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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례자의 길 (시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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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길(시84:1~12) 

오늘 우리는 시편 84편을 읽었습니다.
이 84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스라엘에서는 진주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왜 84편이 진주와도 같은 성경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신앙이 진주처럼 빛났기 때문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지어진 성전을 마음의 고향이며 신앙의 중심지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국내에서 살든지 아니면 국외에서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1년에 몇 번씩 예루살렘으로 찾아와서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면 고향을 찾는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생활이 좀 넉넉한 사람들은 나귀나 낙타를 이용해서 왔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험하고 먼길을 걸어서 시온산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왔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소망의 성전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얼마나 얼마나 사랑했는지 오늘 읽은 시 84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그 다음부터는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아멘!
그리고 10절을 보세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 전을 사모했는지 그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합니다.

시 84편을 보면 하나님의 교회를 "주의 장막" 또는 "여호와의 궁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막이란 모세가 광야에서 건축했던 성막을 의미합니다.
궁정이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세웠던 웅장한 성전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계신 곳을 장막이라고도 부르고 궁정이라고도 불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천막으로 지은 장막이든지 보석으로 건축된 궁정이든지 상관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하나님을 향해 찬양할 수만 있다면 그거 자체가 감사요 기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우리들도,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그 언제라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순수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웅장하고 거대한 교회라 해도 하나님을 닮을 수 없다면 그건 건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습니다.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하는 성전!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절을 보세요!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아무리 집이 좋다고 해도 참새 집! 제비집! 그거 부러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부엌이 따로 있어요 침실이 있어요 아니면 화장실이 있어요 그런데도 그 참새 집, 제비집이 무엇이 부럽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단 하나입니다.
참새 집인데도 제비집인데도 하나님이 계신 성전 안에 그 집을 짓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주의 전을 가까이 하면서 산다는 것을 얼마나 얼마나 사모했으면 참새와 제비가 다 부럽다고까지 했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구중궁궐에서 산다해도 하나님의 제단과 멀리 있다면 그건 참새 집만도 못하고 제비 집 보다 못하다는 고백이란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마을 상가에 있을 때에 이 화정동은 교통이 너무나도 불편했던 곳입니다.
지금의 42번 도로에는 버스도 없었고 저 아래 중전기에서나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이 아파트를 행해 오르는 길이 얼마나 추운지 아세요!
그런데도 새마을까지 교회를 사랑하신 분들이 여기에 계십니다.
이번에는 새마을에서 10㎞ 나 떨어진 이 동구로 교회를 이전한다니까 아예, 동구로 이사를 오셨고 지금도 교회 가까이 가까이 이사를 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사람의 만족과 기쁨이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야! 교회 가까우면 새벽기도 부담되고 철야기도 그거 난 한 달에 두 번도 힘든데 쩍하면 데리러 올 것 아냐 또 교회 일만 생기면 가까운데 가자 가자 가자 학군 좋은 곳으로! 교회 먼 곳으로…!
세상 적으로 보면 궁전 같은 곳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화려한 곳도 있어요.
살기에 편리한 곳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세상 적인 조건이 다 갖추어진 곳이라도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절대로 만족이 없습니다.
왜냐구요?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만이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새들이 부럽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럼 주의 집에 거하기만 하면 될까요? 아니죠!
4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아멘!
그저 성전에 몸만 와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주를 찬송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여기 "항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의미는 지금은 내가 비록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항상, 계속, 아직도 하나님을 향해 불평치 않고 찬송을 부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인의 특징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잘 되고, 순탄할 때만이 찬송하는게 아니에요 어둡고 캄캄하고 답답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고난 중에 있으면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까?
6절을 보세요!
"저희는 눈물 골짜기를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로 은택을 입히나이다"
7절 "바로 거기에서 힘을 얻어서 더 얻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이 얼마나 멋있는 신앙입니까? 눈물의 골짜기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이 어떠합니까?
그저 잘난 사람, 높은 사람, 잘 나가는 사람만을 골라 골라 도와주시는 분이시던가요?
아닙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을 부르시는 하나님! 믿습니까?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 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주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 줄 믿습니까?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쏟으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시 146:3절에서는 "방백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함지 말지니 그 흐름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도움을 삼으며
누구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야곱의 하나님입니까?
야곱처럼 못된 사람인데도 부족하고, 부끄러운 사람인데도 지켜 주셨던 하나님이시니 어찌 나 같은 사람을 외면하실 수 있겠느냐 아멘 입니까?
잊지 마세요!
하나님께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천로역정을 쓰신 죤 번연은 영국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는 영국 국교가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나 자유롭게 복음을 전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혔는데 그게 1달 두 달이 아니라 자그만치 12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소에서 보내게 됩니다.
기가 막히잖아요.
눈물의 시간이요. 통곡의 골짜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죤 번연은 이 눈물의 골짜기 속에서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이른 비의 은택을 체험하고 세계 불후의 명작인 "천로역정"다시 말하면 "순례자가 나아가는 길"이라는 책을 저술했던 것입니다.
찬송가 405장을 작곡한 죤 뉴톤은 원래 노예를 실어 나르는 선장이었습니다.
그 항해가 얼마나 지루했든지 상어가 많은 해역을 지날 때에는 노예를 뽑아서 상어의 밥으로 주면서 미소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을 상어가 받아먹는 것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으나 그리고 나면 그 마음속엔 언제나 가슴이 저리고 허전함을 느낍니다. 술에 취해봅니다. 정신을 잃을 때만 잊혀지지 괴로움과 쓸쓸함이 사라지질 않습니다.
바로 그 괴로움과 공허가 뉴톤으로 하여금 엄청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노예 수송선을 포기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영접하고는 아! 나 같은 자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구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버리질 않으시는 구나 외치면서 눈물로 작곡하여 부른 찬송이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의 405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죤 뉴톤 같은 사람까지도 사려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면 어찌 우리를 버리시겠습니까?
가롯유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팔지 마십시다.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마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입니다.
조금 힘들고 부담스러워도 아멘 하면서 이 순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걷다가 눈물의 골짜기를 만날지라도 두려워 말자! 낙심치 말자! 그럴수록 성전을 가까이, 뜨거운 찬송을 부르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생수를 마시기를 바랍니다.
시 20편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나를 도와주시며 붙들어 주시며 기억하여 주시고 높이 들어주신다 하였습니다.
어려울수록 성전 가까이 하다가 은혜의 소낙비를 맞으며 순례의 길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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