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의 증거와 간증이 있는 삶① / 사 58:8~11

  • 잡초 잡초
  • 221
  • 0

첨부 1



제목 : 믿음의 증거와 간증이 있는 삶① 
본문 : 이사야 58장 8~11절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사야 58장 8~11절 말씀

  오늘도 모든 어려운 여건 물리치고 복된 주의 전에 나아온 여러분에게 주님의 약속대로 존귀한 인생으로 사는 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14절에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잘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는데,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존귀하게 해 주실 것)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부귀를 주신다는 것)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주의 날을 존귀히 여기고 잘 지키면 하나님이 참된 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에요. 주일 한 번 안 지킨다고 화나 재앙이 임하거나, 지옥에 가거나, 버림받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주님이 구별하신 날을 순종의 마음으로 잘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손으로 지켜 주시고, 그 길을 보장해 주실 것이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은 돌로 쳐죽였어요. 오늘날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주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악한 영이 쉽게 넘보기도 하고, 치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더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에서 멀어지게 되더라는 거예요. 모든 일에 기본이 중요합니다. 뿌리가 중요해요. 분재를 할 때, 크게 자랄 나무라도 자그만하게 기르는 방법이 무엇이냐? 그 나무의 주근, 가장 큰 뿌리를 잘라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나무가 실낱같은 잔뿌리를 내려서 겨우 연명하는 거예요. 죽지 못해 사는 거예요. 제대로 자랄 수가 없지요. 그래서 크게 자랄 나무가 난쟁이같이 자라지 못하고 분재가 되는 거예요.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의 큰 뿌리를 주안에서 깊숙이 내려야 믿음이 잘 자라고, 인생에 열매들이 때를 따라 맺혀지는 거예요. 이 큰 뿌리가 잘리면 화분에 화초는 되어도 큰 나무가 되지 못해요. 갈망하고 사모하는데, 애를 쓰는데, 안 되는 거예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주일을 잘 지키는 것, 또한 말씀에 은혜받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굵은 뿌리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 주시는 기쁨의 열매를 생활 속에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한 단계 한 단계 여러분의 삶을 올려 주셔서 요셉과 같은 복이 여러분의 앞날에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야곱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자손과 물질의 복도 받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머리만 가지고 사는 것 아니에요. 믿을 뿐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께 매달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조그만 장애물에도 매여서 평생 못 벗어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큰 환란도 빨리 벗게 해 주는 거예요. 오늘도 사모하는 심령마다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 1.여호와 나의목자 내게 부족없네 푸르른 초장위에 나의 몸 누이시네 2.내영혼 소생하며 자기이름 위해 의의길 인도하니 골짜기 두렴없네 3.주님의 지팡이가 안위하네 나를 주께서 원수앞에 상으로 베푸시네 4.기름을 머리위에 바르시는 주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함 따르리니 후렴)선한 목자 오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인도 하시네 

