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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범 격려문(룻 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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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 격려문
룻기 2:8-13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
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
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10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
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
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
니라 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13] 룻이 가로
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
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서론

  룻기는 옛날 이스라엘의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을 우리들에게 소
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내용은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의 집안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입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뜻
은 다음과 같습니다. “엘” 이라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어이고 “리”는 ‘나
의’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멜렉”이라는 것은“왕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엘리멜
렉이라는 말의 뜻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엘리
멜렉이라는 집안에 세심하게 역사를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믿는 성도들
의 가정을 하나님이 돌보시고 사랑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까?” 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신다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
다.

  이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의 이름은 나오미
입니다. 나오미는 ‘우리들의 기쁨’이라 그런 뜻입니다. 훌륭한 이름을 가진 두 사람
이 결혼을 해서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말론이고 두 번째 아들의
이름은 기룐입니다. 근데 아들들의 이름은 참 이상하게 지었습니다. 말론이라고 하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자’란 뜻이고, 기룐이라고 하는 것은 ‘소멸할 자라 곧 죽을 자
라’는 뜻입니다. 아니 자식 이름을 지어도 왜 보잘 것 없고 곧 죽을 놈이라고 이렇
게 지었을까요? 이름을 지을 때에는 비록 자식이 보잘 것 없더라도 훌륭한 자라고 부
르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엘리멜렉은 아이들의 이름
은 좋지 않은 뜻으로 지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엘리멜렉이
이제 자녀들을 이끌고 사해 동편에 있는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리고 어느덧
이민생활이 1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말론도 장가를 들어서 룻이라고 하는 모압여인
을 아내로 맞고 기룐도 장가를 들어서 오르바라고 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게 되었습니
다. 어떤 사람들은 말론의 아내가 오르바고 기룐의 아내가 룻인 줄 알고 있습니다. 왜
냐하면 룻기 1장에 순서가 그렇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론의 아내가 룻입니
다. 그런데 객지생활 10년 만에 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나오미는
타향살이 십년만에 그만 남편 엘리멜렉도 죽고, 아들인 말론도 죽고 기룐도 죽었습니
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 나오미와 두 며느리 세 명만 남아 과부집이 되버리고 말았
습니다. 이런 처지에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마음속에 얼마나 하나님을 향해서 씁쓸함
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 나를 돌보신다 하시더니 이제 우리 집안이 이 꼴이 웬말입니
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모압에서 너무나 기가 막힌 고난을 당하고난 나오미는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의 결정
을 내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고향땅인 베들레헴에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이제
다시 먹을 것이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불신앙의 땅인 모압을 떠나게 되었
습니다. 모압을 떠나서 두 며느리를 데리고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내가 이 며느리들
을 왜 끌고 가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서서 두 며느리에게 말했습
니다. “얘들아 이제 너희는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라!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 남편도
만나고 가정도 새로 꾸리고 사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르바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시어머니의 입을 맞추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
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오르바와 달랐습니다. 이 룻이라고 하는 여자는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단호한 결심을 보입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
머니께서 유숙하신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
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장사되
겠나이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
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처럼 단호한 룻의 입장을 알게 된 나오미는 나이도 많고 늙
고 먹을 것도 없고 힘도 없는데 젊은 며느리인 룻이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
니까 그만 뿌리치지 못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룻
이 인간적인 정때문에 시어머니를 따라 온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관점에서는 룻은
시어머니를 따른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는 시어머니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라 온 것입
니다.

