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도에 응답하시는 여호와 (렘 33:1-9)

  • 잡초 잡초
  • 338
  • 0

첨부 1



기도에 응답하시는 여호와(예레미야 33:1-9)

유대나라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라는 왕입니다. 시드기야 왕 10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와서 유대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예언하기를 유대나라는 바벨론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왕은 포로가 되어서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기 때문에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백성도 안전하고 왕도 비참하게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볼 때에 예레미야의 이 예언은 매국노(賣國奴)와 같고 이적행위(利敵行爲)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궁중감옥에 가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해서 백성을 깨우치고 또한 왕을 회개시켜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게해야 할 입장인데 감옥에 갇혔으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좁은 감방에서 얼마나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절망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를 보여주시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일하시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여기에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하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자체는 근본으로 말하면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 am that I am'인데 이 말을 우리 말로 실감나게 번역하려고 하면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십시다. 예를 들어 아파트라고 하면 초인종을 누르면 안에서 “누구십니까?”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럴 때 아버지, 어머니가 뭐라고 합니까? “나는 부산 어느 곳에 사는 아무개 아무개고 이름은 뭐고 직함은 뭐고...”그렇게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안에서 “누구십니까?”하면 “나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여호와>라는 이름 자체가 <나다!>라는 뜻입니다. “나다!”라는 말 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이름을 뭐라고 이야기 할까요?”하고 물으니까 <나다!>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 주셨는데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 영원불변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번 하신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속을 하실 때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외에 다른 이름도 있는데 꼭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멸망에 처해 있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동분서주 했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왕을 회개시키고 백성들을 회개시켜야겠다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며 백성들을 깨우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예레미야의 착각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그를 옥에 갇히게 하셨습니다. <일은 내가 한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은 내가 한다. 나는 일하는 하나님이다. 이루는 것도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다.>하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서 비로소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만 되겠습니다.”하고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우리에게 역사하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물에 빠진 사람이 내 힘으로 살겠다고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에 사람이 뛰어들어서 그를 건질 수 없습니다. 건져지질 않습니다. 힘이 완전히 빠졌을 때에 어디로 끌고 가든지 그대로 있을 때가 되었을 때에 건져내는 것처럼,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만 되겠습니다.’하고 맡길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개가 개줄 안에서는 왔다갔다하고 그 범위 안에서는 무엇을 상당히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줄 밖으로 나가면 한 치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었고, 자식키우고, 또한 일들도 해 나갑니다. 그러나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이 하시지,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계상황에 부딪히면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빨리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습니다.”하고 내 주권을 하나님께 넘겨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행하여 주시고 성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한번 보세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방법과 노력과 공로와 수단들을 다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있어서 구원은 사람이 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물에 빠진 자신을 건질 수 있습니까?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서 자기의 머리카락을 들고 한번 올려 보세요. 올라가 지는가. 구원받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인간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그에게 덮어 씌우시고,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 모든 죄값을 다 청산해 놓으시고 이것을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뤄놓으신 것을 믿기만 하면 내가 너를 구원해 주겠다, 내 백성으로 삼아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우리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우리를 복되게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일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내 인생의 일을 하면 되지도 않지마는 그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인생의 일을 하면 일도 되거니와 얼마나 즐겁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고 난 다음에 <네가 나무 심어서 그 열매 따 먹고 살아라, 네가 우물파서 물마셔라, 네가 살 집은 네가 지어서 살아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름다운 에덴동산,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는 과일들, 흘러가는 시냇물 등 모든 환경을 다 마련해 놓고 여기서 살아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그들은 앞으로 가도 죽고, 뒤로 가도 죽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홍해가 갈라져야 너희들이 건너갈 수 있으니까 너희들이 홍해 물을 퍼서 이쪽으로 옮기라고 하셨습니까? 도망가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해 놓으시는지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동풍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바다를 말리셔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그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따라가면서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맡기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안 맡기면 일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맡으셔서 가장 좋은 길로, 최선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며 간구하라. 그러므로 너희의 삶을 내게 맡기라 그러면 내가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 앞에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맡기면 주님께서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사람을 붙여 주셔서 깔끔하게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내 인생에 닥치는 문제를 여러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 일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맡기면 되는데 안 맡겨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지 못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큰 문제든지 작은 문제든지, 내 인생의 문제든지, 자녀의 문제든지, 내 미래의 문제든지 무슨 문제든지 다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기도로 맡깁시다

내 인생의 일들을 맡기는 방법이 뭡니까? 그게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궁중 감옥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마치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듯이 사방으로 막혀있지 않습니까? 도움의 손길이 필요치 않습니까? 이런 문제, 저런 문제에 얽혀서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고, 옆으로 가도 막히는 문제에 여러분의 삶이 봉착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문제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한 두가지의 기도제목과 소원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 앞에 맡기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로이드 교수는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여섯가지의 감옥이 있다’고 했습니다.

