.   형은 집을 나간 동생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안 갑니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 혼자 잘되겠다고 집을 나갔는데 네가 왜 참견하느냐 네 일이나 잘 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다 각기 저 잘난 맛에 삽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하여 간섭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무관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요즈음 웰빙(Well Being) 이라는 말을 합니다.  잘 살고 잘 먹고 즐겁게 살자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는 잘 먹고 사는 동안에 즐겁게 살지 모르나 정신적으로 공허합니다.  괴로움이 있습니다.  웰빙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먹고 지냅니다.  비교적 가정도 화목하게 살고 있는 말대로 웰빙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 예수 믿지 아니하면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지옥에 갑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모르고 잘못 갑니다.  위험한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되었으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죽을 영혼을 살리는 게 가장 큰사랑입니다.  예수 믿어야 삽니다.  어느 장로님이 전도하는데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데 반드시 예수 믿어야 합니다.  자기가 부자입니다.  권세가 있고 명예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시한부입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너는 몇 년만 살다가 오라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사는 것은 추구하는데 바로 사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네오 웰빙(Neo Well-Being)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부요 하게 살면서도 즐겁고 기쁘게 의미 있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입니다.  즉, 영적 웰빙입니다.  돈은 있는데 예수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세요.  나는 얼마 있다가 죽는다.  나는 얼마 있다가 죽는다 생각해보세요.  삶에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이들은 그래서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대로 두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가 길입니다.  예수만이 생명입니다. 누구라도 예수 없이는 지옥입니다.  그들을 천국가게 하였다면 진정한 사랑실천입니다.  우리는 형제의식으로 살아갑니다.  믿지 않는 분들을 천국 가게 하여야 합니다.

3)잃은 동생을 찾는 게 형의 사명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왜 해야 하는 가를 아는 것이 사명입니다.  사명감을 느끼고 갖게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도 사명감으로 하면 훨씬 보람이 되고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 회사는 크게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사명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형으로서 집을 나간 동생을 찾아와야 형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명의 3가지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1)  사명이 있으면 재능이 주어집니다.
  교회학교 부흥을 위한 사명감이 있다고 할 때에 교육할 수 있는 재능이 주어집니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못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재능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전도의 사명을 느끼면 전도할 재능을 주십니다.

(2) 열정입니다.
  사명감 있으면 열정이 생깁니다.  잘해보겠다는 에너지가 솟아오릅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열정을 가지면 전문가 가 됩니다.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뜨겁게 일어나면 미치게 됩니다.  그 일에 미치면 그는 성공자의 대열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소위 세미나 강사가 될 수 있습니다.

(3) 새로운 가치 설정입니다.
  그것이 사람 사는 것이로구나.  지난날은 무엇을 했던가? 가치 전환이 되면 인생은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잃은 동생을 찾는 것이 형의 사명이랍니다.  잃은 영혼을 찾아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내가 먼저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전하고 전합시다.  사명을 망각하고 사는 이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거와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고 가슴에 사랑을 안고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잃은 동생을 찾아 나섭시다.


2.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하여 이의가 없을 때 기뻐 하십니다.

아버지의 마음과 형의 마음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가슴이 다릅니다.  사랑이 다릅니다.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집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무엇하다가 왔느냐 잘못했다 잘했다는 건 관계가 없습니다.  돌아온 것만으로 아버지는 기뻤습니다.  진정한 형이라면 그것을 아버지와 같이 기뻐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버지가 살진 소를 잡았다.  잔치를 베풀었다.  이 말에 분노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자기가 아버지보다 정당하고 잘하는 것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독선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하는 일은 다 옳고 다른 이가 하는 일은 나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불만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백 가지를 잘못했어도 잘못했다고 하면 싫어합니다.  자기를 옹호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동의하고 칭찬해 주어야 기뻐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진정으로 기뻐할 만한 일이 있는데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괴로워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불만을 가지고 분노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순수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나는 지금 왜 불만이 있어야 하고 분노해야 하는가? 이유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이유가 정당하지 못하면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평 잘 하는 성격은 건강한 육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불평 잘 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열등감을 가진 이들입니다.  불평하다 보면 자기 침체에 빠집니다.  불만이나 불평은 경건 생활에 조금도 유익이 없습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만족하고 사는 것입니다.  부부간 서로가 만족합니다.  대인관계나 내가 속한 부분에서 만족합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불만을 갖게 되면 시험에 듭니다.  사단의 공격 방법은 우리들이 불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윤택하기에 만족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을 모셨기에 만족하게 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다른 이들에게 기분 좋지 아니한 일은 없어야 합니다.  불평하는 게 습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성 불평은 병적입니다.  이것을 즉시 고치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만족하게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순간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합니다.  아버지의 하신 일은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삶을 살아갈 때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3.  정의보다는 사랑을 기뻐하십니다.(29~30)

맏아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아버지를 섬겨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소를 잡으셨나이다.”  맏아들의 말은 정의의 말입니다.  우리는 정의라는 구호 때문에 사랑이 없는 삭막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정의라는 명분 때문에 사라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맏아들이 사랑을 베풀어 내 동생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반갑다.  그 말을 해주었더라면 아버지는 너무나 기뻐했고 그의 기쁨이 배나 더했을 것입니다.  정의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탕자 동생에게는 사랑이 필요했습니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거와 같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동생은 돌아옴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했습니다. 

집안에서 있는 맏아들 같은 우리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갑시다.  동생 찾으러 갑시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고 아버지의 하시는 일에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뜻과 의사는 정당한 것 같아도 아버지의 기쁨은 못 됩니다.
정의도 좋으나 상처 입은 영혼을 따뜻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귀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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