  드디어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
을 때가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였습니다. 아마 3, 4월쯤 되었을 것입니다. 꽃샘추위도
불고 좀 추운 날이었습니다. 이제 시어머니를 모시고 왔으니 룻이 나가서 양식을 얻으
러 갑니다. 그 때가 마침 보리타작하는 때였기 때문에 보리를 주우러 가는 길이었습니
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보리를 추수할 때에는 추수하는 사람이 추수를 하여도 그 떨
어지는 것은 절대로 줍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대단히 잔인해 보여
도 실상은 대단히 자비로운 것이었습니다. “떨어진 것은 그대로 놓아 두어라!” 왜냐
하면 그 같은 율법의 규정은 배고픈 나그네가 주어먹고, 또한 가난한 자가 주어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룻이 그 떨어진 이삭을 줍기 위해서 이
제 보리밭에 나간 것입니다. 이 룻은 떨어진 보리 이삭을 주어서 어떻게 하면 시어머
니를 끓여 먹일 수 있을 것인가 이걸 생각하고 나간 것인데 그날 우연히도 간 것이 누
구의 보리밭이면 보아스의 보리밭 이었습니다.

  이 보아스는 원래 룻의 시아버지인 엘리멜렉과 친척입니다. 가까운 친척이고 대단
히 큰 부자고 권세도 많은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혼사를 막으시니깐 장가를
못 들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았는데 그 때까지 장가를 못가고 있었습니다. 이 보아
스가 예루살렘에서 와서 이제 자기의 보리밭에 추수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갔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일하는 사환들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
하노라” 그러니깐 사환들이 보아스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may God with you)” 이런 축복에 대해서 ‘may God bless you’
라고 하면서 서로 답했습니다. 고용주와 근로자간에 얼마나 아름다운 노사관계가 형성
이 되었습니까? 그런데 보아스가 거기에 서서 가만히 보니까 평소에 보지 못했던 소
녀 하나가 이삭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환에게 묻습니다. “저 소녀가 뉘 소녀
나?”라고 물으니깐 사환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룻기 2장 6-7절입니다. “베는 자
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
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
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그 사환이 이삭 줍
는 여인의 고향부터 설명해서 몇 시에 와서 얼마동안 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저 한 문장으로 정확히 표현해 놓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그 소리를 듣더니 이제 드디어 자비심이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보더니 이제 칭찬을 하고 그리고는 축복을 합니다. “이제 너는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이 밭에만 있어라! 이 밭에서만 주워라! 그리고 소년들에게 너희들은 이 소녀는
절대 건드리지 마라! 건드리면 너희들 죽을 것이다!”라고 엄히 경고를 하였습니다.
소년들에게 건들이지 못하게 막고 그리고 룻보고 배고프면 떡도 먹고 떡에다가 초가
있으니 초도 찍어먹고 목마르면 베들레헴 생수도 마시라고 하며 풍성한 은혜를 베풀었
습니다. 베들레헴 생수가 이게 보통 생수가 아닙니다. 다윗이 추방당해 쫓겨 다닐 때
에 이 베들레헴 생수 한 번 먹고 싶어서 누가 나를 위해서 물을 떠올꼬 하니까 다윗
의 심복들이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가서 떠온 생수가 베들레헴 생수입니다. 지금 룻
은 보아스의 자상한 배려로 말미암아 베들레헴 생수도 마시고 볶은 곡식 옥수수도 먹
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수하는 소년들이 일부러 흘린 이삭을 많이 주워가는 복
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보아스라는 사람은 인격이 매우 자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인격이 자비로운 사
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단히 신중한 사람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인격
의 모델로 세워서 배워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보아스를 고르
겠습니다. 이 보아스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닮아가야 할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얼마
나 훌륭합니까? 이런 보아스의 자비에 대해서 룻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땅에 엎드립니
다. 10절에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룻이 얼마나 겸손합니까! 그
냥 엎드리고 “주여 나는 이방 여인이오니 어찌하여 당신이 당신의 시녀만도 못한데
나를 이렇게 대우하시나이까” 이 얼마나 겸손하고 인격이 순수합니까! 우리 사람은
복잡한 인격을 가지면 안 됩니다. 순수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됩니다. 신중하고 자비
로워야 합니다. 이 보아스와 룻의 인격은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본받아야 할 인격
인 줄로 믿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대면 현장은 오늘날 교회에서 기신자와 새신자의 대면현장과 비슷한
것입니다. 룻은 모압의 우상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갓 돌아온 새신자고, 보아
스는 신앙경력과 경험이 풍부한 기신자의 모형인 것입니다. 예수 오래 믿은 우리도 보
아스처럼 각자의 룻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룻을 격려하고 기도해 줄 수 있
