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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이삭은 (히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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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이삭은 (히11:20) 

히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오늘은 우리가 이삭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삭은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믿음을 따라서 자신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에 믿음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해야 할 것입니다.
불란서에 사르트르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란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옹호하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한때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상 받기를 거부해 버렸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그 한 가지만 보더라도 그는 참으로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1980년 봄에 그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명은 폐암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이미 살만큼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병원에 있는 한 달 동안, 죽음을 앞두고서 평소와는 전혀 딴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감정을 전연 억제하지 못하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발광을 하면서 온갖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그가 죽고 난 뒤 언론들은 떠들었습니다.
"어떻게 자유를 그토록이나 부르짖었던 사르트르가 그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 어떤 독자가 신문에 이런 글을 투고했습니다.
"그것은 사르트르가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세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란서가 사르트르가 자랑했다면, 독일이 자랑했던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본훼퍼였습니다. 그는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나치에 항거를 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느 날 간수가 그의 감방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기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습니다. 그는 감방문을 나서면서 함께 갇혀 있는 동료들에게 평안한 모습으로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이제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임을 알기에 내 마음은 지극히 평온합니다. 나 먼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겠습니다. 우리 모두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십시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르트르와 본훼퍼의 차이는 무엇에서 연유되었습니까?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습니다. 비록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서는 찬사를 받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가 전연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훼퍼는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39세라는 비교적 짧은 일기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감옥 속에서 모진 고문을 겪으면서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영원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에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의 관문을 거뜬히 뛰어넘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믿음을 따라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르트르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예리한 지성입니까? 감동적인 글을 쓰는 재주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얻는 명성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십시다.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삭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삭의 이름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세상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13절에서 살펴 본대로,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서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가 경건하여 아무런 실수와 허물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에게도 많은 허물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가나안땅에 흉년이 들어 그가 그랄 땅으로 피난을 갔을 때 했던 행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이삭은 자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아내 리브가를 그 땅 사람들에게 자기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야곱이 아닌 에서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모든 축복들을 물려주려고 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에서가 만들어주는 별미에 혹해서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삭의 실수와 허물에도, 그의 이름이 영광스럽게도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이삭은." 이유는 한 가지뿐입니다.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에 따라서 살다가, 믿음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한 가지,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다. 이처럼 귀한 믿음을 우리가 끝까지 잘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 따라서 이삭의 믿음을 세 단락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1)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2) 야곱에 에서에게, 3) 축복하였으며."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깊어지고, 더욱더 커지고, 더욱더 돈독해지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가 믿음을 잘 지키며,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십시다. 아울러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믿음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는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한 약속입니다. 아브라함도 그의 아들 이삭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약속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둘째,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애 동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그의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물려주었습니다.
이삭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의 생애 동안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역시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삭은 어느덧 나이가 들어서 임종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때 이삭은 자기의 아들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아들들아, 하나님의 약속은 또다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약속은 붙들고 있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13절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대로,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환영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나는 비록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날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놓치지 마라. 너희가 믿음 안에서 품은 꿈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이삭은 자기의 두 아들에게 장차 오게 될 일들에 대해서 마음껏 축복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십시다. 믿음 안에서 우리가 품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미국에 월트 디즈니라는 젊은 만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본시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의 작업실은 허름한 건물 지하실이었습니다. 그 건물에는 쥐가 많았습니다. 밤이 되면 쥐들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도 귀찮은 쥐들을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꿈에서 쥐들의 친구가 되어서 함께 재미있게 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쥐를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쥐의 이름이 바로 미키 마우스였습니다.
미키 마우스를 소재로 한 그의 만화는 전 세계 어린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그 돈으로 하나의 환상적인 놀이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디즈니랜드입니다.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목회에 실패했습니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서 그는 LA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의 수중에 단돈 500불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LA에서 우연히 디즈니랜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꿈이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나도 맨손으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리라. 나도 이곳에 하나의 환상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보리라.'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믿음뿐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했습니다. 결국은 그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환상적인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가 바로 Crystal Church, 곧 수정교회를 세운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십니다.
