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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 레 21:10-15,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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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성경본문 
레 21:10-15, 히 4:14-16

노무현대통령이 3월 12일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56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정국이 극심한 혼란 상태로 빠져 들고 탄핵안 가결을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되는 등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광주일보사가 K.B.C 광주방송과 공동으로 실시한 탄핵 관련 긴급 전화 설문조사에 의하면 76%가 탄핵이 잘못된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KBS 여론조사에서는 잘못했다는 의견이 69.6%이고 MBC 여론조사에서는 잘못했다는 의견이 70%이고 연합뉴스 여론조사에서는 74.9%였고 네티즌들은 87%가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참으로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합시다. 사무엘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며 자기 죄를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기독교는 4세기 때부터 7가지의 죄목을 정하고 그 죄를 철저히 회개하므로 신앙의 변화와 성숙을 추구해 왔습니다. 7가지 죄목은 첫째 교만입니다. 교만은 겸손의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주변 사람과 조화와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남을 비판만 하고 용납지 못하며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도 대적 합니다. 둘째는 질투입니다. 사울왕은 질투심을 다스리지 못해 다윗에게 심한 질투심을 가졌고 결국은 악한 신이 들려 불행한 삶을 살다가 전쟁터에서 자살했습니다. 질투심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불행의 시작입니다. 셋째는 분노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은 심한 분노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분노는 죄를 부르기 때문에 가정이 망하고 공동체가 피폐해지고 사회에 나쁜 영향을 가져옵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넷째는 탐심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돈을 탐하는 것이 만 가지 악의 뿌리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섯째는 탐식입니다. 현대인의 질병은 못 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깁니다. 잠언 23장 20절에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과 고기를 탐하는 사람을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탐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여섯째는 게으름입니다. 역사는 부지런한 사람이 발전시킵니다. 게으름을 벗어버려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일곱째는 정욕입니다. 다윗은 성적욕망 때문에 큰 죄를 범했습니다. 지금도 이 죄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 죄를 크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사순절을 맞이하여 7가지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여 완전히 청산하고 진정한 영성을 회복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 4장 14절에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라는 말씀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라는 말은 이방 사람들 즉 로마사람들이나 헬라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릅니다. 사실은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을 본 일이 없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죄가 많아서 감히 나갈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대신해 줄 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중에 대표가 대제사장입니다. 보통 제사장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고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되는데 죄 때문에 나갈수가 없는데 제사장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죄사함 받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많습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 죄책감정도로 혹은 심릭학적 현상으로 풀어버리려고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죄는 실제입니다. 죄라는 것은 느낌이 아니고 감상이 아니고 기분이 아니고 한번 범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번 실수했다가 고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마음을 먹어도 죄이고 말해도 죄이고 행동해도 죄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블랙박스를 찾아야 원인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블랙박스는 녹음기입니다. 녹음기를 아주 튼튼하게 쇳덩이 속에다 넣어서 비행기 기체의 어느 곳에다 감추어 놓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하여 기체가 다 부서져도 그 녹음기는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떨어질때 무슨 소리가 났는지 또 비행기가 떨어질즈음에 본부하고 무슨 교신을 했는지 다 녹음이 되어있습니다. 지금 불이 붙었습니다. 지금 연료가 새고 있습니다. 지금 테러분자가 들어왔습니다. 괴한이 들어왔습니다. 협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등등 한말이 다 거기에 녹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블랙박스를 해독하면 사고의 전말을 알게 됩니다. 그 블랙박스에는 비행기가 뜨기 시작 할 때부터 모든 소리가 계속 녹음이 됩니다. 사고가 나든 안나든 다 녹음이 되기 때문에 그걸 해독하면 비행기가 어디로 갔으며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블랙박스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뇌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때 아버지하고 하던 이야기 어머니하고 하던 이야기가 다 생각이 납니다. 노인들은 요사이 된 일은 모르는데 옛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블랙박스가 있어 나도 모르게 다 입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 쫙 나옵니다. 테잎이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말도 조심해서 하고 행동도 조심해야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변명했지만 하나님 앞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것처럼 다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가 범한 죄가 다 나타납니다. 자기의 지은 죄가 자기 블랙박스에 다 입력이 되어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야 하는데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제사장을 통해 속죄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구약에서는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이 제사 드리는 일을 주관했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고 스스로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양을 잡아 제사 드릴 때나 소를 잡아 제사 드릴 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그냥 잡아서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 드려야합니다. 제사는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자기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제사장이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그 제물이 효과가 있습니다. 누구나 양을 잡아 드리고 소를 잡아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그걸 받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손으로 바쳐야만 제물이 됩니다. 