어야 합니다. 아볼로에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고 바울에게도 아나니아가 있
었고 디모데에게는 바울이 있었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잘 성장
하여 혼자서 신앙이 크게 자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기도해 주고 누군가가 가
르쳐주고 누군가가 격려해 주고 이렇게 양육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잘 성
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새신자 룻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룻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신자와 비슷합니다. 우선 첫째 룻
은 떠날 곳을 떠났습니다. 모압을 떠났습니다. 모압은 자기 고향입니다. 부모가 있고
친척이 있고 형제가 있고 어릴때 같이 놀던 소꿉친구들이 있고 모압이 얼마나 그리운
곳이겠습니까? 그래도 이 룻은 “아하! 모압의 신은 거짓된 신이요 이스라엘의 신 우
리 시어머니의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모압을 과감히 떠난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떠날 곳은 확실히 떠나야 합니다. 떠날 곳
에 머뭇거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모압 사람들이 틀림없이 룻을 보고 비웃었
을 것입니다. “네 시어머니 따라가서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네 시어머니가 애
를 더 낳아서 너와 세대 결혼을 시킬 수 있겠느냐? 네가 왜 그 노쇠한 시어머니를 따
라 쫓아가느냐?”하면서 비웃기도 하고, 핍박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총각들이 룻을 보고서 유혹을 왜 안했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모든 유혹
과 시험을 이겨내고 모압을 단호하게 떠나버립니다. 어려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믿음
의 사람 룻은 자신의 신앙을 과감하게 드러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모압의 신
은 거짓된 신이고 오직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신이라고 고백을 하였습
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예수 믿는 신앙은 몰래 믿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올 때도 이것
성경책이라고 하고 신문지에 싸가지고 오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 아무도 모르게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신앙의 자세를 우리는 지양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예수 믿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시인하면 천국
에 가서도 하나님이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
을 부끄러워하면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우리를 부끄러워하실 거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기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
면 나중에 결코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 읽는 것을 부끄
러워하고 성경 들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중에서 강남중앙침례교회 집사라는 것을 부끄러
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에 그런 분이 계신다면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가더라도 하
나님의 따뜻한 인사를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믿음
의 성도님들이 룻처럼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스럽게 드러내시기를 바랍
니다.

  이 룻은 모압에서 단호하게 떠났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을 때는 떠나야 할 곳은 단
호하게 떠나시기 바랍니다. 룻은 떠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돌아올 데로 돌아왔습니
다. 룻이 돌아 온 곳은 어딥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분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고 있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미국
에 가서 유타주를 여행할 때 “the best the west”라는 곳에 들러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미국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서부의 가장 좋은 주라고 하는 곳입니다. 근대 그
곳에는 아주 넓은 사막이 많습니다. 그 사막에 난 고속도로를 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마침 독수리들이 떼를 지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독수리가 커다
란 날개를 펴고 광활한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나는 모습은 참 균형감과 안정감이 있었습
니다. 제 평생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 날개는 그만두고
닭 날개는 어떻습니까? 비록 닭의 날개는 작고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어미닭이 그 조
그마한 날개로 계란을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부화하게 됩니다. 새끼 병아리는 개가 쫓
아오면 어미닭의 날개 밑으로 확 들어가서 숨어 버립니다. 낡 날개 밑에 있으면 천지
가 개벽을 하고 벼락이 치고 천둥이 쳐도 병아리는 끄떡없습니다.