  오늘 본문말씀은 남 유다 14대 므낫세 왕 시절에 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를 돌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왜 우리를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왜 고난과 고통을 당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자 이사야 선지자가 그 원인을 가르쳐 줍니다. 너희들이 잘못된 신앙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 필요한 것은 형식적으로 하는 금식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금식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축복하시고, 기적을 베푸실 것이라고 깨우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심는 것이 있어야 거둘 것이 있는 법입니다. 유대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구별 된 점이 많은데, 소수의 민족이지만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노벨상도 많이 받고, 경제력도 있고, 탁월한 예술가들도 많이 나옵니다. 오늘날 어떻게 이런 열매를 거두게 되었느냐?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의 경건생활입니다. 유대인들의 경건생활의 3대 기둥이 무엇이냐? 기도하는 생활, 금식하는 생활, 구제하는 생활이에요. 기도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고, 금식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구제는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헌신이에요. 영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 온전히 헌신하는 민족에게 특별한 은혜과 복을 베풀어주시더라! 우리 가정도, 자녀도, 교회도 존귀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늘 “주시옵소서!”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가 먼저 헌신의 사람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은혜주시고, 복을 주셔서 거둘 것이 있게 하시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금식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있더라는 거에요. 40일을 금식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금식이 되어진다면 괜히 밥만 굶고 고생만 하고 마는 거예요. 금식을 단순하게 먹을 것을 안 먹으면서 바라는 소원을 성취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금식의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거예요.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먹는 것을 금하므로 육신의 나는 철저히 죽어지고,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거예요. 하나님 기뻐하시는 나의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는 거예요. 내가 감당 못할 문제는 물론이고 내 생명까지도 맡겨 버리고,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린 거예요. 본 뜻은 잃어버린 채 금식을 훈장이나 업적으로 생각했더라는 거예요. 우리가 금식하고 우리 마음을 괴롭게 하는데, 왜 하나님께서 알아주지 않느냐? 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을 한 것입니다. 3절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4절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원인을 지적해 주십니다. 잘못된 생각을 삶을 책망하시더라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알맹이더라!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한 주일에 이틀을 정해 놓고 금식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금식을 자기들의 경건의 척도로 삼았더라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경건한지를 사람들에게 은근히 보여주는 것이 되었고, 금식하지 아니하는 일반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들은 훨씬 거룩하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하나님 앞에도 공로로 인정받을 것으로 안 거예요. 바리새인의 기도를 보면 “나는 이레의 두 번 금식을 합니다. 나는 소득의 십일조를 합니다. 나는 이만큼 의롭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앞에서 보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더라는 거예요. 월요일과 목요일은 예루살렘의 장날이었는데, 주변에 있는 많은 촌락으로부터 사람들이 장터로 몰릴 때, 바리새인들은 많이 오고 가는 사람들 앞에 슬픈 기색을 띠어 자기가 지금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보이려고 애를 많이 썼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얼굴을 흉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좀더 창백하게 보이게 하려고 횟가루를 가지고 화장을 했다는 말도 있어요. 예수님은 이 위선적인 모습을 책망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훈 하시기를 마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계속해서 17-18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 앞에는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이냐? 6절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흉악의 결박이 풀려지고, 인생살이 하면서 지고 가는 온갖 멍에의 줄이 끌러지고, 압제 당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모든 멍에를 꺾어 주신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금식하는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라는 의미일까요? 어느 쪽이에요? 많은 분들이 이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 기뻐하는 금식은 이런 역사가 나타난다고 생각했어요. 흉악의 결박을 풀기 위해 금식해야 하고, 우리를 얽매이는 모든 멍에를 꺾어버리려면 금식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기뻐하는 금식하면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금식하는 자가 가져야 할 마땅한 마음이요 자세더라는 거예요. 당시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너희들이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한다고 하면서도, 형식은 지키면서도 여전히 너희들의 생활은 악한 흉계로 억울하게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멍에를 지우고 괴롭히고 압제하는 삶을 버리지 않았더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너희가 형식적으로 금식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너희들의 생각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는 것이라고 지적을 해 주시는 거예요. 참으로 내가 기뻐하는 것은 너희들이 기도하면서 억울하게 갇혀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고, 억울하게 고통 당하는 자들의 멍에를 끌러주고, 압박 당하는 자에게 자유를 주어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해 주는 것이 내가 기뻐하는 것이고, 금식하는 자의 마땅한 자세가 아니겠느냐는 말이에요. 계속해서 7절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양식이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며, 웃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옷을 주고, 처소가 필요한 사람에게 처소를 제공해 주는 것이 금식기도와 함께 응답 받을 사람의 바른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 못지 않게 믿음의 생각으로 우리의 생각이 바꾸어지고, 믿음의 삶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생각이 바로 되어지고, 생활이 바로 되어질 때, 바른 금식이 되어지고, 약속하신 응답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잘 깨닫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잘 깨달을 뿐 아니라 바로 사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사람은 영적 존재로 지음 받았어요. 그래서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을 막론하고 영의 지배를 받는 거예요. 성령의 지배를 받느냐?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느냐가 다를 뿐이에요. 사탄이라고 하면 머리에 뿔나고 흉측한 모습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듯이 성령도 악한 영도 눈에는 안 보여요. 그러나 우리 생각에 영향을 끼치고, 생활에 영향을 끼치게 되더라는 거예요. 어떤 경우라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영혼이 잘 되어지는 복을 받으면 육의 문제도 잘 해결되고, 생활에도 복이 임하는 것이 원리예요. 영과 육은 무관하지 않아요. 