그 제물 그 희생을 보시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제사장은 완전한 사람이라야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라야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됩니다. 오늘 읽은 레위기 21장 말씀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사람을 잘 이해해야하고 우리 죄인과 그 제사장 사이에 교감이 있어야 됩니다. 완전히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죄인이 제사장을 믿고 내 대신 제사를 드려 주십시요 하고 맡깁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죄인을 대신해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물을 받으십니다. 그때 죄를 용서 받게 됩니다. 1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곧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신 예수님만이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이고 하나님이 만족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갖은 고난을 다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청을 다 들으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다 들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만족하게 받아주십니다. 그런고로 예수님만이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여러 제사장들이 있지만 다 그림자이고 예표이고 예수님께서는 본체이십니다. 본체적인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잘 이해하십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같은 경험이 아니면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36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0장 28절에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에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고 했고 히브리서 10장 12절에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고 히브리서 10장 18절에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몸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이제는 양이나 소를 잡아 제사 드릴 필요가 없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됩니다. 15절에 말하기를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체휼이란 말은 몸으로 경험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것을 경험하셨고 피곤해서 배위에서 주무셨고 예루살렘 성전이 썩어가는 것을 보시고 분노해서 채찍을 들고 무리들을 몰아냈고 예수님은 몹시 고독해 하시기도 했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떠날 때가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독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내가 목 마르다 하신 말씀입니다. 몸에서 피가 싹 빠져 나가니까 목이 마르십니다. 온 몸에서 피가 다 빠져 나가니까 예수님께서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호소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그 말씀에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고 해서 이 말씀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난하게 사셨고 목수 일을 하시면서 모든 생활을 다 경험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과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은 우리와 똑같은 욕망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망이 없으면 시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신 후에 주리셨습니다. 그때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했습니다. 그 사실을 풀이 하면 40일 동안 금식하고 눈을 떠보니 앞에 돌덩이가 있는데 그게 떡으로 보였다 돌로 보였다 합니다. 저기 저것이 떡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니까 마귀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떡이 되게 해서 배가 고픈데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게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아니냐? 떡이 되게 해서 먹어라 왜 배가 고픈데 그러고 있느냐. 배고픔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척 뛰어 내리면 사람들이 크게 선망하고 바라 볼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하는 일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인데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다음에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네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시험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이기시고 시험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시험을 당하지 않는 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이기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시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목석이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모든 시험을 받으셨으나 그 시험을 다 이기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아픔도 당하시고 슬픔도 당하시고 시험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16절에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드릴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 순간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거룩한 은혜를 의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름으로 나아가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고 우리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제사장으로 계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6절 끝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하게 나갈 수가 있습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영원한 제사장이시고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그 제사장을 의지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게 됩니다.

4월 27일 다 기억 하시지요 잊지 마십시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금빛 찬란한 천국의 거리를 거닐면서 천사장 가브리엘과 함께 의미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세상에 내려가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 구원을 성취하셨는데 천국에 올라오시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 그 복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도록 해 놓고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와 요한 그 밖에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고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전도자들의 입을 통하여 멀리 복음이 전파 되도록 부탁하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의 성실하지 못한 것과 나약함을 잘 아는 가브리엘은 몹시 근심어린 태도로 예수님 만일 저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게을리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때 예수님께서 심각한 얼굴로 그렇지만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전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 전도 대회를 갖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4월 27일에 모시고 오도록 최선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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