그가 교회를 열심히 짓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엄청난 교회의 규모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의 꿈이 목사님의 생전에 다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짓고 있는 교회가 너무나도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주저하지 않고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만에요. 저는 제가 죽을 때까지 제 꿈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저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꿈을 꾸면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환상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짓겠다는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말대로 지금도 더 큰 꿈, 새로운 꿈을 계속해서 꾸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 신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사십시다. 아브라함의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삭의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믿음 안에서 품은 우리의 꿈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야곱과 에서에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 두 사람은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에서가 형이고, 야곱이 동생이었습니다. 따라서 육신적으로 본다면 에서가 야곱보다 앞에 나와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야곱이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이 하나님의 택하신 약속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그들의 어머니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야곱보다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에서가 만들어주는 별미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이 나이 들어 임종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서 죽기 전에 너를 마음껏 축복하리라."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고 야곱이 아닌 에서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들을 그대로 물려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가 사냥을 하러 간 사이 야곱이 변장을 하고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에서 대신에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잠시 뒤에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별미를 만들어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가져갔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삭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창27:33의 말씀입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Indeed he will be blessed." 이삭은 이 말을 하기 전에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그래 맞아. 내가 자칫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뻔했구나.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물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지.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에 제가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에서에게 야곱이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후 이삭은 야곱에게 다시 한번 축복했습니다. 창28:1∼4의 말씀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때는 이삭이 타의가 아닌 자의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복을 야곱에게 했습니다. 이삭은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육신적인 뜻을 꺾고 하나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순종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질 때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큰 사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사업에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심방을 가셨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목사님에게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제 인생은 실패작입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젊은 시절, 하나님께로부터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곳으로 가는 여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 결과 충분한 돈이 모아졌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저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돈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서 결국 저는 선교사로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사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큰 사업체의 사장이 되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늘 텅 빈 것처럼 공허합니다. 세상 적으로는 제가 성공했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제 인생은 실패작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채 인간의 육신적인 뜻이 이루어지면 잘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무모한 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축복 된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별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 우리 기쁨이, 평안이, 참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축복하였으며."

이것도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야곱과 에서에게"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이삭은 축복하였으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삭이 자기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두 아들에 축복하는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두 아들을 축복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히 알고, 우리 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때 우리는 사명감에 투철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모세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호렙산 기슭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내가 너를 들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그때 모세가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했습니까?
"Who am I? 내가 누구입니까? 내가 누구관대."
모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을 기껏해야 양치는 목자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를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때의 모세는 자기 손에 들려져 있는 마른 막대기, 지팡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나이 80세나 된 노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붙들려 있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모세는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택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엄청난 환난과 핍박 속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의 사명에 충성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의 통로요, 축복의 샘물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로 인해서 천하만민 모두가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벧전2:9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녀를 축복하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얼마든지 축복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껏 축복하면서 사십시다. 우리가 선포하는 축복 속에 하나님의 역사는 실제로 일어납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축복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의 최고의 천재를 들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아인슈타인 박사를 들 것입니다. 그러나 학창시절의 그는 형편없는 낙제생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겠습니까?
"이 학생은 공부에는 전혀 소질이 없습니다. 무슨 공부를 하든지 공부로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학생입니다."
담임 선생님은 그의 천재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혹평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믿음으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늘 이러한 축복을 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네가 다른 아이들과 같다면 너는 천재가 될 수 없어. 하나님이 너를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만드신 것은 너를 특별하게 사용하시기 위해서야. 너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아인슈타인은 어머니의 격려에 힘입어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의 재능을 잘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그의 어머니가 축복한 대로 20세기의 최고의 천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축복의 샘물입니다. 복덩어리입니다. 마음껏 우리의 입을 열어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 우리의 가족들, 우리의 이웃들에게 축복하며 사십시다. 우리가 선포하는 축복 속에 하나님의 역사는 실제로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한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삭의 믿음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였습니다. 이삭이 믿음으로 품었던 꿈이었습니다.
둘째, "야곱과 에서에게." 이삭은 믿음으로 자신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했습니다.
셋째, "축복하였으며." 이삭은 자신이 축복의 통로요, 축복의 샘물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꿈을 품고 사십시다. 우리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우리의 육신적인 뜻을 꺾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면서 하나님의 뜻에 날마다 순종하면서 살아가십시다. 아울러 우리가 축복의 통로요, 축복의 샘물임을 알고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이웃들에게 축복하며 사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젖과 꿀이 넘쳐흘러서 우리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다함께 복을 누리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004년 3월 1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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