  세상 살다가 가장 불행한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먼저는 만날 사람이 없을 때, 이꼴 저꼴 안 보고 혼자 살면 좋을 것 같지요? 행복할 것 같지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혼자 살도록 안 만들어졌어요. 하나님이 더불어 살도록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상처받고, 그래서 살다 보면 누군가 만난다는 것 자체가 싫어질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속 썩이는 남편이라도 함께 있는 것이 좋은 거예요. 애 먹이는 자식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좋은 거예요. 사람은 더불어 살도록 만들어 졌어요. 그런데 함께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이 없는 사람, 혼자있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또 한가지는 할 일이 없을 때, 사람이 가장 불행한 거예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신경 쓸 일 없이 편히 살면 좋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가장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어디 있느냐? 구체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거예요. 그 목표를 위해서 땀을 흘릴 줄 아는 사람, 행복한 인생 되어집니다. 이미 과거는 지나갔어요.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요. 오늘 나에게 주신 기회를 그냥 보내버리지 아니하고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 탓하지 마세요. 주변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실패하고 후회하는 인생 되어지고, 내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내 책임이에요.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가 남았든지 후회하지 아니하는 복된 인생, 땀을 흘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끔 식당에서 밥을 먹다 보면 옆자리에서 어느 교회인지 모르지만, 교회 욕하고, 장로 욕하고, 목사 욕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우리 교회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참 그 교회 좋겠다고, 그 목사님 참 은혜스럽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 보면 우리 교회 이야기예요.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에요.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곳이에요. 교회는 우물이에요. 우리가 이 우물에 와서 늘 생수를 마시는 곳이에요. 그런데 자기가 물을 마시는 곳에 침을 뱉으면 나중에 자기가 그것을 먹는 거예요. 목사가 복을 주고 은혜를 주는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되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주의 종을 통해서 은혜를 주시는 거예요. 교회가 잘 되는 것과 우리 가정이 잘 되고, 일터가 잘 되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더라니까요. 교회를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나오실 때마다 영적으로 힘을 얻고, 주님 예비하신 평안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듣고 기도할 때마다 세상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악한 영의 권세를 이길만한 능력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 생활에 기본을 잘 갖추어서 당대가 복을 받고, 자녀가 잘 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자매가 마음 착한 남편을 만나 불신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착하고 성실한데 술을 너무 좋아해서, 돈만 생기면 술을 사다 마시면서 인생을 허비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술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게 됩니다. 착하고 성실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불신 남편 만나서 자신도 교회와 멀어지고, 신앙이 떨어졌다 싶으니까, 남편을 보아도 미워지고, 자꾸 원망스러워 지는 거예요.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한다고 해결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중단했던 믿음 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간절히 매 달립니다. 가정을 버려두고 기도원에 갈 형편도 안 되어서 집에서 일주일 동안 금식을 작정하고 기도합니다. 나흘째 되는 날에 남편이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하더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남편의 마음과 불신앙을 꺾어 주신 거예요. 생각한 것 이상의 열매를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게 된 것입니다.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주변에 좋은 의사와 약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세상 방법으로 안 되더라는 것이지요. 온갖 세상 방법으로는 안되는 것 “내가 네 기도를 들었노라 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 주님의 음성 들으니 해결이 된 것입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낙심하고 탄식하고 절망하지 말고,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하나님 기뻐하시는 제물되어지는 사람이 받게되는 복에 대하여서는 다음 주일에 계속하겠습니다. 놓치지 마세요. 힘겨운 인생살이 가운데라도 이 시간 우리를 얽매이고 있는 것 있다면,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는 것 있다면 주의 은혜받아 물리쳐 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염려거리와 근심을 주님께 맡겨 버리세요. 어떤 경우라도 낙심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스펄전은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 동안 기도하는 편이 유익하다.” 네오날드 네블렛은 “천만명의 군중보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한사람이 위대하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 인생에 새로운 출발을 기대 하십시오. 주께서 친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큰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커다란 소원을 주님 앞에 펼쳐 놓고 기도하십시오. 소원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내 가정을 위해서 간절히 매달리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살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할 때, 닫혔던 문들이 시원하게 열려지는 역사를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구경꾼이나 방관자 되지 아니하고 우리 모두가 이런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