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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관심 (눅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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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심
눅15:1-10

미국의 어느 잡지에 "뒤틀린 가치관"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렸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우상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 시간 노래를 부르고 받는 돈이 12만 5천 달러인데 이 금액은 미국 대통령이 받는 1년의 월급이며, 미국 대법원장의 연봉 3배가되는 금액"이라는 글이 올랐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연봉이 약1억3천만 원이랍니다. 이승엽 선수가 300호 홈런을 날렸는데 그 볼의 가치가 1억2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뒤틀린 가치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덜 중요한지 만사를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사십니까? 그 사람의 됨됨이를 올바르게 보려면 가치관이 어떤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이 최고인 사람은 교회 나오는 일이 매우 부담이 됩니다. 십일조를 드리며 건축 헌금을 드리는 일들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가치관이 변해야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돈, 명예, 권세, 건강 이런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사시지는 않으십니까?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마리아가 3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눈물로 그 발을 닦을 때! 가룟유다는 그것을 왜 허비하느냐고 비난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보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주신 예수님께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자기의 향유가 낭비라고 생각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가 옳고 유다의 행위가 옳지 않음을 분명하게 정리하셨습니다. 유다는 예수님 보다 물질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붓는 향유를 낭비로! 허비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이렇게 가치관의 차이는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은 가치관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해 주님을 욕되게 하면 안되겠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썩을 것으로 바꾸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주님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이겠습니까?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관심이신데 이같이 우리의 관심의 차원이 높아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요, 영혼구원이요, 하나님 나라 확장 등으로 높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주님은 무엇을 관심을 갖고 계신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을 들으려고 나오는 모든 자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님은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모든 사람을 다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누구든지 상관없습니다. 세리도 죄인들도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들으려고 나오자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식사를 같이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재가 말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것을 귀히 여깁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이 마르다 집에 들어갔을 때를 보세요. 예수님이 말씀을 강론하실 때 동생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하는 일에 정신이 없습니다. 손길이 딸려 동생을 찾아보니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결국 주님 앞에 나아와 마리아를 야단쳐 달라고 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이 때 예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리아가 선택한 것이 현명한 것이고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인정을 해 주십니다. 우리는 봉사하고 일하고 대접하는 일이 귀하게 여겨지나 주님은 그것보다 더 관심이 있는 일은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간혹 심방을 가면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분은 예배 후에 대접할 것을 신경 쓰느라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물 올려놓고 밥을 압력밥솥에 올려놔서 치치푹푹하며 소리를 냅니다. 설교 마치면 일어나 사과 깎고 이것저것 분주합니다. 그럴 때는 제 맘이 아주 불편합니다. 설교를 한 것인지 만 것인지, 그런 사람에게 막 소리치고 싶습니다. "가만 좀 계세요. 설교 좀 들으세요. 왜 그렇게 오두방정을 떱니까?"하고 싶은데 상처받을까 말을 못합니다.

공 예배 때도 그런 분이 계십니다. 주방 봉사도 섬기는 일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일이며, 더욱이 말씀 듣는 시간에는 말씀을 경청해야 하는데 다른 일에 분주해서 동분서주하니 제 마음이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또 어떤 분은 교회에까지 오시기는 하였는데 말씀 듣는 시간에 다른 성경을 뒤적인다든지 아니면 얼굴을 수그리고 다른 일에 열심히 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안합니다. 어떤 분은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지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잘 들으세요!"라고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왜요? 시험에 들까봐! 주님은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런 사람을 좋은 것을 택하였다고 칭찬하십니다.

2. 우리 주님은 잃은 양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잃은 양은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인데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며 또 예전에는 믿었는데 현재는 교회를 떠나 방황하는 백성을 말합니다.

그들이 잃은 양이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누군가에게 시험을 당해 실족했던지, 2)아니면 직장 일로, 사업상 바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멀어졌던지, 3)가정 사정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그런 잃은 양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은 별로 심각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우리는 믿고 있으면서도 행동을 그렇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10만 원짜리 수표를 한 장 발견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흘렸나 봅니다. 그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지나가시겠습니까? 그것을 어찌되었든 줍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입니까? 천하보다 귀한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가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4절 하반 절을 보면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 8절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여러분 이것이 잃은 양! 잃은 은전을 찾는 자의 심정이요 자세인 것입니다. 왜 이런 자세로 잃은 것을 찾고 있습니까? 그 한 영혼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선교회가 전도의 불이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도 잃은 양들은! 또는 교회 다니다가 쉬는 사람들 중에는 누군가가 찾아와서 "우리 교회에 갑시다, 예수 믿어야 합니다. 나와 함께 갑시다"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제가 잘못 믿어 그렇지, 내가 알 바가 아니야"한다면 그것은 구원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잃은 양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서도 내 백성이라 말씀하시며 그들을 구원해 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변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주께로 인도할까를 늘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집에 불이 났다고 하면 그 집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러 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주변 사람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복음을 들고 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복음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전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한번 같이 하겠습니다. {전하는 것은 내 몫이고,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3. 우리주님은 우리의 과거보다는 현재에 관심을 갖습니다.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 죄인들과는 상종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들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왜 주님은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과거보다는 그들의 현재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과거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과거보다는 그들의 현재를 더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느냐를 중요시합니다. 그의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불문에 붙이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며 나온 현재를 보시며 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미래를 보십니다. 그래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과거를 한마디도 언급치 않습니다. 단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며 현재를 묻고 계십니다.

잃은 양의 과거를 따져 뭘 하겠습니까? 과거를 따진다면 바울도 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과거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박해했습니까? 예수쟁이 잡아죽이는 일을 인생의 낙으로 생각하고 자기 사명으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위대한 일꾼으로 들어 쓰십니다. 과거를 따진다면 여기에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아무리 악한 사람, 강퍅한 사람도 하나님은 찾아 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레짐작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과거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과거를 불문하고 부르시고 과거를 불문하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은혜의 자리에 나와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사람들 대할 때 과거를 따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그리고 하나님이 들어 쓰실 미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나간 과거의 삶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날의 죄 때문에 죄책감이나 열등의식에 빠져 자기를 학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 할 때에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시고 기억하시지 않은 죄를 내가 기억하고 자학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주변에! 또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과거의 나쁜 기억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 내지는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현재의 그 모습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미래가 더 중요합니다. 지나간 날에 잘못했으면 오늘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나간 날에 실패했으면 이제 성공하고 승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거보다도 현재와 미래를 더 중요하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주님을 생각하시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우리 대선의 성도 여러분! 말씀을 경청하시는 여러분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지금도 그 잃은 양을 열심히 찾으시는 주님의 그 열심에 우리도 동참하여 영혼구원에 앞장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과거보다도 현재를 더 중요하게 관심 갖으시는 주님을 생각하시고 새 출발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바라기는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관심의 차원을 좀 더 높이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0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기도하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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