  이처럼 룻은 모압을 떠나서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피하러 왔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대한 신앙의 결단입니다. 마치 새끼 병아리기 위험을 피하여 어미닭의 따뜻하
고 안전한 날개 아래로 피신한 것과 똑같은 행동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새신자들이
많으신데 세상을 떠나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 온 것은 참으로 잘한 것입니다. 우리
가 여호와의 날개 아래 오래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축복을 다 받았다고 한
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날개 아래 있는 그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을 세상 사람들에게 반
드시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 기신자 보아스

  반면에 여기 보아스는 기신자의 모델입니다. 이 보아스는 룻을 세 가지로 칭찬합니
다. 11절에 보니까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
모에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칭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보아스는 룻의 효심을
칭찬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가르치고 계십니
다. 우리가 왜 이 땅에 살면서 어려움이 많이 닥친다면 자기가 부모에게 어떻게 했느
냐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은 결국은 축복을 받기가 어렵습니
다. 옛날의 우리 한국은 유교가 지배할 때에는 효를 너무 강조를 해가지고 이 효를 우
상숭배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효가 약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한국이 젊은 세대
와 나이든 세대가 갈등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효의 이 위대한 가치를
오늘날의 세대는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십계명 두 돌비 가운데 첫 돌비는 여호와를 믿으라는 것이고
두 돌비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돌비의 첫 글과 첫 번째 돌비의 첫
글은 비중이 같은 것입니다. 그 교훈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
니다. 기독교는 부모공경을 매우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부모님을 향한 공경을 지극히
강조하는 종교가 우리 기독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 룻이 부모에
게 효도한 것을 그렇게 칭찬을 하였습니다.

  또 두 번째는 뭘 칭찬합니까?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라고 하는 말씀을 보십시
오. 그것을 떠나 희생한 것을 칭찬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아무 희생도 없고 아무 노력
도 없고 아무 봉사도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본
문 말씀에 “또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네가 돌아온 것이 그것이 칭찬이라”고
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효심을 칭찬하고 희생을 칭찬하고 그 믿음을 칭찬합니다. 그
리고는 칭찬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무엇을 더 해줍니까? 바로 기도
를 해 줍니다. 12절을 읽어보실까요?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
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
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해 주고 있습니다. 보아스처럼 우리 기신자들도 새신자가
올 때에 축복해주고 격려해 주고 기도해주고 그래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격려가 바구니
라면 기도는 바구니에 떡을 담아주는 것입니다. 격려가 구름이라고 한다면 기도는 구
름에서 시원한 비를 내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룻에게 많은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불신앙의 모든 유혹을
담대히 물리치고 하나님의 그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날개 아래로 떠났습니다. 그리
고 우리 사랑의 하나님은 그 날개 아래로 찾아온 불쌍한 룻을 따뜻하게 품어 주셨습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룻에게 피난처도 되시고 보응도 주시고 상도 주시는 하나
님이 바로 우리가 섬기고 있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날개 아래 온 룻에게 먼저 내세의 상을 주십니다. 이 상은 죽어
서 천국가는 상입니다. 죽어서 천국가는 것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성경
은 증거하기를 참된 지혜자는 잔칫집보다 초상집에 먼저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한
한 인생에 대해서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을 향하여 전도서의 저저는
지혜자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세를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
입니다. 아주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세의 상을 받은 믿음의 사람은 죽으면
천국을 갈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내세의 상
은 실로 어마어마한 상입니다. 억만금의 돈을 주고도 결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오
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믿음의 성도님들도 룻처럼 내세의 상을 확실히 받으시기 바
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세의 상만 주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현세의 상도 주십니다.