1. 자기 장점 만을 보는 감옥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2. 타인의 단점 만을 보는 감옥 속에서 갇혀 살고 있다.
3. 오늘과 내일을 암담하게 근심하는 감옥에서 갇혀 살고 있다.
4. 옛것은 모두 좋아 보이고 오늘 것은 모두 보잘것없이 생각되는 향수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5. 타인의 소유는 귀하게 보이고 내가 가진 것은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선망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6. 남이 잘되는 것을 증오하는 증오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이 세상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의 감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로이드 교수는 말하기를 이런 인생의 감옥에 자물쇠는 자만심이고 그 자물쇠를 열고 나올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길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속박에서 나오는 길도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 밖에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없습니다. 기도가 해답입니다. 기도가 마스터-키 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천사를 동원하십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했을 때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하룻밤에 엎드러지지 않았습니까? 여호사밧이 기도할 때 암몬과 모압 군이 쳐들어 왔지만 자기들끼리 싸워서 다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수산성의 유다인들이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을 때 죽음 직전에 있던 사람들이 다 살게 되었고 그들을 죽이려했던 하만이 남을 달아죽이려고 세워놓았던 장대에 자기가 매달려 죽습니다. 야곱이 밤을 새워 기도할 때에 완악한 에서의 마음이 풀어져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에게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도할 때가 되어서 지금 이 시간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서 하나님 앞에 크고 비밀한 것을 응답받을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기도의 제목들

우리나라를 보세요. 우리나라를 보면 모두가 다 위기라고 말합니다. 경제가 지금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모든 기업들이 다 중국으로, 다른 곳으로 이전해 가고 있습니다.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국제시장에 다녀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가정이 파괴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경제적으로 중국에 속국(屬國)이 될 때가 얼마남지 않았다고들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때에 정치가들의 모습을 보면 4월 15일 총선에 올인(all in)한다는 것입니다. 올인은 도박, 즉 노름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을 한꺼번에 다 걸어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생명을 거는 것인데 오늘 정치인들이 그 선거에다 생명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나라를 걱정하면,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면 나라의 장래를 앞에 놓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4월 15일은 정말 중요한 선거입니다. 하나님께서 4월 15일 선거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지 아니하고는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걱정이 됩니다.
기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사순절(四旬節) 기간에 있지 않습니까?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고난 당하신 기간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피흘리시고 살 찢어서 구원해 주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명상하는 기간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하루만 생각하기엔 너무 아쉬워서 한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정하고, 한 주간도 너무 아쉬워서 40일을 정하고 40일 동안 예수님의 고난과 날 위하여 아들까지 보내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날 위해 고통 당하신 사실을 기억하면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며 말씀으로 전도로 구제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회교에서는 라마단(Ramadan) 기간이 있습니다. 이슬람 말로 <9월>이라는 말입니다. 1천 4백년 전에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아라비아 반도 서쪽 동굴에서 알라(Allah)로부터 코란(Koran)을 계시받은 달이 바로 9월입니다. 라마단은 그 달을 기념하기 위하여 9월을 성스러운 달로 생각하고 9월 한달 동안 해가 있을 동안에는 의무적으로 단식을 하는 기간입니다.

모든 회교도들은 여행을 하는 자, 임산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모든 회교도인은 9월 한달 동안 해가 뜨는 시각부터 해가 지는 시각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의무입니다. 그 달에는 술도 마시지 않습니다. 담배도 끊습니다. 성(性)생활도 중단합니다. 철저하게 라마단을 경건하게 지킵니다.
생명이 없는 종교를 따르는 이들도 종교적인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우리가 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위해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온 몸의 피와 땀과 물을 다 쏟아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 이 사순절 동안 금식하며 살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이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내 모든 죄를 다 사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 사실을 기념하는 사순절 동안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기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이 사순절에, 만물이 약동하는 새봄을 맞이하여서 우리의 신앙도 약동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얼마나 악의 유혹들이 많습니까? 요소요소에 지옥의 문이 넓게 열려져 있는데 이 지옥의 문을 피하여서 믿음생활 하려고 하면 신앙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부흥회를 마련하고, 4월 18일을 한 영혼을 추수하는 추수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내 신앙의 각성을 위하여, 다른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궁중감옥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감옥에, 여러 가지 삶의 문제에 쌓여있는 우리를 위하여,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교회의 문제를 위하여 우리도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기도해서 문제를 해결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적으로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약속하시기를 기도하면 이루어 주마고 약속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여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일들, 크고 비밀한 일들, 하나님께서 신비하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십니다. 사람의 약속은 지켜질 때도 있고,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이 신실하지 않습니다. 또 신실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환경이 주어지지 못하면 지키려고 해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몇 시에 만납시다.”라고 약속하고 일찍 출발했지만 가다가 보면 교통이 막혀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 갚겠다고 하고 돈을 빌렸습니다. 언제 무슨 돈이 나오니까 반드시 갚을 수 있다고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렸는데 그게 우리 생각대로 됩니까? 나는 빚을 갚고 싶지만 환경이 주어지지 못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바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고, 메시야를 통해서 인류가 구원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지, 어떻게 세상을 떠날 것인지를 미리 알려 주시고 그 약속대로 신실하게 2천 년 전에 여자의 후손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이 땅에 태어나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지 않았습니까?