룻은 자기 가족을 잃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무수한 새가족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룻
은 자기 양심의 평안을 모르고 모압에서 우상을 숭배할 때 귀신에 이끌려 살았지만 이
제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마음의 참된 평안
을 누리며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룻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
다. 우리가 사는 미래는 얼마나 두렵습니까?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다
가 혹시 암세포가 우리를 장악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
은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면서 심히 두려워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언제 내가 의지하는 남편을 잃게 될 것인가? 언제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인가?”하면서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독일어로 “앙스트”의 삶
입니다. 즉 우리의 삶은 ‘두려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
속의 말씀이 그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르기를 “아버지를 믿으니 또 나
를 믿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
하는 자녀들의 삶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
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머리카락 하나라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현실
을 중요시 여기고 늘 믿음 안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에 미래는 여호와께 맡
겨야만 합니다. 그 인생을 주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라고 믿어야만 합니다. 이 믿음 가
지고 평안을 누리며 두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에게 내세의 상을 주실 뿐만 아니라 현세의 상도 주셨습니다. 심지
어 물질의 복도 주셨습니다. 밥도 주시고, 떡도 주시고 베들레헴 생수도 주시고, 볶
은 옥수수도 주시고 초도 주시고, 보리도 주시고 물질의 복도 주셨습니다. 혹시 이 자
리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사업에 망하고 물질에 쪼들리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날
개 아래로 신속히 찾아오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시편 23편의 다윗의 고백과도 같이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욕심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 욕심이라는 것이 마치 밑
없는 무저갱과 같아서 채우고 채우고 해도 욕심이 다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유명한 록
펠러가 어려서부터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53세에 벌써 억만장자가 됐는데 그러자 수많
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있는데 왜 자꾸만 벌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이미 억
만장자가 되었으니 죽을 때까지 하루에 일억씩 써도 다 못쓰고 죽을 건데?”. 그러니
까 록펠러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억만장자가 된 지금도 나는 조금만 더 조금
만 더 벌겠다고 하는 마음의 욕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하여도 그 욕
심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몸에 병이 들어서 그냥 먹을 것도 못 먹고 마
실 것도 못 마시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가 록펠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건강을 다시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록펠러의 삶
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물질을 모으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그 물질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하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물질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유명한 록펠러 제단
도 만들어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다가 98세까지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사업이 망하고 물질이 쪼들린 사람은 여호와의 날개 아래 피하면 여호와께
서 물질의 상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또 나아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도 주시고
기도응답의 기쁨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룻이 기도를 합니다. 13절 말
씀을 보십시오.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
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
씀을 하셨나이다.” 여기에서 룻이 뭐라고 기도합니까?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
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룻의 간구는 즉각적으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룻
은 그날밤 돌아가서 시어머니한테 얘기합니다. “내가 보리를 주우러 갔는데 거기서
참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묻습니다. “그래 누구 밭이더
냐?” “예 보아스의 밭입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아하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내 남
편 엘리멜렉의 친척인데 우리의 기업을 물을 자이니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시어머니
인 나오미가 이제 룻에게 말합니다. “너는 이제 내가 해주는 대로 해라. 오늘밤에 가
서 그 사람이 자고 있는 그 발치에 가서 누워라. 그러면 그 사람이 행해야 할 일을 네
게 알려주리라!” 그래서 룻이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해서 보아스의 방에 들어가서
발치에 눕습니다. 보아스가 자고 있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 룻을 향하여 누구냐고 묻
게 되었고, 자신의 방에 들어 온 여자가 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룻은 보아스
를 향하여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서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는 프러포즈를 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처녀들은 총각하고 연애할 때에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
으소서!”라고 한번 말해서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하고는 결혼을 하고, 그것도 못 알
아듣는 센스없는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룻이 보아스를 향하여
하는 그 말이 바로 성경적인 프러포즈의 표현입니다.

  그러자 참으로 지혜로운 보아스는 룻이 표현하는 그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
다. 또한 보아스는 대단히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그날 밤에
부부의 관계를 맺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보아스는 룻에
게 “내가 너희의 기업무를 자이지만 나보다 우선순위가 먼저 인자가 하나 있느니라”
고 말합니다. 즉 보아스는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이 너와 결혼을 안 하겠다
고 하면 내가 틀림없이 너와 결혼을 할 테니깐 너는 오늘 밤은 그냥 돌아가고 기다리
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보아스는 자신보다 우선권이 있는 그 기업물을 자가
오니까 “이리오시오. 우리 친척 엘리멜렉이 있는데 그 땅도 다 팔았고 하니 당신이
그 땅을 무르겠소?”하니 그 사람이 무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계속해서 “그
러면 당신이 무르면 여기 그 며느리 룻이 있으니까 그 땅을 룻에게 주어야 하는데 룻
에게 주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우선권이 있는 그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손해를 볼 것 같으니까 안하겠다고 양보를 하였습니다. 그 순간에 보아스는
“그럼 당신의 신발을 벗어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신발을 벗어주는 것이 그 당
시에는 확실하게 약속을 확증하는 표입니다. 그 신발을 벗어주니까 보아스가 그 신발
을 들고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엘리멜렉의 모든 잃어버린 땅을 다 물을 것이며 그리고 룻을 내가 아내로 데리
고 살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되면 보아스는 하나도 손해 볼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기만 하면 룻의 것이 바로 자신의 것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보아스와 룻
은 기업도 정당하게 물으고 결혼도 하고 되었습니다. 룻은 기도한데로 보아스에게 큰
은혜를 받았고, 룻은 거기서 결혼해서 아들도 낳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오
벳입니다. 오벳이 누구를 낳았습니까? 이세를 낳았고 이세가 누구를 낳았습니까? 다윗
을 낳았습니다. 룻은 다윗 임금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보아스는 다윗임금의 증조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마
어마한 복을 룻은 받게 된 것입니다. 룻은 모든 것을 버린 듯 했으나 모든 것을 얻었
습니다. 남편이 죽었으나 더 좋은 남편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난을 기대했으나 하나님
이 엄청난 부요로 부어주셨습니다. 무자식을 기대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족보
에 남는 위대한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친정집에서 버림받은 것 같았으나 하나님
의 집에서 어마어마한 기업을 얻게 되었고, 자기 백성이 버린 듯 했으나 하나님의 백
성의 위대한 반열에 서게 된 것입니다. 남편 보아스의 것이 모두 자기 것이 되었고,
자기 시아버지 집의 모든 기업이 다 자기 것이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압같은 세상을 떠나서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피하러 온 여러
분 모두에게도 룻에게 임한 하나님께서 현세와 내세에 상주시는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이 보아스는 기신자의 상징이면서 기업물은 자로서의 구세주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새신자는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모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상속할 수 있는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정주영씨의 재산을 상속
한 아들은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나, 우리는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예수님의
것을 상속할 수 있는 상속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것입니까? 오늘 예수님을 믿으
러 오신 여러분을 주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
보아스도 룻을 격려하고 축복하다가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기신
자들도 매주 새롭게 들어오는 새신자들을 따뜻하게 환영하는 가운데에 보아스에게 임
한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보아스가 룻하고 결혼 안했으면 보아스가 누구집 자식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겠습니까? 보아스는 자기가 은혜를 베푸는 듯 했으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
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은혜를 받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
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 격려해
야합니다. 서로 헐뜯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축복의 말을 하고 서로 붙
들어 주고 서로 위로 하고 하시기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오미가 당한
세상의 많은 고난과 시험으로 인하여 “전능자가 나를 벌주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고 전능자가 전에 내가 나갈때는 풍족하게 나갔는데 돌아올 때는 거지가 되어 돌아
오게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불평하거나 원망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또한 “하
나님이 진실로 살아계시고 좋은 분이라면 나의 집안에 그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라고 의심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
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나오미는 비록 두 아들을 다 잃어버리고, 남편도 잃어버렸지
만 열 아들보다 귀한 자부 룻을 얻게 되었고 그 품에 노년기에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
벳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다니면서 “내가 이렇게 복을 받았다”라
고 간증할 수 있는 복된 여인이 된 줄로 믿습니다. 나오미도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
치게 되었고, 사랑하는 며느리인 룻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고 성경
에 그 이름에 기록되어 오늘날의 우리가 그 이름을 아는 축복의 여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씁쓸함과 원망이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계속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
니다. 대신에 나오미와 룻처럼 하나님의 넓고 따스한 날개 아래로 들어오시기 바랍니
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도 나오미와 룻에게 임한 신령한 복을 내려주시고 말
할 수 없는 축복으로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오미처럼 “이 한 자부가 열 아
들보다 낫도다!”라고 기쁘게 고백하면서 감사할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자
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나오미와 룻에게 허락하셨던 내세와 현세
의 복을 마음껏 쏟아 부어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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