노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 자녀를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내 아내가 자식을 낳을 처지가 아닙니다. 우리 하인으로 있는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아주시면 그를 통해서 저의 가문을 이어가겠습니다.”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네 몸에서 태어날 자식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25년 후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의 후손이 애굽에 내려가서 4백년 동안 나그네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올라오게 될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4백년이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오합지졸(烏合之卒)의 사람들이 어떻게 바로 왕과 대결해서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약(新約)과 구약(舊約)이 무엇입니까? 약속(約束)입니다. 이 안에는 3만 2천 5백 가지의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메시야를 주겠다는 가장 큰 약속으로 시작해서 크고 작은 약속이 수없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이루어주마고 주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어주고 이루어 주마, 자식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생선 달라는데 뱀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악한 아버지라도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내가 어떻게 안주겠느냐, 친구가 밤에 찾아와서 계속 문을 두드리면 열어 주지 않겠느냐, 불의한 재판관에게 과부가 계속해서 찾아와서 간청하면 들어주지 않겠느냐, 나도 너희의 기도를 들어 주겠다, 믿고 기도하면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할지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런 기도, 저런 기도의 약속을 얼마나 많이 해 주셨습니까?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실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기도하라, 그러면 응답해 주마, 그리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여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여서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난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질병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문제에서 해결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답을 가지고, 응답을 가지고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갖가지의 삶의 문제를 해결함 받을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부르짖어 기도하라

어떻게 기도하라고 했습니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예배에 올라오기 전에 도대체 성경 안에 <부르짖는다>는 말이 몇 번쯤 나올까 성구사전을 찾아보았더니 2백 6십 4번이 나왔습니다. 2백 6십 4번이나 <부르짖어 기도하라! 부르짖어 기도하라!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뜻이 뭡니까? 애타게 기도하라,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표현이 부르짖는 기도 아닙니까? 대설교가 부룩스는 말하기를 ‘그림에 붙은 불은 불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간절하지 않은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해야만 그것이 참된 기도인 것입니다. 한나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습니까? 야곱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습니까? 야곱의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하면 에서에게 맞아 죽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습니까?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하면 그는 아합에게 죽습니다. 생명을 건 간절한 기도였기 때문에 부르짖어 기도했고 그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한 사람치고 응답받지 못한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예레미야 29장 12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부르짖어서 간절히 기도해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참 아름답게 기도하는 한 가정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깊은 기도를 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기도가 쉽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어머니는 기도했는데 자녀 두 명이 중등부 수련회에 가서 방언을 받고 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욱 간절히 기도하다가 이번 제 1기 제자대학 개강 수양회 때 직장도 그만두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던 중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집에서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를 합니다. 네 자녀 중 두 자녀는 아직 방언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머지 자녀들에게도 방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어머니와 네 자녀가 함께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또 한 자녀에게 방언을 주셨습니다. 한 자녀만 방언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도해도 안되니까 ‘나는 방언체질이 아니라서 방언 안 받아도 되겠다.’고 기도하는 모임을 멀리 합니다.

어머니가 “우리 교회 수요기도회에 통성으로 뜨겁게 기도하니까 그때 우리 가족이 모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사 주실른지 모르니까 기도회에 가자.”고 해서 처음에는 안 간다고 하다가 기도회에 와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도 방언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어머니와 네 자녀가 함께 모여서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아름다운지 그 자녀들이 장차 또 자기자녀들에게 그렇게 기도하면서 자녀들을 양육하지 않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기도를 체험한 자녀들은 엇길로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이루어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주고 이루어주마고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도하여서 무슨 문제든지 다 응답받고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구나 기도로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길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길을 닦아 나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기가 걸아가야할 길을 삽과 괭이를 가지고 스스로 닦아나가려면 얼마나 그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스스로 길을 닦는 사람과 그 인생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부르짖어 기도하여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의 길로 달려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처럼 문제에 쌓여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질병에, 가난에, 자녀에, 삶에, 여러 가지 문제에 사로잡혀 있을지라도 절망하지 말고 내가 하려고 하기 전에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께 기도로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기도를 들어주마, 내게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가 응답해 주마,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방법으로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마>고 주께서 지금도 응답을 가지고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해서 응답받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체험하며 인생을 복되게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